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관심사는 ‘어디’ 보다는 ‘어떻게’로 옮아왔다. 여행이 쉽고 흔해진만큼 누구나 가는 도시에서 나만의 경험을 만들고 오는 게 중요해졌으니까. 하지만 그 목적지가 남극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 사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극지연구소가 주최한 남극 노마딕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예술가 자격으로 남극에 다녀온 것은 아마도 일생에 한 번뿐일 경험이 될 거다. 적어도 과학자나 다이버, 정비기술자로 직업을 바꾸지 않는 한. 다녀온 후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도) 그곳이 어땠느냐고 물어온다. 사진으로 보여준 그대로냐고. 대개는 그저 좋았다고 답한다. 사진 속 풍경 그대로라고 답한다.
물론 나의 답은 거짓이 아니다. 그곳의 풍경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고 나는 네모난 프레임 속에 부지런히 그 풍경을 쓸어 담았으니까. 적어도 사진은 프레임 속에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프레임 바깥에 있는 것들을 보여주지 않을 뿐이다. 더블유의 독자들을 위해 무수한 사진들 속에서 몇 장의 사진을 골라봤다. 이 사진들 속 남극은 거짓이 아닌 진짜 남극이다. 눈과 얼음과 펭귄들과 약간의 동물들과 식물들과 사람들. 프레임 바깥의 것들은 아쉽게도 이 지면에 소개하기 힘들 것 같다. 그것들은 보다 추상적이고 어둡기도 하며 때로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바람이나 죽음 혹은 삶과 죽음의 또렷한 사이클, 그리고 외로움 같은 것. 나는 아름다운 풍경과 좋은 사람들 속에서 전에 없던 우울증을 겪었다. 누구도 주지 않은 상처를 느꼈고, 그것은 여전히 아물지 않을 흉터처럼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럼에도 남극에서 보낸 그 여름은 내게 멋진 기억으로 남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지, 남극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아마도 당신에게 이런 농을 던질 것이 분명하다. 글∙사진 | 이강훈(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