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자녀가 3 명 늘었고, 누군가는 문신이 4개 늘었다. 나라 전체를 흔들어놓은 지진을 겪고서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뀐 작가가 있고, 디지털 혁명 속에 가상의 경험을 고민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7년이란 그런 단위다. 많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는 시간. 더블유는 창간 즈음 인터뷰했던 걸출한 인물들을 다시 만나러 뉴욕과 도쿄로 날아갔다. 그들의 근황을 듣고 세상의 변화를 논하기에, 일곱 해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시간이었다.
침이 고인다│장 조지 & 마르자
남편이 노래하면 아내가 따라 한다는 뜻의 사자성어 ‘부창부수’ 는, 이 부부에게 적용하면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남편이 요리하면 아내가 먹어보고 칭찬한다.” 뉴욕의 그들 아파트에서 들여다본 <김치 크로니클>의 장 조지와 마르자 부부의 일상은 맛이 어울리는 재료였고 간이 딱 맞는 음식이었다.
슈퍼볼이 열리던 날 오후였다. 허드슨 강 너머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들의 아파트에서, 장 조지는 축구 중계를 보러 갈 약속을 앞두고 들떠 있었다. 태양의 고도가 점점 낮아지고 강이 오렌지색으로 물들어갈수록, 장 조지가 두 주먹을 쥐고 “뉴욕 자이언츠!”를 외치는 횟수가 잦아졌다. 딸 클로이와 두 마리의 강아지 ‘조조(장 조지의 첫 레스토랑 이름을 딴)’ ‘키키’는 소파에서 평화롭게 뒹굴고 있었다. 마르자가 <김치 크로니클> 요리책을 보여주며 사인하자, 이에 질세라 장 조지는 자신의 요리책을 가지러 어딘가로 사라졌다. 분주하고 샘 많은 남편을 마르자는 마치 큰 아들, 혹은 큰 강아지 다루듯이 나무라며 식탁 옆자리에 끌어다 앉혔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할, 수십 개 되는 자신의 레스토랑에서는 장군처럼 군림할 셰프를 합법적으로 구박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그녀 혼자일 것이다. 그 티격태격이 <김치 크로니클>의 주방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서 음식을 만들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왠지 반가웠다.
인터뷰가 있기 며칠 전, 일정이 마침 근처에서 끝났기에 ‘스파이스 마켓’에서 점심을 먹었다. 뉴욕에 아시안 퀴진 열풍을 일으킨 장 조지의 타이 레스토랑, 뉴요커들에게는 태국 음식과 동의어인 이름, <김치 크로니클>의 방영 축하 파티가 열리기도 한 바로 그 장소다. 3 코스 밀의 런치 가운데 하나는 한국 스타일의 매운 치킨 버거였다.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운 닭고기 패티를 올리고 배로 속을 채운 버거는 닭꼬치의 매콤한 맛이 나면서도 배의 시원한 맛과 사각사각한 식감이 잘 어울렸다. 방송에서 그들이 만들었던 바로 그 메뉴였다.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 <김치 크로니클>이 방영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맛있게 잘 먹고 서글서글하게 많이 웃는, 마르자라는 여자가 대체 누구냐고 물으면서 꼭 덧붙였다. “그 여자는 뭘 좀 알더라.” 생 쌀알처럼 지루하게 조리법만 읽는 요리 프로그램, 예쁘게 음식을 맛보려고 애쓰는 셀레브리티로 가득한 음식 방송 사이에서 빛나는 눈동자로 요리를 대하며 온몸으로 맛을 표현하는 마르자의 존재는 그야말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오감으로 느끼게 한 진정성이 있었으니까. 1년 전 이 방송을 한국에서 촬영할 때 부산부터 강원도까지 동행하며 독점 취재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르자에 대한 칭찬을 흐뭇하게 들었다.
