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바쁘게 달리고 높게 뛰어오른 한 사람. 배우 이종석이1년 만에 맞는 휴식.
연기자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었나?
어릴 때부터 친구가 많지 않았다. 집에서 노는 게 참 좋았고, 그게 진짜 휴식 같았다. TV 보고 드라마 보고 영화 보고, 늘 그랬다. 그러다 <풀하우스>나 <늑대의 유혹> 같은 트렌디한 작품을 봤는데 비와 강동원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는 거다. 연기가 하고 싶다, 는 아니고 그냥 그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다.
그럼 배우로서의 욕심을 구체적으로 갖게 된 건 언제였나?
하다 보니까 스스로 창피한 게 많았다. 그래서 욕심이 생겼다. 나는 지금도 일반적인 대사 톤을 못 벗어난다. <관상>에서 (조)정석이 형이나 송강호 선배님을 보면서 매번 감탄했다. 정말 다양한 억양을 구사하시는데 그게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질 않았다. 아, 나도 저렇게 한번 해볼까 싶다가도 불안하니까 관두고, 그럴 때가 많았다. 아직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관상>은 어느 누가 끼어들어도 고민이 클 수밖에 없는 판이었다. 노련한 배우들이 저마다의 기를 발산하는 현장이었을 테니 그 틈에서 존재감을 지키기가 어려웠을 거다.
촬영장에서 기가 많이 눌렸다. 바닥에 납작 붙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많이 배우긴 했다. 크랭크업할 때까지 몸에 힘이빠짝 들어간 채로 다녔다.
<관상>에 출연함으로써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뭐라고 생각하나?
<학교 2013>과 <너목들>이 들어가기 전에 촬영한 작품인데 개봉은 두 드라마가 종영된 다음이었다. 솔직히 촬영 당시에는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그 뒤 1년 만에 영화를 봤더니… 등에서 진짜로 땀이 흘렀다. 내가 등장할 때마다 극의 흐름이 깨지는 것 같아서 숨이 막혔다. 찍는 동안에도 많이 배웠지만 개봉 후의 깨달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솔직히 <관상>을 보고 나서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물론 1년 전에 찍은 영화긴 하지만, 그사이 한 작품씩 촬영하면서 ‘아, 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나’ 생각하던 찰나에 덜컥 그 결과를 확인하게 된 거니까. 게다가 관객들은 <관상>을 나의 가장 최근 모습으로 기억할 것 아닌가. 여러모로 충격을 받았다.
힘들게 찍은 작품이 <관상>이라면 2013년 출연작 중 가장 즐겁게 참여했던 것은?
<학교 2013>은 촬영이 정말 재미있다고 느끼게 해준 첫 작품이었다. 오래 보지 않아도 대본이 빨리 외워졌고 우빈 씨 얼굴만 보고 있어도 괜히 눈물이 났다. 신기할 정도였다. 이게 작품에 녹아드는 경험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너목들> 이야기를 빠뜨릴 수가 없다. 캐릭터가 워낙 좋았고,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오르니까 그에 대한 기쁨도 컸다.
촬영장 밖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올해는 거의 그런 짬이 없었을 것 같지만. 지난 1년간 드라마를 거의 못 봤다. 되게 좋아하는데. 반드시 1회부터 봐야 한다.
술도 거의 안 마신다고 들었다.
내가 술을 못한다. 작품 끝내고 나면 선배들과 마실 기회가 생기긴 하는데 술 자체가 좋아지진 않는다. 물론 너무 우울한 날에는 취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숙취도 너무 힘들고 무엇보다 술맛을 아예 몰라서….
한국에서 성인들이 ‘논다’고 할 때 그건 곧 술자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두어 명이 한 주제로 대화하는 건 좋아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흩어지는 떠들썩한 자리는 편하지가 않다. 예전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만나서 신세한탄을 하곤 했다. 무척 힘들고 짜증스러운 대화인데 한편으로는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다(웃음). 회사 때문에 힘들다, 난 언제쯤 빛을 볼 수 있을까, 이러면서 카페에서 둘이 몇 시간씩 보내는 거다.
맨 정신에 커피 마시면서.
남자끼리는 술 한두 잔을 해야 친해진다던데 내가 그래서 친구가 없나 싶기도 하다. 누구와 친해지면 그 사람만 만난다. 심지어 내 친구와 만나는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합석해도 편치가 않더라. 이건 확실히 고쳐야 하는 점이다. 잘 아는데 쉽진 않다.
가수도 그렇고 배우도 마찬가지고,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중 내성적인 성격이 꽤 된다.
가수들은 수줍음을 심하게 타다가도 무대 위에 올라가면 확 바뀌곤 한다. 그런 게 되게 멋있지 않나? 무대 위와 아래 중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인기가요> MC를 할 때도 가수들 보면서 많이 감탄했다. 무대 위에서 어쩌면 저렇게 잘하나, 매번 생각했던 것 같다. 난 광고 찍으면서 “안녕하세요, OOO 광고 모델 이종석입니다” 이런 멘트 치는 것도 어색하다. 영화 개봉 때 무대 인사도 겨우 하는 편이다. ‘이종석’으로 나서서 말하는 자체가 힘든 것 같다. 많이 익숙해진 지금까지도 그렇다. 사실 <인기가요>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일주일이 너무 빨리 돌아오더라. 그래서 청중들 앞에서 능숙한 가수들이 더욱 신기했다. ‘저런 애들이 연예인을 해야 하는 건데…’ 뒤에서 혼자 이러고 있었다.
