극도로 여성스러운 우아함을 표현하는 데 있어 천부적 재능을 지닌 디자이너 지암바티스타 발리. 그의 브랜드 10주년을 기념해 오늘날 가장 각광받고 있는 모던 쿠튀리에와 그의 우아한 뮤즈들이 함께 만든 절정의 순간이 펼쳐진다.
헨리 제임스는 그의 유명한 단편소설인 에서 귀족은 절대로 예술가가 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견해는 그가 지암바티스타 발리 (Giambattista Valli)를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교황 가문 출신 귀족으로 태어나 파리에서 살고 있는 그는 최고의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가치를 현대적인 우아함으로 승화시킨다. 더없이 로맨틱하고 때론 혁신적으로. “그는 시인의 영혼을 가지고 있어요.”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친한 벗이자 사교계의 전설인 82세의 리 래지윌이 말했다. 그녀를 비롯해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오랜 고객과 친구들로 이루어진 모임은 그에게 너무나도 헌신적이어서 패션 계에선 그녀들을 ‘발리 걸스(Valli Girls)’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요르단의 라니아 왕비, 영화배우 셀마 헤이엑과 다이앤 크루거, 그리고 세계적인 패셔니스타인 유제니 니아르코스, 샬롯 델럴, 다리아 주코바와 비앙카 브란 돌리니 다다가 발리 걸스를 자처한다. 유명한 디자이너들과 비교해도 발리의 삶은 여느 이들보다 더 특별하다. 그는 래지윌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라니아 왕비와 차를 마시곤 한다. 또한 발리 걸스는 그를 그의 어렸을적 별명인 ‘지암 바’라고 부르며, 그의 레디투웨어 컬렉션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비싼 쿠튀르 의상도 사랑해 마지않는다. 오늘날 발리는 감각 있고 젊은 고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쿠튀르를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룩으로 부활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암바는 여자를 사랑해요”라고 그의 오랜 친구인 배우 다이앤 크루거가 얘기했다. “정말로요. 모든 여자를 말이죠. 그의 옷은 여성의 체형을 더욱 아 름답게 돋보이게 하니까요.”
한편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때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한다. 지난 2014년 에미상 시상식에서 레나 던햄이 입어 논란이 된 파자마 톱 드레스와 2015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리한나가 입은 풍성한 볼륨감이 돋보이는 핑크 튤 드레스 덕분에 말이다. 특히 리한나의 드레스는 수백 개의 카피를 만들어냈고, ‘오트 쿠튀르’ 라는 단어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이들의 입에서 발리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했다. 소셜미디어의 붐과 함께 그의 컬렉션이 대중적인 유명세를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패션의 디지털 민주화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그 만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은 채 쿠튀리에로서의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파리에서 펼쳐진 오트 쿠튀르 기간에 10주년을 기념해 성대한 파티를 연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디자이너로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올라섰다. 우선 그는 48세의 나이로 유서 깊은 파리의상조합의 회원이 되는 영예를 누렸다. 오늘날 루피타 니옹고, 제시카 비엘, 페넬로페 크루즈, 나탈리 포트먼, 에이미 애덤스, 줄리앤 무어와 같은 매혹적인 여배우들이 그의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 위에서 자신의 우아함을 한껏 드러낸다. 또 전 세계 약 240개 매장에서 그의 컬렉션을 만날 수 있으며, 최근엔 중국에 진출해 상하이 쇼를 성공적으로 치르기도 했다. 한편 그는 몽클레르 감마 루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겸하고 있다. 나아가 지난해엔 그의 세컨드 라인인 ‘지암바(Giamba)’를 성공적으 로 론칭했고, 캐주얼한 데님 브랜드인 세븐포올맨카인드와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며 주목받은 바 있다. 그의 이름이 들어간 MAC 코즈메틱의 새로운 라인 도 출시했으며, 최근 출간한 책에서 선보인 그만의 스타일은 많은 이들에게 환호를 받고 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거대 패션 기업의 도움 없이 혼자 이루었 다. 이 점에서 동시대 유명 디자이너들과 또 다른 평가를 받는다. “저는 아웃 사이더가 되는 게 좋아요. 그렇지만 이 자유로움의 대가는 엄청나죠. 저는 자급자족하고 무엇이든 스스로 해야 해요. 정말로 많은 일을 해야 한답니다. 하지만 저는 억만 장자가 되기 위해 이 일을 하진 않아요. 저는 단지 아름다운 여성들과 일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죠.”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어느 축축한 겨울날, 파리 시내에 위치한 사무실을 향해 생토노레 거리를 걷고 있다. 그는 럭셔리한 매장 들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찾는 듯한 눈빛을 내비친다. “저는 항상 우아함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요. 그렇지만 쉽지는 않죠. 저걸 좀 보세요.” 그는 한 유명 브랜드의 쇼윈도 밖에 줄지어 선 관광객을 보며 말한다. “저건 럭셔리일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면세점 같지 않나요? 사실 진정한 우아함은 쉽게 드러나기보다는 은밀하게 숨어 있거든요.”