다시 그들의 아파트, 과연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 없던 장 조지와 마르자의 주방은 그저 하얗고 깨끗할 뿐이었다. 부엌에 아무런 음식도 보이지 않아서 나는 좀 초조해졌다. 사실 식사 시간이 아니니 싱크대 위에 바나나 반 송이, 인터뷰어들을 위한 피지 워터와 오가닉 코코넛 쥬스가 전부였던 게 당연한 데도 말이다. 주말마다 장 조지가 닭도리탕을 요리한댔는데, 하필 오늘 열리는 슈퍼볼을 원망하며 한참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 마르자의 어머니(한국인 생모로, 뉴욕에서 살고 있다)가 손녀의 저녁을 챙겨주기 위해 부엌에 나타났다. “마마, 데얼즈 섬 설렁탕인 냉장고.” 어머니에게 얘기하며 마르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우리 집에 있는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투명 플라스틱 통을 꺼냈다. 직접 담근 깍두기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뚜껑을 여는 순간 퍼지는 매콤하고 새콤한 김치 냄새! 머리 속으로는 어느새 아삭하게 한 입 베어 무는 상상을 하며 침이 고였다. “사실 우리는 김치 냄새를 너무 걱정하는 것 같아요. 태국, 인도, 멕시코… 어느 나라 사람들도 자기네 음식에 대해서 사과하거나 설명하지 않잖아요?” 마르자는 인터뷰 내내 ‘코리안’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 낱말을 대신한 건, ‘우리’였다.
<김치 크로니클>이 한국에서 방영되면서 굉장히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프로그램 이후 두 사람의 삶, 특히 한국이나 한국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달라졌나?
마르자(이하 MJ) : 페이스북의 <김치 크로니클> 팬페이지에 서양 사람들이 많이 와서 피드백도 주고, 레시피에 대해 묻기도 한다.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소통하고 도움을 주며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다는 건 늘 즐거운 일이다. 목요일에 내가 부대찌개를 만들고 그걸 올렸는데 사람들이 금세 반응하는 그런 게 재밌다.
장 조지 (이하 JG) : 나의 레스토랑들에 한국사람들이 와서 마르자와 내가 어디 있나 찾다가 간다(웃음). 한국을 모르던 미국인들은 특히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발견하고 많이 배운 것 같다.
<김치 크로니클>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이야기였다. 촬영 과정에서 더블유가 동행 취재하기도 해서 에디터도 감흥이 특별했는데, 마침내 완성된 한 편 한 편을 보는 느낌은 어땠나?
MJ : 아침 7시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일했으니 물론 진정성이 넘칠 수밖에 없다(웃음)! 처음 방송을 봤을 때는 이랬다. “나 왜 입을 저렇게 벌리고 씹지?” “세상에, 볼이 터지겠네” “어쩜 저렇게 뚱뚱하고 얼굴은 번들거려?”(웃음). 화면에 비치는 내 모습을 극복하고 나서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정말 자랑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우리가 매일 어떻게 일했는지, 우리 팀이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확인했으며, 무엇보다 내 편안하고 진실한 목소리가 거기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 재능 있는 감독과 훌륭한 프로듀서들과 일할 수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 콘텐츠, 우리가 인터뷰한 사람들, 훌륭한 스태프들… 많은 친구들과 함께한 유급 휴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다 함께 모여서 시즌 2를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드니까. 시간 관계상 전라도를 못 갔는데, 그 지역만 가지고 한 시즌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오늘 입은 장 조지의 셔츠가 멋지다. 프라다만 입는다는 애기를 들었는데 사실인가(웃음)?
MJ : 일요일 아침에 자다 깨서 안경에 잠옷 차림으로 내려와도, 남편은 늘 잘 차려입고 있다. 13년째 함께했지만 파자마 입고 아침 먹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도 처음 7년은 꾸민 모습으로 늘 예쁘게 그를 맞으려 애써봤지만 아이 키우면서 포기했다(웃음).
며칠 전 스파이스 마켓에서 식사를 했는데, 프로그램에서 만든 매운 닭고기 버거가 있어서 반가웠다. 고추장으로 양념을 하고 배로 속을 넣은 것인데 맛이 아주 잘 어울렸다.
