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빕스코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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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전자음이 떠도는 가운데 하늘에서 거대한 스파게티 가닥이 쏟아져 내리고 땅에서는 검은 당근과 반짝이는 젖가슴이 자라나는 곳, 바로 헨릭 빕스코브의 세계다. 패션과 미술, 음악 등 온갖 장르를 전방위적으로 아우르는 이 멀티플레이어는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앞서 정해두지 않기 때문에 어디로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헨릭 빕스코브는 짧고 간략하게 소개하기가 쉽지 않은 인물이다. 이 멀티플레이어가 발을 담그고 있는 분야와 손대고 있는 프로젝트를 꼽다 보면 이야기는 금세 장황해지고 만다. 가장 널리 알려 진 건 아무래도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행보다. 색상과 패턴을 적극 활용하는 의상, 설치미술에 퍼 포먼스를 접붙인 듯한 쇼 연출 방식, 그리고 포르노 영화 혹은 판타지 소설의 제목 같기도 한 컬렉 션 타이틀 덕분에 그에게는 늘 컬트적인 팬덤이 따라붙는다. 그런데 사실 그는 디자이너가 되기 한참 전부터 이미 뮤지션이기도 했다. 10세 때 처음 드럼 스틱을 쥔 이래 줄곧 연주를 멈추지 않았을 뿐만 아 니라 현재는 밴드 트렌트묄러(Trentemøller)의 라이브 투어 드러머로도 활동 중이다. 물론 그 외의 시도들, 그 러니까 스웨덴 디자이너 안드레아스 에메니우스와 함께 진행해온 아트 프로젝트나 비요크의 오페라부터 발 레 <백조의 호수>까지 이르는 각종 공연 의상 제작, 트렌드묄러의 콘서트 무대 디자인 등에 대한 언급도 빠뜨 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덴마크 남자는 관습적인 역할이나 손쉬운 분류에 갇히는 대신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 에 도전하며 자신의 우주를 성실하게 확장시켜왔다.

대림미술관이 2015년 7월에 시작될 새로운 전시의 주인공으로 그를 지목한 건 그래서 충분히 수긍할 만한 결 정이다. 어쩌면 헨릭 빕스코브라는 이름이 스칸디나비아 반도만큼이나 멀고 설게 느껴지는 사람도 꽤 될 것 이다. 하지만 4층 규모의 미술관을 이토록 다채롭고 흥미진진하게 채울 수 있는 창작자는 그리 많지 않다. 지난 4월 초, 빕스코브는 전시 준비의 세부 사항을 의논하고자 서울에 다녀갔다. 짧고 빠듯한 일정 사이를 1시간 가량 비집고 들기로 했다. 2미터? 어쩌면 그 이상일까? 약속 장소에 나타난 디자이너는 시선이라도 맞추려면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장신이었다. 시차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말했지만 차고 푸른 눈동자에는 흐려진 기색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종종 농담을 던질 때면 쏟아질 듯 큰 두 눈이 유독 번뜩였다.

저는 치밀한 계획이나 거창한 꿈에 따라 움직이는 편이 아니에요.” 거의 모든 분야를 분주하게 섭렵하며 살아 가는 남자는 미래를 위한 대단한 구상이나 야심 따위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다. 먼 곳을 헤아리기보 다는 다음에 내디딜 발 밑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부류인 셈이다. 갈 길을 모르기 때문에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까? 좀처럼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한국에서 열리는 첫 번 째 대규모 전시 역시 이 다재다능한 인물에 대한 완벽한 해설은 아닐지 모른다. 그보다는 앞으로 헨릭 빕스코 브가 실현시킬 화려하고 섹시하며 환상적인 공상에의 기대를 부추기는 예고편에 가까울 거다.

 1. 2014년 초 헬싱키에서 열린 헨릭 빕스코브 개인전 전경. 그가 컬렉션에서 선보인 패션 인스톨레이션을 총망라한 기획이었다.  2. 2010년 봄/여름 컬렉션인 ‘The Solar Donkey Experiment’.  3. 헨릭 빕스코브와 안드레아스 에메니우스의 공동 프로젝트였던 ‘Fringe Project 1’ (2007).  4. 베를린의 풀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The Panda People and Other Works>에 소개된 드로잉. 

