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목장의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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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개척 시대의 강인한 여인! 그 매혹적인 강렬함에서 비롯된 웨스턴 룩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런웨이를 점령했다. 당신의 모던한 리얼웨이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웨스턴 룩 개척법에 대하여.

어린 시절, 토요 명화를 통해 즐겨 본 서부 영화엔 늘 폼나는 총잡이와 악당이 등장했다. 그 유명한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 <황야의 무법자>에선 먼지바람을 가르며 뚜벅뚜벅 걸어 나온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가슴에 방탄 철판을 댄 채 등장했다. 총알을 피해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악당을 쓰러뜨린 모습이 어찌나 황홀하던지. 그런데 나이가 든 뒤 서부 영화 속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말 타고 홀연히 나타나 총을 쏘아대는 마초적인 남정네가 아닌, 그보다 더 강인한 서부의 여인들이었다. 이를테면 니콜라스 레이의 영화 <자니 기타>에서 서부의 남자들을 호령하는, 단호하고 용기 있으며 거침없는 여장부 조앤 크로퍼드처럼. 거칠고 붉은 황야와 척박한 삶에 맞서는 그녀들에겐 삶의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진정한 아름다움과 강인한 자아가 깃들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매혹적인 여성상에 대해 고민하는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웨스턴 룩에 매료당한 진짜 이유가 아닐까.

하지만 일상에 적용하기 가장 어려운 스타일링 중의 하나가 바로 웨스턴 룩이다. 자칫 고루하고 촌티 나는 패션으로 여겨 외면받아온 까닭. 그 수난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모던한 스타일링 해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온하게 트렌드와 스트리트 무드 안에서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스타일에 지루함을 느꼈다면, 이번이야말로 당신만의 스타일 개척 신화를 만드는 적절한 변신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러니 그녀들처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지닐 것.

이번 S/S 시즌, 서부 개척 시대로 돌아가 거친 황야의 정열적인 여인에게서 영감 받은 브랜드가 하나둘이 아니다. 알투자라를 비롯해 로다테, 준야 와타나베, 루이 비통, 도나 카란, 트루사르디, 모스키노, 쟈딕&볼테르 등 그 면면도 화려하다. 샤넬의 칼 라거펠트는 프리폴 시즌을 위한 공방 컬렉션의 목적지로 댈러스를 택했을 정도. 댈러스의 심장부인 페어파크에 펼쳐진 파리-댈러스 공방 컬렉션엔 데님, 가죽, 니트 소재를 활용한 현대적인 와일드 웨스트의 낭만이 넘실거렸다. 그리고 모스키노는 브랜드 론칭 30주년을 기념한 쇼에서 스웨이드 소재의 프린지 드레스와 왕년에 프랑코 모스키노가 아끼던 톱모델을 우르르 무대 위에 올렸고, 로다테의 멀리비 자매는 서부 영화 속 모티프를 때론 스트리트적이고, 때론 관능적으로 재현했다. 특히 태슬 장식이 찰랑이는 섹시한 스커트와 로커빌리 부츠와 긴 꼬리를 휘두르는 전갈을 수놓은 관능적인 드레스는 강렬한 신을 완성했다. 한편 도나 카란은 카우보이 모자의 형태를 비튼 흥미로운 가죽 모자와 목걸이를 더하며 에스닉 무드를 전했는데, 찰랑이며 흐드러지는 프린지 장식의 프린트 룩은 올여름 휴양지룩으로 적절한 선택이 될 듯했다. 이처럼 에스닉한 리조트 웨어나 한여름밤의 파티를 위한 선택을 뛰어넘어 좀 더 일상적으로 파고들 웨스턴 룩이 궁금하다면?