JG : 나의 다른 레스토랑인 머서 키친에도 같은 메뉴가 있다. 그리고 한 달 전에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심플리 치킨’이라고 새로운 패스트푸드 스탠드를 열었다. 사람들이 경기를 보면서 먹을 수 있도록 김치 렐리쉬를 곁들인 핫도그, 깻잎이 들어간 김치 샌드위치 같은 걸 판다. 하키나 농구를 보러 온 사람들이 하나씩 사 들고 가서 경기를 보면서 먹는다. 모두 닭고기를 이용한 한국 식의 메뉴이며 거의 매일 경기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2만5천명 정도의 사람들이 김치를 접하게 될 거다.
한식 가운데 어떤 것을 레스토랑 메뉴에 응용하는가? 미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직관적 판단이 있을 것 같은데.
JG : 우선 우리 가족은 매 주말마다 닭볶음탕을 먹는다. 고추장 버터를 곁들인 스테이크나, 제육볶음도 뉴욕에서 소개하고 싶은 메뉴다.
MJ : 사람들은 파전과 잡채, 비빔밥에 이미 익숙하다. 그것들도 한식에 입문하기에는 좋은 음식이지만, 내가 여기에 알리고 싶은 건 빈대떡이다. 굉장히 전통적인 한식이고 몸에도 좋으며 처음 먹어본 사람들도 좋아한다. 녹두는 몸에도 좋고, 여러 가지를 넣어 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유연한 식재료다. 닭찜도 좋을 것 같고.
조리법에 있어서 여기 사람들을 위한 뭔가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말하자면 ‘현지화’나 ‘퓨전’이라 일컬어지는 것들 말이다.
JG : 다른 도시라면 모르겠지만, 뉴욕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스파이스 마켓에 가봤겠지만 일부러 절충하는 법은 없다. 10년이나 15년 전에는 많은 타이 레스토랑들이 매운 양념을 덜고 설탕이나 꿀을 넣어 단맛을 더했지만 지금의 뉴욕은 그런 식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세계를 여행하면서 그 나라 음식을 맛보고 있으며, 다른 문화를 받아들일 소양이 있다.
MJ : 전통 음식을 파는 어떤 레스토랑도 그 특유의 맛에 대해 걱정하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태국, 멕시칸, 인도… 어느 누구도. 우리는 김치 냄새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데, 그 냄새는 뚜껑을 열 때 잠시뿐이다. 그 순간만 지나면 익숙해지는 것이다. 사실 치즈에서는 더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고 더 오래 머무르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음식의 특징으로 받아들인다. 어쩌면 한국인의 걱정이 지나친 것 같기도 하다. 세계 사람들은 이제 눈을 뜨고 한국 음식과 문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저 충실하게 우리가 가진 매력을 보여주면 된다.
레스토랑만큼 유행을 타는 분야도 없는 것 같다. 그 최전선과도 같은 뉴욕에서 민감하게 느껴지는 음식 문화의 트렌드는 무엇인가?
JG : 나의 레스토랑인 ‘ABC 키친’에서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고의 재료를, 농장에서 식탁으로” 그 지역의 농산물이라는 점도 아주 중요하다. 근교의 농부들과 협력해서 식자재를 조달하는 게, 나에게는 미래적인 음식이다. 우리는 미 대륙 서부 해안 대신에 몬탁(뉴욕에서 가까운 바닷가)에서 조달한 생선을 바로 손에 받아 들고 요리한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유기농인 건 물론, 어디에서 왔는지 알기를 원한다. 나는 우리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소들의 이름까지 다 알려고 한다(웃음). 공기며 여러 가지가 오염된 대도시에서 산다는 건 스트레스가 심하고, 사람들은 건강한 음식을 원한다.
