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꼬르소 꼬모 서울은 늘 한 시대를 풍미한 아티스트와 함께 생일을 자축하곤 했다. 여섯 번째 생일을 함께할 주인공은 뜨겁게 불타오른 만큼 성급하게 산화한 비운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토니 비라몬테스다.
아름다운 것은 왜 영원하지 못할까. 70년대 후반 등장한 토니 비라몬테스는 사진은 차마 재현할 수 없는 패션을 향한 판타지를 손끝으로 창조한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였다. 막힘 없는 선, 힘이 넘치는 색, 전형적인 아름다움과 고정된 젠더성에 저항하며 피사체를 탐미하는 눈, 움직이는 피사체의 순간을 잡아채는 손을 가진 그에게 발렌티노, 장 폴 고티에를 비롯한 무수한 패션 하우스들의 시선이 꽂혔다. 그가 태어난 미국을 넘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패션 매거진에서, 듀란듀란이나 자넷 잭슨과 같은 팝스타에게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확히 1988년까지만이었다. 토니 비라몬테스는 치명적으로 마약을 하고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눈 끝에 1988년 5월 서른셋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번개같은 속도로 그에게 환호를 보내던 패션계는 섬광의 속도로 그를 지웠다.
“토니 비라몬테스의 작품은 사라지거나, 또는 이름을 잃었죠.” 토니 비라몬테스의 전기이자 작품집 <Bold, Beautiful and Damned>를 집필한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갤러리스트 딘 라이스 모건의 증언처럼, 익명으로 남을 뻔했던 80년대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를 2014년의 서울로 불러낸 건 올해 6주년을 맞은 10 꼬르소 꼬모 서울이다. 그동안 기 브루댕, 파올로 로베르시, 피터 린드버그 등 세계적인 포토그래퍼와 함께 매년 생일을 자축해온 10 꼬르소 꼬모 서울이 여섯 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지난 3월 26일부터 4월 27일까지 <토니 비라몬테스 작품전>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밀라노, 상하이에 이어 세 번째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작 300여 점을 통해, 천재적이었던 아티스트의 가장 강렬했던 과거를 현재에 이식하는 자리였다.
밀라노와 상하이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오직 10 꼬르소 꼬모 서울이 마련한 특별 프로그램 또한 빈 공간을 채웠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팅을 맡은 딘 라이스 모건은 이름 없이 떠다니던 토니 비라몬테스의 삶과 작품을 송두리째 펼쳐놓는 강연을 펼쳤다. 딘 라이스 모건에 더해 10 꼬르소 꼬모의 창립자인 카를라 소차니, <W Korea>의 이혜주 편집장, 고석희 SADI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이 패션에서의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일대일로 리뷰하는 특별 프로그램은 약속된 시간을 1시간이나 넘기고서야 끝났을 만큼 뜨겁게 진행됐다. 특히 나얼부터 윤은혜, 모델 송경아, 건축가 오영욱, 아티스트 윤향로,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까지, 한국의 아티스트 6인이 꾸린 ‘전시 속의 전시’는 <토니 비라몬테스 작품전>의 곁을 내내 지켰다. 만화책 표지를 모아 제목, 인물, 가격 등을 포함한 모든 로고와 텍스트를 제거한 윤향로의 드로잉 작품 39점, 서울이란 도시의 2030년을 상상한 오영욱의 일러스트 작업 <소배행도> 시리즈 등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2014년 서울의 단면 혹은 기억에 다름없었다. 토니 비라몬테스의 짧은 생과 작품에 1980년대의 패션과 인간의 흔적이 새겨진 것과 같이.
INTERVIEW WITH DEAN RHYS MORGAN
: 패션 저널리스트, 토니 비라몬테스의 전기·작품집 <Bold, Beautiful and Damned> 저자, <토니 비라몬테스 작품전> 큐레이터
<W Korea> 어젯밤 성공적인 전시 오프닝을 치렀다. 10 꼬르소 꼬모 서울 6주년을 기념하며, <토니 비라몬테스 작품전>을 열게 된 소감이 궁금하다.
