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에게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도 마찬가지다.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녀의 철두철미한 일 처리와 넉넉한 품성에 대하여.
지난해 10월 2일, 2014 S/S 미우미우 쇼를 끝내고 삼페인으로 축배를 들며 팻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촬영을 청하는 것이 조심스러웠지만, 그 시즌을 마지막으로 독립할 계획이었기 때문에(지금도 전속이 아닌 팀원으로 함께 일하고 있지만) 용감하게 제안해봤는데 흔쾌히 승낙해줬다. 한 달이 넘는 대장정의 쇼 스케줄을 마감하는 파리 컬렉션, 그것도 마지막 날.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마지막 루이비통 쇼의 콜 타임이 무려 새벽 2시 30분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지쳐 있는 상태였다. 팻도 물론 피곤했고, 컨디션이 좋지 못한 기색이었지만 고맙게도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어주었다(메이크업 하지 않은 상태로 매체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팻과 개인적인 추억을 위해 찍은 사진이니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로 옮겨가지 말아주시기를 간절히 부탁 드린다).
Pat: “Where is Seong Hee?”
Me: “I am here.”
Pat: “Come with me! Bring your makeup kit with you.”
그리고 2014-15 F/W 시즌 파리 컬렉션 마지막 날인 3월 5일, 루이비통의 새로운 디자이너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 데뷔무대인 날, 나는 팻의 부름을 받아 니콜라스의 메이크업을 맡았다. 백스테이지 한 켠에 마련된 작은 방으로 갔더니 그는 머리를 손질 받는 중이었다. 너무 급하게 오는 바람에 클렌징 제품과 화장솜을 빠뜨린 나를 위해 팻은 친절하게 직접 가져다 주었고, 예쁘게 잘 해주라며 윙크까지 보냈다. 기회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르겐 텔러, 패트릭 드마슐리에처럼 세계적인 포토그래퍼들과 함께 니콜라스의 루이비통 데뷔 무대를 기념하기 위한 촬영까지 할 수 있었으니까. 역사적인 순간에 나의 손길을 보탤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나에게 귀한 기회를 준 나의 메이크업 스승, 팻 맥그라스에 대해 얘기할까 한다.
‘Kids!’, ‘Children!’ 팻이 그녀의 팀인 우리들을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처음엔 매우 어색했지만, 나중에 그녀의 별명이 ‘mother’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엔 귀엽게 느껴졌다. 팻은 생각하는 스케일이 크다. 판단이 빠르고 두뇌가 360도로 회전하나 싶을 만큼 무한한 아이디어 뱅크다. 어떠한 틀에 연연해 하지 않으며, 입체적으로 페이스와 바디의 텍스쳐를 살린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3차원 메이크업의 선구자라고나 할까! 촬영장에서 간혹 포토그래퍼들은 ‘팻의 바디 메이크업’을 해달라고 콕 집어 요청하기도 한다. 몸의 질감을 반짝이게 살리는 브랜드 Madina의 제품 ‘샤이니 스틱’은 은 패션 피플들 사이에서 ‘Pat’s Shiny Stick’으로 일컬어질 정도다. 엄청난 에너지로 지칠 줄 모르게 일하는 그녀는 뉴욕, 밀란, 파리 등 세계 3대 콜렉션에서 25개가 넘는 주요 쇼를 맡을 만큼 영향력이 대단하다.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톱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P&G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디렉터. 커버걸, 돌체 & 가바나 뷰티, 맥스 팩터(Max Factor&Co.) 등의 제품 개발과 광고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내로라 하는 패션 뷰티 잡지에서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 the most influential make-up artist in the world) 라고 부른다.
매사에 준비가 완벽한 팻이 컬렉션 기간에 갖고 다니는 가방은 20개가 넘는다. 거기에는 쇼 제품들과 아이디어를 위한 자료,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많은 메이크업 제품과 소품, 도구들이 들어있다. 심지어 조명도 직접 가지고 다니는데, 그게 끝이 아니다. 예민한 피부를 위해 의사의 처방을 받은 기초 제품과 알러지성 피부를 위한 제품까지! 어느 한 부분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철저하게 준비하는 완벽주의 성품은 물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준비를 위해 스태프도 충분히 쓰는 데다,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티스트들에게 넉넉한 보상을 줄 줄 아는 비즈니스 마인드까지 있다.
이번 시즌 팻은 처음으로 알렉산더 맥퀸 쇼를 맡게 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팻은 현재 알렉산더 맥퀸의 디자이너인 사라 버튼과 오랜 친구 사이인데, 존 갈리아노와 알렉산더 맥퀸의 라이벌 관계 때문에 그 동안 쇼를 담당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 사이 맥퀸의 죽음과 갈리아노의 추방 등 우여곡절이 지나고 팻과 사라가 함께 일하게 된 것이라고. 루이비통 룩북 촬영이 끝나고 늦게 합류한 나는 백스테이지에서 메이크업 끝마무리를 하는 팻을 도왔는데, 덕분에 팻과 사라 버튼이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옆에서 보게 되었다. 메이크업이 너무 환상적이라며 감사를 표하는 사라 버튼은 눈물을 흘렸고, 그런 디자이너를 팻은 눈물을 흘리면서 안아주었다. 비정하고 급박하기만 한 줄 알았던 패션의 세계에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교류를 목격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