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환상, 상상이라 말하던 것들이 옷으로 탄생하고 초현실이라 부르는 것들이 패션으로 승화된. 바로 샤넬 오트 쿠튀르가 보여준 환상적인 컬렉션의 수식어다. 2014 S/S 오트 쿠뤼르에는 여기에 ‘스포티즘’과 ‘젊음’이 더해졌다.
지난 1월 21일. 파리 그랑 팔레에서 샤넬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열렸다. 꿈의 컬렉션이라 부르는 쇼이니만큼 칼 라거펠트가 이번에는 또 어떤 판타지로 우리를 안내할지, 쇼장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흥분과 기대가 읽혔다.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알루미늄 바닥과 모슬린 베일에 가려진 거울벽으로 만들어진 그곳은 미래적인 캉봉 클럽(Cambon Club)! “마치 다른 은하계의 나이트 클럽과 같다”고 이야기한 칼 라거펠트의 말처럼 메탈릭한 벽과 바닥은 조명에 반사돼 눈부시게 빛났고, 거대한 우주선을 탄 것 같기도, 영화 <설국 열차>에서 본 것 같기도 한 미래 도시의 클럽이 현현했다. 자리가 다 채워지자 무대 정가운데에 놓인 메탈릭한 원형 구조물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반대편에서 자리 잡고 있던 세바스티앙 텔리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흘러나왔다. 뒤로 세워진 계단 위에는 뾰족하게 머리를 세운 모델 카라 델레바인이 서 있었는데 그녀는 한 마리의 잠자리처럼 아주 사뿐하고 경쾌하게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가 꼽은 이번 컬렉션의 핵심은 ‘애티튜드와 실루엣, 형태와 커팅’. 그의 말처럼 샤넬 고유의 코드인 흰색, 트위드 재킷, 장인 정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정교한 수작업 등이 새로운 실루엣을 통해 탄생했다. 트위드 재킷의 소매와 어깨는 라운드로 변형되었고, 짧게 커팅해 볼레로 같았다. 여기에 여성미를 살릴 수 있는 코르셋을 룩에 대입, 뷔스티에 형태의 드레스를 덧입히는 식이었다. 반면 스커트는 힙 부분을 봉긋하게 살려 잘록한 허리를 극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곳곳에 사용된 트위드 소재는 직조와 자수 방식으로 제작된 뒤 수많은 시퀸과 다양한 스톤장식을 수놓고 펄을 가미해 더없이 화려했다.
“상의와 스커트, 허리 사이에 생기는 유연성이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주죠”라는 그의 말처럼 모델들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 보였다. 이처럼 그가 의도한 자유로움을 강조한 결정적 역할을 한 공신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슈즈! 모든 모델들이 걸음에 지장이 없는 아주 편한 스니커즈를 신고 나온 것이다. 커스텀 메이드 슈즈 브랜드인 마싸로가 제작한 스니커즈답게 화려함과 정교한 수공예 장식으로 무장한 채! 드레스와 톤을 맞춘 레이스 소재나 드레스에 사용된 트위드 소재와 같은 것으로 제작됐고, 똑같은 비즈, 옷보다 더 정교한 수작업을 통해 장식을 달았다. 그것은 운동화지만,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아트 피스였다. 이는 칼 라거펠트가 이번 컬렉션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역동적인 캐릭터를 극대화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또 짧은 소매, 박시한 어깨, 라운드 칼라와 높은 라운드 네크라인, 크롭트 재킷 등에는 사이클용 쇼츠, 팔꿈치와 무릎에 대는 패드, 힙색 등이 가미되었다. 이런 요소들을 통해 룩은 젊음과 활기, 생동감으로 넘쳐났다.