1. 2014년 초 헬싱키에서 열린 헨릭 빕스코브 개인전 전경. 그가 컬렉션에서 선보인 패션 인스톨레이션을 총망라한 기획이었다. 

2. 2010년 봄/여름 컬렉션인 The Solar Donkey Experiment’. 

3. 헨릭 빕스코브와 안드레아스 에메니우스의 공동 프로젝트였던 ‘Fringe Project 1’ (2007). 

4. 베를린의 풀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The Panda People and Other Works>에 소개된 드로잉. 

 <W Korea>

대림미술관에서 7월 초부터 대규모 전시를 연다. 현재는 어느 정도로 밑그림이 준비된 상태인가?

헨릭 빕스코브 사실은 그에 대한 구체적인 의논이 이번 방문의 주요 목적이다. 내가 구축한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한데 아우르는 자리가 될 것 이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해왔는지, 그리고 현재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하는 쇼케이스에 가깝지 않을까.

딱히 패션에 무게중심이 실리는 전시는 아닐 거라는 뜻인가?

설치미술이나 음악과 관련된 작업도 여럿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나 발레를 위한 의상, 내가 하는 음악에 관한 레퍼런스, 뮤직비디오, 텍스타일 디자인 등등을 전시장에 옮겨놓으려고 한다. 패션과 관련해서는 지금껏 시도한 쇼들을 압축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을 취할 생각이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역할에만 갇히지 않고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폭넓은 활동을 펼쳐왔다. 당신에게 패션이란 수많은 관심사 가운데 하나일 뿐인 듯하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이유도 흥미롭다. 당시 좋아하던 여자친구가 이 학교에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사실이다. 세인트 마틴에 갈 생각이라기에 이렇게 답했다. “그 학교 알아. 나도 지원했거든.” 괜히 쿨해 보이고 싶었다. 

그 로맨스는 어떻게 결론이 났나?

잘 풀렸다. 여전히 우리는 좋은 친구 사이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고.

대학 진학 전에도 패션에 관심이 있었던 편인가?

대부분의 디자이너와 는 다른 측면의 관심이었다. 어릴 때부터 드럼을 연주했는데, 음악을 하는 무리 사이에서는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곡을 듣고 어떤 옷을 입느냐 따위의 문화가 공유되곤 한다.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통분모인 셈이다. 당연히 각자의 정체성도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시골 출신이었던 나는 대도시로 이사하면서부터 쿨해지기 위한 방법을 나름대로 학습했다. 그리고 뮤지션 친구들을 사귀면서 음악의 한 요소로서 패션을 인식하게 됐다. 본격적인 관심이라기보다는 옷이나 스타일링에 대해 비로소 의식하기 시작한 수준이었다.

음악을 한 이력이 그 외의 작업 전반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 하나?

그랬을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애초에 패션을 시작하게 한 이유 중 하나였던 건 확실하다. 또한 특정 음악 장르와 관련된 스타일로부터 작업의 힌트를 얻은 적도 있고, 쇼에 사운드를 적극 활용하는 편이기도 하다. 솔직히 적지 않은 패션쇼가 내게는 지루했기 때문에 뭔가 다른 방식을 시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컬렉션을 위해 매번 특별한 사운드트랙을 만든다. 가끔은 음악이 아니라 노이즈에 가까운 형태가 되기도 한 다. 희한한 냄새와 음식까지 등장시켰을 만큼 관람객들의 오감을 공략 하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내 쇼가 ‘그래, 저 재킷을 사야겠군’ 이상의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경험이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좀 더 상업적인 프레젠 테이션 방식을 취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바를 솔직하게 좇는 게 맞는 방향 같았다.

패션 디자이너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고 그래픽 디자이너이며 뮤지션인 동시에 미술 작가이기도 하다. 여행하면서 입국 신고서를 작성할 때는 직업란에 주로 뭐라고 적나?

