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숍 브랜드 블리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의 지휘 아래 ‘비이커’라는 이름의 편집숍으로 다시 태어났다. 실제로 다양한 재료를 혼합할 때 쓰는 커를 의미하는 이 편집숍은 단순히 좋은 취향의 아이템만을 모아놓은 곳이 아니다. 그래서 준비했다. 비이커만의 독특한 맛을 내는 네 가지 키워드.
1. ARCHITECTURE
비이커는 외관부터 기존의 멀티숍과는 좀 달랐다. 곧 철거될 건물에서 버려진 건축 자재를 재활용해 매장의 외벽을 장식한 것. 홍제동, 서대문구, 압구정동 곳곳에서 버려진 문짝, 창틀, 철제 계단을 다시 칠하고, 다듬어 생명력을 부여했다. 비이커는 하나의 숍을 새로 지으려면 얼마나 많은 자원을 낭비해야 하는지 생각했고, 추억이 쌓인 오래된 것들을 다시 사용함으로써 시간의 기억을 존중하고 그 안에 새로운 의미를 담았다.
2. INTERIOR
재활용이라는 테마는 인테리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블리커의 내부는 시골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개장으로 만든 행어, 버려진 물탱크로 만든 탈의실, 다리가 짧은 보통 서랍장과 부러진 의자 다리로 만든 새로운 형태의 장식장같이 분해와 조립을 거친 아트피스로 채워졌다. 쓰레기로 치부되던 것들이 아름다운 가구로 거듭난 것이다.
3. BEYOND FASHION
비이커의 전신인 블리커가 랙&본, 헬무트 랭,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 등 뉴욕의 컨템퍼러리 브랜드를 주로 선보였다면, 비이커는 그 범위를 유럽, 일본, 그리고 국내까지 넓혔다. 그뿐만 아니라 패션이 친환경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떠올렸는데 먼저 매장 내에 중고 서점을 마련해 아트·패션·환경 관련 서적의 물물교환이나 매매를 가능하게 했다. 공정무역커피를 사용하는 ‘라 콜롬베’의 입점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로써 한남동과 청담동에 어른을 위한 새로운 놀이터가 하나 더 생긴 셈.
4. COLLABORATION
11월 25일까지 비이커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한국 디자이너 정욱준, 한상혁, 최철용, 최유돈을 비롯해 주 수입 브랜드인 랙&본,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 A.P.C., 아스페시의 리사이클 티셔츠가 전시, 판매된다. 비이커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들로 수익금 전부는 녹색연합에 기부될 예정이라고. 이런 의식 있는 협업이야말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패션 브랜드의 숙명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 아닐까?
- 에디터
- 김신(Kim Shin)
- 포토그래퍼
- 김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