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거들 뿐, 눈부신 봄날 잔디 위에 드러누워 햇살과 바람 사이로 빛나는 좋은 사람의 얼굴을 보는 시간이야말로 야외 음악 페스티벌의 핵심이 아닐까? 5월 17일과 18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서울 재즈 페스티벌은 완벽한 음악까지 더해져 이런 환상적인 경험의 더할 나위 없는 배경이 되어줄 것이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제대로 누리고 싶다면 꼭 읽고 가야 할, 작지만 똑똑한 노하우를 한데 모았다.
올림픽공원의 입구는 총 9개나 된다. 승용차를 이용할 예정이라면,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는 주차장으로 입장할 수 있는 동2문, 남2문, 북2문 중 하나로 선택할 것. 무작정 뚫린 곳으로 간다면 어떻게 될까? 참고로 올림픽공원은 참 넓다. (주차비는 선불제 요금으로 소형 4천원, 대형 1만원, 경차•장애인•국가유공자 2천원이다.)
지난해 이맘때의 날씨를 알려드리겠습니다. 2012년 5월 17일의 최고 기온은 섭씨 20.5도, 최저 기온은 13.9도. 5월 18일의 최고 기온은 24.5도, 최저 기온은 12도. 일교차가 커 낮엔 아주 따뜻하지만 해가 지면 금세 서늘해지는 시기다. 낮엔 모자, 선글라스, 자외선 차단제가, 해가 지면 따뜻한 겉옷이 다정한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봄의 재즈 페스티벌을 한여름의 록 페스티벌과 헷갈리지 말 것 페스티벌 패셔니스타가 되고 싶어 장화와 우비를 꺼냈다면, 넣어둬 넣어둬. 비가 와도 쇼는 계속되지만, 비가 올 경우 우비를 나누어주니 굳이 짐 하나를 늘릴 필요는 없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소풍으로 여겨도 좋지만, 캠핑으로 오해하면 큰일이다 텐트와 캠핑용 접이의자는 사용 불가능하며, 취사를 했다가는 잡혀 갈 수도 있다. 우리에게 허락된 건 오직 돗자리.
음식물과 음료는 물론 술까지 모두 바리바리 싸와도 된다. 다만 음식물은 일회용품이 아닌 도시락과 같은 밀폐 용기에 담아와야 하며, 유리병이나 캔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므로 페트병이나 텀블러를 이용해야 한다. 아까운 음식과 술을 문 앞에 버리고 싶지 않다면.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펼쳐지는 무대는 총 세 곳. 88잔디마당, 수변무대, 체조경기장을 마음껏 들락거려도 되지만, 각 공연장 사이의 거리가 (수많은 인파로 가득한 그날만큼은) 도보 15분 이상 소요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타임테이블에서 반드시 사수해야 할 공연을 선택한 후 해당 무대엔 미리 도착할 것을 권한다. 모든 공연을 다 보겠다는 욕심은 화를 부를 뿐이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서 맥주가 싫어지는 순간은 화장실에 가야 하는 그 순간뿐이다.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찾는다면 88잔디마당과 수변무대 사이, 체조경기장 안, 그리고 88잔디마당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300미터가 바로 고지다. 다만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일수록, 이미 전쟁터가 되어 있으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의 뒤통수를 오래 바라보는 일에 영 자신이 없다면, 공원을 산책한다는 마음으로 무대에서 먼 화장실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당신의 아이는 소중하지만, 아이의 유모차는 그렇지 않다. 공연장 내에서는 유모차를 이용할 수 없으므로, 유모차 보관소를 이용해야 한다. 다 큰 아이를 유모차에 앉혀 나이를 속일 수도 없어졌으니, 만7 세 이상의 아동과 동행한다면 반드시 티켓을 구매할 것 .