그 모던한 해법을 안겨준 주인공은 바로 알투자라. 동시대 여성들의 마음을 기막히게 포착해내는 조셉 알투자라는 올여름 여성들이 편안하게 입을 만한 옷을 만들었다고 밝혔고 그 말을 증명하듯 현대적인 줄무늬의 판초와 허벅지를 살며시 드러내는 센슈얼한 슬릿 장식의 미디스커트, 그리고 클리비지를 드러내는 가죽 소재의 경쾌한 프린지 셔츠 등 탐나는 아이템들을 대거 쏟아냈다. 이번 시즌, 데뷔전을 위해 고심 했을 트루사르디의 가이아 트루사르디 역시 영감의 여행지를 미국 서부 사막으로 결정했다. 그녀의 패션 로드트립이 선보인 것은 테일러링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슬리브리스 드레스. 그리고 파이톤 가죽 프린트의 실크 스카프를 매치하는 것만으로 미니멀하고 편안한 웨스턴 룩을 완성했다. 한편 쟈딕&볼테르의 세실리아 본스트롬이 매니시한 요소와 여성성의 조합을 고민하며 선보인 것은? 이그조틱 가죽 패턴의 레깅스와 시스루 니트 레이스 톱, 그리고 모터사이클 부츠와 검정 페도라, 여기에 결정적으로 프린지 가죽 숄더백을 매치해 웨스턴풍 스트리트 스타일을 완성했다. 특히 검은색 가죽 드레스와 프린지 백의 만남은 현대적인 록시크 무드와 상통하기도.

나아가 견고한 가죽 외에 웨스턴 룩을 대표하는 소재가 바로 데님이다. 이번 시즌, 내구성이 좋은 작업복에서 탄생한 데님진을 우아하게 스타일링할 수 있는 묘안을 제시한 건 루이 비통. 마크 제이콥스는 자신의 고별 쇼를 통해 통이 넓은 청바지를 쿠튀르적 기법의 장식적인 상의와 첼시 부츠에 매치해 편안한 럭셔리 룩의 아이디어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샤넬이 댈러스 공방 컬렉션에서 선보인 것처럼 캐주얼한 데님 원피스에 풍성한 블라우스와 화려한 주얼리를 매치하는 것도 흥미로운 웨스턴 감성의 스타일링이 될 듯. 또한 에스닉한 프린트와 프린지 장식을 접목한 판초와 스커트, 카디건 등으로 구성된 벌키한 니트 룩도 올가을까지 이어질 활용도 만점의 룩을 완성한다.

이래도 웨스턴 룩에 도전할 용기가 서지 않는다면 최종병기는 바로 액세서리. 당장이라도 로데오 경기에 나갈 것만 같은 룩을 연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절히 활용된 프린지 장식의 가치는 높다. 쟈딕&볼테르, 로베르토 카발리, 구찌 등이 캣워크에 가득 선보인 프린지 가죽 백이 주는 경쾌한 활력과 이국적인 분위기는 그 열정 지수를 크게 높여줄 테니까. 그리고 웨스턴 부츠를 좀 더 현대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첼시 부츠나 메탈 장식의 워커도 명쾌한 해법을 안겨준다. 만약 좀 더 보헤미안적 분위기를 가미하고 싶다면? 샤넬 공방의 장인들이 댈러스 컬렉션을 위해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색색의 깃털 장식을 참고할 것. 이런 맥락에서 컬러풀한 깃털 장식의 팔찌와 귀고리 등을 실용적으로 선보인 프라다의 액세서리 컬렉션도 살펴볼 만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2014년을 사는 당신이 기억해야 할 건? 이번 시즌 당신이 시도해야 할 웨스턴 룩은 거친 모래바람을 뚫고 서 있는 외로운 서부의 여인이 아닌, 오늘날 패션 디자이너들의 손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이토록 관능적이고 자유로운 스타일이라는 사실이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박연경(Park Youn Kyung)
포토그래퍼
Kim Weston Aronold, JASON LLOYD-EVANS, Getty Images/Multi Bits
아트 디자이너
Art work by PYO KI SIK
기타
COURTESY OF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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