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유 2월호 패션 화보 촬영장에서 펼쳐진 패션 천태만상!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화보 촬영의 흥미진진한 이면을 공개합니다.
릭 오웬스 화보를 맡겠다고 자처한 건 8할이 지난 9월 파리에서 목도한 그 에너지 넘지는 퍼포먼스에서 느낀 전율 때문이었다. 릭 오웬스의 룩을 입은 채 일종의 부족 의식처럼 보이기도 한 스탭퍼들의 춤으로 구성된 쇼의 주제는 ‘Vicious(포악한)’. 그리고 튜닉과 쇼츠로 구성된 의상에는 아디다스와 협업한 하이톱 슈즈가 캐주얼 하게 매치되었다.
그 순간 화보를 색다른 분위기의 스포티즘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결과적으로 그래피티가 그려진 지하실 혹은 폐공장의 한 공간을 멋지게 연출한 세트, 묵직하고도 감성 어린 사진, 헤드피스들을 래퍼의 두건으로 연출한 헤어와 아티스틱한 붓 터치를 더한 메이크업의 조화, 그리고 물방울을 튀기며 에너제틱한 포즈와 표정을 표현한 모델이 있었기에 화보는 빛을 발했다. 특히 물이 젖은 비닐 위에서 날고 뛰며 혼신의 포즈를 하던 중에 넘어져 무릎이 멍든 모델 세라에게 가슴 깊이 우러나는 고마움을 전한다. – 에디터 | 박연경
영감은 노력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예기치 못한 우연에 의해 찾아오기도 한다. 우선 화보의 영감을 얻기 위해 포토그래퍼와 함께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를 찾았다. 하지만 수시간 동안 건진 수확은 0. 결국 쓸쓸히 돌아 나오던 중 불현듯 근처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관이 떠올랐다. “한번 가볼까?”
충동적인 제안에 미술관을 둘러보던 중 길고 긴 줄이 서 있는 알레프 프로젝트 전시장에 들어섰다. 예술, 과학, 음악, 철학이 어우러진 작품에 반쯤 넋이 나간 것도 잠시, 벽에 너울지는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 자리에서 정지은 실장과 나는 동시에 눈을 반짝였다. 이번 화보의 무드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신비롭게 어른거리는 빛과 그림자는 이번 화보의 주요한 모티프. 거기에 돌체 & 가바나 컬렉션 백스테이지에 붙은 무드보드 속 아몬드 꽃나무를 더하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촉’은 적중했다. 우연히 찾은 영감이 화보로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건 정말이지 즐거운 경험! 에디터 | 송선민
강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2월 말. 2월호 화보 촬영을 위해 선택한 로케이션은 서대문 형무소였다. 과거 일제 시대의 아픔이 어려있는 이곳은 역사의 산교육장인 동시에 방송, 화보 촬영장으로도 유명하다. 이날 촬영 장소는 형무소 내의 넓은 강당.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가 가득 메운 이곳에서 우리는 촬영 내내 추위와 격렬한 사투를 벌였다. 패딩 점퍼에 내복까지 껴입고도 몸이 움츠려 드는데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옷을 입은 모델은 오죽했으랴. 자신도 모르게 몸이 벌벌 떨리는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기묘한 건 촬영이 끝나고 실외로 나오자 오히려 따뜻했다는 사실. 그러니 일제 시대에 독립투사들이 이 추운 곳에서 굶주림과 고문 속에 수년 동안 살아야 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길게 늘어선 옥사는 말 없이 당시의 고통을 웅변하고 있었다. 누구랄 것 없이 절로 숙연해진 시간이었다. 에디터 | 송선민
출발에는 아프리카라는 화두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의상, 포즈, 조명까지 모든 것을 하나의 컨셉트로 모을 수 있을까? 먼저 플리츠 플리즈의 프린트 의상을 모았더니 얼추 느낌이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피부. 검은 피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보디 페인팅을 하자니 완성도가 떨어질 것 같았고, 흑인 모델을 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고민 중에 알게 된 블랙 라이트! 쉽게 말해 클럽에서 하얀색이나 형광물질에 반응하는 재미있는 조명이다. 하지만 하얀색 이외의 다른 색을 살릴 수 있을 지 아무리 자료를 뒤져봐도 사례가 나오지 않았다.
조명을 빌려서 포토그래퍼에게 찾아갔고, 야심한 밤 우리는 형광등을 ‘껐다 켰다’를 수백 번 반복하며 테스트를 봤다. 둘 다 블랙 라이트를 처음 써보는 상태라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며 화보에 적합한 빛을 찾아 나간 것. 잠을 못 잘 정도로 정신이 온통 쏠려있었던 촬영 당일에는 준비한 옷과 빛에다 모델에게 길게 뺀 목, 얇고 긴 팔, 탄탄한 근육이 부각되는 포즈를 주문해 마무리 지었다. 요 몇 달 사이의 고민 중 가장 나를 괴롭혔던 아프리칸 무드.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과정에 나를 성장시킨 고민이기도 했다. 정신적인 성장과 더불어 탈모라는 부작용을 남기긴 했지만. 에디터|김신
바네사 브루노의 의상을 입고 순수하면서도 앙큼한 롤리타적 매력을 뽐낼 모델로 선택된 이들은 바로 아이린, 주선영, 최아라. 봄 내음 물씬 풍기는 의상과 물광 메이크업, 촉촉히 젖은 헤어스타일로 변신한 이 상큼, 발랄한 모델들은 틈만 나면 봄꽃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메이크업 룸에서 깜찍한 셀카 찍기에 나섰다. 칙칙하고 음울한 한겨울의 지하 스튜디오가 이 사랑스러운 세 소녀들의 기운으로 완연한 봄을 맞은 날. 에디터 |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