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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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환상적인 조합이 있을까? 재치와 유머를 앞세운 모스키노 하우스에 제레미 스콧(Jeremy Scott)이 합류한 것은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완벽한 일이었다.

왼쪽부터 | 모스키노의 디자인을 입은 데본 아오키. 제레미 스콧, 리버티 로스.

왼쪽부터 | 모스키노의 디자인을 입은 데본 아오키. 제레미 스콧, 리버티 로스.

거대 패션 하우스들이 1990년대 이후 거물급 외부 디자이너를 고용하기 시작하면서 ‘브랜드의 차기 디자이너는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무성한 추측은 끊이질 않아왔다. 때론 이 과정에서 마치 최후의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디자이너와 하우스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지난 10월 모스키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제레미 스콧의 경우가 그렇다. 추수감사절 직전 밀라노에서 만난 그는 이미 하우스를 위한 첫 컬렉션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80년대 프랑코 모스키노가 정반대의 조합과 키치한 아이콘 그리고 브랜드 패러디 등을 통해 재미와 새로움을 추구했다면, 제레미 스콧은 이미 90년대부터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스콧은 브루클린의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패션을 전공한 후 당시 모스키노의 PR 수장인 미셸 스타인 밑에서 처음으로 인턴직을 시작했고, 현재 모스키노의 모회사인 에페(Aeffe) 패션 그룹에서 일하고 있는 스타인이 작년 여름 스콧에게 디렉터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견습 시절의 꿈이 지금은 현실이 된 것! 지난달 모스키노에서의 성대한 데뷔쇼를 연 제레미 스콧은 우수한 성적표를 손에 쥐게 됐다. 맥도날드를 패러디한 맥 딜리버리 의상과 켈로그 콘프로스트와 허쉬 초콜릿 드레스, 스폰지 밥을 차용한 유머러스한 의상들이 런웨이에 등장함과 동시에 지구상의 SNS는 제레미 스콧과 모스키노로 도배되었기 때문! 쇼가 끝나자마자 그의 패스트푸드 의상들은 바로 매장에서 판매를 시작했고, 그 덕분에 밀라노 패션위크 기간 스트리트 슈퍼스타들은 연일 그의 맥도날드 룩으로 치장한 채 쇼장으로 향했다. 쇼 인비테이션으로 프레스들에게 보낸 프렌치프라이 핸드폰 케이스가 이미 인터넷상에 재빠르게 카피캣 제품으로 깔린 것만 봐도 그의 성공을 짐작할 수 있다!

스콧은 미셸 스타인의 전화를 받고 잠시라도 망설였을까?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죠!” 스콧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머리를 굴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도 쉽고 명백한 결정이었어요. 물론 하우스의 DNA와 맞아떨어지면서 새로운 뭔가를 시도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다른 디자이너들과 차별화되는 나만의 특징은 바로 ‘유머’죠.”

그동안 모스키노가 인디언 추장의 머리 장식, 미키 마우스의 동그란 귀, 거대한 글러브로 치장한 모델들을 런웨이로 내보냈다면, 스콧은 ‘고인돌 가족’과 ‘슈퍼 히어로’ 모티프를 활용했다. 두 디자이너 모두에게 빠뜨릴 수 없는 구성 요소는 테디 베어! 1988년 목 주변에 테디 베어들이 달린 모스키노의 칵테일 드레스와 14년 후 제레미 스콧이 디자인한 테디 베어 장식의 아디다스 스니커즈를 생각해보라. 허리 부분에 ‘Waist of Money(waste of money라는 돈낭비를 연상시키는 표현) 문구를 새겨 넣은 재킷 등을 비롯해 패션계의 획일성에 반기를 들었던 프랑코 모스키노(1994년 44세로 사망)는 자신을 두고서 ‘난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옷의 테일러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스콧의 경우에는 달러가 프린트된 트렌치코트와 골드 시계 장식의 이브닝 칼럼 드레스 등등 위트 넘치는 2001년 가을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해, 유머와 극적인 요소로 넘실대는 런웨이를 이끌어왔다. 두 디자이너 모두 ‘쇼는 늘 즐겁고 유쾌해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제레미의 가장 큰 재능은 충격적인 비주얼로 선동하는 것이에요.” 스콧의 절친이자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는 캐서린 바바(Catherine Baba)가 말한다. “그리고 두 번째 재능은 바로 구조주의예요. 그의 세상엔 유머와 아이러니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측면도 존재하죠.”

1. 1989년 프랑코 모스키노의 포트레이트. 2. 1992년 스마일 재킷.

1. 1989년 프랑코 모스키노의 포트레이트. 2. 1992년 스마일 재킷.

미셸 스타인이 지난 6월 전화를 걸었을 때 스콧은 예전처럼 구명 밧줄이 절박한 상태는 아니었다. 파리에서 첫 쇼를 연 후 19년 동안 그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스콧은 초창기 파리에서 연 두 번의 컬렉션에 병원 환자복과 파리 생투앙 벼룩 시장에서 구입한 재활용품 등을 활용했다). 한때 그는 몸을 누일 소파조차 없었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몇 차례 잠을 자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1930년대 꽃무늬 드레스를 해체해 만든 티셔츠, 샤워 커튼으로 만든 기이한 패딩 재킷, 재고품 슈즈, 컬러풀하게 염색된 헤어와 메이크업 등등이 당시 그의 시그너처 룩이었다. 하지만 곧 폴리 피갈(Folies Pigalle)이라는 나이트클럽에서 파티 프로모션 일을 맡으면서, 당시 바바와 안무가이자 포토그래퍼인 알리 마다비(Ali Mahdavi)를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그의 초창기 쇼를 조건 없이 도와주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프레젠테이션 후 스콧은 ‘비너스 드 라 모드(Venus de la Mode)’ 상을 수상했고, 모든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칼 라거펠트는 ‘내가 샤넬을 떠난 후에 뒤를 따를 수 있는 유일한 디자이너는 스콧!’이라고 평했고, 콜레트 부티크에서의 매출 1순위도 그의 디자인이었다. 스콧은 판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말한다. 여전히 그는 자신의 컬렉션이 현재 얼마나 판매되는지를 기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2014 F/W 밀란 패션 위크에 선보인 제레미 스콧의 모스키노 데뷔 컬렉션.

