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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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룡 옴므의 2012 S/S 쇼 직전, 쇼장에서 만난 디자이너 김서룡과 옷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어느새 이야기는 그의 일상을 채운 순수한 즐거움에 대한 소회로 넘어가고 있었다.

1. 자신의 시그너처 룩을 입은 디자이너 김서룡. 2. 김서룡 옴므의 2012 S/S 컬렉션.

1. 자신의 시그너처 룩을 입은 디자이너 김서룡. 2. 김서룡 옴므의 2012 S/S 컬렉션.

오늘 쇼의 주제가 ‘오! 달링’이다.
여름의 해변가, 그곳을 노니는 연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래서 총 36벌 중에서 여성복의 비중을 늘렸고, 커플 룩은 아니지만 옷을 나눠 입은 느낌으로 여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가볍고 로맨틱한 수트를 만들었다.

김서룡 옴므의 옷은 부드럽고, 편안한 동시에 베이식한 요소가 두드러진다.
미술을 공부해서 그런지 구조적이고 균형적인 요소들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실루엣과 핏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패턴 공부를 계속 하고 직접 내 손으로 모든 패턴을 만든다. 그래서 조금 더 타이트하게 하거나 소매 길이를 살짝 더 늘리는것 같은 약간의 차이에 민감하고, 결과적으로 내 옷을 모델이 입었을 때 ‘괜찮네’ 정도가 아니라 ‘참 잘 맞네’라는 느낌이 나오길 바란다.

김서룡 옴므의 수트에선 정통 영국식보다는 이탤리언 수트의 느낌이 더 난다. 여유로우면서도 위트 있는 테일러링이 강점인데,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 옷은 얼핏 보기에는 정숙해 보이지만 좀 더 날렵한 느낌이 드는 면에서 이탤리언 수트에 가깝다. 반면에 바지 폭은 이탤리언 스타일의 짧고 좁은 스타일보다는 좀 더 와이드하고 여유로운 핏을 추구한다. 사실 수트만 가지고 매 시즌 쇼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이 부분에서 리듬감을 가지고 새로움을 주기 위해 옷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결정짓는 팬츠의 핏을 변화시킨다. 그 예로 S/S 쇼에선 시즌을 고려해 발목이 보이면서 타이트하진 않지만 날씬해 보일 수 있는 핏의 팬츠를 선보였다.

이번 쇼에서 수트 외에 집중한 부분이 있다면?
데님 소재를 선보였는데 데님을 이용해 포멀함을 더한 턱시도 셔츠를 디자인하거나 데님 팬츠를 기존의 진 스타일이 아닌 여유로운 핏의 일반적인 팬츠 스타일로 구성해보았다. 참, 자수를 시도해 ‘darling’이라는 글자를 셔츠에 심플하게 표현해 포인트를 주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마음에 든다.

요즘 서울에도 멋쟁이 남자들이 가득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멋진 남자의 룩은 어떤 건가?
요즘 옷을 참 잘 입었다는 생각이 드는 남성이 많지만 정작 먼지 하나 안 날릴 듯한 완벽함은 어색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옷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고, 옷을 내 몸처럼 여길 수 있는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모습이 아닐까? 유럽의 멋쟁이들처럼 말쑥한 수트 차림으로 편안하게 거리에 앉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연스러움 말이다.

디자이너 레이블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 어렵지는 않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는 아닐지라도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 차별화된 옷은 존재해야 한다. 만드는 과정에서 좀 더 손이 많이 가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기에 디자이너로서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게 된다. 수트는 이정도 퀄리티는 지녀야 내 이름을 걸고 나갈 수 있다라는 그런 고집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 고집을 믿고 내 옷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내 옷을 이렇게 대했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점은?
그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신경 쓰고 나가야 할 중요한 순간에 선택할 수 있는 옷이었으면 한다.

이번 개인 쇼는 현대식 막걸리 바라는 이색적인 장소에서 열린다. 이 장소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같은 흰 수트라도 선보이는 장소가 달라지면 다른 느낌으로 보이는 법이다. 오늘 같은 경우에 S/S 컬렉션의 의상과 어우러지는 막걸리바, 그러니까 외국으로 치면 와인 바에서의 쇼를 선택해 한여름에 가벼운 마음으로 휴양지에 와서 즐기는 수트라는 분위기를 어필하고 싶었다. 그래서 쇼를 마친 후에는 이 장소에서 흥겨운 애프터 파티를 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꼭 한 번 쇼를 해보고 싶은 장소는?
시골의 초등학교에서 마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선보이는 쇼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아마 시골 주민들에게는 패션쇼가 평생 처음 보는 매우 낯설고도 새로운 경험일 것이다. 그러려면 패션 에디터들을 태울 버스도 대절해야 할 테고(웃음).

평소 여가 생활은 어떠한가?
디자인 영감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것 같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주로 술 몇 잔으로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의미가 뭘까, 왜 이 일을 즐거워하고 있나 하는 생각들 말이다. 디자인을 잘해서 일등해야지가 아니라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해야 나답게 하는 일이고 바르게 하는 것인지를 고민한다.

이러한 디자이너의 넉넉한 마음을 닮은 김서룡 옴므의 옷에선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배어나오는 것 같다. 그래도 쇼를 준비하다 보면 예민해 지지 않나?
전혀. 쇼를 할 때는 오히려 덜 바쁘다. 만약 의상이 몇 벌 부족해서 밤을 새워 옷을 만들어야 할 경우가 생기면 옷을 덜어내는 쪽을 택한다. 스태프들이 지치지 않고, 나 자신을 소모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런 맘이면 일등은 절대 할 수 없겠지만(웃음). 그래야 다음 쇼도 부담 없이 더욱 결속감을 갖고 준비할 수 있다. 물론 쇼 날짜가 다가올수록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도 있고.

마지막 질문이다. 이번 쇼에서 눈여겨봤으면 하는 점은 무엇인가?
‘남성복 디자이너가 만든 여자의 수트도 입을 만하구나’라는 느낌을 받기를 바란다.

에디터
박연경
포토그래퍼
엄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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