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포드가 돌아왔다. 우리가 고대하던 바로 그것, 여성을 배려한 최고의 컬렉션으로.
만나서 반갑다. 당신의 열혈 팬이다. 우린 이미 어제 새로 오픈한 당신의 상하이 매장과 페닌슐라 호텔에서의 프라이빗 디너에서 만났지만 말이다.
기억한다. 당신 셔츠가 멋지다.
고맙다. 우선 당신이 선보인 첫 번째 컬렉션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동 그 자체였다. 컬렉션 동영상을 10번쯤 연속해서 본 것 같다. 이번에는 당신의 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뉴욕에 갔는데 2011 F/W 쇼는 런던에서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선보였더라. 그런데 다음 시즌부터는 프레젠테이션조차 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인가?
아니다. 톰 포드 컬렉션은 매년 지속적으로 작은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소수의 에디터를 초대해 제품이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설명하고 디테일을 보여줄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형식의 쇼 말이다. 매거진 위주로 하고 신문이나 인터넷 미디어는 진행하지 않을 생각이다. 지난번 런던에서는 10명의 사람들을 초대해 쇼를 진행했는데 이것을 20회나 반복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컬렉션은 한 쇼마다 30명 정도를 초대해 4~5번 반복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당신의 아름다운 쇼는 볼 수 없는 것인가?
이것은 톰 포드 브랜드에 알맞은 작은 형태의 쇼다. 쇼이면서 쇼가 아닌 프레젠테이션 방식을 취한.
나는 이 인터뷰가 끝나면 곧바로 톰 포드 의상으로 두 주앙과 화보를 촬영할 예정이다. 그래서 2011 F/W 컬렉션을 이미 룩북을 통해 보았는데 컬렉션이 더 글래머러스하고 슬릭해졌으며 섬세해졌더라. 한 마디로 더 톰 포드스러웠다. 이번 컬렉션 역시 당신의 근사한 뮤즈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인가?
내 인생에서 뮤즈는 정말 다양하고 그들은 내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대부분의 뮤즈들이 나와 아주 친밀하다. 카린 로이펠드도 그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로 나의 오랜 친구다. 리즈 아이즈너, 페르난데스 등도 빼놓을 수 없고 아주 오래된 뮤즈도 있는데 바로 나의 어머니와 할머니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나는 매번 이 디자인은 어떤지, 저 디자인은 어떤지 내 뮤즈들에게 물어보곤 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강한 퍼스낼리티를 지녔으며,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일도 열심히 하고, 아이들과 가족도 잘 돌볼 줄 아는 강한 여성들이다.
카린 로이펠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당신과 카린은 놀랍도록 유사한 취향을 지
녔다. 둘이 함께했던 구찌 시절은 단연 최고였고, 최근 함께 만든 파리 <보그>도 내가 좋아하는 에디션 중 하나다. 그녀가 파리 <보그>를 떠난 지금 다시 그녀와 일할 마음은 없는가?
우리는 매우, 매우 닮았다. 물론 지금도 같이 일하고 있다. 최근 완성한 캠페인도 함께 만들었다. 시간이 될 때마다 얼굴을 보는 사이며, 지금도 공유하는 것들이 아주 많다.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후에 나이가 들어 아무도 우리를 찾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같은 고객들 사이에서 공존하고 있다.
패션에 있어 나쁜 취향과 좋은 취향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나쁜 취향을 이야기한다면 ‛태도’의 문제이지 ‛패션’의 문제는 아니다. 레스토랑에서 뭐가 이렇다 저렇다 소리지르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정말 나쁜 취향을 지녔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로 판단되는 것이다.
