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사서 고생’을 하고도 절대 억울하지 않은 여행지다. 호주에서도 내륙 사막 지역 아웃백 트래킹은 극기훈련에 가깝지만, 그만한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무섭게 나를 납치(?)한 호주 현지 투어 버스. 국내 여행 상품은 이용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다국적 여행자들과 함께 영어와의 사투를 벌이며 여행하는 것도 꽤 이색적인 경험이다. 취향, 예산, 일정에 따라 세분화된 상품 중에서 선택이 가능하며 소위 ‘옵션’ 이 없는 것이 장점. 또 교통, 숙박, 식사 등 모든 것이 미리 지불하는 비용에 포함되어 있다. 내가 이용한 호주 현지 여행사는 어드벤처 투어스였다. 웹사이트를 통해서 예약했고, 48시간 전 전화나 메일로 예약 재확인을 해야 한다. www.adventuretours.com.au
카타 츄타에 위치한 바람의 계곡.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모티프가 된 곳이기도 하다. 수만 년 동안의 지각 변동과 바람이 빚어낸 역작. 끊임없이 파리떼가 얼굴에 어른대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얼굴에 덮는 ‘Fly Net’즉 파리망은 필수 아이템. 참, 탈수 증상을 막기 위해선 물통도 잊지 말 것.
트래킹 중 갑자기 사람들이 발길을 멈춘 자리엔 어김없이 앙증맞은 도마뱀이 ‘얼음 땡’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함께 여행한 호주 출신 여행자는 ‘Desert Dragon’이라 명명하기도.
더위와 피로에 찌들어 갈 때쯤 우리를 찾아든 축복! 가이드가 울룰루 바위 앞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따자 좀비 떼처럼 몰려들었다. 물론 나 역시 그 앞을 떠날 줄 몰랐고.
험프리 보가트는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속삭였다지만 나는 신비로운 울룰루를 향해 건배를!
새벽 4시40분 기상. 깜깜한 비포장 도로를 한참 달리다 보니 차창 밖으로 산불이라도 난 듯 엄청난 불길이 혀를 날름거렸다. 밤새 웅크리고 있었던 태양의 요란한 기지개였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6시부터 킹스 캐년 트레킹을 시작했다. 체력이 방전된 나를 제외하고 모든 일원은 3시간 반에 이르는 트래킹에 참여했고, 나는 1시간짜리 산책로를 택했다. 비록 완주는 못했지만 잠시나마 절벽에 올라 스펙터클 한 풍경을 감상한 것으로 만족했다.
울룰루 바위 주변을 도는 산책로는 45 분 소요되는 3Km코스부터 3 시간 이상 걸리는 코스까지 여러 경로가 있다. 자신의 체력을 감안해 신중하게 선택할 것. 킹스 캐년 역시 길이에 따라 두 가지 코스가 있는데 보통 오전 9시 이후에는 뜨거운 태양 때문에 입장하지 않는 편이 좋다. 적어도 아침 7시에는 시작해야 체력소모를 피할 수 있다고.
같은 코스라도 저렴한 아웃백 투어 상품은 별을 보며 야외에서 취침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나는 낭만 대신 안전과, 안락함을 선택했다. 매우 청결하게 관리되는 캠프장 내 숙소.
관광지마다 온갖 식당이 즐비한 우리나라와 달리 딱히 먹거리를 즐길 만한 데가 없다 보니 캠프장에서 제공하는 식사에 의지하게 된다. 신선한 채소로 만든 멕시칸 랩부터 오직 호주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캥거루 소시지와 낙타 스테이크까지, 매 끼 마다 제공되는 음식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호주는 워낙 땅덩이가 넓은 까닭에 웬만한 도시도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물론 시간이 넉넉하다면 밤새 움직이는 버스도 이용할 수 있지만, 타이거 에어, 버진 에어라인, 젯스타 등 호주 내 저가 항공을 일찌감치 예약하는 편이 비용과 시간을 아끼는 방법. 단, 저렴한 만큼 예약 변경과 환불이 어렵다. 또 예고 없이 출발 시간이 1시간 가량 늦어지는 것도 다반사.
적갈색의 땅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휴식을 위해 찾은 호주 동쪽 해안가의 에얼리 비치. 에얼리 비치는 해파리가 자주 출몰해 수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인공으로 만든 라군에서 수영을 즐긴다.
에얼리 비치는 그 유명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Great Barrier Reef)’ 로 향하는 관문이다. 세계 최대의 산호초 지대인 이곳으로 떠나는 요트에선 너른 바다와 함께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의 헐벗은(!) 모습을 ‘므흣하게’ 감상할 수 있다
청록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바닷물. 이 안엔 형형색색의 산호초가 가득하다. 방수 카메라를 갖고 가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는 수십여 개의 섬이 모여 휫선데이(Whitsunday) 제도를 이루고 있는데 이곳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히는 화이트헤븐(Whitehaven) 비치가 자리한다. 안타깝게도 내가 찾은 날에는 밀물 때문에 여행 준비 중 사진에서 본 것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없었지만, 곱디 고운 실리카 모래에 눕자 그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호주에서 줄기차게 마셨던 빅토리아 비터 맥주. ‘VB’라고도 불린다. 쌉싸름하면서도 깔끔한 뒷맛도 좋지만 무엇보다 오동통한 병 모양이 마음에 든다.
여행지를 선정하는데 있어 나름의 엄격한 기준이 있다. 사람보단 자연이 주인인 곳. 북적이는 도시는 일상의 연장선 같아 어쩐지 영 내키지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호주는 당연하고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시드니나 멜버른 같은 호주 해안가의 대도시가 아닌 인구 밀도가 극도로 낮은 호주 내륙부 사막 지역의 아웃백은 남반구의 장엄한 대자연을 만끽하기에 최적의 여행지. 세계의 배꼽이라 불리는 울룰루(Uluru)- 카타 츄타(Kata Tjuta) 국립공원과 킹스 캐년을 잇는 아웃백 투어는 예상대로 ‘편한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극기 훈련을 방불케 했다. 국제선과 국내선을 통틀어 14시간에 달하는 장시간의 비행을 끝내기 무섭게 현지 투어 팀에 합류, 작열하는 태양빛을 머리에 잔뜩 이고 길고 긴 트래킹을 시작했다. (그래 봤자 왕복 2킬로미터 남짓이었지만)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적갈색 돔과 마주한 순간의 감격도 잠시, 초강력 에어컨마저도 무력화시키는 살인적 더위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지만 고생과 기쁨은 비례하는 법. 돌이켜 보면 울룰루 바위 뒤로 태양의 퇴장을 지켜보며 차가운 스파클링 와인 한잔을 음미하던 순간,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여명을 맞이한 순간, 가파른 바위를 힘겹게 올라 아래로 펼쳐진 절경을 내려다보았을 때의 황홀경은 두고두고 잊지 못하리라! 2만 년 동안 호주를 터전으로 살아온 호주 원주민(에버리진)의 혼이 깃든 울룰루 바위를 비롯해 호주의 그랜드 캐년이라 불리는 킹스 캐년,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는 초원 등 웅장한 태고의 땅은 두 눈으로 보고도 못 믿을 절경의 집합체다. 이른바 ‘Mother Nature’ 즉 대자연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던 시간이랄까? 물론 9박10일에 10개국 정도는 순례해야 직성이 풀리는 여행자들에겐 돈 아깝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경험일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