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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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극에 달하면 돌고 돈다. 돌아가는 것이 곧 도의 움직임이다. 최정화의 아틀리에이자 전시장인 가슴궁 안에서도 눈부시게 하찮은 잡품과 값비싸고 흔한 명품이 돌고 돌았다.

흰색과 빨간색의 대비가 특징인 샌들은 MiuMiu 제품.

흰색과 빨간색의 대비가 특징인 샌들은 MiuMiu 제품.

미궁 (Labyrinth)

벽면 왼쪽 하단에 붙은 푸른색 벌집 문양 접시, 제단 가운데 쌓아 올린 여섯 개의 텀블러, 그 오른쪽으로 쌓아 올린 여섯 개의 손잡이 머그, 각기 다른 무늬로 구성된 세 개의 푸른색 볼은 모두 Hermes 제품.

벽면 왼쪽 하단에 붙은 푸른색 벌집 문양 접시, 제단 가운데 쌓아 올린 여섯 개의 텀블러, 그 오른쪽으로 쌓아 올린 여섯 개의 손잡이 머그, 각기 다른 무늬로 구성된 세 개의 푸른색 볼은 모두 Hermes 제품.

연금술 (Alchemy)

풍성하게 흘러내리는 비즈 소재의 분홍색, 초록색 목걸이는 Dior 제품.

풍성하게 흘러내리는 비즈 소재의 분홍색, 초록색 목걸이는 Dior 제품.

욕망장성 (Site of Desire)

조각상에 설치된 목걸이는 Chanel 제품.

조각상에 설치된 목걸이는 Chanel 제품.

다함께 차차차 (Happy Together)

탑 중간에 설치된 금속 손잡이 가방은 Celine 제품.

탑 중간에 설치된 금속 손잡이 가방은 Celine 제품.

세기의 선물 (The Present of The Century)

거실 안으로 설치된 초록색 부츠는 MiuMiu, 현관 바닥에 놓인 슈즈들은 Tod’s, Salvatore Ferragamo by Shinsegae Shoe Collection, Charlotte Olympia by La Collection, Alberto Guardini by La Collection, Nicholas Kirkwood by La Collection, Chanel, junya Watanabe, Roger Vivier, Lanvin, Melissa by Karl Lagerfeld, Melissa by Campana Brother, Toms Plus 제품들과 함께 작가의 수집품, 스태프들의 소장품을 설치한 것.

거실 안으로 설치된 초록색 부츠는 MiuMiu, 현관 바닥에 놓인 슈즈들은 Tod’s, Salvatore Ferragamo by Shinsegae Shoe Collection, Charlotte Olympia by La Collection, Alberto Guardini by La Collection, Nicholas Kirkwood by La Collection, Chanel, junya Watanabe, Roger Vivier, Lanvin, Melissa by Karl Lagerfeld, Melissa by Campana Brother, Toms Plus 제품들과 함께 작가의 수집품, 스태프들의 소장품을 설치한 것.

웰컴 (Welcome)

초록색 상에 놓인 파랑과 하양 찻잔과 받침, 하단에 놓인 검정 쟁반은 Hermes 제품.

초록색 상에 놓인 파랑과 하양 찻잔과 받침, 하단에 놓인 검정 쟁반은 Hermes 제품.

패밀리 (Family)

아티스트 최정화의 아틀리에는 종로5가, 모텔과 홍어집 사이 골목으로 구비구비 들어가 숨어 있다. 70년대 말에 지어진 이 2층짜리 단독주택의 이름은 ‘가슴궁’이다. 가슴으로 사람이 숨을 쉬고 감정을 느끼며 살아 있음을 확인하듯, 최정화에게 가슴궁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장소다. 그와 조수들이 일하는 작업실이자 완성된 작품들의 전시장이며, 물건들을 빼곡하게 모아놓은 아카이브. 그의 작업이 생명을 얻고 돌아가도록 하는 중심이 바로 여기다.

더블유는 무모하게도 온갖 물건들로 가득한 가슴궁에, 또 다른 물건 보따리를 부려놓았다. 패션 하우스들의 봄 신상품 가방과 구두, 선글라스와 액세서리는 최정화의 취사 선택, 조합과 재배열을 거쳐 가슴궁의 알록달록한 싸구려 플라스틱 물건들 틈에 자리를 잡았다. 최정화가 보고 놓은 물건들은 원래 거기 있던 것, 한군데서 생겨난 것, 계통이 같은 것처럼 섞여들었다. 조야함과 세련됨, 낡은 것과 새것, 허름하고 고귀한 물건들을 한데 부려놓자 그것들은 와글와글 기운을 주고받으며 숨바꼭질을 벌였다. 에너지가 돌고 돌며 서로를 살리고 살렸다. 물건과 물건 사이에 귀천의 경계가 사라졌다. 상품과 제품이 만나 작품인 듯했다. 그 광경이 예술인 듯도 했고, 예술이 별거 아닌 듯도 했다.

