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야 소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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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사랑해서 사진을 찍고 카메라에 담다 보니 알게 되고 보게 되는 것인지 몰라도, 배병우는 내내 나무와 바다와 자연,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사진은 생명, 그 다음이었다.

"인간의 마음이 황폐해지는 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서울 안의 자연이 삭막한 것도하나의 이유일 거다. 벚꽃잎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과 같은 삶 속의 작은 경이를 누릴 수 있는 곳을 많이 남겨 놔야 삶이 풍요로워 진다." - 배병우

“인간의 마음이 황폐해지는 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서울 안의 자연이 삭막한 것도
하나의 이유일 거다. 벚꽃잎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과 같은 삶 속의 작은 경이를 누릴 수 있는 곳을 많이 남겨 놔야 삶이 풍요로워 진다.” – 배병우

“여기 넘어진 나무가 보이죠? 이게 완전히 다 썩으면 여기서부터 새 생명이 또 시작돼요. 신기한 건, 독초들이 가장 먼저 땅을 뚫고 올라온다는 점이에요. 동물들은 또 희한하게 알아서 입을 대지 않아요. 하나가 죽고 나면 다른 하나가 태어나며 순환하는 거지.” 작가가 가져다 보여주는 휴대폰 액정 속 사진 폴더는 제주의 초록 풍경으로 온통 채워져 있었다. 그 속에는 쓰러져 썩어가는 나무들, 흙의 틈새로 머리를 내미는 독풀들까지 숲의 생태계가 가득 펼쳐져 있다. 꼿꼿하게 잘 뻗은 소나무뿐 아니라 사람 손이 닿지 않은 혼돈 상태 그대로의 자연이. 소나무는 배병우와 동의어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잘 알려진 일부일 뿐이다. 그는 동해와 남해의 바다, 제주도의 오름, 경주의 능을 찍었으며, 또 찍으러 여전히 돌아다닌다. 그의 카메라는 생명이 피어나고 사그라지는 긴 호흡의 풍경을 사방으로 살피고, 그 속에서 찰나를 담는다. 자연을 찍는 작업은 당연하게, 자연이 어떻게 살고 죽고 망가지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그를 이끌었다. 제주도에 대해서도, 굴업도에 대해서도 배병우가 가장 언성을 높이는 문제는 골프장 건설과 이로 인한 환경의 훼손이었다. 그 아름다움에 대해 알리기 위해 섬의 사진을 찍기도 한다. 굴업도도 찍었다. “골프장 대신에, 자연 친화적으로 섬을 활용할 수 있는 테마도 많잖아요? 지금 어느 기업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선물하고 사진 찍는 법을 가르치는 스쿨을 열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가르쳐요. 어느 기업에서 그렇게 좋은 뜻으로, 아이들에게 자연이 뭔지 느끼게 해주는 자연사박물관을 다소곳이 짓고 도시와 소통하게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이들에게 도시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연에 갔을 때 도시의 편리함을 생각할 수 있게끔 하는 거죠.” 여수 출신인 배병우는 작년에 한 달 동안 인천에서 여수까지 요트를 타고 간 일을 이야기하며 여객선도 기항하지 않는 작은 섬들의 아름다움을 언급했다. 섬에서 나무들은 서로 협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사는데, 가만히 보면 어떤 나무가 거기서 챔피언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소나무는 지금 픽픽 쓰러지며 패배하는 중이다. 온난화되는 환경에서 잘 죽기 때문에 아열대성 나무들에게 밀리고 있는 거다. 그의 탄식도 납득할 만했다.