MJ : 한식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뉴욕에서 고급 한식당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ABC를 레퍼런스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고의 채소와 고기, 해산물… 지역의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하면 가격을 합리적으로 낮추면서도 품질이 높은 전통 한식을 할 수 있다. 스태프들은 영어만 잘하는 대학생들이 아니라, 음식을 이해하는 프로페셔널들로 채워져야 할 것이고. 숫자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스태프들의 전문성을 유지하는 데서 음식과 식당의 퀄리티가 나온다. 뉴욕에 있는 아주 작은 레스토랑 ‘단지’가 그걸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니 김이라는 젊은 세프의 코리언 타파 식당인데, 그의 부모님이 만드는 훌륭한 된장을 쓴다. 코리아 타운에 있는, 교포들만을 위한 식당이 아니지만 ‘단지’는 타협하거나 절충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인들도 한식을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배우고 이해하며 익혀나간다. 예를 들어 장 조지 같은 사람이 한국에서 최고의 간장, 된장, 고춧가루를 공수해서 음식을 만들면 완전히 근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레스토랑을 경영한다는 것은 숱한 의사 결정의 연속일 것 같다. 작게는 메뉴부터 크게는 어떤 레스토랑을 닫고 새로 열고 하는 일까지 하루에도 몇 개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텐데 경영자로서 태도와 원칙은 어떠한가?
JG : 좋은 레스토랑을 만드는 것보다 그걸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 6개월이나 1년은 가겠지만 그 이상 핫하려면 매일 눈뜨면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걸 접해야 한다. 사람들이 먹는걸 보고, 웃는 걸 확인하고, 그게 단순하게는 내가 레스토랑 사업을 하는 이유다. 8년 전 스파이스 마켓을 오픈했을 때, 그곳은 태국에서 일하던 예전의 경험과 기억에 바탕한 것이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그런 식의 재료들을 더 떠올리곤 한다.
MJ : 그의 재능은 갈망을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아, 저것도 먹어보고 싶어”라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걸 잘 한다.
JG :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늘 민감하게 살피고 좋은 가치를 제공하며, 다시 오게 만드는 것, 그게 가장 단순한 목표인 것 같다. 3 가지 정도가 마음에 들면 사람들은 다시 와서 다른 것도 먹어본다.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면 다시 올지가 나에게 가장 궁금하고 중요하다. 그걸 39년 동안 해왔다.
내년에 요리 인생 40년을 기념한 뭔가 있나?
MJ : 아마도 성대한 파티(웃음)?
남편으로서의 장 조지는 어떤 사람인가?
MJ : 아주 부드럽고 관대하다. 물론 몹시 바쁘지만 가족을 중요시하는 사람이고, 집에 있을 때도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늘 끼니를 중요하게 챙기는데 이것 때문에 가끔 내가 짜증을 내기도 한다(웃음). 딸에게는 절대 안 된다고 하는 법이 없는 다정한 아빠여서 내가 못된 역할을 맡고 있다.
집에서 요리는 주로 누가 하나?
MJ : 원래 비슷한 비율이었는데, 장 조지가 닭 볶음탕에 완전히 빠지면서 주말마다 그것만 만든다. 주중에는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그는 주말에만 요리를 한다.
오늘 슈퍼볼을 보면서 뭘 먹을 계획인가?
JG : ABC 키친에서 음식을 주문해서 가져갈거다. 립과 칵테일 새우, 핫 소스를 곁들인 프라이드 치킨….
MJ : 프라이드 치킨은 한국이 최고다(웃음).
한국에 다시 가면 뭘 먹고 싶은가?
MJ : 장 조지와 같이 못 가서 아쉬웠는데, 속초에 데려가 막국수와 해산물을 먹이겠다.
JG : 양재동에 있는 한우집에 꼭 갈 거다. 제주도에서 먹었던 돼지고기가 들어간… 몸국!
작년에 마르자가 더블유 코리아와 만났고, 장 조지의 인터뷰는 벌써 7년 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의 당신에게 충고해준다면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나?
JG : “레스토랑 비즈니스는 관두고 잠이나 많이 자라?”(웃음). 글쎄, 어떤 것도 바꾸고 싶지 않다. 삶은 한 번이니까 난 모든 걸 그때 그때 한다.