이번 협업을 당신의 언어로 정의한다면.
최정화 생활의 발견, 생활의 힘. 나는 계속 생활 정신에 대한 얘기를 해온 사람이다. 물건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나에게 물건은 사부님이자 스승님이다. 내가 모시는 물건들을 이렇게 다시 한번 보여주면서, 물건에 대한 내 생각도 좀 정리해보고 싶었다. 가슴궁 공간 속에 하이패션이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고. 사실 나는 그냥 거들어주며 놔본 것뿐, 물건들 자기네끼리 잘 논셈이다. 재미있는 소꿉장난이었다.

‘물건을 모신다’는 점에서는 패션 잡지도 가슴궁이나 최정화와 마찬가지다. 다만 당신이 물건 여러 개를 모아 힘을 발생시킨다면, 패션 잡지는 물건에 스토리를 입히고 환상을 덧씌우는 작업을 한다.
예술, 문화, 사회가 다 마찬가지다. 내가 즐겨 쓰는 표현 하나가 ‘눈이 부시게 하찮은’이다. 쓰레기도 존중하면 예술이 된다. 그건 나의 전략이자 패션의 전략, 광고의 전략, 브랜드의 전략이기도 하다.

쓰레기에서 예술로의 전환은, 당신이 스스로 붙인 이 칼럼의 제목인 ‘돌고 돌리고’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의 프레임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약간의 설명을 부탁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했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돌아가는데, 그게 바로 도의 움직임이라는 뜻이다. 우리 생활에도 이런 모습이 숱하다. 생활 속의 물건이 품(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격(格)을 갖게 되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어 이 의자는 80년대에 시장에서 어느 할머니가 쓰던 것을 그대로 사왔는데, 엉덩이가 닿는 부분이 춥지 않도록 스티로폼을 대고 고무줄로 묶은 게 할머니 자신의 디자인이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보면 그때부터 다른 물건이 된다.

최정화가 모은 ‘잡품’의 컬렉션, 그리고 더블유가 가져온 ‘고급’ 패션 제품의 컬렉션이 뒤섞여 있으니 뭐가 뭔지 구별이 힘들어졌다.
생활과 예술의 결합과 같은 이치다. 예술은 원래 1%가 아 니라 모두의 것이며, 누구나 예술가일 수 있다. 그 두 가 지의 자리를 자꾸 교란시키며 설법하는 게 내 역할이고. 나는 ‘문화재’처럼 ‘생활재’라는 말을 많이 쓴다. 생활재를 존중하면 생활정신, 생활력, 생활신이 온다. 진짜 사용하 는 생활품이 아니면 다 떠 보이고, 가짜 티가 난다.

처음 숱한 패션 제품을 함께 보며 고를 때, 어떤 기준으 로 물건을 선별했나? 어떤 가방이나 뱅글에 대해 당신이 ‘잘생겼다’는 표현을 썼던 것을 기억한다.
모든 생활재가 다 잘생겼다. 나는 낙관적인 사람이다. 재미있는 물건도 많았고, 얘네도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다. 물건들을 오래 보노라면 가치를 알게 된다. 새 물건이 왔을 때 원래 이 집에 있던 선배 물건들이 잘 챙겨줬던 것 같다. 그냥 비슷하고 어울리는 물건들끼리의 조합이 아니라, 기싸움과 에너지 대결을 벌이고 불협과 협이 왔다 갔다 조화하고 충돌하기도 하면서 재밌는 결과물이 나왔다.

‘영화 촬영과 비슷한 공동 작업이다. 우연의 오라를 만들자’는 말을 스태프들에게 전하며 이번 프로젝트를 출발 했다.
모든 스태프의 움직임이 내 전략 중 하나인 ‘치밀하게 엉성한’과 맞았다. ‘눈이 부시게 하찮은’ 건 대단한 거다. 생활에다 오라를 갖게 만드는 거니까. 거기에는 물건뿐 아 니라 그것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습관까지 포함된다. 묵히기나 삭히기의 방식까지. 새로운 물건이 여기에 자꾸 들어오고, 보고 하면서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했다. 순발력 있게 바꾸어 나가면서, 오라가 생기는 순간이 왔다. 옥상에 세워진 이 가건물은 거의 갤러리라고 할 법하다. 내가 만든 하나의 숲이다. 이 사이를 거닐면 색다른 여럿 이 섞여 제 소리를 내는, 아름다운 잡종과 공존의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