<W Korea> 패션 잡지 인터뷰는 잘 안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배병우 내가 패션 사진을 안 하니까. 하지만 학교 선생이니까 그 역사는 알고 있다. 1910년대에 패션 사진이 시작되고 잡지가 있었다. 다큐멘터리 사진도 했던 에드워드 스타이켄이라는 사람이 보그 첫 사진부장이다. 그 후에 어빙 펜, 리처드 애버던이 스타였고, 피터 린드버그나 헬무트 뉴튼, 어빙 펜, 허브 리츠, 브루스 웨버 같은 이들이 그 시대를 풍미했다. 스티븐 마이젤 이후 2000년대 작가들은 잘 모르지만. 중요한 건 그들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이다. 90년대가 사진의 영향력이 가장 극대화된 시대였던 것 같다.
지금은 영상에 비해 사진의 영향력이 약해졌다는 이야기일까? 사진의 파워가 예전만 못하니까. 피터 린드버그는 패션 사진이라는 매체의 황금기를 이끌고 누리며 풍미한 사람이다. 돈도 벌고 명예도 얻었으니. 중요한 건 패션 사진의 역사를 훑으면 의상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뿐 아니라 사회의 변화도 알 수 있다는 거다.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는다는 건 30년대만 해도 완전히 돌발사태였다. 우리나라에는 60~70년 사이에 청바지와 미니스커트가 유행했는데 그전에는 여성의 해방이라는 게 없었다. 사회의 변화는 늘 패션하고 같이 간다. 여자가 치마를 입고 달리는 건 상상도 못한 건데 패션 사진의 이미지로 보여주면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진도 그렇지만, 특 히 패션은 사진가 취향에 따라 스타일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만 레이가 자기 작품 스타일로 패션을 찍고, 브루스 데이비슨 같은 작가가 뒷골목 깡패들을 찍던 스타일로 가죽 옷을 입혀서 터프한 패션 사진을 찍은 것처럼. 브루스 웨버는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니 랄프 로렌과 잘 맞고, 피터 린드버그는 도시적 상황 연출에 강하고. 이렇게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 자기 스타일이 조형되는 거다. 나도 이십 몇 년 전에 자연 속에서 모델에게 옷을 입게 해서 찍은 적이 있다.
당신의 세계야말로 자연이니까(웃음). 그래서 두세 번 찍은 패션 사진이 뭐냐면, 우리나라 전통 의상을 풍경이나 건축 앞에 매칭시켜서 찍는 거였다. 그걸 추석, 설, 대보름, 단오 같은 절기에 맞춰서 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하회마을 가서 그렇게 찍은 게 있다. 그때의 모델이 고두심하고 이정길, 그리고 이기선이라는 사라진 여자 배우다. 의상은 이영희 씨 옷이었고. 70년대 말에 김중만과 나하고 내 동기 안상수가 만나서 우리 새로운 잡지를 하자, 라고 작당해 만든 게 <멋>이라는 잡지다. 여섯 권인가 일곱 권 하고 부도가 났지만(웃음). 안상수가 편집장이었고 표지는 김중만이 찍었고. 남산 사무실에서 편집 회의를 하면, 이번에 누구 부를까? 해서 그때 제일 예쁜 여자 정윤희한테 연락하고 그랬다.
하회마을에서 한복 찍은 건 부차적인 프로젝트고, 주로 소나무 사진으로 알려졌다. 그전에는 바다를 찍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소나무를 찍기 시작했나? 바다를 찍다 보니까 바다는 우주적이더라. 고향적이 아니라 우주적이다. 바다는 코즈모폴리턴한, 범세계적인 소재다. 그렇다면 우리의 땅, 내 나라 고유의 것은 뭘까 고민하다 소나무가 답이 된 거다. 바다는 어디의 어느 바다이건 거의 비슷하지만 나무는 같은 소나무라도 하나하나 다르다. 특히 소나무는 확연히 볼 수 있는 낱낱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소나무를 찍은 것같다. 하나하나 다 달라서. 그리고 주로 새벽 시간의 안개를 담고 있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라이팅이 있다. 나는 아침 광선을 좋아한다. 풍경 사진가는 늘 현장에 가야 한다. 스튜디오에서 물리적으로 편하게 작업하는 방식보다 힘들지 않나? 스튜디오도 어렵고 밖 도 어려운데, 어떤 어려움을 택하느냐 하는 건 취향이다. 나는 자연광을 좋아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실내에서는 찍을 수 있는 게 빤하지 않나. 스튜디오에서 어떻게 찍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그냥 욕심이지 잘 안 되더라. 내 스튜디오도 있지만 거기서는 잘 안 찍는다.