어제 한국에 들어올 때는 ‘교수(professor)’라고 적었다. 실제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고 가장 무난한 답 같아서다. 그런데 이 직함은 어느 지역을 여행하느냐에 따라서 그 뉘앙스 가 조금씩 달라진다. 이를테면 스페인 문화권에서는 모든 선생을 ‘프로페서’로 통칭한다. 하지만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닥터’ 에 가까운 의미로 쓰인다. 그럴 때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혹은 ‘디렉터’를 대안으로 삼는다.

맡고 있는 여러 역할 중 자신과 유독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있을까?

글쎄, 시기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밴드에서 동시에 활동하며 6개월 동안 월드 투어를 다니던 기간에는 스스로를 뮤지션으로 느끼는 게 당연했다. 여행을 마치고 다른 프로젝트에 돌입하면 또 생각이 바뀌지만 말이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컬렉션을 발표할 때마다 매번 독특한 제목을 붙인다. ‘끈적거리는 벽돌 손가락(The Sticky Brick Fingers)’ ‘스파게티 수음(The Spaghetti Handjob)’ ‘크고 반짝이는 젖은 젖가슴(Big Wet Shiny Boobies)’ 등 듣기만 해서는 도무지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단어의 조합들이다.

영화 제목을 붙이는 과정과 흡사하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묘사하 면서도 너무 직접적이거나 설명적이지는 않은 무언가를 고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목을 정하는 데 꽤나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가끔은 여러 사람에게 어떤 제목이 좋을까 의견을 구하기도 하지만 그럴듯한 답을 듣는 경우는 드물다. 아무튼 3~4 주 정도 콘셉트나 적절한 문구를 고민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대체로 괴상한 것들이다. 별 생각 없이 재킷을 샀더니 목 부분에 ‘크고 반짝이는 젖은 젖가슴’ 따위가 적혀 있다면 당 황스럽기도 할 거다.

 

5. 2007년 봄/여름 컬렉션인 ‘The Wet Shiny Boobies’.  6.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발레 ‘백조의 호수’를 위해 디자인한 의상들. 7. 작품집인 <Henrik Vibskov>(2012) 출간 즈음에 기획된 퍼포먼스.  8. 2013년 봄/여름 컬렉션인 ‘The Transparent Tongue’. 

5. 2007년 봄/여름 컬렉션인 ‘The Wet Shiny Boobies’. 

6.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발레 ‘백조의 호수’를 위해 디자인한 의상들.

7. 작품집인 <Henrik Vibskov>(2012) 출간 즈음에 기획된 퍼포먼스. 

8. 2013년 봄/여름 컬렉션인 ‘The Transparent Tongue’. 

지금껏 발표한 컬렉션 제목 중에 개인적으로 마음 에 드는 것을 꼽는다면? 

태양열 당나귀 실험(The Solar Donkey Experiment)’이나 ‘크고 반짝이는 젖은 젖가슴’ 정도? 진지하거나 시적인 것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머러스한 제목이 먼저 떠오른다.

‘크고 반짝이는 젖은 젖가슴’은 2007년 봄/여름 컬렉션이었다. 원래는 가슴 모형을 거대한 산처럼 쌓아 올릴 계획이었지만 준비 과정이 여의치 않아 대안을 모색해야 했다. 결국 철사에 준비된 재료들을 꽂아 세운 뒤 사이사이에 모델들이 드러눕게 하는 연출을 시도했다. 워낙 새로운 시도가 많다 보니 의도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작업을 하며 우연이 개입할 가능성을 늘 열어두는 편인가? 

이야기한 컬 렉션의 경우, 계획대로는 아니었지만 결국 계획한 것보다 더 강 렬한 쇼가 됐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다 보면 늘 변수가 개입하 기 때문에 갖가지 돌발상황을 각오해야 한다. 애초에 의도한 게 빨강 재킷이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엮이고 커뮤니케이션이 어긋나면 난데없이 노란 재킷을 받아 들게 되곤 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최대한 순발력을 발휘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 거다.