‘반자도지동’을 따라 우리도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플라 스틱과 장난감, 조야한 재료로 세련됨이나 웅장함까지 도달해온 최정화에게 더블유가 하이패션을 접목하자고 제안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였나?
우선 패션 잡지하고 이런 기획이 된다는 게 재밌다. 브랜 드를 살려주는 기획처럼 보이지가 않고,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는 이게 오히려 더 브랜드를 살리는 기획이기도 하다. 찬성의 반댓말이 뭔지 아나? 반대가 아니라 반성이다. 이건 반성의 프로젝트, 질문하는 프로젝트가 될 거다. 우리 가 알고 있는 것들이 옳은가, 우리가 해온 것들이 얼마나 굳건한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그거야말로 현대미술의 역할이라고 알고 있다. 좋은 질 문을 던지는 일 말이다.

크리스털 목걸이는 Crystal Shop by Swarovski Elements 제품.

크리스털 목걸이는 Crystal Shop by Swarovski Elements 제품.

생각의 탄생(Sparks of Genius)

색, 색, 색(Color, Color, Color)

오랜 시간에 걸쳐 최정화 작가가 수집한 장난감과 세계 각지에서 모은 가짜 유색 보석, 패션 주얼리가 함께 설치된 이 작품에는 Chanel, Prada, Panache, P by Panache, MiuMiu, Gucci, Black Muse, Swarovski, Mzuu, My Mixed Design, Swarovski Elements, Gemma Alus Design, Roger Vivier의 제품들이 사용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최정화 작가가 수집한 장난감과 세계 각지에서 모은 가짜 유색 보석, 패션 주얼리가 함께 설치된 이 작품에는 Chanel, Prada, Panache, P by Panache, MiuMiu, Gucci, Black Muse, Swarovski, Mzuu, My Mixed Design, Swarovski Elements, Gemma Alus Design, Roger Vivier의 제품들이 사용되었다.

눈이 부시게 하찮은 (Spectaculary Yet Trivial)

최정화가 디자인한 가짜 모노그램 소파와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 함께 놓인 응접실은 그 자체로 작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검정 자개장에 놓인 흰색의 뱅글 두 개와 반지는 Pierre Hardy, 두 겹으로 쌓아 올린 흰색과 노란색 커프스, 오른쪽에 설치된 두 개의 뱅글은 모두 Celine 제품.

최정화가 디자인한 가짜 모노그램 소파와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 함께 놓인 응접실은 그 자체로 작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검정 자개장에 놓인 흰색의 뱅글 두 개와 반지는 Pierre Hardy, 두 겹으로 쌓아 올린 흰색과 노란색 커프스, 오른쪽에 설치된 두 개의 뱅글은 모두 Celine 제품.

구슬 목걸이들과 함께 설치된 다양한 색상의 돌기가 특징인 목걸이는 Ann Demeulemeester 제품.

구슬 목걸이들과 함께 설치된 다양한 색상의 돌기가 특징인 목걸이는 Ann Demeulemeester 제품.

코스모스 (Cosmos)

생생활활 (Life, Life)

<화보 비하인드 스토리>

아티스트 최정화에게는 휴대폰이 없다. “걸려오는 전화를 다 받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쓰지 않는다고 한다. 휴대폰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 카카오톡을 하거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는 자투리 시간에 대신 그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메모한다. 더블유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위해서도, 한 달 동안 수첩의 숱한 페이지들에 많은 글과 스케치가 새로 쓰여졌다. 시장의 흔한 물건들을 재구성해 미술작품을 만들어온 그가 더블유로부터 패션이라는 테마를 제안 받았을 때 ‘제품’에 흥미로워 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더블유 팀은 그의 아틀리에이자 미팅 공간, 작업의 재료를 모아놓은 아카이브, 작품의 전시실이기도 한 ‘가슴궁’ 공간에다 엄청난 양의 이번 시즌 구두와 가방, 액세서리를 부려놓았다. 원래 있던 물건의 바다에, 새로운 물건의 산이 더해졌다. 거기서 물건을 골라 자신의 작품들과 함께 배치하고 어떤 앵글로 사진을 찍을지, 사진은 어떤 순서로 배열할지까지 최정화는 직접 다 했다. 무엇을 어느 공간에 둘지 생각하고 메모하느라 잠을 설치고 몸살까지 얻어 가며. ‘명품’ 과 ‘잡품’ 이 만나고 다투고 어우러지고 마침내 경계가 허물어진 현장에서, 패션과 아트도 그랬다.

<화보 메이킹 영상>
Artist / Choi Jeong Hwa

에디터
패션 디렉터 / 최유경, 황선우
포토그래퍼
윤명섭
아트 디자이너
ARTIST / CHOI JEONG HWA
스탭
어시스턴트 / 임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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