건축 사진도 찍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야 대부분 자연 사진이다. 건축 사진은 의뢰받고 프로젝트로 찍은 거다. 지금 찍고 있는 선암사, 종묘, 창덕궁, 강릉에 있는 선교장, 알함브라 궁전, 앙코르와트… 다음에는 파리에서 100km 내려간 샹브르 성을 찍을 거다. 알함브라는 아랍 양식의 건물인데 정원과 숲에 소나무가 많아서 찍기로 했다. 샹브르 성은 왕의 사냥터다. 거기 숲에도 가장 많은 게 오크나무하고 소나무다.
건축만 찍는 사진가가 아니어서 그런지 당신이 찍는 건축 사진은 전형적인 건물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은 밖에서 구경하면서 건축물을 찍는다. 그런데 원래 궁도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조금 다른 관점이 된다. 건축에 두 가지 면이 있다면 인테리어와 엑스테리어다. 중요성이 반반이다. 특히 왕이 앉는 자리는 가장 뷰가 좋은데, 거기서는 안에서 밖을 내다볼 때가 근사하다. 안에서 그런 지점을 찾아 밖을 내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 사진이 특이하다기보다 건축 사진을 찍는 다른 사진가들은 대중에 노출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거다.
건축 사진의 경우 의뢰받아 찍는다고 했는데, 그간 브랜드와의 협업 작업도 더러 있었다. 산타마리아 노벨라에서는 당신의 사진을 사용한 서울 향수가, 쌤소나이트에서는 트렁크가 나왔으니까. 산타마리아 노벨라는 재미있어서, 망설이지도 않고 하기로 결정했다. 이 브랜드가 피렌체 태생인데, 그 지역이 히스토리컬하다. 가톨릭 역사나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교회 수도원에서 나오는 화장품이니까. 400주년 기념으로 나온 향수였다. 서울의 새벽이라는 콘셉트고 소나무 향도 들어가 있어서 좋아한다. 쌤소나이트랑은, 내가 여행을 많이 다니니까 짐 찾을 때 혼동이 많이 오니까 그것 때문에 한 거다. 내 사진이 들어간 가방이 있으면 찾기 편하니까.
엘턴 존이 작품을 구매해서 본격적으로 해외에 알려졌지만, 배병우의 소나무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자연에 대한 인상을 상징하는 것 같다. 서양 사람에게는 흑백의 드로잉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붓을 가지고 드로잉하는 게 동양화다. 그 가운데서 색이 배제된 농담만 가지고 한 그림이 수묵화고. 내 사진은 미국보다는 유러피언들이 좋아한다. 그 사람들이 봤을 때 직관적으로 아시아가 연상된다고 한다. 일본이나 중국 그림을 보면 어느 나라 작품인지 딱 연상되는데 우리나라 그림이나 사진 가운데는 ‘나는 코리안’이라는 그림이나 사진이 드물다고 이야기하더라. 그 부분이 우리에게는 좀 취약하다. 모든 예술 행위는 그 나라의 전통이나 자연이나 문화에서 오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다. 요즘은 많은 아티스트들이 너무 공부를 잘해서 그런지 남의 것부터 흉내 내지않나. 그러나 과학이나 다른 분야는 몰라도 예술 분야는 남의 걸 보고 그대로 따라가면 자기 아이덴티티, 진정성이 없다. 유럽을 비롯한 해외 사람들이 내 사진에 동의한다면 이유가 거기 있을 것이다.
파리에 가서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를 인터뷰하는데 그의 사무실에 당신의 사진이 걸려 있더라. 빌모트는 내 사진을 상당히 좋아한다. 파리 사무실에는 나도 갔는데 의자 뒤에 내 사진이 걸려 있다. 빌모트는 가나아트센터를 비롯해 서울에 많은 건물을 설계해서 한국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다. 한 나라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관심이 깊으니 예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은 한국적 아름다움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자 기준이다. 평생 새벽 빛 속에 숲을 드나들며 나무를 찍어온 경험은 그를 생명과 자연에 골몰하는 철학자로 만들었다.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은 한국적 아름다움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자 기준이다. 평생 새벽 빛 속에 숲을 드나들며 나무를 찍어온 경험은 그를 생명과 자연에 골몰하는 철학자로 만들었다.

소나무가 많은 프랑스의 성에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했다. 프랑스의 소나무는 한국의 소나무와 다르게 나올까?
나무 모양새가 다르다. 그리고 일기가 다르다. 거기서는 내 스타일로 찍어도 다르게 나온다. 스페인 알함브라에도 소나무가 많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도 소나무라 생각 안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소나무의 이미지가 아닌 것이다. 로마 소나무는 또 다르게 몽글몽글한 식으로, 나라마다 셰이프가 다르다. 뉴칼레도니아에 가면 거기소나무는 또 쥐라기 시대부터 있어서 측백나무 같다. 생물학적으론 같은 소나무지만,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같지 않다.