다시 컬렉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당신이 옷을 소개하는 방법, 옷을 공개하는 방법에 놀랐다. 고객에 대한 톰 포드식 접근 방식이야말로 ‘신 럭셔리’라고 느껴졌다. 현대 패션에 있어 진정한 럭셔리란 당신에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신 럭셔리는 제품을 아름답게 만들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비스란 고객을 케어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많은 브랜드가 스스로 럭셔리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고객을 배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고객의 집을 방문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기꺼이 뭐든지 하려 한다. 그를 위해 특별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면 최선을 다해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퀄리티 역시 단연 최고라 자부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 사람들은 내게 옷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묻는다. 난 25년이란 시간 동안 옷을 디자인해왔고 비싸지 않은 브랜드도 만들어보았다. 그러나 내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어떤 것이 가장 좋은 패브릭인지, 어떤 스티치가 최선인지, 어떤 형태를 만들어야 여성의 몸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지였다. 최상의 퀄리티, 가장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다 보니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 그러나 사람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것이 얼마든지 투자한다.
맞는 얘기다. 실은 서울의 갤러리아 백화점에 있는 당신의 매장에 가보고 내가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몹시 슬펐다. 그리고 이 정도 가격이라면 고객들의 연령대가 꽤 높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럭셔리 브랜드들은 젊어지려는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당신은 그런 것에는 초월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떤가?
보통 톰포드 브랜드를 구입할 수 있는 여성의 나잇대는 35~45세라고 할 수 있지만 다양한 연령대에 열려 있다. 25세의 여성이라도 아버지가 부자거나, 남편이 부자면 내 옷을구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그런 여성들은 의외로 많다(웃음). 또 몸매를 아름답게 관리했다면 70대 여성도 내 제품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 말이 맞다. 25세의 여성이 톰 포드 옷을 살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입기에는 아직 조금은 미성숙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들도 성인이고 원한다면 얼마든지! 내가 구찌에서 일할 때보다는 더 성숙해졌기 때문에 디자인도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참고로 나는 이제 60세가 됐다.
정말인가? 믿을 수 없다.
하하하. 농담이다. 이번 여름에 나는 50세가 된다. 나는 가끔 사람들에게 이런 농담을 한다. 대부분 어떻게 이렇게 어려 보일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이는데 그것이 재미있다.
깜짝 놀랐다. 내일 모레가 50세라지만 당신은 그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그런데 내가 당신 매장을 보고 놀란 것이 또 하나 있다. 사실 당신의 쇼를 보며 매장엔 어떻게 변형된 제품들이 나올까 궁금했는데 진열된 옷들이 모두 쇼에 나온 의상이더라. 어떤 디자이너들은 과장된 의상이 이미지상 쇼에 필요하다하고 또 어떤 디자이너들은 매우 커머셜한 의상만 쇼에 세운다. 당신은 어느 인터뷰에선가 ‛팔리지 않는 옷은 쇼에 올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다.
나는 과장된 의상은 만들지 않는다. 내 컬렉션은 대부분 팔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지난번 쇼는 규모가 작았지만 당신이 룩북에서 본 2011 F/W 쇼는 좀 더 규모가 크고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인 것이다. 첫 번째 쇼는 내가 제작한 영화 <싱글맨> 때문에 오스카 시상식과 시기가 겹쳤기에 3개월 안에 모든 것을 진행해야 했다. 심지어 8월 말에는 이탈리아가 쉬는 기간이어서 본격적인 작업은 9월부터 시작해야 했기에 작은 규모의 컬렉션을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거짓스러운 쇼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프레스를 위해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고객을 위해, 여성을 위해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컬렉션을 보며 느낀 건데 이브 생 로랑의 컬러가 조금 묻어나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웃음). 이브 생 로랑이 아니라 톰 포드의 이브 생 로랑이라 해야 한다. 그렇지 않나? 그건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당신의 말도 맞다. 우리가 여성을 바라보는 비슷한 관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내가 이브 생 로랑에서 일할 때부터 좀 더 성숙한 느낌의 여성복을 만들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좀 덜 섹슈얼하고, 좀 더 센슈얼한. 그래서 그때의 느낌이 톰 포드에 연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이브 생 로랑이 아닌 톰 포드란 브랜드가 되었다.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있나?
