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빅리그> 출연진 김용명, 김기욱, 예재형, 이상준, 김여운
<코미디 빅리그>는 개그맨들의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은 일주일간 머리를 쥐어짜 완성한 에피소드를 관객 앞에 선보이고, 투표에 부치고, 그 결과에 따른 순위를 통보받는다. 선후배의 서열이나 서투른 편법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는 공정하면서도 살벌한 링이다. 자존심이 걸린 경쟁이니만큼 긴장은 당연하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웃겨야 한다는 강박을 훨씬 크게 느끼죠. 연기를 위해서는 오히려 여유를 갖는 편이 나을 텐데 그게 쉽지는 않아요.” 한국 어의 미묘하고 애매한 꼬투리를 농담의 소재로 삼는 ‘용명 왈’의 김용명이 털어놓은 이야기다. 대표적인 장수 코너인 ‘사망토론’을 꾸미는 세 명, 즉 김기욱, 이상준, 그리고 예재형의 대답 역시 비슷했다. “솔직히 다른 방송을 준비할 때는 ‘이 정도면 됐어’ 하면서 적당히 타협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코미디 빅리그> 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늘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해요.”(이상준) 김기욱은 투표에서 밀릴 때마다 학창 시절에도 겪지 못한 열등감을 느낀다며 웃었다. “리그 막바지로 갈수록 서로 꽤 견제가 되거든요. 사석에서 싸우고 싶어질 정도로요, 하하.” 과장이 높은 빈도로 섞인 진담이다. 어쩌면 김여운은 다소 느긋한 입장이 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꽤 심했어요. 한참 후배다 보니 선배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하는 경쟁이 부담이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노력한 것 같기도 해요. 이제는 많이 적응했어요.” 그가 이국주, 김진아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10년째 연애 중’이 지금처럼 상위권을 유지하지 못했다면 태도가 좀 더 초조했을까?
프로그램 특성상 <코미디 빅리그>의 코너들은 수명이 짧은 편이다. 관객의 피드백이 중요한 서바이벌 쇼인 만큼 경쟁력을 잃었다고 판단되는 기획은 신속하게 도태시킨다. 그러니 벌써 2년 가까이 전파를 타고 있는 ‘사망토론’은 상당히 드문 예라고 하겠다. 아3인 이라는 팀으로 활동하던 세 명에게 아이디어를 던져준 건 프로그램의 수장인 김석현 감독이다. “스탠딩 개그가 하나 필요하니까 토론 형식을 응용해보라고 주문하셨어요. 그러면서 말로 하는 개그가 오래가는 법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거기에 좀 혹했죠.”(김기욱) 시행착오 끝에 이들이 결정한 포맷은 ‘토론거리가 되기 힘든 주제를 다루는 토론’이다. 이를테면 ‘고속버스 에서 요란하게 떠들던 아이와 그 어머니가 휴게소에 하차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면 모른 척 출발할 것인가, 기다릴 것인가?’ 같은 질문을 던져놓고 상반된 주장과 근거를 겨룬다. 김기욱이 도덕 교과서 같은 입장이라면 이상준은 과격하게 이기적인 의견을 편다. 그 뻔뻔한 태도는 종종 속이 뜨끔해지는 카타르시스를 안 겨준다.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못된 생각을 대신 입 밖으로 쏘아주는 거죠.”(이상준)
그런가하면 ‘10년째 연애 중’과 ‘용명 왈’은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거나, 혹은 한참 도약 중인 코너들이다. 전자를 통해 스타로 확실하게 발돋움한 건 아무래도 이국주지만 최초의 구상은 김여운으로부터 나왔다. 예전에 4년 넘게 연애했던 경험이 힌트가 됐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변했다’는 말을 특히 자주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여자도 남자 못지않게 변하거든요. 그런 면을 강조하기 위해 두 명의 여자 개그맨이 한 캐릭터의 과거와 현재를 나누어 연기하는 거죠. 저는 겉으로 보이는 태도나 표현이 달라졌을 뿐 속마음은 여전한 남자로 등장해요.” 아무래도 결정적인 웃음을 날릴 기회는 이국주에게 집중되는 편이지만 그는 별다른 섭섭함이 없다고 했 다. “누군가를 서포트하는 게 제가 가장 잘하는 역할 이거든요. 제 욕심은 무조건 앞에 서기보다는 잘하는 걸 최대한으로 해내고 싶은 쪽에 가까워요.”
김용명은 ‘용명 왈’이 마니아 층을 파고드는 개그라고 설명한다.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형이 동생의 말꼬리 를 일일이 붙잡고 늘어지면서 복장과 웃음이 함께 터진다. “문 닫고 나가라든가, 꼼짝 말고 손들라든가… 따지고 들면 모순이 보이는 표현이 꽤 많잖아요. 그런 관용적인 허점을 짚는 거죠.” 심지어는 부정명령문, 청유문, 긍정부정문 등 코미디 쇼보다는 문법 수업 시간에 어울릴 법한 용어도 수시로 출몰한다. 그는 대본을 짤 때마다 국어사전을 옆에 둔다고 이야기했다. 그 러고 보면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선보인 ‘용선생’ 역시 말이 엇갈리고 소통이 어긋나는 상황을 소재로 삼은 코너였다. “제가 가장 잘하는 코드거든요. 김용명 개그는 이런 식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몸보다는 말을 쓰는 쪽을 선호해요.”
웃음을 공략하는 스타일은 각기 다른 다섯 명이지만 인터뷰 중 나란히 한 목소리를 낸 때도 있었다. 한국 TV의 엄격한 심의에는 다들 약간의 갑갑함을 느끼는 듯했다. “제 방식이 언어 유희에 가깝다 보니 표현의 폭이 제한되는 게 아쉬울 때가 많아요.”(김용명) ‘사망 토론’ 팀 역시 15세 시청 가능 등급에 맞추느라 포기하는 소재가 많다고 털어놓는다. 이상준은 “19세 정도로 수위를 높이면 이 코너를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여운은 그 기준이 종종 헷갈린다고 했다. 요즘 ‘10년째 연애 중’은 매주 그와 이국주의 키스신으로 마무리된다. “원래는 키스신 상대가 진아 씨였어요. 그런데 나이 제한에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국주 씨와의 장면은 전혀 문제가 되질 않는데 말이죠. 미스터리예요.” 온갖 제약과 편견을 부비트랩처럼 피해 다니며 코미디언들은 맡겨진 멀티플레이어의 역할을 성실하고 능숙하게 수행한다. 쉽지 않게 일군 웃음이니만큼 자부심도 만만찮은 듯했다. <코미디 빅리그>에서 시청자로서 가장 즐겁게 보는 코너를 묻자 예재형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 팀이 제일 재미있어요. 냉정하게.” 다섯 명의 답변이 모두 같으리라는 걸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정준화
- 포토그래퍼
- 엄삼철
- 헤어
- 안미연
- 메이크업
- 이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