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읽는 시간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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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기본을 생각한다. 새해, 변하는 세상 속에 움직이지 않는 삶의 가치를 되짚어보는 세 개의 대화를 준비했다. 철학, 심리학, 법학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질문해보는 더블유의 인문학 강의.

“돈 없어도 난 우아한 게 좋아”

강신주 철학자
문사철 기획위원회 위원. <제자백가의 귀환>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철학이 필요한 시간> <상처받지 않을 권리> 등 동서양 철학을 날카롭고 흥미롭게 꿰뚫는 저서를 발표해왔다.

1. 돈의 가치 VS 인간성의 가치

돈을 주고 사람을 쉽게 부리는 세상이지만, 인간관계를 붕괴시키는 게 돈이기도 하다. 돈에는 가치가 들어 있지 않다는 문제를 고민해봐야 한다. 그 돈이 살인자의 돈인지 유괴범의 돈인지 어떤 경로에서 나한테 왔는지가 아니라, 돈의 익명성 그리고 그 돈의 대가만큼 보장받는 게 더 중요하다. 인간의 가치는 뭘 했느냐 어떤 시간 속에 살았느냐가 되어야 하는데 돈만 있으면 모든 게 다 무화되니까 인간적 가치가 붕괴되는 거다. 인간의 애정과 신뢰와 관련된 가치들 우정, 사랑, 서로 보듬어주고 그런 것들이 무너지는 거지. 쉽게 말해 인간과 만나고 교류를 하게 되면 돈을 쓰게 되어 있다. 맛있는 것도 사먹고, 같이 영화도 보고… 아무도 안 만나면 돈만 모으면 될 것이고. 우리는 이 극단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 계속 은행 잔고가 쌓이는 걸 볼 것인가 아니면 카드를 긁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사줄 것인가.

2. 연애도 결혼도 힘든 88만원 세대

돈의 가치를 받아들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차를 못 타고 가더라도 걸어가는 대안이 있는데, 그걸 생각을 안 하니까. 우리는 항상 인간을 선택할 것인가 돈을 선택할 것인가의 딜레마에 서 있다. 근데 이게 왜 딜레마로 유지되느냐면, 돈을 갖고 있을 때 사람들이 나를 매력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몸도 만들 수가 있고, 좋은 차도 살 수 있고, 따뜻하게 해줄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 내가 좋아하는 게 저 사람의 돈인지 인간 자체인지 하는 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거다. 그렇다면 ‘내가 돈이 하나도 없을 때 나는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인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88만원 세대는 돈의 가치를 받아들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랑을 못 받는다고 확신한다. 그러니까 이들의 문제의식은 인간적 가치의 회복이 아니라 돈을 어떻게 더 많이 벌 것인가다. 88만원 세대는 880만원을 벌고 싶어 하지만 슬픈 사실은 이들이 돈의 가치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다는 거다. 우리 시대에 돈의 가치를 인간보다 밑에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3. 우아한 삶은 사랑하는 삶

인간적 가치는 우아한 거다. 돈이 있어서 유지되는 우아함은, 그저 우아한 소비일 뿐이다. 진짜 우아함이란 그런 게 아니라 견디는 거다. 눈물이 흐르지만 웃는 것이고, 배가 고프지만 추한 음식, 먹다 남은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이다. 동물적 가치를 벗어나기 위해 저항하고 버티는 거다. 그런 게 멋있고 우아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본인이 배가 고파도 그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다. 혼자 남아 있으니까 자본의 노예가 되는 거다. 불안하니까. 우아함의 가치를 배우려면 사랑을 해야 하고 그 사람을 아껴줘야 하는 거다. 그 사람이 다리가 없으면 다리가 되어주고, 그 사람이 아프면 밤을 새워 곁을 지켜주는 게 우아하다. 요즘 제대로 사랑을 하는 사람이 없다.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돈과 나와의 관계만 있다. 경제력이 있어야 사랑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무언가로 무장하려고 한다. 사랑도 파티 가는 두 남녀처럼 피상적으로 하는 거다. 꼭 이성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한 아이에 대한 사랑이든,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이든… 진짜 사랑은 자기 카드를 다 던지고 만나는 거고, 우리를 아주 비범하게 만든다. 그걸 할 줄 모른다는 건 우리 사회에 어른이, 성숙한 인격이 없다는 거다. 뚱뚱한 중년 여자가 명품 화장품과 명품 가방으로 무장하는 건 우아함이 아니라 추한 모습이다.

4. 외모를 꾸미지만 내면이 텅 빈 사람들

외모는 중요하다. 시각은 한 사람을 만나는 첫 단계이기 때문에 외모가 좋은 건 굉장히 소중하다. 그런데 사람과 더 가까워져서 서로 껴안으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매력적이라는 가장 마지막의 행위는 포옹이다. 가까워질수록 비시각적인 영역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에너지가 100이라고 하면, 지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시각적인 데 90퍼센트 이상을 쓰고 있다. 사실 거꾸로 되는 게 맞다. 나이 들어서 거울을 보고 신경 쓰는 건 자기 속이 비어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불행하다. 첫 만남에서 아무리 매력적이라도 두번 세번 만나면서 감수성도 없어, 타인을 이해함도 없어… 그저 나르시스처럼 자기 예쁨에 취해 있을 뿐이다. 그런 사람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시각적인 것과 비시각적인 요소, 이걸 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시각적 요소에 집중하는 게 자본주의의 속성이라는 점이다. 물건을 사고 고른다는 건 어떤 첫 이미지에서 이성을 고르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을 유지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 소유의 대상이다. 사람 마음은 가질 수 없지만 몸은 가둬놓을 수 있다. 돈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순간 시각 세계, 외모 세계로 들어가는 거다.

5. 왜 시를 읽어야 할까?

시라는 건 한 사람을 읽어내는 거다. 시는 그 사람이어야만 쓸 수 있는 글이다. 시가 어려운 건 추상적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알아야지만 이해되고, 시를 통해서 그 사람의 내면에 들어가는 거다. 시를 읽는 사람은 나와 완전히 다른 타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철학자지만 시에 대한 책을 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시인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타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자는 거다. 타인을 읽어내려는 노력을 복원하는 거다. 누군가를 알려는 노력에서 출발해서 타인을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겠지. 그게 자본주의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이기도 하고. 시는 그런 거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노력하는 게 인간의 모습이라는 거다. 참는데 눈물은 나고 참는데 꼬르륵 소리는 나겠지만 슬픔을, 배고픔을 견디는 거다. 우아하게.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엄삼철, 김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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