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가시지 않는 한파처럼 지속되는 불경기의 영향으로 많은 브랜드들이 광고 촬영을 보류하고 있는 한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 비주얼 경합에 당당히 참여해 승전보를 전하는 브랜드들도 있다. 살아남은 자의 한판 승부, 그들의 무기는?
따로 또 같이
남과 여,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화학 작용만큼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훌륭한 요소가 또 있을까. 에잇세컨즈는 브랜드의 심벌인 숫자 ‘8’이 은유적으로 사람과 사람, 혹은 남자와 여자를 연결시키는 콘셉트의 광고 비주얼을 선보였는데, 남녀 모델 간의 센슈얼한 분위기는 그간 에잇세컨즈의 광고 비주얼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것이기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반면, 제이에스티나는 여성 라인을 위해 두 명의 남녀 톱스타를 내세워 화제가 됐다. 제이에스티나 주얼리 모델로는 배우 송혜교를, 제이에스티나의 여성 핸드백의 얼굴로는 빅뱅의 지드래곤을 섭외한 것. 두 스타가 한 프레임에서 조우한 건 아니지만, 한 브랜드의 두 남녀 모델이 주고받는 긴장감은 패션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똑같아요
최근 1~2년간 패션계를 매료시켜온 ‘트윈(Twin)’ 이미지를 가장 아티스틱하게, 혹은 충격적인 방식으로 광고 비주얼에 적용한 브랜드는 바로 MCM이다. ‘Flower Boys in Paradise’라는 주제로, 얼핏 보면 구분이 힘들 만큼 비슷한 모습의 남녀 모델을 고용해 양성의 대조, 혹은 그 전복, 그리고 환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테크노적 분위기를 표현한 것. “성벽의 벽을 허무는 이 모델들은 인류 태초의 아담과 이브가 가졌던 신성한 아름다움을 나타내요.” MCM 홍보 담당자의 말. 중국 모델 엠마 페이와 러시아 출신의 모델 나스티아 쿠사키나를 새로운 얼굴로 백의 미니멀한 디자인, 그리고 선명한 색감의 대조를 보여주는 루이까또즈 광고 캠페인도 트윈 이미지를 이용해 강렬한 비주얼을 완성한 예. 반면 도시, 자연, 음식을 테마로 흥미로운 콘셉트와 비주얼을 실험하는 프로젝트 그룹 베리띵즈(Verythings)와 포토그래퍼 김현성의 협업으로 완성된 BNX의 광고 캠페인은 자연스럽고 풋풋한 느낌이다.
승부처는 프린트
내로라하는 셀레브리티도, 톱모델도, 그렇다고 화려한 세트나 특별한 콘셉트도 없이 단지 옷으로 승부하는 브랜드들이 있다. 시즌을 대표하는 테마가 그래픽적인 프린트일 경우, 그 승부에는 승산이 있다. 독창적인 프린트는 완성도 높은 예술 작품만큼이나 시선을 오랜 시간 멈추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 이번 시즌 SK에서 새롭게 론칭하는 여성복 브랜드인 세컨드플로어, 아프리칸 무드의 그래픽 패턴이 중요한 시즌 테마인 시스템, 손으로 직접 그린 듯 회화적인 분위기의 프린트 원피스를 선보인 SJSJ가 바로 프린트로 승부수를 띄운 브랜드들.
뒷얘기가 궁금해
이번 시즌 로컬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 경합에서 단연 돋보이는 시슬리의 광고 캠페인은 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 4명, 그리고 풍부한 창의력과 획기적인 기획력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포토그래퍼 세바스티안 파에나와 함께한 결과물이다. 아트 디렉터이자 패션 컨설턴트로 활약 중인 줄리아 로이펠드, 세계적인 남성 톱모델 클레망 샤베르노, 그리고 미국의 유명 슈퍼모델 린지 윅슨과 혜성처럼떠오른 신예 루벤 라마체르가 한데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케미가 상승하는데, 뉴욕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에서 여유로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들 앞에 수많은 취재진이 모여들어 경쟁을 벌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을 촬영 현장을 상상케 한다. 포토그래퍼 팀 워커와의 오랜 작업으로 (벌써 일곱 시즌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견고히 쌓은 오즈세컨 또한 캠페인 작업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는 마찬가지. 데이비드 호크니로부터 영감을 받은 다채로운 색감과 꽃, 앵무새, 활엽수 등을 그려 넣은 평면적인 오브제들로 이번에도 동화적이고 유니크한 비주얼을 완성했다. <W Korea>에 공개된 촬영 현장의 비하인드 컷들로 궁금증을 해소하시길.