딘 라이스 모건 지난밤 오프닝은 환상적이었다. 토니 비라몬테스의 작품을 해외로 가져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는 일은 늘 즐겁다. 앞서 밀라노, 상하이에서도 전시를 열었지만, 전시 공간의 변화는 작품을 다른 문맥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상하이에서는 그의 작품을 패션, 남성, 여성이라는 주제로 나눠 전시한 데 반해, 서울에서는 특정한 테마로 나누지 않았다. 벽이 높은 상하이의 전시장과 그렇지 않은 서울, 전시장의 물리적 규모의 차이 또한 작품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카를라 소차니가 전시회를 둘러본 후 드로잉 작품 2점을 가리키며 이번 전시회에 새로 포함된 작품이냐고 물어왔다. 사실 이전 전시에도 소개되었는데 말이다(웃음).
이 전시의 시작은 토니 비라몬테스의 전기, 작품집이라 할 수 있는 <Bold, Beautiful and Damned>였다. 책에서 언급했듯, 생전에 만나본 적 없는 인물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
친구이자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인 데이비드 다운톤이 토니 비라몬테스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글에 호감을 가진 토니의 형 에드가 LA에 오면 전화를 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당시 LA에 없었던 데이비드가 나에게 대신 보러갈 의향이 있냐고 물은 것이 시작이었다. 사실 별 기대 없이 토니의 집으로 향했는데, 가족들이 엄청난 드로잉과 사진으로 가득 찬 박스를 공개했다. 토니가 죽은 후 파리에서 가져온 것들로, 거의 25년간 그 누구의 손길도 타지 않은 오리지널 그대로였다. 그 순간 정말 흥분된 마음에 토니 비라몬테스에 관한 책을 반드시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왕자로부터 진정한 키스를 받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토니 비라몬테스라는 패션을 사랑하는 대중에게조차 낯선 이름이다. 물론 어제 전시를 둘러본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아, 나 이 작품 본 적 있어!’라고 말하기는 했다(웃음).
맞다. 나 역시 처음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땐, 주변의 디자이너와 저널리스트 모두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 듀란듀란이나 자넷 잭슨의 앨범 커버 혹은 패션 일러스트 작품을 보여주면, 이 작품은 본 적 있지만 토니 비라몬테스의 작업인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토니가 활발하게 활동한 시간은 80년대 초반을 시작으로 5~6년에 지나지 않는다. 서른셋의 나이에 에이즈로 죽은 후, 그는 빠르게 잊혀졌다. 패션은 계속해서 변하고, 그와 함께 일한 동료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났으니까. 사라진 그의 이름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한 건, 인터넷이 발달하고 구글과 페이스북에서 그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생겨나면서부터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부정확했고, 작품은 익명으로 남아 있을 뿐 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내게도 의미가 깊다.
아쉽게도 일러스트레이션이 패션에 미치는 영향력이 사진에비해 적었기 때문에, 80년대를 풍미한 토니 비라몬테스의 이름조차 더욱 쉽게 잊혀진 건 아닐까?
토니가 데뷔한 70년대 후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유행에서 멀어져 쇠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소비자가 옷을 선택할 때 일러스트레이션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그에 반해 사진은 강력한 리얼리티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제 일러스트레이션의 생명은 끝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토니 비라몬테스의 작품은 그렇게 사진의 리얼리티가 승리한 시대 이전의, 손으로 그리는 드로잉의 힘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가 그린 드레스에는 사진이 갖고 있지않은 로맨스와 상상력이 가득하다.
토니 비라몬테스의 다양한 작품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그는 드레스와 같은 사물에서도 영혼을 포착해내는 작가였다. 하지만 나는 토니 비라몬테스의 초상화를 유난히 사랑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델들은 대부분 그의 친구들인데, 전형적인 미남 또는 미녀 대신 특별한 개성이나 힘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모델인 비올레타 산체스는 독특한 콧날을, 리사 로즌은 기억에 남을 만큼 큰 입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남성성이 가미된 강한 여자의 얼굴을 그리면서도, 페미닌한 포즈와 메이크업 그리고 주얼리를 통해 로맨틱한 모습을 재창조한 거다. 그 시대를 풍미한 일러스트레이터인 안토니오 로페즈가 섬세한 작품을 창조했다면, 토니는 조금 더 과격하고 열정적이고 과감한 아티스트였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안토니오보다 토니의 작품에 애착을 느낀다.