천국처럼 평화로운 스위스의 도시는 1년에 한 번 뜨거운 열병을 앓는다. 고요한 천국이 잠시 폐업하는 대신, 음악 팬들을 위해 시끌벅적하고도 활기찬 낙원이 열리는 것.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 다녀온 <배철수의 음악캠프> 배순탁 작가는 그 현장을 이렇게 묘사한다.
“여기는 모든 사람을 위한 천국이 될 수 있는 곳.” 영국 밴드 퀸(Queen)의 앨범 (1995)의 수록곡 H‘ eaven For Everyone’의 노랫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의 ‘천국’이란 과연 어떤 장소를 의미하는 것일까. 바로 스위스 레만 호숫가에 위치한 도시 몽트뢰(Montreux, 실제 발음은 ‘몽트루’에 가깝다)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퀸의 프런트 맨 프레디 머큐리가 몽트뢰를 처음 찾은 것은 1970년대 후반, 앨범 레코딩을 위해서였다. 단번에 몽트뢰의 아름다운 전경에 반한 그는 이후에도 이곳을 수시로 방문하며 휴식을 취했다고 전해진다. 어떤 인터뷰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몽트뢰를 묘사해달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진정한 평화가 있는 곳.” 그러나 매년 7월 초가되면, 몽트뢰는 진정한 평화가 있는 곳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바로 세계 최대의 재즈 페스티벌로 인정받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까닭이다. 뜨거워진 심장을 꼭 안고 한국 시간으로 2012년 7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를 탔다. 일행은 가이드와 <배철수의 음악캠프> 스태프를 전부 합쳐 총 6명. 프랑크푸르트까지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탔건만, 피곤한 줄도 모르고 환승 시간을 이용해 공항 로비에서 맥주 한잔하며 내게로 다가올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광을 상상해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프랑크 푸르트에서 다시 몇 시간을 날아서 제네바에 도착한 우리는 기차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브베(Vevey)에 도착했다. 스위스에서도 부촌(富村)으로 손꼽히는, 몽트뢰 부근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이다.
장장 2주간 펼쳐지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는 비단 재즈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망라한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다. 1967년 처음 열렸으니 그 역사만 무려 45년 이상. 작년 라인업만 살펴봐도 허비 핸콕, 제스로 툴, 퀸시 존스, 쉭, 칙 코리아, 바비 맥퍼린, 팻 메스니, 포플레이 같은 거장들부터 에드 시런, 크리스 코넬, 핏불, 앨러니스 모리셋, 노엘 갤러거, 라나 델 레이 등 장르를 불문하고 중견과 신인 뮤지션들이 참여해 음악 마니아들의 기대치를 한껏 높였다. 물론 2주 내내 몽트뢰의 시작과 끝을 즐기면 좋겠지만 이는 스위스의 살인적인 물가가 허락하지 않는 일. 일반 관객들은 이 중 3~4일 정도 머물면서 자신이 원하는 공연을 골라 보는 게 보통이다.
‘마일스 데이비스 홀(Miles Davis Hall)’과 ‘오디토리움 스트라빈스키(Auditorium Stravinski)’, 이렇게 두 장소에서 진행되는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사운드 퀄리티였다. 45년의 노하우가 축적된 소리 품질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는데, 악기 소리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 있으면서도 한 덩어리로 완벽한 조화를 일궈내 공연을 보는 내내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공연장을 벗어나면 이곳저곳에 설치된 야외무대에서 조금 덜 알려진 뮤지션이나 밴드의 라이브가 끊이질 않고 이어진다. 두 홀에서 열리는 정식 공연에 표가 없어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마음껏 음악을 듣고 축제의 현장을 만끽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이드를 맡은 스위스 관광청 관계자는 “비싼 표를 구해 홀에 들어가는 것보다 도시 전체에서 진행되는 축제 분위기에 흠뻑 취해보려는 음악 팬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고 귀띔해주었다.
