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1885년 모자를 만들던 한 여인의 손길에서 시작되었다. 쿠튀리에 기법의 정점을 보여주는 예술적인 기교로 당대 여성들을 매혹시킨 마드무아젤 잔. 1889년 파리의 한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패션 하우스 랑방은 125주년을 기념해 설립자인 그녀의 삶과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재조명하는 특별한 전시를 선보였다. 이름하여 <잔 랑방(Jeanne Lanvin)>, 패션을 향한 직관력과 열정을 불태운 그녀의 이름을 오롯이 내건 채.
지난 3월, 파리 패션위크의 분주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주요한 프레스와 셀레브리티들은 <잔 랑방> 전시가 열리는 팔레 갈리에라(Palais Galliera)로 향했다. 무리 중엔 물론 알버 엘바즈도 있었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랑방의 아티스틱 디렉터로서 모던한 여성들을 위한 우아하고 로맨틱한 컬렉션을 선보여온 그의 세계관은 매 쇼마다 ‘랑방 우먼’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더하며, 하우스의 견고한 전통 아래 뿌리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있다. 그는 파리 시립 패션 뮤지엄인 팔레 갈리에라의 디렉터 올리비에 사이야르(Olivier Saillard)와 이번 전시를 공동 큐레이팅했다.
“만약 누군가 프렌치 패션의 ‘우아함’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난 1930년대의 잔 랑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요”라고 사이야르는 이번 전시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패션위크 기간에 시작된 전시는 수많은 패션 인사이더들을 프레스 프리뷰와 오프닝 파티에 손쉽게 초대할 수 있는 장점도 있겠지만, 진짜 이유는 프렌치 패션의 정수에 대한 환기가 아니었을까. 파리 컬렉
션의 독창적인 쿠튀리에 정신 대신, 젊은 디자이너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볍고 즐거운 패션을 좇고 있는 요즘. 이 시점에서 오픈된 잔 랑방 전시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하이패션의 세계를 숙고하게 했다.
20세기 최고의 쿠튀리에이자 그녀가 선보인 우아함에 대한 찬사는 누군가에겐 지난 시대의 유물 정도로 비칠지 모르지만, 패션의 역사와 전통에 존경심을 갖는 이들에게 이 전시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갔다. 특히 여성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꽃과 보 장식, 동물 모티프의 독창적인 엠브로이더리, 섬세한 크리스털 장식 기법을 보여주는 이브닝 가운과 모자를 비롯해 100여 개가 넘는 랑방 하우스의 헤리티지 컬렉션은 우아한 과거로의 시간 여행에 환희를 더했다. 큐레이터의 감각이 깃든 전시 구성, 이를테면 거울의 반사를 이용해 드레스의 디테일을 더욱 자세히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장치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액자와 책 형태로 선보인 일러스트들, 즉 당대 유명한 프렌치 일러스트레이터 파울 이리브(Paul Iribe)가 그려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심벌(잔 랑방과 그녀의 어린 딸 마거릿이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이 찍힌 드레스 주문서, 잔 랑방이 직접 스케치한 수많은 드레스 등 풍부한 자료가 그녀의 컬렉션 전반에 스민 여성을 바라보는 섬세하고도 따뜻한 시선과 우아한 창의성을 뒷받침했다. 그러니 파리 팔레 갈리에라에서 8월 23일까지 열리는 잔 랑방 최초의 회고전은 곧 여자의 삶에 대한 꿈과 동경이 오롯이 존재하던 우아함의 세계로 향하는 문이 되어줄 것이다.