슈퍼볼 흥분 상태가 절정에 달한 장 조지는 중계방송을 보기 위해 먼저 떠났고, 나는 마르자와 좀 더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서 선물로 준비해 간 오미자를 전달하고 뭘 해먹을 거냐고 묻자 마르자는, 음료나 칵테일도 만들고, 아이스크림이나 커스터드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시럽을 만들어볼 생각이라며 눈을 빛냈다. 마르자를 보며 음식에 대한 태도야말로 그 사람에 대한 많은 것을 알려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식재료나 레시피를 시도해보는 호기심과 모험심, 좋은 것을 즐길 줄 아는 취향,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주눅 들지 않고 먹는 품위, 거리의 음식도 먹을 줄 아는 소탈함, 그리고 감사하고 아낄 줄 아는 겸손함… 무엇보다 마르자에게 아름다운 품성이 있다면, 한식에 대한 그녀의 강한 자부심, 그리고 주변과 나눌 줄 아는 넉넉한 인심일 것이다. “돈과 능력과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잘 보여주는 데 집중하지 않고 왜 바꾸거나 타협하려 하는지 모르겠어요. 인도의 항공사 광고를 보면 코끼리와 궁전 같은 걸 그냥 보여주잖아요. 그들과 다른 우리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만 잘해도 충분해요.” 마르자는 여전히 자신과 같은 입양아, 싱글맘 문제에 대해 마음을 쏟고 있었다.
1년 전 인터뷰 당시에 하인즈 워드가 후원하는 어린이들과의 만찬을 준비하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떻게 치렀나.
모두 8명의 어린이를 초대해서, 첫 저녁에는 남편의 레스토랑 중 하나인 머서 키친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이 음식을 좀 낯설어해서, 이튿날은 우리 집에 데려와 김치찌개, 불고기 같은 음식을 직접 만들었다. 내 딸 클로이가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가운데 앉아서 아이들과 잘 어울렸고, 즐거운 저녁을 함께 보냈다. 올해 다시 어린이들을 초청해서 진짜 함께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어린이들을 돕는 문제, 그보다 더 시급하게는 싱글맘을 돕는 데 관심이 있다. 사회의 인식을 고취시키고, 그들에게 가해지는 낙인을 덜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 차별받지 않도록 교육도 해야할 것이고. 사회에서 일자리의 기회를 줘서 가족이 해체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아이들을 시설에 보내서 외롭게 크게 하는 게 아니라, 엄마와 함께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온당하다.
한식을 비롯해 한국적인 콘텐츠와 관련해서 더 하고 싶은 일도 있을 것 같다.
원래 인테리어 회사를 하나 갖고 있고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서, 한지로 조명 디자인을 해보기도 했다. 한국 전통 수공예가 굉장히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이를 현대화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리고 뉴욕에 오는 한국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도 만들어보고 싶다. ‘동부투어’ 같은 단체 버스가 왜 여전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에 서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웃음). 진짜 맛있고 재밌는 장소들을 소개하고 싶다.
여행이란 늘 음식과 함께 가니까.
그렇다. 음식의 힘이란 그렇게 크다.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연결해준다. <김치 크로니클>을 보고 80마일을 운전해 가서 아시아 마켓의 장을 본 다음 잡채를 요리해 먹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정부에서는 뉴욕에다 레스토랑을 낸다고 한다.
알고 있다. 글쎄, 현지에서 그 일을 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지원을 해주는 게, 원하는 목적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조만간 한국에 오게 된다면 뭐 할 거 같나?
우선 새로운 음식을 찾는 일. 부산에서 김치에다 게를 넣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무 먹어보고 싶다(웃음). 전국을 돌아다니며 최고의 간장 된장 고추장을 찾는 프로그램을 찍어봐도 재밌을 것 같다.
더블유와의 인터뷰 컷을 찍었던 장소인 장 조지의 레스토랑 66은 문을 닫았다. 대신 새로운 레스토랑 ABC 키친이 그 사이 생겨났고, 그곳은 지금 뉴욕에서 가장 예약하기 힘든 장소 가운데 하나다. 당시 오픈한 지 6개월 되었던 페리도 7년이라는 세월만큼 숙성한 내공으로 뉴요커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내년에 요리를 시작한 지 40주년을 맞는 장 조지는 음식점 하나를 닫고 또 하나를 여는 결정들 수십 개를 반복하면서, 그 이름이 주는 무게와 신뢰, 동경과 명성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안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