천송이 효과
“그녀가 우리 제품을 언제 입고 나올지, 경쟁 브랜드의 옷은 얼마나 입었는지 보느라, 스토리에 집중이 안 돼요.” 울상을 한 모 브랜드 홍보 담당자의 말이다. 드라마와 천송이 캐릭터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별에서 온 그대>는 초반부터 말 그대로 온갖 패션 브랜드의 홍보 각축장과도 같았다(그녀가 한 회에 얼마나 여러 번 옷을 갈아입는지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 그러니 전지현을 새 시즌의 모델로 모셔가려는 브랜드들이 줄을 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 일단, 지난 시즌부터 모델에 관해서는 선견지명이 있는 브랜드 루즈앤라운지(지난 시즌부터 전지현을 모델로 내세웠다)가 첫 번째 타자. 극도로 미니멀한 백 디자인과 전지현의 시크한 분위기가 훌륭히 조화되는 비주얼을 선보였다. 여성복 브랜드 중에서는 쉬즈미스가 전지현을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얼마 전 드라마 속 천송이가 와이어 액션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입은 트렌치코트가 바로 쉬즈미스의 제품. 디디에두보 코리아는 처음으로 국내 모델로 광고 촬영을 진행했는데, 그게 바로 전지현. 마찬가지로 <별에서 온 그대> 제작 발표회에서 그녀가 열손가락에 모두 디디에두보 반지를 착용, 스포트라이트를 받음으로써 천송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비움의 미학
패션계가 ‘맥시멀리즘’으로 방향키를 전환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오가고 있지만, 여전히 광고계에는 ‘미니멀리즘’이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지난 시즌에 이어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명 포토그래퍼 파올라 쿠다키와 작업하고 특유의 빨간머리와 주근깨, 가녀린 선을 지닌 폴란드 출신의 모델 막달레나 야섹을 뮤즈로 내세운 톰보이는 이번 시즌 ‘비주얼은 단순히 멋지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감성과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철학과 의도 아래,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배제하고 모델의 풍부한 표현력과 옷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사진가 박경일과 김태은이 각각 촬영한 탱커스와 카이아크만 역시 스튜디오에서 빛과 무드에 의존해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고 미니멀한 분위기의 비주얼을 완성했다.
모델로 말해요
광고에서 모델의 역할은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다. 제품과 인물의 표현력과 존재감이 어우러졌을 때 더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니까. 때문에 브랜드들은 저마다 톱모델과 셀레브리티 등 ‘잘 알려진 얼굴’을 캐스팅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메트로시티는 매년 세계적인 할리우드 배우와 톱모델을 기용하는데 2014년엔 케이트 베킨세일을 캐스팅했다. 워낙에 광고 선택에 신중하기로 유명한 그녀인만큼 메트로시티의 새로운 뮤즈가 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다. LA에서 진행한 광고 촬영장에서 그녀는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뷰파인더를 압도했다고. 한편 보브의 새로운 모델은 베르사체, 구찌, 펜디 등 해외 유명 브랜드의 얼굴로 활약한 톱모델 애비 리커쇼! 포토그래퍼 얀 웰터는 보브의 광고 캠페인에서 그녀를 90년대 헤로인 시크의 아이콘인 케이트 모스로 재탄생시켰다. 타임은 모델스닷컴 랭킹 20위의 톱모델 케이티 네스처를 이 비주얼 전쟁의 무기로 삼았는데, 지난해 휴고 보스, 칼 라거펠트, 지방시 향수 등의 캠페인 모델로 활약한 그녀는 이번 시즌 타임 광고 캠페인 안에서도 특유의 중성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W Korea>를 포함한 각종 패션지의 커버걸이자 빅토리아 시크릿의 ‘엔젤’ 중 한 명인 콘스탄스 야블론스키를 비롯, 모델스닷컴 랭킹 5위의 아서 구스, A.P.C.와 랑방의 뉴페이스로 주목받고 있는 신인 윌리엄 유스타스까지, 막강 화력을 자랑하는 빈폴 군단도 빼놓을 수 없다. 마인의 새로운 얼굴로 나선 관능적인 눈빛과 클래식한 이목구비의 모델 안드레아 디아코누 역시 패션계 사람에게는 친숙한 얼굴.
소녀들의 시대
걸그룹 멤버들을 향한 광고계의 러브콜이 여전히 뜨겁다. 걸그룹 멤버로서는 흔치 않은 큰 키와 늘씬한 몸매로 일상의 패션이 화제가 되는 소녀시대의 수영을 뮤즈로 내세운 브랜드는 더블엠. 이번 시즌에는 ‘New Double·M Look’이라는 기치 아래 편지봉투를 연상시키는 심플한 라인의 아모르 라인을 선보이는데, 보라색과 코럴 색상 등 비비드한 컬러가 포인트다. 한편 소녀시대의 또 다른 멤버인 제시카 또한 숲 캠페인에서 20대 초반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한껏 발휘했다. 한편 러브캣은 이번 시즌의 신제품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크리스탈을 뮤즈로 삼았다는 후문이다. 달콤한 색감과 귀여운 리본 모양의 디테일까지, 모두 그녀의 이미지를 연상하며 디자인했다고.
아트 가라사대
아트, 아~트! 패션계 어딜 가나 ‘아트’가 화두인 요즘이다. 겐조, 보테가 베네타 등 이미 많은 해외 브랜드들이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광고 캠페인을 제작해 화제가 된 바 있는데, 국내에서는 역시 오래전부터 무용가를 비롯해 예술가와의 협업에 능수능란했던 구호가 발빠르게 이 대열에 동참했다. 구호가 협업한 예술가는 바로 소통, 관계, 시간 등을 개념적으로 해석한 사진 작업으로 유명한 작가 천경우. “다른 군더더기 없이 옷의 본질에 집중하는 구호의 철학은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걷어내고 모델과의 교감에 집중하는 제 사진 작업과도 맞닿아 있으며, 이 연결고리는 제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의상과 사람 사이에는 분명 상호 관계가 존재하고, 이것은 찍히는 사람과 그를 찍는 나 사이의 상호 교감과 같은 것입니다.” 천경우 작가의 말. 두 개의 이미지가 마주하며 대화하듯 구성된 이 작업에서 모델은 일방적인 촬영의 대상에서 벗어나 작가와 함께 퍼포먼스적 과정을 만들어가는 주도적인 존재. 그래서일까. 뿌옇게 흔들린 이미지 속에서도 모델의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난다.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이지은(Lee Ji 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