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의 탄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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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화보의 영감은 어디서 얻었을까? 저 멋진 장소는 어딜까? 완성된 화보에서는 알 수 없는 카메라 뒤의 광경이 여기 펼쳐진다.

Modern Heritage 해가 쨍쨍한 한낮에 양평의 한 시원한 한옥에서 만끽하는 촬영이라니. 더구나 풍경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고즈넉한 초은당은 보테가 베네타 화보 촬영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스탭들 역시 초은당의 매력에 반해 ‘이건 일이 아니라 힐링’이라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헤어 스타일리스트 김귀애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혜령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에디터와 포토그래퍼 신선혜의 임무는 화보의 톤을 명확하게 결정하는 것. 이 그림 같은 한옥 안에서 그야말로 ‘그림 같은 화보’를 찍자는 결의를 다졌기에 서정적인 톤을 맞추는 게 관건이었다. 그런데 장인의 손길이 닿은 붉은 옷칠의 가구와 마루 등은 오히려 난관이 되었다. 여러 번의 테스트를 거치고 의견을 조율해 결국 톤을 맞추는 데 성공. 초은당의 공간 안에 모델 이현이가 우아하게 등장하자 보테가 베네타의 뉴 룩은 한옥 안에 절묘하게 녹아들었다. 이탈리안 장인 정신과 한국적 미학의 조화! 이 교집합에서 출발한 보테가 베네타 화보를 위한 한 여름 낮의 촬영은 이처럼 평화롭게 막을 내렸다. 에디터| 박연경

Miss & Mr. Oddball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옷은 언제나 독특하다. 하지만 독특하기 이전에 디테일에서 아르마니의 대단한 자신감 먼저 보인다. 이번 시즌 매니시하고 유쾌한 여성을 표현하려 했던 아르마니. 그의 옷을 돋보이기 위해 마련한 장치는 바로 도베르만 ‘루나’였다. 알다시피 동물 촬영은 힘들다. 말 못하는 짐승에게 대단한 포즈를 요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 높이 점프를 하는 컷을 위해 견주는 계속 루나에게 닭가슴살을 줬고, 같이 뛰고, 계속 소리쳤다. 가만히 앉히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교육이 잘된 루나지만, 거듭되는 포즈 요구에 쉽게 지치곤 했다. 쉬엄쉬엄 진행된 촬영 막바지에는 루나의 포트레이트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잘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있는 루나의 모습에 우린 모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동물과 함께하는 촬영은 솔직히, 힘들지만 그만큼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즐거웠다. 에디터|김신

L’ange Blanc 무릇 화보 촬영이란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의 연속이다. 이것이 화보의 괴로움이자 묘미이기도 한데 이번엔 후자였다. 뜻하지 않은 사고가 뜻밖의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것. 사건은 애초에 찍기로 한 장소 섭외가 불발에 그치면서 시작되었다. 촬영을 코앞에 두고 나를 포함해 모든 스태프가 생전 처음 와보는 이곳, 토론토에서 머릿속에만 있는 장소를 급히 찾아야 했던 것이다. 완벽하게 정돈된 공원이나 시끌벅적한 관광지가 아니라 황량하면서도 음울한 기운이 감도는 자연과 건축물을 찾는 것이 미션. 구글맵을 동원해 ‘토론토에서 제임스를 찾는’ 심정으로 장소 헌팅을 시작했고, 다행히 반나절도 되지 않아 최적의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브라보!’ 다행히 촬영 당일 구경꾼 하나 없는, 황량한 곳에서 시작된 화보는 일사천리 진행! 더불어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청량한 날씨 역시 화보의 ‘질’을 높인 ‘이등공신’이다. 물론 일등공신은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 촬영 스태프들! 에디터|송선민

Nouvelle Danse 이번 시즌 밀리터리와 페미닌을 적절히 섞은 바네사 브루노의 옷을 보자마자 발레리노가 떠올랐다. 강인하지만, 우아한 발레리노의 몸과 움직임. 바네사 브루노가 표현하려고 한 아름다움이 발레리노의 몸에 모두 들어있는 듯 보였으니까. 이번 촬영을 위해 모델로 나서준 이는 바로 국립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노 이재우다. 195cm의 장신인 그는 최근 호두까기 인형이라는 공연을 통해 최연소 수석 발레리노로 승격한 인재. 그에게 요구한 건 딱하나 소영이와 함께 춤을 춰 주세요. 슬픈듯 아름답게. 그는 멋진 몸으로 구슬땀까지 흘리며 열연해 촬영장의 스텝들은 모두 그의 팬으로 만들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번 촬영의 시안이 된 발레 영상’ Le Parc’를 꼭 한번 보기를 권한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정말 아름다운 영상이다. 에디터|김신

Untamed Glamour 리카르도 티시의 머릿 속을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다. 이번 F/W 시즌, 한층 나긋해진 지방시의 룩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정원. 사실 오리엔탈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병풍을 배경으로 찍고도 싶었지만, 결국 선택한 것은 장마철의 위험을 감수하고 푸른 숲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또한 티시가 그려낸 관능적인 나비 모티프의 시폰 드레스와 바우하우스 풍의 밴드 장식을 더한 테일러드 팬츠 룩, 이 두 가지의 메인 룩을 포용하기 위해 후에 바우하우스 모티프의 아트워크를 더하기로 결심했다. 오랜만에 찾은 서울 숲은 비가 온다는 예보 속에 한껏 찌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포토그래퍼 박지혁의 감각적인 선곡은 스탭들의 긴장감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손빠르기로 유명한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혜영과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태윤의 손길을 통해 아방가르드한 지방시의 뮤즈로 태어난 모델 강소영. 척척 손을 맞춘 이 모든 이들의 프로페셔널한 노력 덕에 촬영은 감도 있게, 그리고 재빠르게 이뤄졌고 하늘은 우리의 마음을 읽었는지 촬영이 끝나자마자 비를 한껏 뿌렸다. 나아가 마감 막바지까지 애쓴 이는 그래픽 아티스트 겸 포토그래퍼 표기식. 화보를 섬세하게 이해하기 위해 촬영 현장에 함께 하기도 한 그는 디자이너의 의도를 더욱 견고하게 담은 세련된 아트워크를 더해주었다. 에디터| 박연경

Fatal Angel 패딩 소재의 형태감에 집중한 요지 야마모토의 컬렉션을 떠올리며 화보 콘셉트를 생각할 때는 그 볼륨감에 집중했었다. 바람을 가득 넣은 거대한 튜브가 어울릴 것 같아 소품으로 잔뜩 준비했건만, 정작 촬영에는 사용하지 못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소녀 그림, 거친 붓 터치가 마치 흐르는 피처럼 보이는 과감한 붉은색 페인팅의 의상을 실제로 보니 그 존재감은 주변의 다른 어떤 오브제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강렬했으니까. 때문에 장식이나 소품은 모두 내려놓고 옷에 집중했다. 대신 반항기 어린 마스크의 이혜승과 순수한 얼굴의 김진경의 얼굴에 옷에 어울리는 페인팅 메이크업만 더했을 뿐. 스튜디오 무대에 두 모델을 올리니 마치 요지가 그려 넣은 그림 속의 매혹적인 마녀(?)가 따로 없었다. 무언가 주문을 걸 것 같은 치명적인 매력의 마녀들 말이다. 완벽한 옷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옆에서 요지 야마모토가 이야기 해 주는 것 같았다. 에디터| 김한슬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 송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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