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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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팬들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음원의 시대에 LP의 매력을 부르짖던 컬렉터들이 이제는 카세트테이프에 새삼스러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노라 존스&빌리 조 암스트롱, 쉬앤힘부터 브라운아이드소울, 김광석까지, 이 복고풍의 매체에 다시금 목소리를 싣는 아티스트들 역시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문득 지난날을 더듬게 된 네 명의 음악 애호가가 오랜만에 나름의 믹스 테이프를 구성해봤다. A면과 B면에 그 시절의 기억과 지금의 취향이 구분되어 담겼다.

<19금 무드 팝 – 황홀해서 새벽까지>
애들은 가라. 뼈와 살이 타는 밤을 위한 본격 성인용 사운드트랙. 1990년 이전(A면)의 그윽한 관능부터 1990년대 이후(B면)의 노골적인 섹스어필까지, 당신이 찾던 바로 그 음악들.– 배순탁(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SIDE A
SLOWLY / 앤 마가렛
곡에 신음소리 같은 건 없다. 음악도 약간 댄스풍이다. 그러나 앤 마가렛이 특유의 안개 낀 목소리로 ‘Slowly~’라고 노래하는 부분이
결정적이다. 오죽하면 그 옛날 우리나라에서 ‘창법불량’이라는 희한한 죄목으로 금지를 먹었겠나.

JE T’AIME… MOI NON PLUS / 세르주 갱스부르 & 제인 버킨
1969년 프랑스의 파격 아이콘이었던 세르주 갱스부르가 당시 아내였던 제인 버킨과 함께 부른 노래. 실제로 침대 밑에 녹음기를 두고 이 곡을 레코딩을 했다는 사실을 안 뒤에 들어보라.

LOVE TO LOVE YOU BABY / 도나 서머
도나 서머의 신음소리는 그야말로 질퍽함의 끝판이다. 실제로 진정성 있는(?) 신음을 담기 위해 녹음실에서 불을 끄고 혼자서 무아지경을 연출했다고 하니 그 정성이 갸륵하다.

LADY CAB DRIVER / 프린스
여성 택시 기사가 잘생긴 남자 손님을 유혹한다는 스토리라니, 삼류 성인물에나 나올 법한 내용이다. 프린스가 이렇게 성에 빠져든 건 어렸을 때 어머니가 감춰둔 도색 잡지를 훔쳐본 뒤부터였다고. 믿거나 말거나.

JUSTIFY MY LOVE / 마돈나
남자 쪽에 프린스가 있다면 여성 쪽의 ‘진리’는 당연히 마돈나. 그녀의 깊이 있는 신음소리를 만끽할 수 있는 곡이다. 참고로 이 노래의 작곡가는 프린스 못지않은 정력왕 레니 크라비츠다.

SIDE B
‘#!*@ME(INTERLUDE) / 노토리어스 B.I.G.
당황하지 마시라. 실제로 ‘#!*@ Me’가 이 곡의 제목이다. 물론 앙큼하게도 ‘#!*@’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단어가 맞다. 여성의 신음소리는 기본이고, 침대가 삐걱거리는 섬세한 효과음까지, 성인들을 위한 사운드트랙이 바로 여기에 있다.

ORGASM / 프린스
한 번 더 프린스다. 곡이 시작되면 주인공이 ‘컴온, 컴온’ 하더니 여성의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격정적인 기타 솔로가 ‘갑툭튀’ 하며 뒤를 잇는다. 게다가 마무리는 잔잔한 파도 소리. 이렇게 평화는 찾아오고, 끝.

YOU OUGHTA KNOW / 앨러니스 모리셋
“이 곡이 대체 왜?”라고 묻는다면 가사를 살펴보길. 극장 의자 밑에서 남친의 바지를 벗긴 뒤… 어쩌구 저쩌구. 근데 이게 가능한가?

‘TIL THE WORLD ENDS / 브리트니 스피어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세상이 끝날 때까지 하자고 한다. 어쩔 텐가?

