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바람에 오한을 견뎌야 할지라도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바로 이토록 근사한 아우터를 입을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MEN’S COAT
남성복에서 차용한 패턴과 세부 장식이 여성복으로 넘어와 유용하게 변주되는 흐름은 지난 몇 년간 시즌을 불문하고 꾸준히 나타난 현상이다. 이쯤 되면 멘즈웨어는 ‘트렌드’라기보다 ‘베이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정도. 겨울 대표 아우터인 코트 역시 남성복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이 작년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핫 트렌드로 부상했는데, 갖가지 장식을 더해 여성적 매력을 강조한 작년 겨울과는 달리, 올해는 훨씬 실용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느낌의 테일러드 코트가 많이 나왔다. 먼저 전형적인 테일러드 코트를 보면 캐멀색 울 코트에 소매에만 퍼를 덧댄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 더블 버튼의 핀 스트라이프 코트를 만든 도나 카란, 도톰한 울 소재의 고급스러움을 살린 드리스 반 노튼, 더플 코트와 케이프 코트의 장식을 응용한 에르메스, 라펠에 검은색 실크를 덧대어 중후함을 살린 에밀리오 푸치의 경우처럼 여밈 장식조차 최소화하고, 길이는 무릎 혹은 이를 살짝 덮는 정도의 모던한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볼륨감이 대세인 시즌이니만큼 입체 재단을 통해 일부러 커다란 느낌을 준 스타일도 많다. 한편 해군 장교의 유니폼에서 시작한 피코트도 이번 시즌 핫 아이템으로 재조명되었는데, 허리선을 높게 올린 알투자라, 어깨를 감쌀 정도로 라펠을 커다랗게 만든 데렉 램, 라펠에 가죽을 덧댄 살바토레 페라가모, 강렬한 빨강 라이닝으로 포인트를 준 이자벨 마랑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몸에 꼭 맞거나 살짝 A라인으로 퍼져서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스타일이 눈에 띈다. 남성적인 느낌의 코트는 역시 고급스러운 재단과 소재감이 키 포인트로 10년 정도는 거뜬히 옷장에서 버틸 수 있는 제품을 고르는 것이 유용하다.
SPORTY PARKA
이번 시즌 아우터 트렌드를 논할 때 가장 흥미로운 아이템이라면 단연 파카를 들 수 있다. 패딩이나 퀼팅을 이용한 파카는 클래식 아우터와 스트리트 아우터 사이에서 느낌을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가벼운 나일론이나 방수 소재를 사용한 ‘간절기용 파카’인 아노락이 최근 몇 시즌간 스타일링의 포인트로 다양한 쓰임새를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두터운 겨울 파카 역시 포멀한 것에서 캐주얼한 분위기까지 아우르는 스타일링의 첨병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 새하얀 모헤어 코트에 모피 후드를 부착한 스포트막스나 기하학적으로 섹션을 나누어 패딩을 처리한 이세이 미야케, 도톰한 페이턴트 가죽에 퍼 라이닝을 더한 후드 파카에 부츠만 더하여 강렬한 스타일을 만들어낸 알렉산더 왕은 한 피스만으로 스타일링을 완성할 수 있게 한 경우. 반면에 니트 풀오버와 셔링을 잡은 스커트, 레깅스, 여기에 퍼로 된 안감을 더한 짧은 파카를 더한 랙&본이나 통이 넓은 트레이닝팬츠와 워머처럼 덧신은 양말, 유틸리티 워커로 캐주얼한 분위기를 만든 마크 by 마크 제이콥스, 두 가지 톤의 카키색 방수 소재와 퍼 후드를 더해 고급스러운 느낌을 자아낸 드리스 반 노튼, 트레이닝복을 연상시키는 편안한 모직 배기팬츠에 하이힐을 신고 여기에 커다란 후드 점퍼를 덧입은 클로에의 예는 획일적인 겨울 스타일링에 젊고 트렌디한 포인트를 더하는 요소로도 파카가 유용하게 쓰인다는 점을 드러낸다. 일반적인 아우터보다는 부피가 큰 편이기에 DKNY나 버버리 프로섬, 알투자라 컬렉션처럼 몸에 피트되는 디자인을 고르고 여기에 벨트를 더하면 좀 더 여성스럽고 성숙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RETOUCHED BIKER
바이커 재킷이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 손을 거쳐 발렌시아가의 상표를 달고 등장한 순간, ‘거리의 아이들’이나 입는 것으로 치부되던 바이커 재킷은 단숨에 하이패션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이 강렬한 등장 이후 바이커 재킷은 샤넬이나 발렌티노 같은 유서 깊은 하우스의 컬렉션까지 장악했다. 바이커 재킷은 가죽 소재의 특성 때문에 안에 두툼한 이너웨어를 입는다 해도 꽤 차가운 느낌의 아이템이었지만 이번 시즌은 디자인만 차용하고 다양한 소재와 장식을 덧대어 계절의 한계를 넘어선 것들이 눈에 띈다. 무통 소재와 안감에 퍼를 덧대어 한겨울에도 입을 수 있는 바이커 재킷을 만든 아쿠아스큐텀, 소매와 몸판의 컬러를 달리 배색하고 칼라에 커다란 퍼를 덧댄 프로엔자 스쿨러, 사선으로 배치한 지퍼와 도톰한 짜임의 모직 소재가 돋보이는 스텔라 매카트니의 바이커 재킷은 얇은 드레스 하나 위에 이 재킷만 걸치고 외출한다 해도 끄떡없을 정도로 보온성과 스타일리시함까지 놓치지 않은 디자인이다. 반면 얇은 가죽으로 만들어 마치 재킷이 아니라 셔츠를 입은 듯한 느낌을 주는 발맹의 터키블루색 재킷, 사선으로 지퍼가 배치된 바이커 재킷의 여밈 디자인을 고급스러운 실크 재킷에 응용한 하이더 애커만, 소매에 빨강과 검정, 두 가지 가죽을 붙여 배색한 미소니, 진 스트레치 소재를 덧대어 보디라인을 살린 스포트막스, 테일러드 재킷의 라펠을 바이커 재킷과 접합한 듯한 발렌시아가의 경우는 바이커 재킷의 디자인만 가져다 새로운 아우터를 만들어낸 재미있는 ‘응용편’에 속한다.
- 에디터
- 패션 디렉터 / 최유경
- 포토그래퍼
- 제이슨 로이드 에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