그는 검정 캐시미어 스웨터 안에 몇 개의 펜던트 목걸이 를 착용한 채, 거울로 둘러싸인 그의 쇼룸에 앉아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내가 싫어하는 이에겐 제 옷을 입히지 않죠. 사실 저는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더 많아요.” 그를 가까이서 찬찬히 살펴보면 로마 조각상 같은 선이 분명한 생김새와 활달한 기운이 시선을 끈다. 그는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예술, 영화, 문학 등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대화를 이끈다. “최근 리에게서 제일 좋은 칭찬을 들었어요. 그녀가 저를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속물이 아니어서라고 말이죠.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늘 생각해요. 이게 아마도 제가 스타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요. 팬과 스타의 관계가 아닌 우정과 신뢰의 관계죠. 예를 들면 저는 레나가 유명해서가 아니라 단지 어떤 사람인지 궁금 했기 때문에 그녀를 만나기를 원했어요. 솔직히 제가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스타도 많답니다.”
그의 유년은 유복했다.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사립학교에 다니며 영국에서 랭귀지 코스를 받고 겨울방학이면 스키를 탔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어린 시절부터 싹튼 그의 패션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대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패션 디자이너는 정식 직업으로 대우받지 않았죠”라고 발리가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7살이었을 때, 루치노 비스콘 티의 명작 <들고양이>에서 평민 여자인 클라우디아 카르 디날레가 큰 웃음소리를 내며 귀족들을 충격에 빠트린 장 면을 보고 매우 감명을 받은 기억을 회상했다. “정말 눈부 시게 아름다운 여성의 자유로움이 느껴졌어요. 심지어 천 박한 웃음으로 경화된 귀족 체제의 분위기를 깨트리는 모 습은 정말 인상 깊었죠.” Studio 54를 동경하고 밀라노에서 펼쳐진 패션쇼를 몰래 보며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키우던 청소년기의 발리. 그는 결국 로마의 유럽디자인종합학교에서 패션 학위를 땄고,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강의를 듣기도 했다. 그가 학생이었을 때 겐조 다 카다가 소개해준 이브 생 로랑과 우정을 쌓았고 패션계의 많은 전설적인 인물들과 멘토, 멘티의 관계를 맺었다. 이탤리언 장인 정신의 뿌리인 알타 모다의 거장 로베르토 카푸치, 펜디도 그렇게 맺은 인연 중 하나였다. 그는 펜디 의 젊은 라인인 펜디시메에서 일했고, 1997년 에마뉘엘 웅가로 밑에서 일하기 위해 파리로 향했다. 그리고 2001 년에 그는 웅가로의 레디투웨어와 오트 쿠튀르를 총괄하는 디자이너가 되었고, 세계적인 패셔니스타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고자 웅가로를 떠났을 때, 그 추 종자들은 발리를 따라왔다. 이윽고 2005년 봄, 그의 첫 번째 지암바티스타 발리 쇼에 다이앤 크루거와 리 래지 윌이 프런트로에 앉아 쇼를 감상했고, 디타 본 티즈가 런웨이 모델로 섰다. 그는 순식간에 젊고 스타일리시한 동시에 부유한 여성들이 찾는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그의 첫 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이게 되었다.
