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대비한 트렌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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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 계절의 시작을 앞두고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쇼핑이 아니라 독서다. 읽는 것만으로도 스타일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는 2013년 트렌드 보고서.

1. 큼직한 은회색 메탈 체인에 작은 인조 진주를 붙여 장식한 샤넬의 록적인 초커. 2. 버클과 스터드로 장식한 생로랑의 빈티지 컴배트 워커.3. 둥근 스터드와 브랜드의 상징인 메두사 장식이 돋보이는 시계는 베르사체 제품.

1. 큼직한 은회색 메탈 체인에 작은 인조 진주를 붙여 장식한 샤넬의 록적인 초커.
2. 버클과 스터드로 장식한 생로랑의 빈티지 컴배트 워커.
3. 둥근 스터드와 브랜드의 상징인 메두사 장식이 돋보이는 시계는 베르사체 제품.

ROCK&ROLL BABY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펑크: 혼돈에서 쿠튀르까지>는 수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패션 전시’의 티켓 파워를 실감케 했다. 하지만 이 전시의 흥행은 이미 몇 달 전, 4대 도시 2013년 가을/겨울 패션위크에서 예고된 성공이었다. 특히 70년대의 펑크와 90년대의 그런지에 집중한 룩이 대부분이다. 먼저 펑크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 컬렉션은 검정 가죽 스터드 드레스에 스파이크, 안전핀과 체인 장식 시리즈를 대거 내보낸 베르사체와 펑크족의 전유물인 가죽 바이커 재킷에 울 소재의 타탄체크를 덧대어 코트로 아방가르드하게 변형시킨 준야 와타나베를 들 수 있다. 이보다는 간접적이지만, 여러 겹의 메탈 체인을 장식한 부츠와 장갑 등을 검정 드레스와 스타일링한 샤넬, 지퍼와 메시 소재가 조합된 미니 드레스를 선보인 살바토레 페라가모, 다양한 크기의 메탈 스터드로 코트와 드레스를 빼곡하게 덮어버린 모스키노 역시 현대적인 감성으로 펑크를 재해석했다. 한편 찢어진 데님, 낡은 티셔츠나 꽃무늬 드레스나 레이스 캐미솔 드레스 위에 체크 셔츠나 늘어진 니트 카디건을 겹쳐 입는 방식으로 대표되는 그런지 룩은 생로랑과 지방시, 이자벨 마랑, 루이 비통 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코드로, 펑크보다는 리얼웨이에서 훨씬 영향력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흥미로운 것은 펑크와 그런지, 어느 쪽이든 가죽 소재와 체크무늬가 키포인트로 활약한다는 것. 2008년 가을 이후 이처럼 다양하게 체크가 등장한 적은 없었다. 이래서 철 지난 옷도 함부로 팽개치면 안 된다는 거다.

1. 레트로 무드의 토트 겸 숄더백은 마크 제이콥스 제품.2. 앞코에 사각의 엠브로이더리 장식으로 정숙함을 더한 플랫 슈즈는 마놀로 블라닉.3. 손잡이가 간결한 클러치는 디올.

1. 레트로 무드의 토트 겸 숄더백은 마크 제이콥스 제품.
2. 앞코에 사각의 엠브로이더리 장식으로 정숙함을 더한 플랫 슈즈는 마놀로 블라닉.
3. 손잡이가 간결한 클러치는 디올.

HITCHCOCK’S LADY

올봄의 모노크롬과 오리엔탈리즘, 작년 가을의 고딕 등 굵직한 트렌드에 비해 크게 언급되진 않았지만, 2008년 가을 이후 한 번도 밀려난 적이 없는 트렌드가 바로 레이디라이크 스타일이다. 1940~50년대를 풍미하며 패션 보수주의의 상징인 이 스타일이 2000년대 이후 등장한 기상천외 스트리트 룩과 함께 최신 하이패션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벨트로 옥죈 허리, 가슴은 더욱 풍만하게, 어깨는 더욱 가녀리게 보이도록 철저하게 계산된 재단, 그리고 무릎에서 종아리에 이르는 길이의 스커트 등 핵심 요소는 남겨두었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신선한 디자인을 더한 것이 바로 레이디라이크 룩의 장수 비결. 그렇다면 이번 시즌은 어떤 재미가 숨어 있을까? 먼저 디올의 뉴룩을 닮은 핏&플레어 계열에서는 고전적인 실루엣을 지퍼 아노락이라는 스포티한 소재에 접목한 미우미우, 어깨선의 재단을 과감하게 변형한 셀린과 보테가 베네타, 남성용 정장에 쓰이는 헤링본 트위드로 풍성한 스커트 수트를 만든 로샤스와 아퀼라노&리몬디, 키치한 코스튬 주얼리로 포인트를 준 랑방 등에 주목할 것. 성숙한 여성미가 돋보이는 펜슬 스커트를 내세운 H 실루엣에서도 이런 요소가 가득하다. 히치콕 영화가 아니라 <배트맨>에 등장해도 될 법한 섹시미로 무장한 구찌, 언더웨어를 살짝 내보이는 과감한 상의를 강조한 조너선 선더스, 파스텔 톤의 체크무늬 드레스의 어깨 한쪽을 툭 떨어뜨리게 스타일링한 프라다까지. 즉, 한두 가지는 정석에서 벗어난 것을 택하는 것이 훨씬 신선해 보인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1. 짙은 남색과 회색이 조화된 랑방의 비욘드 백. 2. 중후한 신사에게 어울리는 클래식한 가죽 라이닝의 에르메스 드라이빙 장갑.3. 유니섹스 스타일로 남녀 모두 착용할 수 있는 디올의 무슈 디올 캣 링.