1889년에 시작된 잔 랑방의 선구자적인 패션 브랜드에 새 이름을 찾아낸 알버 엘바즈. 오늘날 그는 패션을 통해 여성의 욕망과 옷의 작은 디테일까지도 놓치지 않는 패션계 인사다. 팔레 갈리에라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잔 랑방> 회고전의 오픈을 기념해 랑방 오피스에서 만난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작업실은 어두웠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빛나고 있었다. 오전 11시 30분에 도착한 그의 사무실은 평소와 같은 아침이 아니라 ‘Je Suis Charlie’라는 말과 함께 많은 일이 일어난 낯선 공기를 품은 아침이었다. 밖에는 슬픈 듯 비가 내리고 있었고, 커튼은 굳게 닫혀 있었다. 왜냐하면 넥타이와 스카프를 하고 가벼운 트렌치코트를 입은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 같은 모습으로 마치 심리치료센터 같은 디자이너 작업실에서 엘바즈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잔 랑방의 이름이 붙은 이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는 12년간 고심한 끝에 하우스를 이끌 새로운 이름을 찾아냈다.
데뷔 시절부터 ‘패션계의 우디 앨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알버는 영감의 대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고민을 하는 디자이너로 제대로 된 자신만의 쿠튀르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갈리에라 뮤지엄에서 잔 랑방의 스타일뿐만 아니라 여성성과 욕망, 그리고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도 함께 드러냈다.
알버 엘바즈 앉으세요. 포도 드실래요? 여기요. 포도 다이어트라는 게 있다고 들었는데요. 한 주 동안 포도만 먹으면 7킬로그램이나 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쪽으로 오세요. 맘껏 드세요.
포도를 그렇게 많이 먹는다고요? 네. 요즘은 모든 게 항상 과잉이잖아요. 첫째로 패션업계도 그렇죠. 이 건물 7층이 전부 옷을 만들려고 필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곤 합니다.
패션업계도 ‘글루텐 프리’가 될 순 없는 건가요? 예를 들면 너무 많은 프리 컬렉션을 줄인다든지 말이죠. 그렇다고 패션업계가 100% 지방으로만 이루어진 건 아닙니다. 어쨌든 마침 프리 컬렉션 룩북 하나를 만들었는데, 이 룩북을 촬영하는 동안 메이킹 필름도 제작했죠. 그러니까 지금은 우리가 어떻게 사진을 찍는지를 보여주려고 또 다른 영상을 찍는 팀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정말 복잡하죠. 그렇지만 이렇게 시스템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싶은 사람 역시 나라는 사람이죠. 12년 전에 저는 프리 컬렉션 개념의 캡슐 컬렉션을 만들었어요. 예전부터 있던 것이긴 했지만 베스트셀러가 팔려나가는 것처럼 은밀히 이루어지기도 했죠. 그러나 이제는 컬렉션을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함정이죠. 어쩌면 본질적인 면을 잃어버린 건지도 몰라요.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미디어가 더 중요해진 거죠. 하지만 전 여전히 럭셔리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관과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소셜미디어가 점점 확산되면서 신비함을 지키는 게 정말 힘들어졌는데요. 요즘에는 예전보다 브랜드를 시작하기가 1백 배나 쉬운 대신 계속 유지하기란 훨씬 더 어려워졌죠. 패션업계도 오디션 프로그램인 ‘보이스(The Voice)’의 영향을 예외 없이 받고 있습니다. 2분 만에 가수나 디자이너가 되고, 3분 만에 유명해지고, 웨이트웨처스라는 다이어트 브랜드 광고에 이틀 만에 20킬로그램을 감량했다면서 출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 후에는요? 영국의 마가릿 대처는 예전에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느냐로 유명해진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유명해진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일이 되었습니다.
요즘 당신의 초점은 주로 잔 랑방이나 팔레 갈리에라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있겠죠? 이번 전시회가 파리 팔레 갈리에라 미술관에
서 열리고, 패션 전시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닌 큐레이터 올리비에 사이야르와 협업할 수 있어서 기뻐요. 사이야르는 부르델 미술관에서 열린 지난 <마담 그레> 전시회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 때 저는 완전히, 매혹됐습니다. 굉장했어요. 그 사람 덕분에 제가 거의 마담 그레를 직접 만난 것 같았죠.
