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은 중국 미술의 다음이 될 수 있을까? 해외 시장에서 국내 작가들과 컬렉터의 존재감은 어느 정도까지 커졌을까? 질문에 답이 될 만한 두 가지 단서.
우리가 몰랐거나 잊었던, 하지만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는 이름들.
1950년대에 구상적 페인팅을 선보이며 등장해 이후 전위적인 매체 실험과 퍼포먼스, 개념 회화 등을 거쳐온 원로 작가 김구림은 한동안 한국 미술계에서 잊힌 이름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이어진 미국 생활을 국내 평단은 공백기로 취급했다. 다시 돌아왔을 때 그를 궁금해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새삼스러운 계기는 밖에서 마련됐다. 지난 2012년 영국 테이트 모던이라는 기획 전시를 열며 데이비드 호크니, 니키 드 생팔, 쿠사마 야요이 등과 함께 김구림의 작업을 소개한 것. 이후 한국에서도 그의 과거와 현재를 다시 읽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과 천안에서 각각 진행 중인 두 개의 전시 <진한 장미>와 <그는 아방가르드다>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인다. 성형을 매개로 대중 문화의 욕망을 파헤친 2000년대의 콜라주 작업들에서는 여전히 들끓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지난 2011년 김달진미술연구소가 미술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김구림은 ‘재조명해야 할 작가’ 2위로 언급이 됐다. 그렇다면 함께 논의된작 가들은? 백남준에 이어 두 번째로 휘트니 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진 차학경(1위), 한국 비디오 미술의 선구자 중 한 명인 박현기(공동2 위), 한국 최초의 행위예술가 정찬승(4위), 전통 조각의 방식을 전복시킨 조각가 이승택5(위) 등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전시, 혹은 한국 미술의 다음 장 미리 보기.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미술계 역시 항상 새로운 거장을 궁금해한다. 각종 미술상을 제정하고 역량 있는 작가들을 소집하는 이유가 꼭 서바이벌 오디션 쇼 같은 흥행을 기대해서만은 아닐 거다.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매해 올해의 작가상을 개최해 지금 이순간 주목해야 할 한국 작가들에게 적절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지난 8월 5일부터 구동희, 김신일, 노순택, 장지아까지 4명의 후보 아티스트 전시가 진행 중이며, 최종 수상자는 9월 중에 가려질 예정이다.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일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는 구동희는 설치 작업 ‘재생길’을 선보인다. 많은 사건이 있었던 한국의 2014년을 롤러코스터 같은 구조물로 표현했다. 관람객은 직접 작품 위를 걷는 동안 곳곳에서 놀이기구 탑승자의 시점으로 촬영한 영상을 감상하게 된다. 김신일은 문자를 의미로부터 분리시키는 시도를 한다. 출품작인 ‘이미 알고 있는 마음’은 관람객의 반응에 따라 감상 조건이 달라지는 글자 형상의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 이다. 사진가 노순택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신작과 지난 작업들을 한데 묶었다. 갈등과 충돌을 해결하지 못하는 시스템과 이를 좇는 카메라의 시선에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장지아는 사진,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도발적으로 넘나든다. 제목 그대로의 장면을 기록한 ‘서서 오줌 누는 여자’나 에로틱한 설치 퍼포먼스인 ‘아름다운 도구들 3’ 등은 금기를 정면 으로 건드린다. 누군가는 11월 9일까지 과천관에서 계속될 전시에서 크고 흥미로운 가능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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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에디터 / 정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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