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별의 두 번째 앨범 <하이힐>은 뮤지션으로서, 그리고 20대 여성으로서 그가 겪은 성장통의 기록이다. 3년에 걸쳐 아티스트가 완성한 자화상에서는 전보다 훨씬 깊고 분명해진 표정이 읽힌다.
1집 이후 3년 만에 2집 <하이힐>을 발표했다. 요즘 기준에서는 준비 기간이 꽤 길었던 편이다.
정확히는 3년 2개월이다. 진행이 무척 더딘 편이었다. 1집 활동을 마무리한 뒤 천천히 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많아진 게 작업 속도를 올리는 데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뭔가 정체된 기분이 들었다. 뮤지션으로서의 삶에도 조금은 지쳐 있었고.
뮤지션이란 직업의 어떤 점이 그렇게 지치던가?
여러 이유가 있었다. 일단 점점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다른 또래들은 취직을 하고 제 갈 길을 가는 나이인데 내게는 많은 것이 불투명했다. 이번 앨범에 수록 된 ‘아직 스무 살’이란 곡에 그 무렵의 심정을 담았다. 현실에 책임질 나이가 됐는데 여전히 피터팬으로 지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오히려 고민이 정리되고 앨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게 된 것 같다.
긴 작업을 마무리한 뒤 앨범을 발표할 때는 어떤 기분이 들던가? 1집 때와는 다른 감상이 있었을 것 같다.
1집 녹음은 두 달 만에 마무리가 됐다. 물론 그전에 회사에서 4년의 준비 기간을 거치긴 했지만. 아무튼 진행이 무척 빨랐고, 완성이 되고 나니 무조건 뿌듯하기만했다. 2집은 많이 다르다. 1집이 고등학교 졸업 같았다면 2집은 재수를 마친 기분이다. 지치기도 더 지쳤고 경험한 감정의 진폭도 더 컸다. 신기한 건 발매 후에도 삶의 변화가 별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빠진 건 사실이다. 그런데 데뷔 전에는 ‘앨범을 내면 인생이 크게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두 번째 음반은 훨씬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냥 새 작업이 완성됐으니 많은 사람에게 들려줘야겠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카이스트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앨범 발표 후 학사 일정과 스케줄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오히려 준비를 하는 기간이 더 고됐다. 지금은 정신적인 고통은 훨씬 적은 편이라…. 대학원 신입생으로서의 공부와 새 앨범 편곡을 병행해야 했던 작년이 오히려 힘들었던 것 같다. 스케줄이 주어지면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요즘은 오히려 여유롭다.
작업하면서 가장 애를 먹은 트랙은 어떤 것이었나?
타이틀곡인 ‘사랑이 우릴 다시 만나게 한다면’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수정이 많았다. 2011년 1월에 처음 곡을 썼는데 앨범 내기 두 달 전에야 비로소 완성이 됐다. 2집 타이틀곡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1집은 내가 할 수 있는 걸 소개하는 의미가 컸다. 하지만 2집에서는 박새별이라는 뮤지션의 이미지를 정리해서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잘하는 것을 가지고 사람들과 소통할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 썼을 무렵의 곡과 지금의 결과물은 어떻게 다른가?
원래는 만연체에 가까웠다. 골방에서 원테이크 라이브로 불러서 앨범 마지막에 실을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나라는 사람이 잘 보이는 노래니까 타이틀곡으로 정하라고 하시는 거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산만하게 들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결국 더 단순하고 다이내믹하게 수정을 했다.
앨범 전체의 트랙을 구성할 때 크게 그려둔 밑그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20대 여성은 경계선에서 있는 것 같다. 소녀 특유의 유치하고 귀여운 감정과 어른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 사이에서 갈등을 겪곤 하니까. 이 앨범은 일종의 성장담이다. 밝고 풋풋한 감상부터 모든 만남이 끝난 뒤에 할 수 있는 이야기까지를 담고 싶었다. 3년 이상 이어져온 작업이기 때문에 앨범에 그런 의도가 더 잘 드러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스물 여섯과 지금의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고, 그사이의 변화가 노래에 고스란히 기록됐다.