2014 F/W 밀란 패션 위크에 선보인 제레미 스콧의 모스키노 데뷔 컬렉션.

게다가 스콧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표현력 역시 변함이 없다. “세 번 째 쇼를 마친 후 어시스턴트가 내게 전화기를 건네주었어요. ‘헬로, 여긴 비요크예요’라고 말하는 작은 목소릴 들을 수 있었죠.” 그가 회상한다. “내가 가본 두 번의 콘서트는 슈가큐브스와 마돈나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내 옷을 입은 비요크를 보게 되었죠.” 스콧의 독특한 미학은 ‘주목’이 필요한 수많은 팝스타들을 열광시켰으며 리애나, 마돈나, 칸예 웨스트, 레이디 가가, 니키 미나즈, 베스 디토, 리타 오라, 에이셉 라키 등 A급 스타들이 그의 고객이 되었다. 특히 롤링스톤즈 커버를 장식했던 케이티 페리의 브라 디자인(허쉬 키세스를 케이티 키세스로 응용한!)을 통해선 결코 잊히지 않을 쇼 룩이 만들어졌다. “그는 때론 가벼운 자기 비하를 통해 옷을 만들어요. 패션을 규정하는 지나친 진지함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주는 그런 옷들이죠.” 페리의 말이다. “그의 옷을 입으면 내가 정말 특별한 사람이 된 거 같아요!”

스콧이 디자인한 젖소 무늬 모스키노 룩을 입은 데본 아오키.

스콧이 디자인한 젖소 무늬 모스키노 룩을 입은 데본 아오키.

스콧을 통한 젊은 층과의 연결고리는 모스키노에게는 아주 요긴한 요소가 되어줄 것이다. 더욱이 셀렙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주문 제작 형식의 이벤트성 디자인 외에도, 그는 다방면에 걸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일례로 2002년 로스앤젤레스에 자리 잡은 직후 아디다스는 그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스콧은 달러 프린트 로고의 심플한 슈즈를 만들어냈고, 이 일을 계기로 몇 차례의 소규모 협업을 거친 후 결국엔 ‘아디다스 제레미 스콧 컬렉션’이 완성되었다(그가 디자인한 날개 달린 스니커즈, 형광색 보머 재킷과 트랙수트 등을 살펴본다면 이 라인이 원스톱 쇼핑을 겨냥한 것임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아디다스와의 작업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입증하는 것이었어요. 다름 아닌, 모든 사람이 더 흥미롭고 풍요로워지는 것이죠.” 스콧이 말한다. “난 이 옷들이 라이프를 가지길 원해요. 각자의 삶을 다한 다음에는 중고 매장으로 넘어가, 한 20년쯤 후에 쿨한 소녀들이 다시 발견해주었으면 하죠. 런웨이나 레드 카펫에서 단지 한 번뿐인 삶을 사는 옷이라면 진짜 슬플 것 같아요.” 스콧에게는 현재 롱샴 백과의 협업과 8가지의 스와치 시계 디자인도 대기 중에 있다.

하지만 모스키노에서는 좀 더 럭셔리한 이브닝 웨어와 고가의 가격표가 붙은 의류들이 기다리고 있다. 밀라노에서 그를 방문했을 때 스콧은 우스꽝스러운 프린트를 새겨 넣을 드레이핑 드레스들을 커팅하고 있었다. 액세서리, 향수, 세컨드 라인인 칩 앤 시크(Cheap and Chic)를 포함해 모스키노 비즈니스의 상대적인 거대함 역시 그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다. 그럼에도 스콧은 지금까지의 다른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밀라노에서 삶의 리듬에 익숙해질 때까지 사보이아 호텔에 머물다가 로스앤젤레스의 아파트로 돌아왔다(앞으로도 로스앤젤레스와 밀라노를 오갈 것이라 한다).

“밀라노에서는 굉장히 창조적인 기운이 넘치는 걸 느껴요. 난 농부 같아요. 결과물을 잔뜩 수확해서 시장에 내다판 후, 다시 돌아와 똑같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죠.” 또한 그가 어디에 머물러 있든지 절대 변하지 않을 한 가지는 그만의 패션 비전이다. 그는 늘 자신이 가진 목소리의 순수함을 유지하려 애쓴다고 고백했다. “그래야 최선의 것을 보여줄 수 있죠. 수많은 곡물 사이에 비장의 무기를 숨겨놓는 건 내 방식이 아니에요. 난 그런 길을 택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스콧의 말대로, 테디 베어와 함께하는 그의 길은 쭉 이어질 것이다. 글 | Alexandera Marshall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정진아
포토그래퍼
David Mushegain
스탭
스타일링 / Elizabeth Barr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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