거대한 혀, 젖가슴 정원, 태양열 당나귀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의외의 소재를 낯설고 과장된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이렇듯 독특한 스토리텔링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아티스트가 있나?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특별하게 좋아하는 작품이 많지 않은 편이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인터뷰를 할 때는 뮤즈가 누군지, 내 옷을 입혀보고 싶은 사람은 없는지 자주 질문을 받 는데 좀처럼 답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물론 가끔씩은 자극을 주는 예술가를 만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결정적 영향을 받지는 않는 듯하다.

그렇다면 요즘 자극을 받고 있는 아티스트로는 누가 있을까? 일단은 즐겨 듣는 음악이 궁금하다. 당신 자신이 뮤지션이기도하니까. 

최근 존 홉킨스(Jon Hopkins)를 좋아하게 됐다. 미니멀한 테크노 뮤직을 구사하는 아티스트다. 특히 ‘Open Eye Signal’은 곡 자체도 무척 쿨하고 비디오 역시 아름답다. 한 소 년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하염없이 달리는 게 내용의 전부다.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묘하게 서글프다. 그 외에 네덜란드 듀오 인 비발(Weval)의 ‘Gimme Some’도 자주 듣는다. 근사한 트랙이다.

컬렉션에서 제시한 주제는 다양한 프로젝트로 응용되거나 확장된다. 일례로 드러머로 활동 중인 밴드 트렌트묄러의 무대 디자인에 런웨이에서 선보였던 구조물을 재활용하곤 한다. 

컬렉션 의상을 좀 더 상업적인 형태로 변형해 시장에 내놓는 것 과 같은 맥락이다.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 사이를 잇는 일관성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게 가끔은 스스로도 놀랍지 않 을까? 어린 시절에는 장차 어떤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나? 

아버지께서는 내가 파일럿이 되기를 바라셨다. 그 영향을 받아 나도 막연하게나마 상상은 해봤던 것 같다. 한때는 빌딩 엔지니 어가 되고 싶었고, 드럼을 하면서부터는 뮤지션을 꿈 꿨다. 수줍음이 무척 많은 편이었는데 연주를 할 때 만큼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됐다. 분명한 한 가지는 패 션 디자이너는 아예 계획에 없었다는 거다. 여전히 난 계획과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사람 같다. 모든 과정이 일종의 해프닝처럼 이어진다. 솔직히 내가 한국 에서 전시를 하게 되리라고는 아예 생각지 못했다. 가끔은 사람들의 질문에서부터 다음 행동이 결정되 기도 한다. “왜 남성복만 만들지? 여성복도 시도해보는 건 어때?”라는 질문을 받고 난 뒤 여성복 컬렉션을 시작했듯이. 2년 전쯤에는 스튜디오를 옮겼는데 마침 근처에 빈 공간이 있었고, 사람들이 커피숍을 아쉬워하기에 아예 내가 가게를 하나 차렸다. 늘 그런 식이다. 나는 거대한 꿈과 계획에 따라 움직여온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계획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분 야를 탐색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 다. 가끔 곤란한 경우를 겪기도 한다. 직원들마저 “앞으로의 계획이 뭔가요?”라고 묻곤 하지만 내 대답은 늘 신통치가 않다. “엄청나게 거대한 패션 회사가 되어야 할까? 잘 모르겠는데…?” 팀에게는 공동의 목표 라는 것도 필요할 텐데 딱히 생각해보질 않았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에 닿게 될지는 전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의 관심사를 물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현재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아이디어나 이미지가 있나? 

새로운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리서치를 하고 있다. 이상한 걸음걸이, 사막, 낯선 환경에서의 생존 전략 등에 대해 생각 중이다. 4~5가지 방향 으로 한꺼번에 생각을 발전시키고 있는데, 대부분은 폐기 처분되고 한두 가지만 구체적인 결실을 맺게 된다. 그렇게 또 하나의 컬렉션이나 설치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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