아까 잠깐 언급한 ‘아직 스무 살’ 이란 곡은 자신은 스무 살 때와 달라진 바가 없는데 사람들의 기대는 자꾸 커져간다는 내용이다. 이런 깨달음이 특히 선명해지는 순간들이 있나?
열여덟 무렵 어떤 일로 상처를 받고 무척 우울했는데 그때는 스무 살, 혹은 스물다섯 살이 되면 모든 게 달라지겠거니 예상했다. 그런데 스물여덟살이 된 뒤에도 여전히 비슷한 문제 때문에 상처받는 나를 발견했다. 상황이 바뀌더라도 그 사람 본연의 정서는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쓴 곡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성장 속도가 더딘 것 같나?
열심히 산다고는 생각한다. 사실 모든 사람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것 같다. 지금의 나이는 20대 초반의 기대나 희망이 이미 현실이 되어 있는 시기다. 뮤지션이 꿈이었는데 이미 뮤지션이 된 상태라면 20대 후반에는 어떤 걸 꿈꿔야 할까? 보통의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도 요즘 나와 비슷하게 새로운 뭔가를 찾고 있더라. 각자의 사정은 다르지만 갈등은 누구에게나 있는 듯하다.
<하이힐>이란 앨범에서 스스로에게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점이 있다면?
내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러운데…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의 웰메이드 팝을 좋아한 분들이라면 괜찮게 평가해주시지 않을까 싶다.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영향이 있을까? 멜로디에 소위 ‘팝적인’ 느낌이 강하다. 10대 시절에는 어떤 뮤지션의 음악을 즐겨 들었나? 대부분 사람의 취향은 그 무렵에 결정된다.
펑크나 퓨전, 혹은 애시드 재즈를 좋아했다. 포플레이, 인코그니토부터 애니타 베이커까지. EP나 1집에는 그런 취향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2집에는 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가요적으로 접목시킬까 생각하면서 쓴 곡들이 있다.
안테나 뮤직의 유일한 여가수’라는 설명이 늘 따라붙는다. 2집에 대해서는 소속사 선배 뮤지션 중 누가 가장 많은 조언을 들려줬나?
유희열 씨가 모니터링을 무척 꼼꼼하게 해줬다. 우리 회사의 경우, 작업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디렉션을 주는 경우가 전혀 없다. 아티스트들은 그냥 각자의 음악을 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조언을 주고받는다. 데뷔 때처럼 마음껏 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공이 제대로 쌓인 것도 아닌 상태에서 내놓아야 하는 2집이 뮤지션에게는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는게 유희열 씨가 강조한 부분이다. 나란 사람이 지향할 음악과 놓치지 말아야 할 소통 같은, 앨범의 전반적인 방향에 대한 조언을 많이 들었다.
가사는 거의 본인의 이야기를 쓰나?
1집은 90%가 내 이야기였다. 2집은 반반 정도로 비율이 달라졌다. 1집을 낸 뒤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게 됐다. 데뷔 무렵의 인터뷰를 찾아봤더니 내가 이런 말을 했더라. “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100% 공감하고 소통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땐 참 어렸구나 싶다. 이제는 점점 그런 게 무서워진다. 내 이야기라도 조금씩 돌려서 쓰게 된다.
20대 후반의 시점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성장 드라마라고 이번 앨범을 표현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 올 서른은 어떤 심정으로 기다리게 되는 나이일까?
담담하다. 30대가 차라리 빨리 왔으면 싶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 지금 앓고 있는 문제들도 어느새 해결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30대는 지금보다 여유롭길 바란다. 20대는 충분히 열심히 산 것 같다.
기대를 꺾고 싶지는 않지만 미리 경험한 바에 의하면 30대도 20대 시절 짐작한 만큼 여유로운 시기는 아닌 것 같다.
하긴 또 모른다. 나 역시 서른다섯쯤 돼서 ‘아직 서른 살’ 이런 노래나 부르고 있을지도(웃음).
- 에디터
- 김신(Kim Shin), 피처 에디터 / 정준화
- 포토그래퍼
- 목정욱
- 스탭
- 헤어 & 메이크업 / 이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