후반부로 흐르자 다양한 장식이 더해진 드라마틱한 롱 드레스가 등장했다. 장인 정신이 집약된 쿠튀르의 환상, 천상의 신부를 연상시키는 극도로 아름답고 화려한 드레스들이었다. 속이 비치는 소재 위에는 원석 장식이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흩뿌려졌고, 겹겹의 레이스와 자수를 입힌 튤이 모여 황홀한 자락으로 탄생했다. 메탈을 입은 트위드 소재나 반짝거리는 리본, 전복 껍데기 모양의 반짝이는 비즈는 달콤한 연분홍, 하늘, 연두, 민트 등 은은하고 파우더리한 파스텔 컬러 팔레트를 완성했다. 손목을 감싼 은은한 새틴 원단은 모델들의 사뿐한 걸음과 함께 새들의 날갯짓처럼 우아하게 펄럭거렸고, 발레리나를 위한 드레스로 좋을 튤과 튀튀 드레스도 등장했다. 모두 샤넬의 공방에서 완성된 것으로 그 작업 과정만 들어도 왜 이들을 아트 피스라 칭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검정 튤에 깃털과 비즈가 장식된 룩을 보자. 먼저 칼 라거펠트의 스케치가 수석 재봉사에게 전달되면 이는 샤넬 공방으로 넘어가 샘플로 만들어진다. 나무 마네킹에 고정된 샘플을 그가 선택한 소재로 또 한 번 만들어 정교한 실루엣과 비율로 맞춰 나간다. 완성된 샘플은 몽테(Montex) 공방으로 넘어가고 자수사는 직물을 수 틀에 올리고 뤼네빌(Luneville) 기술-한 손으로 코바늘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수틀을 잡고 직물의 뒷면에 수놓는 방식- 을 이용해 스팽글을 수놓는다. 이는 다시 르마리에(Lemarie) 공방으로 보내지며 이곳에서 봉제한 오리, 타조, 닭의 깃털 등을 튤에 올려 작업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샤넬 공방으로 넘어와 정교한 피팅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이 과정에 들어가는 시간은? 약 400시간. 코르셋에 들어간 비즈와 스팽글의 개수는 대략 13만4천 개, 안감에 들어간 스팽글만 8만여 개다. 이처럼 가늠하기 어려운 양과 시간이 겹치고 쌓여 완성된 황홀경의 표상, 이것이 바로 샤넬의 오트 쿠튀르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우리를 매 시즌 기대하게 하고 놀라게 하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쇼 마지막에는 맨 처음 등장한 카라 델레바인이 커다란 깃털 장식 헤드피스와 순백의 하얀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백색 수트 차림으로 드레스 자락을 잡고 함께 나타난 앙증맞은 꼬마 신사는 여러 번 샤넬의 캣워크에 등장한 인물로 라거펠트의 뮤즈인 모델 브래드 크로닉의 아들, 허드슨. 사랑스러운 이 커플의 워킹이 끝나자 다시 한번 칼과 함께 피날레를 선보였고, 시종일관 가볍고 사뿐히 워킹하던 모델들이 교차하며 계단 위로 도열했다. 이쯤되자 깃털처럼 가벼운 그들의 걸음걸이는 여자들이 계단을 쉽게 오르내리고, 뛰고, 활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때 나오는 자유로운 몸짓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게 ‘여성의 자유’를 노래한 가브리엘 샤넬의 사상을 현대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와 미래적인 공간, 클래식한 기법, 샤넬만이 구현할 수 있는 정교한 기교들과 스포티즘이 어우러진 2014 봄/여름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그 어떤 컬렉션보다 젊고 경쾌했으며 동시대적이었다
오트 쿠튀르 컬렉션 기간에 맞춰 샤넬의 파인 주얼리 컬렉션도 새롭게 공개되었다. 이름하여 ‘르 펄스 드 샤넬 (Le Perles de Chanel)’. 진주 애호가인 마드무아젤 샤넬의 취향에 집중한 컬렉션이다. 그녀가 생을 마감할 때 착용하고 있던 유일한 액세서리가 바로 진주였다는 사실에 집중했고 그 중에서도 샤넬이 진주를 우아하게, 때로는 발랄하게 연출하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한 점에 초점을 맞췄다. 초커, 목걸이, 브로치, 반지에 이르는 그녀가 활용한 모든 진주 액세서리를 재해석하며 그녀가 남긴 유산을 기린 것.
인도네시아산 진주와 타히티 흑진주가 물결을 이루며 여기에 8캐럿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뻬르 드 뉘(Perles de Nuit), 화이트와 골드빛 남양진주의 조화로 탄생한 엉볼레 솔레일(Envolee Solaire), 사자머리 문양이 돋보이는 화이트, 검정, 골드 진주 세팅의 리옹 바로크 (Lion Baroque) 등 마드무아젤 샤넬이 남긴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진주를 통해 다시 한번 여성성과 순수함을 엿볼 수 있었다.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김한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