일요일 오후, 화창한 날씨에 관리 잘된 하이네켄 생맥주까지 함께 펼쳐지는 야외 공연은 그 자체로 환상이었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야외 무대의 이름은 ‘뮤직 인 더 파크’다. 공연장 부근에 스케줄표가 게시되어 미리 확인하고 관람할 수 있는데, 사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뮤지션들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무시하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 다들 실력이 만만치 않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다 보면,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밴드를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날아온 밴드 드웬데(Duende)가 바로 그런 경우다.
야외 공연은 어디서든 무료로 볼 수 있지만, 두 개의 공연장으로 나눠진 실내 콘서트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아티스트별로 약간씩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일일권 티켓 가격이 약 30만원, 어떤 경우에는 50만원이 훌쩍 넘는다. 둘 중 마일스 데이비스 홀은 클래식과 재즈에 최적화된 공연장이다. 분위기도 엄숙해서 공연을 즐긴다기보다는 차라리 ‘음악 예술을 음미한다’는 쪽에 가깝다. 사진 촬영도 절대 금지. 어떤 사람은 뮤지션이 노래하는 도중 옆자리 사람과 대화하다가 주위로부터 ‘조용히 해달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여기에서 5개 정도의 공연을 봤는데, 질베르투지우(Gilberto Gil)가 20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한 콘서트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마일스 데이비스홀과 비교해 오디토리움 스트라빈스키는 규모가 상당히크다. 사진 촬영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상대적으로 ‘흥겨운 뮤지션’들이 무대에 선다. 앞서 언급한 포플레이, 세르지오 멘데스, 허비 핸콕, 나이트위시 등이 이곳에서 명연주를 들려줬고, 이외에도 핏불(Pitbull)의 퍼포먼스는 순식간에 오디토리움 스트라빈스키를 크레이지 생(生) 나이트 모드로 돌변시키는 괴력(?)을 발휘했다. 공연장 외에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건물 내에는 볼거리가 무척 다양하다. 우선 언급한 기념품 숍에서 티셔츠를 포함한 의류와 몽트뢰 관련 CD와 DVD 등을 구입할 수 있고, 지하로 내려가면 그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 관객들을 홀린 아티스트들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이 사진들을 쭉 감상하고 프레스 룸으로 들어가니, 이곳이야말로 별천지가 아닌가. 와이파이(몽트뢰답게 아이디가 Nina Simone, 비번이 재즈 명곡인 Little Girl Blue였다)를 무료로 쓸 수 있는 것은 물론, 전 음료가 공짜, 게다가 공연장에 가지 않고도 화면으로 콘서트를 보며 기사를 송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는 알찬 프로그램들이 한아름이다. 우선 뮤지션 지망생이라면 워크숍에 신청서를 넣어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들에게 특강을 받아볼 수 있다. 살펴보니 허병국(허비 핸콕) 형님과 포플레이의 워크숍이 마련되어 있었다. 올빼미족을 위해 마련된 ‘The Studio’에서는 올-나잇 디제이 파티와 칵테일을 즐기며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마음껏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다녀와보니,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매력은 단지 초유명 아티스트들의 공연 퍼레이드에만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님을.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된 야외 공연, 지구촌의 맛난 음식을 ‘바가지 없이’ 먹어볼 수 있는 식당들, 그리고 일주일간 계속된 스위스의 환상적인 날씨가 합쳐져서 몽트뢰를 매년 7월 초마다 ‘음악을 위한 천국’으로 거듭나게 해온 것이다. 물론 캐나다 몬트리올, 미국 캘리포니아의 몬트레이, 서울 올림픽공원에서도 재즈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지만. 올해 몽트뢰는 축제 기간 중 프린스가 세 차례나 공연을 벌인다고 발표해서 페스티벌 고어들의 피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프린스가 재즈 뮤지션이냐 아니냐가 중요할까? 어떤 이름으로 모이든, 여기가 전 세계 모든 음악 팬들이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방문하고 싶어 하는 꿈의 도시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거기 다녀온 걸 보면 아무래도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 않았나 싶다.
- 에디터
- 황선우
- 기타
-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