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만으로는 안 된다고들 한다. 운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조셉 알투자라는 보기 드물게 둘 다 손에 거머쥔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자신을 뉴요커라고 말하는 이 젊은 디자이너는 케어링 그룹의 일원이 되면서 차기 왕좌를 일찌감치 선점했다.
2014년 봄/여름 쇼가 열리기 48시간 전인 지난 9월 5일, 조셉 알투자라는 거의 ‘방전’에 가까운 상태로 자신의 뉴욕 아틀리에에서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디자이너로서의 경력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통째로 뒤엎을 만한 큰 사건, 즉 케어링 그룹(구 PPR)과의 계약을 마친 직후였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혼란스러운 현기증이 반, 기뻐 날뛸 정도의 흥분이 반쯤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계약에 대해 말을 꺼내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뭐, 감출 건 하나도 없어요. 케어링 그룹이 알투자라 레이블의 약 40% 지분을 소유하게 된 거죠. 도대체 나처럼 애송이 디자이너에게, 누가, 왜 투자를 한 걸까요? 사실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기억나는 게 하나도없어요(케어링이 먼저 알투자라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다).”
런웨이 쇼 5주 후, 밀려드는 바잉과 인터뷰 요청 같은 세세한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를 되찾은 그를 하워드 스트리트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다시 만났다. 알투자라의 컬렉션은 뉴욕 패션위크에서는 물론이고, 이번 시즌 모든 도시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쇼 중 하나로 회자되었다. 알투자라는 현란한 연극적 요소 보다는 오롯이 옷에만 집중할 수 있는 단순하고 정직한 런웨이 무대를 더 선호한다. 고급스럽고 쿨한 자신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증거다. 이번 컬렉션에서 알투자라는 ‘프렌치-아메리칸의 정교한 혼합’이라는 자신의 시그너처에 일본의 전통 패치워크 기법인 보로(Boro, 해지거나 구멍난 부분을 작은 천 조각으로 메우는 17세기 초 일본의 손바느질 기법)를 적용한 옷들을 인상적으로 선보였다. 전 세계에서 옷을 사겠다는 주문이 밀려들었다. 제작 공정이 매우 까다로운 의상이지만, 생산과 물류, 유통에서부터 부족한 인력의 보충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케어링 그룹과의 합병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젊은 디자이너에게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건 케어링뿐만이 아니다. 라이벌 그룹인 LVMH 역시 비슷한 시기에 J.W.앤더슨, 니콜라스 커크우드를 영입했다. 패션 역사에 방점이 될 만한 거대한 흐름인 것이다. 그 신호탄이 된 장본인인 알투자라는 과연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쉽게 말하면 세대 교체인 거죠. 발렌시아가로 간 알렉산더 왕을 비롯해, 우리는 전 세대 디자이너들이 큰 브랜드를 맡으면서 스타덤에 올라선 시기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전방위로 이동을 하고 있어요. 누군가는 뜨고 누군가는 사라지는 것이 패션의 섭리라지만, 어쨌든 제 세대에서 그 흐름이 일어났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스텔라 매카트니, 알렉산더 매퀸, 마크 제이콥스, 존 갈리아노 등 ‘슈퍼스타’ 디자이너군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는 1996년과 1997년, 단 두 해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20년 가까이 끊겼던 흐름이 알투자라의 세대에서 폭발한 2013년은 패션사에 기록될 정도의 흥미로운 사건이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다만 흐름은 비슷하지만, 이 신세대 디자이너들은 선배들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브랜드의 전권을 휘두르며 동시에 아티스트로서의 소신을 절대 타협하려 하지 않았던 전 세대와는 달리, 이들은 예술과 상업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알투자라 역시 ‘실용주의’가 그의 디자인 철학이자 비즈니스의 좌우명이라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현실적인 옷을 추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듦새가 후지다거나 예술적인 부분을 일부러 죽인다는 건 아니에요. 제가 말하는 ‘현실적인 옷’이라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해 디자인해서 입히고 싶은지’를 정확히 알고 만든 옷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알투자라는 누구를 위해 옷을 만들까? “디자이너로서 저는 소녀가아닌 ‘여자’를 위해 옷을 만듭니다.” 그는 특히 옷의 실루엣과 피팅감, 화장품과 뷰티 케어, 성형수술 등으로 인해 여성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는데, 이는 ‘56세이지만 35세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어머니, 카렌 알투자라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카렌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알투자라의 CEO로서 브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아들의 사업에 깊이 관여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다른 디자이너들의 어머니처럼 어린 알투자라에게 패션적으로 영감을 준 건 아니다. 