실제로 가수가 될 뻔하지 않았나.
내가 할 수 없는 분야였다. 그래서 (전 회사를) 뛰쳐나온 거다. 아이돌 가수는 별의 별 걸 다 배우더라. 심지어 인터뷰 훈련도 받는다.
인터뷰를 할 때 많이 연습한 듯한 답변만 듣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질문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좀 맥이 풀린다. 물론 그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그럴 것 같다.
배우는 본인을 드러내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 역시 편해지기는 어려운 작업이다.
맞다. 특히나 나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니까 항상 긴장하게 된다. 그걸 좀 누그러뜨릴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찍은 작품을 들고 집에 와서 모니터링할 때와….
아니, 모니터링을 왜 그렇게 좋아하나?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 과정이 어떠했든 간에 힘들게 찍은 결과물을 볼 때면 정말 희열을 느낀다.
본인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인가?
그래도 재미있는 것 같다. ‘저 신에서는 왜 저렇게 했지?’ 투덜대면서도 좋아한다.
작품은 철저히 본인 주관대로 고르나? 아니면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인가?
아무래도 가까이 있는 회사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일단 내가 먼저 읽은 뒤 관심이 가는 게 있으면 함께 의논해본다. 그런데 결국 판단은 본인 몫이다. 좋은 판단을 많이 해야 될 것 같다.
좋은 판단을 이미 많이 하고 있지 않나?
올해 흡족한 결과가 많았다. 맞다. 그런데 <노브레싱>이 잘 안 돼서….
그래도 내년 초에 <피 끓는 청춘> 개봉이 바로 이어질 테니까. 이 작품의 흥행에는 자신이 있나?
흥행보다는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선택한 작품이다. 지금 시점에서 이미지 변신이 굳이 필요할까 싶긴 하지만. 아무튼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올 수는 있을 듯해서 나 역시 기대가 된다.
올해는 특히 고등학생을 연기한 작품이 많았다. 벌써 20대 중반인데 교복을 그만 입고 싶은 생각은 없나?
그래야 할 것 같다. 학생 역할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공교롭게도 짧은 시기에 작품들이 겹쳤으니 이젠 좀 피할까 싶다. 사실 <학교 2013>을 막 끝냈을 때 교복을 그만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너목들>의 캐릭터가 시나리오 없이 설명만 들었을 때부터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결심을 바꿨다. 앞으로도 그렇게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면 별수 없이 또 입지 않을까.
아예 지금의 이미지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은 생각도 있나? 젊은 배우들에게 하고 싶은 캐릭터를 물어보면 상당수가 연쇄살인범이나 사이코패스 같은 걸 댄다.
(잠시 생각하다가) 아, 나도 그런 것 한 번 해보고 싶다. 마찬가지다.
그 외에 또 생각나는 게 있나?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해보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웃음). 사이코패스 스릴러, 누아르, 멜로 다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는 한다. 질문에 답은 해야 하니까.
사람마다 성공에 대한 정의가 다를 거다. 이종석에게 배우로서의 성공이란 어떤 걸까? 어느 정도의 성취를 하면 스스로 성공했다고 생각할 것 같나?
지금도 떳떳하게 배우 이종석이라고 자기 소개를 못하겠다. 스스로가 인정을 못하나 보다. 계속 성장해가다 보면 “안녕하세요, 배우 이종석입니다” 해도 어색하지 않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이 성공 아닐까 싶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출연작 중 자랑스러운 작품은 있지 않을까?
<학교 2013>이나 <너목들>은 어쨌든 내 대표작이다. 잘한 것같다. 후회도 하고 자책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자만까지는 못할 것 같지만. 자만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뒷받침돼야 가능한데 난 아직 그 단계가 아니다. 이 정도면 괜찮아, 아주 만족해, 이런 게 잘 안 된다.
바쁘게 달렸던 2013년이 곧 마무리된다. 마지막 날에는 뭘 하면서 새해를 맞고 싶나?
그냥 집에 있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런데 며칠 쉬고 나면 또 슬금슬금 나한테 온 시나리오를 들춰보기 시작할 것같다. 다음이 또 걱정될 테니까.
올해 내내 촬영장에만 매여 있느라 못했던 것 중 2014년이 되면 시도해보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까?
사실 활동적인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밖에 나가서 뭔가를 하는 건 꼭 일거리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취미는 만들어보려고 한다. 요리, 아니면 악기 연주 같은 걸로. 요리는 실제로 학원을 좀 알아보기도 했다.
많은 것 중에 요리를 택한 이유가 있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시켜 먹는 대신 내가 직접 해볼까 싶다.
참 실용적인 발상이다.
써먹을 데야 많을 것 같다. 나중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도 얼마나 가정적인 남편이 되겠나? 으하하! 아 되게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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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트리뷰팅 에디터 / 최진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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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일리스트 / 박지영, 헤어 / 종수(제니하우스 올리브), 메이크업 / 서하(제니하우스 올리브), 어시스턴트 / 이혜령, 김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