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것들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메트로폴리스, 일본에서 50년의 격차를 두고 디올 하우스의 두 쿠튀리에가 역사적인 쇼를 펼쳤다.
전설적인 쿠튀리에, 크리스찬 디올이 어렸을 적 살던 그랑빌의 집 1층은 일본풍으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20세기 초의 유럽은 오리엔탈리즘이 대유행이어서, 부유층은 모두 외국에서 공수한 동양풍 물건으로 방을 꾸미곤 했다. 디올의 어머니 역시 일본풍으로 집을 꾸민 덕분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일본 회화가 보여주는 우아하고 섬세한 세계에 매혹되었다. 이 강렬한 취향은 크리스찬 디올이 세계적인 쿠튀리에로 성장한 이후에도 고스란히 남았다. 우타마로가 그린 여인의 초상화와 풍경화, 호쿠사이의 에도 시대 화풍은 디올에게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었고, 전통 기모노 위에 수놓은 꽃과 새의 이미지는 그의 상상력을 현실화하는데 있어 좋은 표본이 되었다. 일본 문화에 대한 디올의 취향은 종종 디자인을 통해 극명한 방식으로 드러나곤 했다. 이름을 아예 ‘도쿄(1952)’라고 지은 드레스를 비롯해, 일본의 상징인 벚나무에 앉은 새를 모티프로 한 ‘일본식 정원(1953)’ 드레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본따 ‘라쇼몽(1954)’이라 이름 붙인 일본 비단 소재의 프록코트 등이 대표적이다.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초반, 쿠튀리에 디올의 인기는 전 세계를 강타했고, 일본에까지 전해져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일본의 소재 기업이자 백화점도 운영한 다이마루는 그에게 일본 여성들이 입을 만한 의상을 만들어줄 것을 의뢰했고, 이를 계기로 1953년, 처음으로 디올의 쿠튀르 발표회가 일본에서 열렸다. 그의 일본 방문은 쿠튀리에에게는 큰 자부심을, 국제적인 멋을 추구하는 일본 여성들에게는 자존감과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우아하고 화려한 여성성, 베르사유를 근원으로 삼는 프랑스 전통을 고수하는 하우스의 모습에 일본 열도가 열광했음은 물론이다.
무슈 디올의 후계자들 역시 창립자의 깊은 애정과 취향을 잊지 않고 그 유산을 이어받은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존 갈리아노는 2007년 봄 오트 쿠튀르를 통해 오리가미, 기모노,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이 접목된 컬렉션으로 큰 호평을 받았고, 좀 더 최근의 예를 보면 지난 2013년에는 라프 시몬스가 네 개의 대륙을 주제로 펼친 오트 쿠튀르에서 시보리 드레스, 기모노처럼 겹쳐 입는 울 코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11일 도쿄에서 열린 ‘에스프리 디올 2015’라고 명명한 프리폴 컬렉션은 디올과 일본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대 패션 이벤트였다. 이번 컬렉션은 디올로서는 처음 선보이는 프리폴 쇼이기도 했는데, 아티스틱 디렉터 라프 시몬스는 “도쿄는 끊임없이 나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다. 특히 도쿄 여성들이 옷을 입을 때 발휘하는 자유로움이 놀랍다. 새로운 옷을 통한 건축적인 요소는 극단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하다”라며 동양과 서양의 접목이 이번 컬렉션의 주된 테마임을 밝혔다. 일본 회화 양식 우키요에의 바탕이 되는 ‘우키요’는 쾌락에 탐닉하는 도시의 분위기를 뜻하는데, 그 분위기가 컬렉션 전반에 반영되었다. 서로 극단적인 스타일이 한 룩 안에 들어가는 것이 그 핵심 포인트다. 예를 들면 데이 룩과 나이트 룩이 하나의 피스 안에서 만나고, 매트한 드레스 안에는 샤이니한 메탈릭 톱을 입고, 실용적인 코트 안에 말도 안 되는 럭셔리한 부츠를 매치하는 등 ‘스타일의 충돌과 결합’이 라프 시몬스의 시선을 통해 세련되게 해석되었다.
디올과 일본이 이렇듯 돈독한 취향의 제휴를 맺어가던 1950년대는, 이웃인 우리나라로서는 전쟁의 상처를 복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시기고,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여서 입는 것에까지 미학적인 시각을 투영할 여유는 부족했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고 나니 일본이 갖는 시각적 매혹은 인정하면서도 ‘오리엔탈리즘’의 요소라면 한국적인 것도 결코 뒤지지 않는데, 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15년, 디올의 거대 부티크가 서울에 열리는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를 찾은 글로벌 쿠튀리에들이 한국적인 아름다움에도 눈뜨기를 기대해본다.
- 에디터
- 패션 디렉터 / 최유경
-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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