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자녀가 3 명 늘었고, 누군가는 문신이 4개 늘었다. 나라 전체를 흔들어놓은 지진을 겪고서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뀐 작가가 있고, 디지털 혁명 속에 가상의 경험을 고민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7년이란 그런 단위다. 많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는 시간. 더블유는 창간 즈음 인터뷰했던 걸출한 인물들을 다시 만나러 뉴욕과 도쿄로 날아갔다. 그들의 근황을 듣고 세상의 변화를 논하기에, 일곱 해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시간이었다.
나는 우주의 판타지│제프 쿤스
순진한 어린아이 같거나 혹은 철저히 계산된 장사꾼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제프 쿤스는, 둘 다였으며 그 이상이었다. 아트가 무엇인지를 아주 공들여 이야기하는 이 아티스트의 입에서는 가능성과 잠재력, 제어와 같은 단어들이 아주 자주 언급되었다
아티스트의 손때가 묻은 로프트 같은 걸 상상할 만큼 순진하진 않다. ‘팩토리’ 라는 말을 언급할 땐 그가 싫어할 줄 알았다. 인터뷰에서 그 단어를 꺼냈을 때 제프 쿤스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는 것도 봤지만, 내가 가서 본 그곳을 표현할 마땅한 다른 말은 딱히 없었다. 스튜디오는 양파처럼 겹겹이었다. 입구에는 화면이 커다란 아이맥이 나란히 몇 대나 놓여 있어 디지털 설계도 같은걸 들여다보는 팀이 있었고, 문을 통과해 들어가니 캔버스를 놓고 채색하는 사람들, 또 다른 문 안에는 조각의 디테일을 매만지는 작업자들, 자동차처럼 페인트로 도색하는 팀… 공장의 생산 라인처럼 나눠진 직원들이 각자의 작업에 몰입해 있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100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리고 초콜릿 공장의 윌리 웡카처럼, 모든 것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제프 쿤스가 등장했다.
흰 셔츠를 입은 그는 관리가 잘된 마른 몸에 아주 낮고 부드러운 음성을 가졌다. 그리고 아주 가볍고 날랜 몸짓으로 양파 겹과겹 속을 오가면서 인터뷰 촬영을 했다. 그림 위를 막대기로 짚으면서 포즈를 취한 것도, 바닷가재 튜브 모양을 한 조각(실제로는 매우 무거운 소재라서 직원 여럿이 달라 붙어야 했다)을 가져다 놓고 옆에 누운 것도 모두 그가 즉흥적으로 카메라 앞에서 취한 행동이었다. 쿤스는 비주얼에 관해서라면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 망설임이 없이 확신에 차 있었다. 오늘 촬영에서 <W Korea>가 특별히 운이 좋았던 거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계획되거나 인위적이지 않은 친숙함 속에서 가능성을 찾은거예요. 이 스튜디오의 혼돈을 받아들이고 이미지들의 잠재력을 봤어요. 정형화된 이미지와 작업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퀄리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W Korea>에서도 무엇에 흥미를 갖는지를 소통하면서 읽었거든요.” 마지막에 가벼운 비주를하고 스튜디오를 떠날 때까지, 쿤스는 질문에 대해 시종일관 낮고 유려한 목소리로 끊이지 않고 충분한 분량으로 오래 공들여 대답했다. 아마 이 아티스트가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는 부분은, 인터뷰 사진이나 자신의 작품, 비주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인터뷰는 문제의 ‘공장’ 이야기로부터 출발했다. 그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만든, 바로 그 낱말 말이다.
작업실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효율적으로 분업화되어 있는데 당신은 이를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통제하나?
내 작업실은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예술가의 스튜디오와 흡사하다. 매체들은 ‘팩토리’라고 부르고 싶어 하지만 팩토리의 개념은 아니다. 수많은 그림과 작품을 동시에 작업하는데에는 세심한 주의와 시간이 필요하며, 물론 모든 디테일을 내가 감리하고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 여기에는 평균 8 ~10년간 함께해온 훌륭한 스태프들이 있으며, 모든 스태프들은 자신이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퇴근 후 집에 가면 그들 각자의 다양한 아트 작업들을 하지만 내스튜디오에 있을 땐 내 비전에 도달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여기서의 목표는 내 비전을 완벽하게 반영하는 것이다. 누구도 주관적일 수 없으며, 조직 전체가 내 시스템과 통제 안에서만 움직인다. 주관인적 행위는 제거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모든 제스처가 내 제어 아래 있으며 내가 책임자이다. 물론 직원들과 평등한 대화를 하고 그들에게 존중감을 표시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가장 투명한 방법으로 의사 소통하는 것은 나의 도덕적 책임에 속한다.