중국계 미국인인 어머니는 J.P. 모건에서 일했고, 프랑스인 아버지는 골드만삭스에 다녔으니, 굳이 따지자면 ‘금융 집안’ 출신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알투자라는 파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때는 정말 인기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기에 일부러 패션과는 동떨어진 진보적 성향의 예술학교인 스워스모어 대학을 택했다. 옷이나 데이트, 섹스보다는 정치사회적 논쟁과 시위를 더욱 즐기는 분위기의 이 학교에서 알투자라는 ‘비대중성의 쿨함’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학내 의상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패턴의 기본을 익히는 등 거의 독학으로 패션을 체득했다. 유명 패션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매 시즌 컬렉션을 샅샅이 살펴보며 트렌드와 감을 키워가는 과정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디자인을 잘할 수는 있지만 기술의 부족에서 오는 열등감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갈증으로 남았다고 한다. 부모님의 권유로 골드만삭스에서 잠깐 인턴 생활을 한 그는 곧바로 모델 에이전시인 뉴욕 매니지먼트, 이후 패션 홍보 업체인 마오 PR로 옮겨 패션의 중심과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했다. 패션 관련 에이전시에서의 경험은 다양한 직업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일을 할수록 돌아오는 것은 ‘그냥 내가 직접 만들고 싶어!’라는 갈증이었다고 한다. 그는 마크 제이콥스에 이력서를 냈고, 운 좋게-그는 ‘재능 때문이 아니라 마크 제이콥스의 인사팀에서 산더미 같은 이력서를 알파벳 순으로 정리했고, A로 시작하는 이름 때문에 이력서가 제일 위에 있어서 눈에 띄어 합격했을 것’이라고 웃으며 회상했다-그곳에서 인턴십을 하다가 좀 더 디자인에 집중하는 일을 배워보고 싶어서 더 작은 규모의 회사인 프로엔자 스쿨러로 옮겼다. 당시 그는 잭 매컬로와 라자로 헤르난 데스의 가까이에서 일을 배우다가 유명 패턴 메이커인 니콜라스 카이토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카이토와의 만남은 알투자라의 커리어에 있어 의미심장한 전환점이 되었다. 카이토는 알투자라에게서 프렌치와 아메리칸, 패션의 거대한 두 거점을 포괄할 수 있는 능력과 야심을 발견했고, 그의 멘토를 자처하며 알투자라에게 가장 취약한 기술적인 모든 것을 아낌없이 가르쳐주었다. ‘무조건 파리의 유명 하우스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등을 떠민 것도 카이토였다. 그 충고에 따라 파리로 돌아간 알투자라는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의 밑에 들어가 빠른 시일 내에 티시의 신임을 얻으며 자리를 잡았다. LVHM의 전략적 주요 브랜드 중 하나인 지방시에서 그는 프랑스 메이저 브랜드의 체계에 대해 배웠으며, 티시의 예술적 비전이 컬렉션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후에 자신의 단독 브랜드를 만드는 중요한 힌트를 얻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자신을 패션의 중심에 입성하게 만들어준 세 명의 여인들-카린 로이펠드, 바네사 트라이나, 멜라니 휴를 만나게 된다. 알투자라의 패션 철학인 ‘소녀가 아닌 여성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개념 역시 세 명의 뮤즈를 통해 더욱 확고해졌다. 트라이나와 휴는 지금도 알투자라와 함께 쇼 콘셉트와 스타일링을 책임지고 있다. 2009년 가을/겨울 시즌, 알투자라의 데뷔 프레젠테이션 때 그가 디자인한 모피 트리밍 코트를 입고 등장한 것을 시작으로 초창기부터 꾸준히 알투자라의 충실한 후원자임을 드러내 온 로이펠드는 지금도 시즌별로 알투자라의 최신 룩으로 공식석상에 자주 나서고 있다.
출발점에서는 이방인이었지만, 첫 코너를 돌기도 전에 알투자라는 상위 0.01%에 불과한 엘리트 그룹에 진입했다. 케어링 그룹의 대대적인 투자까지 더해진 지금, 그 성장세가 어디까지 도달하게 될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알투자라의 본능적인 영리함은 바로 이 대목에서 제대로 빛을 발한다. “지금 모두가 날 주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뒤에서 욕할지도 모르지만, 앞에서는 칭찬을 더 많이 하는 것도 모르지 않고요. 하지만 제가 더 잘 아는 게 하나 있어요. 바로 젊고 쿨하다는 평가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죠. 패션계의 본질적인 속성은 바뀌는 데에 있고, 독창적인 신예 디자이너는 화수분처럼 등장할 거예요. 제가 패션을 하는 이유를 단지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성공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렇게 생각하라고 하세요. 상관없어요. 전 그저 제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글 | Jessica Iredale
- 에디터
- 패션 디렉터 / 최유경
- 포토그래퍼
- STEPHEN SULLIVAN, KIM WESTON ARNOLD, WWD/MONTROSE, JASON LLOYD-EVANS(BACKST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