HOTEL ROOM SERVICE / 핏불
근자에 들어 이 계열의 ‘갑’을 꼽으라면 단연 핏불이다. 곡 제목만 살펴봐도 우리는 그가 야밤의 제왕임을 알 수 있다. ‘Hotel Room Service’와 ‘Hey Baby (Drop It to the Floor)’를 시작으로, ‘Juice Box’, ‘I Know You Want Me’를 거쳐 ‘Shut It Down’, ‘Give Me Everything’에 이르기까지, 그는 어느 네티즌의 표현대로 음악계의 ‘다크 나이트’, 밤의 수호자다. 하여튼, 핏불 형이 짱이다.

<영화 음악 골든 히트 Vol. 1- 배우의 노래를 들어라>
20세기 말부터(A면) 21세기 초에 걸쳐(B면) 관객의 눈과 귀를 모두 매혹시켰던 그 영화, 그 배우, 그리고 그가 부르던 노래.– 정준화(W Korea 피처 에디터)

SIDE A
<금지옥엽> 중 추(追) / 장국영
들을 때마다 성냥을 상자째로 씹고 싶게 만들던 ‘당연정(當年精)’만큼이나 영화 <금지옥엽>의 삽입곡인 이 노래도 좋아한다. 장국영의 쓸쓸한 목소리는 뻔해 보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에 특별한 애틋함을 더했다.

<파라다이스> 중 PARADISE / 피비 케이츠
스튜어트 길라드의 이 맥 빠지는 영화가 구원받는 순간은 피비 케이츠의 전라신과 간질간질하게 유혹적인 주제곡이 흐르던 엔딩뿐이었다.

<사랑의 행로> 중 MAKIN’ WHOOPEE / 미셸 파이퍼
미셸 파이퍼가 붉은 드레스를 입고 그랜드 피아노 위에서 이 스탠더드 넘버를 부르는 장면은 이미 클래식이 됐다.

<더티 댄싱> 중 SHE’S LIKE THE WIND / 패트릭 스웨이지
담백하고 약간은 어색하게 부르는 노래가 오히려 <더티 댄싱>의 끈적거리는 춤보다 섹시했던 것 같기도 하고.

<파리의 숨바꼭질> 중 LES NAUFRAGES VOLONTAIRES / 엔조 엔조
자크 리베트의 <파리의 숨바꼭질>에는 무척 아름다운 롱 테이크가 담겨 있다. 댄스 홀의 가수로 캐스팅된 엔조 엔조가 이 곡을 부르는 동안 무대 아래에서 벌어졌던 세 남녀의 신경전은 그 자체로 우아한 뮤직 비디오 같다.

SIDE B
<스쿨 오브 록> 중 IMMIGRANT SONG / 잭 블랙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위해 카렌오가 커버한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도 멋졌지만 더욱 즐거운 건 잭 블랙의 버전이다. 극적으로 씰룩거리는 얼굴 근육을 보고 있노라면 진정한 비디오형 뮤지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 중 MOON SONG / 스칼렛 요한슨 & 와킨 피닉스
가슴과 엉덩이가 없어도 스칼렛 요한슨은 충분히 섹시하다. 이 곡에 담긴 까슬까슬한 목소리가 그 증거다.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중 CHANGES / 세우 호르헤
웨스 앤더슨의 예쁘장한 모험극에서 브라질 뮤지션 세우 호르헤는 선원 겸 주크 박스 같은 역할로 등장해 수시로 기타를 퉁겼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포르투갈어로 커버한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들이 귓가에 길게 남는다.

<비포 선셋> 중 A WALTZ FOR A NIGHT / 줄리 델피
과연 이런 노래를 듣고도 미련 없이 비행기를 타러 떠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심지어 이런 노래를 줄리 델피가 부르는데?

<인사이드 르윈> 중 HANG ME, OH HANG ME / 오스카 아이작
영화의 시작과 끝을 열고 닫는 근사한 노래이자 훌륭한 연기.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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