다른 브랜드에서 다시 일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너무 ‘럭셔리 샐러리맨’ 같다고 대답 했다. “제가 웅가로를 떠났을 때 이니셜 V로 대표되는 어떤 유명 패션 하우 스로부터 디렉터 제안이 왔어요. 당시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제 레이블 론칭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거절 했죠. 그 이후 전 항상 제 자신에게 말 했어요. ‘언젠가 내가 유명해지면 V는 다름아닌 지암바티스타 발리(Valli)의 V를 상징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이죠.” 곧 트렌드세터들은 그를 마르게리타 미소니의 웨딩에서 눈길을 끈 보호 스타일 드레스와 제시카 비엘이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결혼할 때 입은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만든 디자이너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결혼한 조지 클루니의 연인인 아말 클루니가 베니스에서 그의 쿠튀르 미니 드레스를 입은 사진이 인스타그램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제품을 카피했어요. 무언가가 하루아침에 특별한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죠.”
그의 세컨드 라인인 지암바는 겉으로 보이는 예쁘장함과 달리 미묘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지암바의 컬렉션은 가죽 벨트로 장식된 얇고 가벼운 베이비돌 드레스를 선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발리의 옷에 끌리는 이유는 여성들에게 그의 옷이 매우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위해 옷을 디자인할 때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은 그녀의 제스처예요. 그녀가 다리를 어떻게 꼬는지, 손동작을 어떻게 하는지를 떠올리죠. 제가 할 일은 그녀만의 특별한 매력이나 존재감을 돋보이게 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정신과 의사와도 같죠. 이게 제가 항상 검정 옷을 입는 이유예요. 저는 되도 록이면 그림자처럼 눈에 띄고 싶지 않아요. 주목을 받아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여성이기 때문이죠.”
몇 달 후, 발리의 2015 S/S 쿠튀르 쇼 전날. 그의 사무실은 여자들로 넘쳐났다. 입구의 소파는 수다를 떠는 모델로 가득하고, 사무실 안쪽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이 다음 날을 위해 한창 예행 연습 중이다. 무드보드 앞에서 피팅을 감독하는 디자이너 발리는 여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차분히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 다. 모델의 워킹을 고쳐주고 어시스턴트들의 질문에 대답 하고 헴라인 수정을 하는 동시에 그는 쿠튀리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했다. “어떻게 하는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둘 중 하나예요”라고 열기구만 한 크기의 실크 드레스를 입은 모델을 쳐다보며 그가 말했다. “요즘 너무 많은 디자이너들이 값비싼 자수가 놓인 미니 드레스를 만들면 그게 오트 쿠튀르라고 생각하지만 착각이죠. 대신 원단을 드레이핑하는 예술을 이해하고 동시에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입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해요. 이걸 보세요.” 촘촘한 주름 장식의 이브닝 스커트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이건 단지 3백50미터의 튤이에요. 아틀리에가 작업한 것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요. 저는 5분 만에 디자인해 입었을 때 사람들이 ‘와우’라고 하는 것을 원하죠. 쿠튀르 드레스는 하늘에 떠 있는 느낌을 줘야 해요. 마치 꿈처럼, 혹은 악몽처럼 말이죠.” 쇼가 끝난 후 백스테이 지에서 발리는 그의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여기 있 었네, 나의 달링, 내 사랑, 나의 와이프!” 라고 기쁘게 소리 치면서. 그의 포옹을 기다리는 여성들은 질투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며 한 여자 친구가 발리와 포옹하자 다른 여인이 중얼댄다. “그녀는 와이프보다는 ‘엄마’에 가까운데.” 이런 말은 발리 걸스가 얼마나 ‘지암바’에게 충성심이 높은지 보여준다. 그녀들의 관심을 누리며 그는 파리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로 사는 듯하다.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방금 전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전 일의 50퍼센트만 해요. 나머지 반은 아름다운 여성이 제 창작물을 해석하는 것이죠. 여자가 없는 드레스가 무슨 소용인가요? 그건 마치 빈집과 다름없어요.”
- 에디터
- 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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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Andrea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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