잠시 언급했듯 토니 비라몬테스의 작품은 여성성과 남성성이혼재되는 지점이 인상적이다.
토니의 부모님은 미국으로 이주한 멕시칸 1세대고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토니 역시 성장기에는 다른 미국 소년들처럼 관습적인 틀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를 변화시킨 사람은 지금은 포토그래퍼로 더욱 유명한 스티븐 마이젤이다. 스티븐 마이젤이 WWD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FIT에서 강의했을 당시, 그는 여자 모델에게 수트를 입고 타이를 매게 한다거나 남자 모델이 가발을 쓰고 하이힐을 신는 등 젠더를 전복시키는 스타일링을 선보이곤 했다. 당시 스티븐 마이젤의 수업에서 영감을 받은 토니 비라몬테스의 작품에서도 화장한 소년이나 파워풀한 여성 등 성을 뛰어넘는 인물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다.
그의 후기 작품 중에는 직접 촬영한 사진을 활용한 디지털 작업이나 콜라주 작업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의 정체성을 일러스트레이터로만 한정할 수는 없지 않을까?
토니 비라몬테스는 자신을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 아티스트라 여겼다. 일러스트레이션 위주의 작업을 했던 초기에도 토니 비라몬테스는 기존 일러스트 작가들의 작품을 참고하지 않았다. 그에게 일러스트레이션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만났던 사람, 감동받은 음악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그만의 반응을 투영하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이후 사진을 찍게 되었을 때도 기술적으로
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될 만큼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관습적인 사진의 전통을 따르는 대신 사진을 찍어 포토샵 등 디지털 작업을 한 번 더 거치거나, 사진을 잘라 콜라주 작업을 하거나 사진 위에 다시 한번 그림을 그리는 등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의 요소가 어우러지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에겐 어떤 매체를 사용하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던 셈이다.
비단 전시뿐만 아니라 토니 비라몬테스에 대한 강연과 포트폴리오 리뷰에 이르기까지,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수많은 학생들이 이번 이벤트에 참여했다. 그들이 이번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워가기를 바라나?
토니 비라몬테스처럼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그릴 수 있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할 것 없다. 사실 토니 비라몬테스에게도 늘 늑장을 부리다 급하게 작품을 완성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의 코즈메틱 브랜드 로샤의 광고 이미지 역시, 데드라인 1간 전까지도 완성되지 못했다고 한다. 어쩔 줄 모르던 그는 결국 페인트와 크레용 대신 로샤에서 그에게로 보낸 수많은 화장품 가운데 아이섀도와 라이너를 들고 허겁지겁 작품을 완성했다. 그런데 만약 그가 타인이 혹은 스스로 설정한 의무에 얽매이는 사람이었다면, 그토록 창의적이고 순발력 넘치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따를 때 멋진 작품이 나온다. 토니가 성공한 이유는 그가 그 자신다웠기 대문이다. 당대의 가장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안토니오 로페즈를 매우 동경했지만, 그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지 않은 적이 없다.
10 꼬르소 꼬모 서울에서의 전시가 끝난 이후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준다면?