1. 짙은 남색과 회색이 조화된 랑방의 비욘드 백.
2. 중후한 신사에게 어울리는 클래식한 가죽 라이닝의 에르메스 드라이빙 장갑.
3. 유니섹스 스타일로 남녀 모두 착용할 수 있는 디올의 무슈 디올 캣 링.

BIG BOY

고전적인 레이디라이크 룩만큼이나, 남성복에 바탕을 둔 스타일 역시 트렌드의 한 축을 든든히 차지하고 있는데, 실제 런웨이에 등장하는 이 계열의 룩들은 조금만 변형해 남성복 컬렉션에 올린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수트, 재킷과 팬츠, 셔츠, 코트 등으로 한정된 남성복에서 얻은 영감을 각 브랜드의 정체성에 맞게 풀어내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독특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추가하고 있는데, 이번 시즌에는 ‘큼직한 볼륨, 남성복 소재 사용, 대신 색감은 여성스럽게’라는 전략으로 압축할 수 있다. 하이더 애커만과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새빌로의 수트 장인들이 주로 쓰는 헤링본과 해리스 트위드 등을 자신들의 시그너처 룩에 접합해 풀어냈고, 막스마라, 데스켄스 띠어리, 드리스 반 노튼, 트루사르디 컬렉션에서는 가느다란 여성 두 명은 들어갈 정도의 커다란 아우터를 발견할 수 있다. 커다란 볼륨의 테일러드 아우터가 갖는 특유의 남성적인 분위기를 색상과 장식을 통해 여성스럽게 반전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파스텔 색조와 밝은 체크 패턴을 사용한 빅 코트를 선보인 셀린, 넓은 어깨의 가죽 재킷에 파우더리한 색감을 얹은 아크네, 코트 표면에 세밀한 꽃무늬를 프린트한 마르니, 빈티지한 청색을 사용해 밀리터리 코트의 무거움을 덜어낸 3.1 필립 림 등이 대표적인 예다. 마지막으로, 맨즈웨어 룩을 즐기는 결정적인 스타일링 요소는 결국 액세서리라는 점에 주목할 것. 비슷한 룩이지만 남성용 옥스퍼드 슈즈를 매치한 알렉산더 왕과 뾰족한 펌프스를 매치한 프로엔자 스쿨러는 확연히 다른 결과를 낳았다.

1. 가톨릭의 묵주를 닮은 돌체&가바나의 십자가 모티프 목걸이.2. 진주와 금색 플레이트로 완성한 알렉산더 매퀸의 장식적인 샌들. 3. 엄청난 양의 금색 시퀸이 들어간 돌체&가바나의 가방.

1. 가톨릭의 묵주를 닮은 돌체&가바나의 십자가 모티프 목걸이.
2. 진주와 금색 플레이트로 완성한 알렉산더 매퀸의 장식적인 샌들.
3. 엄청난 양의 금색 시퀸이 들어간 돌체&가바나의 가방.

COUTURE PRINCESS

남자친구 옷을 빌려 입은 여자, 스트리트 룩으로 무장한 아이돌 같은 여자, 간결한 옷을 입은 시크한 여자들만 가득하던 패션계에 드디어 소녀, 공주, 공작 부인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장인 기술을 활용해 장식적 요소를 가득 넣은 환상적인 룩이 컬렉션에 귀환한 것으로, 지나치게 팔리는 옷에만 의존했던 패션계, 그리고 이에 슬슬 질리기 시작한 고객에게도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되고 있다. 요즘 패션계에 부는 소녀 취향에 불을 붙인 발렌티노는 자수 레이스와 레이저 커팅한 가죽의 베이비돌 드레스를 만들어 귀족풍 ‘소녀시대’의 창궐을 알렸고, 엄청난 양의 진주와 메탈 장식을 사용한 알렉산더 매퀸의 드레스는 근엄한 여왕의 즉위식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격자무늬의 라인스톤과 하렘팬츠를 조화시킨 발맹, 트위드, 진주, 스톤에 이르는 모든 소재를 동원해 코트 드레스를 만든 샤넬, 비잔틴 테마를 광적인 수공예 기법과 접목해 놀라운 볼거리를 만든 돌체&가바나, 미니멀리즘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듯 엄청난 엠브로이더리를 사용한 톰 포드, 과장된 실루엣에 레이스와 장미 모티프를 도배한 톰 브라운도 빼놓을 수 없다. 상대적인 화려함은 덜하지만 오랜 시간 매달려 만든 것이 분명한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엠브로이더리 코트, 랑방의 실크 튤 블라우스, No.21의 자수 스커트 역시 이 무드에 힘을 실었다. 매장에는 좀 더 정제된 버전으로 등장하겠지만, 값비싼 소재와 진지한 제작 공정을 거친 옷은 입는 사람의 품위를 대변하는 최고의 투자 가치 품목으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이 모든 ‘명품’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이 아닐까.

에디터
패션 디렉터 / 최유경
포토그래퍼
jason Lloyd-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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