전시회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본인이 직접 만든 랑방 컬렉션은 전시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미신을 믿기 때문에 제가 만든 옷을 전시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아직 잘 살고 있는데 내 전기를 쓰고 싶진 않거든요. 랑방 팀에서 내 일대기를 대신 써주겠죠. 나중에 내가 이곳에 없을 때가 되면요(웃음).
이번 전시회에서 어떤 것을 배워갈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감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단순히 연대기적 설명만 배워가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전시를 보는 동안 가상으로라도 잔 랑방의 모든 작품을 만지고 싶다는 욕망을 가질 정도로 도취되고 흥분된 마음을 지닌 채, 이 전시장 문을 나설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시각적인 이미지를 가진 도서관을 만들려 한 것은 아닙니다. 올리비에 덕분에 ‘꿈’과 관련된 전시회를 열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전시를 보고 나가면서 “1911년에 잔 랑방이 어떤 공주에게 드레스를 만들어줬더라”보다는 “나는 잔 랑방이 좋아”라는 말을 내뱉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번 전시는 잔 랑방이 누군지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그녀는 여성 예술가 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우며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샤넬처럼 마케팅의 천재도 아니었고, 스키아파렐리처럼 눈에 띄게 기발하지도 않았습니다. 드레이핑의 천재 비오네처럼 볼륨감을 잘 알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잔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녀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자로 출발해 여성용 이브닝 가운뿐만 아니라 아동복과 인테리어 시장을 개척한,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아이디어의 선구자였죠. 남성과 여성, 아이를 위한 모든 스타일, 그리고 집 안을 장식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파리에서 일을 시작한 후로 조금 프랑스인이 되었는지요. 네, 조금은요. 그들은 일할 때 연구실에 있는 조수들 같아요. 그리고 스타일리스트들에게 모든 가능성의 열쇠를 쥐여줍니다. 프랑스에 있는 많은 패션 브랜드는 외국인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거리에서 지키고자 하는 자유입니다. 표현의 자유, 창작 의 자유, 창조의 자유, 우리가 우리답게 존재할 수 있는 자유죠.
오랜 역사를 지닌 랑방이 대표하는 여성상은 어떤가요? 제 머릿 속에서 상상하자면 보톡스나 실리콘을 너무 많이 맞은 여성과 달리 주름이 조금 생기긴 했지만 아직도 매우 품위 있죠. 무척 아름다운 여성이에요. 머리색도 조금 회색빛이 되어버렸지만 그녀는 자기 머리색이 금색이나 은색이라고 생각하죠.
당신을 위한 몇 가지 단어가 있다면요? ‘대단하다’는 어떤가요? 와우, 저에게 대단한 건 먹는 거죠. 피자 정도면 대단하지 않나요?(웃음) 사실 피자만큼이나 병원을 아주 좋아해요. 건강에 대해서 너무 많이 염려하는데 병원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긴장이 풀려요. 제가 어떤 것도 통제할 수 없는 공간이죠. 지나가는 대로 내 몸을 맡기는 겁니다. 사람들이 절 보살펴주니까요.
10년 뒤에는 본인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나요? 매일의 계획이 있습니다. 월요일에는 공부하러 가면 좋을 것 같아요. 화요일에는 누군가를 가르치고, 금요일에는 친구를 만나고 토요일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일요일에는 혼자 있는 거죠. 지금보다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의 어떤 철학 같은 게 있나요? 제가 어떤 옷을 가지고 일할 때는 그 옷을 입을 모델의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볼륨과 형태, 소재, 문제점을 봅니다. 그 뒤로는 제가 만든 원피스나 드레스를 입을 사람들의 얼굴만을 보려고 하죠. 이게 늘 제 목표였습니다.
- 에디터
- 박연경
- 인터뷰
- Fabrice Paine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