다음 목적지는 독일과 호주가 될 것 같다. 특히 독일에서 토니 비라몬테스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있다. 전시를 찾은 관객들이 그의 작품을 구매하면서, 전시할 수 있는 작품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는 런던의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에서 열릴 자신의 투어 전시를 위해 작품을 구입한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투어 전시를 할 예정이다. 그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INTERVIEW WITH CARLA SOZZANI
: 10 꼬르소 꼬모•카를라 소차니 갤러리 창립자, 갤러리스트
<W Korea> 10 꼬르소 꼬모 서울이 벌써 6주년을 맞았다.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카를라 소차니 6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맨 처음 고객들은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제품을 쇼핑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다. 디자인 제품에 관한 관심이 적은 것 또한 어려운 요소였다. 지금은 굉장히 성공적이라 자평하고 있다. 단적으로 10 꼬르소 꼬모 서울에서 소개하는 책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다양한 문화와 상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10 꼬르소 꼬모 서울은 매년 생일마다 세계적인 포토그래퍼의 전시를 선보였다. 6번째 생일을 맞아 사진가가 아니라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일러스트는 사진이 주지 못하는 판타지를 제공한다. 지금은 사진이 패션에 미치는 영향력이 비교할 수 없이 크지만, 미래에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이 지금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패션 일러스트레이터가 많지는 않다. 80년대에는 토니 비라몬테스와 안토니오 로페즈가 있었을 뿐이다. 그 중에서도 토니 비라몬테스는 비록 서른셋에 요절하기는 했으나, 장 폴 고티에와 슈퍼모델의 출현으로 대표되는 80년대 패션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물론 함께 작업하며 개인적 친분을 쌓았던 작가라는 점도 선택의 이유였다. 워낙 짧은 시간 동안 활동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바람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토니는 어리고, 귀엽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교성 있고, 열정적이고, 부드러운 멕시칸 자체였다. 모두가 토니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 가운데 펜으로만 그린 드로잉 작품을 좋아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컬러풀한 작품을 더 인상적으로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워낙 파워풀한 기운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느 쪽이든 이번 전시를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길 바란다. 무엇보다 전시를 본 후엔 그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커지지 않을까. 이번 전시가 패션과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더욱 가까워지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토니 비라몬테스 작품전에 이어진 포트폴리오 리뷰 프로그램은 어떠한 경험이었나?
배운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놀라운 일러스트 실력을 보여준 여학생, 지갑에 멋진 그림을 그려온 학생, 동양적인 초상화가 그려진 쇼핑백을 들고 온 소녀가 기억에 남는다. 남성복을 디자인하는 학생이 유난히 많았다는 점도 놀라웠다. 무엇보다 어제 만난 학생 가운데 대부분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는 데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모두가 다른 사람의 브랜드를 위해 일한다면, 패션의 미래는 없을 테니까. 어린학생들 모두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도록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기업가 정신이랄까?
어제는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오늘은 에비뉴엘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서울은 2개의 10 꼬르소 꼬모 매장을 가진 유일한 도시이기도 하다.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는 미적으로도, 여러 층으로 구성 되었다는 점에서도 밀라노의 매장과 공통점을 가진다. 그런데 에비뉴엘은 아니다. 애비뉴엘을 제외하면 지금껏 단 한 번도 백화점 내에 숍을 오픈한 적이 없다. 고객들로 하여금 백화점에 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고 싶다.
10 꼬르소 꼬모 서울은 6주년을 맞았지만, 10 꼬르소 꼬모는 25년의 역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의 가장 도전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6개월 전 상하이 매장을 열었다. 현재로서는 상하이 매장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과 비교해서도 완전히 다른 세계다. 단순히 인구의 수나 규모의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 시장에 새롭게 발을 들였음에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중국의 젊은 세대는 마지막 하나 남은 가방을 구입하고 소유하는 것을 넘어 전시, 책 등 다양한 문화의 교류에까지 큰 관심을 지니고 있다. 중국을 주목하는 이유다.
도쿄, 서울에 이어 상하이에서의 경험이 쌓인 현재 시점에서, 서울의 패션을 돌아본다면?
서울의 디자이너들은 그 어느 도시보다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미 몇몇 한국 디자이너들을 밀라노에 소개하기도 했다. 파리에서의 성장도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여성들은 스타일리시하고 우아하다. 그들은 패션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승화시킬 줄 안다. 패션을 사랑하지만 중독되지 않는 것, 그게 중요하다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김슬기
- 포토그래퍼
- 엄삼철, 박종원
- 기타
- COURTESY OF 10 CORSO COMO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