당신의 소나무 사진은 담담한 수묵화 같아 보이지만 그 속에 꿈틀대는 에너지가 있다.
숲 속에 가면 나무들이 다 죽어 있기도 하고 살아 있기도 하다. 그게 바로 생명 현장이다. 하물며 바위에도 생명이 산다. 앙코르와트에서는, 커다란 건물에 나무 씨앗이 떨어져서 돌 틈으로 파고들어가 자란다. 뿌리를 내리면서 시간이 지나면 돌을 벌리고, 마침내 집채만 한 건물을 나무가 다 덮고 누른다. 그러면 바위가 다 바스라져버린다. 나무의 생명이 그 정도로 센 거다. 그 자체가 엄청난 생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진도 그렇게 느껴지는 거다.

얘기를 들으니 촬영을 하러 갈 때마다, 가는 곳마다 뭔가 느껴지는 것이 다를 것 같다.
새로운 숲에 가면 마음이 새로워진다. 숲이란 계절에 따라 생명이 시작되고 끝나고 순환하는 걸 볼 수 있는 장소다. 사람의 손이 안 닿은 곳일수록 그 순환의 규모가 크다. 사람의 손이 닿으면 죽은 걸 다 걷어내버리니까. 교래리 곶자왈(제주도의 독특한 숲 또는 지형을 일컫는 말. 나무·덩굴식물·암석 등이 뒤섞여 수풀처럼 어수선하게 된 곳을 일컫는 제주도 방언이다)은 최근 본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된 숲이었다. 제주도에서 조경을 일부러 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이 없다. 있는 나무를 그대로 놔두면 훌륭하다.

요즘의 제주도는 서울 못지않게 공사가 많은 것 같다.
골프장을 짓느라 그러는데, 자연을 최고로 파괴하는 게 골프장이다. 골프장 하나 규모면 왕복 5시간을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나오는데…언젠가 다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제주도에서 거대한 규모의 인공 건물은 해악이 크다. 화산섬의 특성상 물이 섬 가장자리로 내려와서 식수가 되는데 골프장에 약 주고 해버리니까 지하수가 오염된다. 골프장의 폐해는 다음 세대에 올 것이다. 길을 뚫어서 다니는 시간이 단축된다고 그게 제주도에 도움이 될까? 천천히 가야 자연을 음미할 수 있다. 천천히 걸어가자는 올레길의 취지, 정말 좋지 않나. 지금 자동차 길도 반쯤 폐쇄하고 자전거 전용도로 만들어주면 파라다이스일 것 같다.

이런 언급은 급진 환경주의자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녀보면 우리나라 전체가 그래서 안타까운 거다. 나라가 공업화되면서 물이 다 썩어버렸다. 유일하게 수영할 수 있는 맑은 물이 섬진강이다. 물빛이 푸른 녹색이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올라가는 주변으로는 벚나무가 아주 많다. 천국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맑은 날 바람이 불어서 머리 위로 벚꽃잎이 떨어지면 그런 게 천국이다. 그런 걸 더 아끼고 지키고 할 때 아티스트가 나오고 문학인이 나온다. 도시가 인간다워지고 자연 친화적일 때 훌륭한 예술가가 나오지 않겠나?

