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아트 페어를 연다는 사실 자체는 더 이상 새롭거나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10회째 행사를 앞둔 아시아 호텔 아트 페어는 전시 공간보다 그 안을 채운 내용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자 한다.
호텔에서 미술 전시를 감상하는 경험이 더는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 년에 두 차례씩 서울과 홍콩을 오가며 열리고 있는 아시아 호텔 아트 페어(AHAF) 덕분일 거다. 미술 시장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다수의 아트 페어가 출현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AHAF의 성과는 단연 두드러진다. 차별화한 콘셉트로 애호가들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유명 작가들의 참여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매번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내실을 착실하게 다져온 축제가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에서 10회째 행사를 갖는다. 밋밋한 흰색 상자 같은 갤러리 대신 비일상적 생활 공간인 호텔 객실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한다는 기본 얼개에는 물론 변함이 없다. 하지만 늘 그렇듯 먼저 관심이 가는 건 달라진 디테일들이다.
전시 공간은 호텔 아트 페어의 특별한 개성과도 맥이 닿는 중요한 요소다. 올해는 작년 11월에 개장한 콘래드 서울의 14~16층이 행사 장소로 결정됐다. 여의도의 입지적 특성상 그랜드 하얏트 서울이나 웨스틴 조선 같은 기존 전시장에 비하면 접근성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전망과 서울의 동급 호텔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객실은 사소한 단점을 잊게 할 만하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깔끔한 인테리어는 작품들 뒤에서 겸손한 배경이 되어준다.
AHAF는 작년부터 초청 고객들만을 위한 프라이빗 아트 페어로 그 성격을 재정비한 바 있다.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고 행사의 취지를 알리는 데는 그간 충분한 성과가 있었다는 판단 덕분이다. 올해엔 컬렉터와 미술 관계자를 위한 배려를 좀 더 늘렸다. VIP에게만 문을 여는 VIP 데이를 확대했으며, 아트 컬렉팅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보 애호가 대상의 강연 역시 보강했다. 미술 치료부터 한국현대미술의 주요 작가들, 미술 속 패션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청할 수 있다.
그런데 역시 가장 관심이 가는 건 주요 출품작과 전시작의 면면이다. 아시아 50여 개 갤러리와 4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해 총 3천여 점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인데, 그 가운데는 이우환, 김아타, 무라카미 타카시, 쿠사마 야요이 등 귀에 익은 아티스트들의 작업도 여럿 포함되어 있다. 한편 AHAF는 매년 공모전을 통해 재능 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이들과 컬렉터 사이에 다리를 놓는 영 아티스트 특별전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호텔 아트 페어가 거장들의 명성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미지의 신인을 발견할 기회인 이유다. <오픈 엔디드 퀘스천(Open Ended Question)>이라는 제목의 그룹전에서 만나게 될 작가들은 김고은, 김선희, 박찬길, 이소흔 등이다. 정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9명의 신인이 떠올린 답들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현대미술 특별전 또한 많은 관람객이 궁금해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잠깐의 유행에 그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세계 시장에서 여전히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대륙의 예술을 개략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될 자리다. 이미 중국 미술을 대표하는 이름이 된 장 샤오강과 팡리준부터 지다춘, 주 티에하이, 왕야치양 등 3세대 작가까지 신구 세대를 고루 섞어 전시를 구성함으로써, 일련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호텔에서 아트 페어를 개최한다는 발상 자체의 신선함은 이제 유효기간이 다해가고 있다. 결국 어디에서 할 것이냐보다 무엇으로 채울것이냐가 다시금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AHAF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고려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을까? 8월의 콘래드 서울에서 그 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정준화
- 기타
- ARTWORKS / COURTESY OF AH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