<W Korea>와의 인터뷰로부터 거의 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당신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7년 전으로부터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이 더 생긴 거다. 지금 일곱 명인데, 아마 7년 전엔 넷이었을 테니까 3명의 아이가 더 생겼다. 내가 아트 작업에 대해 사랑하는 바는, 정보를 공유하고 전 인류와 연결되는 느낌이다.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사회와 나누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삶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다는 걸 가장 보람 있는 일로 여긴다. 아이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이 소통이 우리를 풍성하게 한다. 예술은 작품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들에게 있다. 작품을 체험하는 일은 곧 그들에게 자신들만의가능성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미술은 관람객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고 그들이 품은 생각을 입증해줄 수는 있지만 진짜 예술이 존재하는 장소는 관객들의 내면이다. 그래서 관람객이 전시장을 떠나면 예술도 함께 떠난다. 미술 작품을 보고 느끼는 데는 상호작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개인은 내면의 성찰을 통해 자신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외부로 이를 확장할 때는 바깥의 환경에서 발견한 것들을 활용하게 마련이다. 먼저 주관에서 출발해 객관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객에게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어떤 판단을 보류한 오브젝트를 만드는 것이 가장 높은 레벨의 예술 형태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어떤 이미지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마침내 완성된다. 마치 부모가 자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처럼.
아버지로서의 경험에 비유해 예술관을 설명하니 쉽게 와 닿는다. 아빠로서의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아이들도 아버지가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나?
언제나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가정에서는 그냥 아빠이고 싶다는 거다. 집에서까지 내 작품들과 살지 않는다. 아이들을 내 스튜디오에 데려오는 일도 있지만 집에는 내 작품이 없다. 조각을 사진으로 찍은 포스터가 하나 있을 뿐이다. 물론 내가 컬렉팅한 다른 미술 작품들이 있지만, 아이들에게 자극이 될 만한 현대 미술 및 다른 시대의 작품을 수집해서 접하려고 한다. 아이들 앞에선 내 일과 사회적 역할에서 자유롭고 싶다. 가끔 아이들이 내 작품에 대해 언급할 때면 놀랍다. 그건 멋진 일이지만 집에서 미술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면 그건 아이들 학교 프로젝트나 숙제 때문인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소통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싶다.
당신은 개인이 내면을 성찰하고, 외부와 관계맺으며 객관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다음으로 타인과의 관계와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세상에는 수많은 스토리들이 존재하지만, 단 한가지의 진정한 서사만 남는다면 그건 생물학적인 진화, 종의 발전의 이야기일 것이다. 인류는 서로 소통하고 관계 맺으면서 역사를 만들어왔다. 인류와 예술가들마다 생물학적 서사를 어떻게 전달하고 조종하려 하는지는 서로 다르지만, 그 강렬한 욕구는 공통적으로 느껴진다. 사람들은 결국 연결되어 있다. 마네는 그저 한 사람의 아티스트 마네가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 속에서 시간을 이어주는 역할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죄다 서양 관점에서의 예술관이라서 미안하지만(웃음).
개별 아티스트도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의미있는 존재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낱낱의 사람들이 연결되어 역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보는 낙관론자인가?
진정한 커뮤니케이션만 이루어진다면 더 나은 세상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진정한 도덕성은 개개인에게 평등한 존엄성을 각각 부여하는 것이다. 무지를 극복하고 지능과 지식을 개발하는 것은 모두 관계와 연결을 통해서이다. 결국 개인이 고립된다면 미래가 없다고 본다.
얼마 전 <빌리지 보이스>에서는 데미언 허스트의 가짜 부고 기사를 실었다. 마치 그가 죽은 것처럼 그의 작품에 대해 다룬 유머러스한 기사였는데, 현 시점에서 한 아티스트의 커리어를 정리한다는 측면에서는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현재 당신의 커리어가 멈춘다면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일까? 그리고 먼 미래에 부고 기사가 적히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가 거기에 포함되기를 희망하나?
죽음 앞에 후회 없이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불가능하겠지만 최대한 불안감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나의 경계와 제한을 넘고 싶고, 나만의 제스처를 만들고 싶다. 가장 명백하면서도 정확한 방법으로 외부 세계에 내 관심과 제스처를 보여주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그 가능성들을 놓쳐버리고 싶지 않다. 단순하게 들리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한국의 신세계 백화점에서 당신의 작품을 구입해서 설치한 일이 화제가 되었다. 당신의 작품이 미술관이나 갤러리 대신 백화점이라는 공간에 속하는 기분은 어떤가?