현재의 도시에서는 대신 나름대로 브랜드나 편의점을 이야기하는 예술이 나오지 않을까(웃음).
내 부모님이 섬진강 근처에 오래 지내셔서, 아이들을 데리고 뵈러 가곤 했다. 아이들은 물장난을 시키고, 피래미를 10마리 잡아서 통째로 튀겨 먹는다. 1급수에만 산다는 은어가 살 정도로 맑다. 바다도 마찬가지로 물의 맑기에 따라 다른 생물이 자란다, 예를 들어 전복은 1급수에 살아서 맛도 깨끗하지만 굴은 상대적으로 탁한 물에 사는 대신 맛이 풍부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저잣거리에서 알게 된 돌쇠 같은 사람은 재미있지만 좀 지저분하지 않나. 선비처럼 공부만 한 사람은 깨끗하지만 재미가 없고. 소나무 중에서도 금강송, 미인송이라 하는 건 바람이 적게 부는 산중에서 곱게 자란 소나무다. 바닷가에 있는 나무는 이리저리 시달려서 강하게 자라게 마련인데 대신 더 재미있고. 사람이나 동물, 식물 다 똑같다. 고고한 데서 자라면 고고하게 되고, 거친 곳에서 자라면 거칠게 되는 거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환경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존재를 만든다. 하지만 어느 게 더 매력 있는지는 말할 수 없는 거다. 최인훈 같은 사람은 이념적이고 고고한 소설가인데, 황석영은 온갖 경험을 다해서 재밌고, 둘 다 매력적인 작가인 것처럼.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자연에 대해서는 말할 줄 모른다.
아는 것이 없어서 말할 수가 없다고 해야 하나.
주변이 하나같이 다 썩어버렸기 때문에 차이를 감별할 줄 모르는 거다. 겨울에 한강의 얼음을 땅속에 보관하다가 여름에 꺼내쓰던 게 석빙고다. 한강 물을 마셨다는 얘기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워졌고, 사람들도 삭막해져버렸지만. 우리나라 자살률이 높은 것도 삶을 그만큼 척박하게 살고 있다는 얘기다. 인간의 마음이 황폐해지는 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서울 안의 자연이 삭막한 것도 하나의 이유일 거다. 봄이 되어 잠실 아파트에, 여의도에 벚꽃이 확 필 때 그 풍경이 얼마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정화시키나. 벚꽃잎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 반딧불이가 반짝이는 걸 목격하는 순간, 잠자리가 날아와서 앉는 걸 바라보는 순간이 삶 속의 작은 경이다.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곳을 많이 남겨놔야 삶이 풍요로워진다.

자연을 잃어가는 건 서울뿐 아니라 산업화된 도시는 어디든 피할 수 없는 숙명 같기도 한데.
오세훈 전 시장의 잘못이 있었다. 서울은 자연에 취약한 도시다. 양천구 목동이나 일산 같은 곳은 여름 폭우 때 아직도 침수가 된다. 우선 자연 재해에 대비하는 도시를 만들고, 그런 다음에, 작은 공원을 만들어서 자연을 가꿔야 한다. 그 주위에 사는 사람들이 정화될 수 있도록. 서울은 너무 콘크리트 덩어리다. 이런 이야기를 예전에 서울시 자문위원 할 때도 똑같이 했다. 하지만 다들 거대한 건물을 세우고, 이슈를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다. 나무도 길가에서 먼지 뒤집어쓴 나무와 숲 속에서 자라는 나무는 건강 상태가 다르다. 월급쟁이라도 시간을 내서 자연 속을 걸어보고 그렇게 해야 평상심을 갖는 거다. 반드시 고고한 정신을 가지라는 게 아니고, 예전에 우리가 자연을 접해서 살았을 때만큼 정서인 여유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수선화 구근이 어떻게 땅에서 올라오는지, 민들레가 어떻게 피어나는지 볼 줄 알고 아름다움을 누리는 사람이 결국 한 권의 책도 읽을 수 있는 거다.

오세훈 전 시장에 대해 비판적이었는데, 청계천이나 사대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청계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본다. 그전의 환경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에 인공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100점 만점에 60점은 줄 수 있다. 하지만 사대강은 하나를 먼저 해보고 그 장단점을 가지고 다음 강에 적용하면 되는데, 한꺼번에 손을 댄 건 졸속이다.

요리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다.
친구들 식구들 옆에 있으면 있는 재료 가지고 나눠 먹는 게 익숙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도 싸구려 방에 있으면 꾸역꾸역 더 가난한 애들이 온다. 그러면 걔네들이랑 더불어 살면서 라면 사다 끓이고 돼지고기 사다가 나눠 먹으면서 70년대부터 그렇게 살았다. 며칠 전에도 내 작품을 산 컬렉터가 작업실에 온다고 해서 음식을 해줬다.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더라. 여수에서 나는 생선 사다가 회도 뜨고 초밥도 잡고 굽기도 하고 탕도 하고….

이야기가 물 흘러가듯 하다. 나한테 물기가 많지 않나. 짜면 물 아니면 술이 나올 거다.
사진보다 자연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내가 사진의 에너지를 얻는 곳도 자연이니까. 바다를 보면서는 와 멋있다가 아니라, 와 저 안에 맛있는 거 많겠다 생각한다. 돌고래라도 뛰면 저거 저 물고기들 다 훔쳐먹겠구나 안타까워하고(웃음).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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