작품이 어디에 디스플레이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기회, 모든 장소가 다 소중하고 훌륭하다. 작업을 보여줄 기회가 있고 그것이 환경의 문맥 속에서 적절하게 소통만 가능하다면, 중요한 것은 관람객들과 직접적으로 상호작용 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어떤 영감을 얻는 데 있어서 장소에 제한이 없듯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내용에 있어서 보호와 친밀감이 주제 의도라면 실내에 진열되는 게 마땅하겠고, 연약하지 않음을 전달하고 싶을 땐 외부에 설치되는 게 옳을 것이다. 관객이 특정 장소나 환경에 와야만 최초의 의도를 드러내는 예술이라면 기만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이란 힘을 부여하거나 빼앗는 것의 문제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역사를 알게 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어떤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강력함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의 힘을 빼앗기 위해 작품을 만든다. 이전의 경험과 지식을 가져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라면, 내 생각에 게임일 뿐이다. 진짜 아트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관람객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욕망을 확장해주어야 한다.
BMW의 아트 카 프로젝트나, 키엘의 제품에 스페셜 에디션 패키지를 제공하고 판매금으로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등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에도 열려 있다.
키엘은 대단하다. 키엘의 사회 공헌 활동은 아주 관대해서, 나는 그들의 열대 우림 살리기 캠페인에 먼저 협력했다. 쿤스 가족 재단을 만들어서 국제 아동 보호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 어린이에 대한 납치나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보를 수집하고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BMW 아트카래핑의 경우에는 앤디 워홀 등 다른 예술가와 호흡한다는 역사성 때문에 작업하게 되었다. 좋은 플랫폼이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나 알렉산더 칼더 같은 예술가들과 함께 뒤뜰에서 공놀이를 하듯이 나가서 같이 놀고 대화를 나누며 다른 예술가들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이었다.
<W Korea>와 처음 인터뷰 했던 7년 전의 당신을 만난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
시간을 더 현명하게 사용하라고 말할 것 같다. 나는 대체로 시간과 에너지, 내 주의를 헛되이 낭비하지 않으며 살고 싶었던 방식대로 살아온 것 같다. 삶에서의 우선순위도 잘 정립했고. 항상 더 나아지고자 했으며 늘 시간과 내 필멸성에 대해서 잘 인지하고 있다. 아이들이 내 상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자라서 어느새 중학생이되어 있는 것도 그다지 놀랍지 않다. 그래도 날 세게 꼬집으며 좀 더 순간순간을 살라고 말할 것 같다(웃음).
그렇다면 아티스트로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 100% 내가 원하는 게 아닌 것을 만드는 것. 정말 하고 싶은 것을 구현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조급함과 불안감을 완전히 없애야 가능하고, 그러려면 완전한 수용, 승락, 인정을 해야 한다. 100% 인정하게 되면 걱정과 초조함은 사라지게 된다. 죽음을 앞둔 상황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원하는 게 뚜렷하고 선명해질까. 하고 싶은 제스처들을 거침없이 취할 수 있는 잠재력이 발휘될까. 나는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의 편안하고 또렷한 상태를 지향한다.
7년 후에 다시 <W Korea>와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나?
아이들을 더 갖고 싶다. 현재 딸 둘 아들 다섯이지만 더 낳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또 나의 가능성을 더 풍부하게 표현하고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 그걸 즐긴다는 게 얼마나 쉬운 것인지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어린 시절 아티스트로서 갓 성공을 맛보기 시작했을 때 이런 인터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언젠가 이 모든 것들이 당신을 떠날 거라는 게 두렵지 않나요?” 글쎄, 젊은 예술가에게 묻기엔 좀 이상한 질문 아닌가? 이제 막 가지려고 애쓰는 무언가를 잊어버릴 것을 미리 두려워하는 게 과연 옳은 프로세스일까?
아마 당신의 갑작스러운 성공을 질투한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기 확신에 찬 사람을 두려워하니까.
창의성과 잠재력의 최대한을 끌어내고 즐기는데 특별한 비밀은 없다. 자신을 믿으며 관심사에 집중하고 따르면 모든 것은 실제 존재하게 된다. 우주와 당신을 평행하게 연결하는 힘이 생긴다.
더블유와 첫 인터뷰를 했던 7년 전, 제프 쿤스의 자녀는 모두 네 명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거기서 셋이 늘었다. 자신의 집에 조각 작품을 찍은 포스터 한 장만 붙여둔 이유는 ,가정에서는 그저 아빠이고 싶기 때문이다. 미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면 그건 기만적인 힘자랑일 뿐이며 관객이 어떻게 느끼든 그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듯. 7년 후에는 아이들을 더 갖고 싶다는 그의 얘기가, 농담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안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