정말 많다. 코코 샤넬이 가장 대표적이다. 또 옷만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최초로 글로벌한 브랜드를 만든 랄프 로렌, 70년대 말~80년대 초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조르지오 아르마니도 무척 존경한다. 칼 라거펠트,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알렉산더 매퀸, 스텔라 매카트니 등도 그렇다. 또 내가 구찌 그룹에 연결해준 스테파노 필라티, 캘빈 클라인에서 내 어시스턴트였던 프랜시스코 코스타, 버버리에서 어시스턴트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 등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디자이너들이 배울 점을 지녔다.
당신이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90년대와 톰 포드 브랜드를 하고 있는 2011년의 패션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나?
세상도 트렌드도 많이 달라졌다. 90년대는 80년대의 불경기에서 벗어나 패션이 대중들의 관심 대상으로 부상한 시기다. 그래서 90년대 중반에 내가 패션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재미, 섹스, 자유 등이었다. 또 그 당시에는 나도 어렸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잘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섹스’라는 주제는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모델이 옷을 반쯤 벗는 것 정도는 아베크롬비 광고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됐다. 90년대 중반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었고, 수많은 정보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것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이 끝나는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자신의 개성에 맞는 것을 찾고, 개인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갖는 시대다. 나 역시 남들과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지금 나는 ‘섹슈얼리티’보다는 ‘센슈얼리티’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여성이 가장 센슈얼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여성이 스스로 가장 편안하다고 느낄 때. 자신감을 갖고 릴랙스해지며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느낄 때다. 만일 하루 종일 일하느라 피곤하고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며, 단 5분을 자신을 위해 쓸 수 없어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면 그녀는 전혀 센슈얼할 수 없다. 적당히 낮잠을 자고, 욕조에 몸을 담가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할 때, 당신은 센슈얼해진다.
대부분의 디자이너에겐 전성기도 있고 슬럼프도 있다. 그러나 당신에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나올 것 같은 기대감이 있다. 영화 <싱글맨>도 감명 깊게 보았고, 당신이 촬영한 사진들도 흥미롭다. 당신은 왠지 더 큰 계획을 품고 있을 것만 같은데 톰 포드란 이름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이 내게 왜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나는 “재미있어서”라고 답한다. 나는 인생이 항상 재미있으면 좋겠고 신나는 일이 생기길 바란다. 나는 호기심이 많고 진취적이어서 무언가를 하다 싫증을 느끼면 다른 재미있는 일을 또 시도한다. 드레스부터 코즈메틱, 향수, 영화, 사진 등 무언가를 창조해서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너무 좋다. 물론 일 외에 승마, 스키 등 스포츠를 즐기는 것도 좋아한다. 톰 포드라는 이름으로 내가 이루고 싶은 건 샤넬이나 에르메스 정도 크기의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 나중엔 시계도 만들고, 주얼리도 만들고 싶고 3~4년에 한 번씩 영화도 찍고 싶다. 개인적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이런저런 목표가 너무 많다.
25년이란 세월동안 패션을 하면서 당신이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일을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을 할 때는 항상 열정적이어야 한다는 것. 만약 내가 열정을 잃는다면 그것이 내 패션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을 할 때 그것을 사랑하고 열정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외딴 농장에서 나뭇잎을 옮기는 벌레를 보는 일, 고요함에 귀 기울이는 일, 말을 타는 일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당신이 구찌 컬렉션을 할 때 일년에 16번의 컬렉션과 너무 잦은 출장으로 패션이 지겨워졌던 것처럼 어느 날 모든 것을 뒤로하고 자연에 파묻혀 지내는 날이 올까 두렵다. 헬무트 랭처럼 말이다.
그와 나는 다르다. 헬무트 랭은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도시와 자연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지속하며 조화를 이루려고 한다. 내 생활은 변화의 연속인데 다음 주에는 뉴멕시코에 가서 말을 타며 시간을 보낼 거고, 그 다음 주에는 다시 런던에 갈 것이며, 7월에는 강에서 보트를 타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거다. 아마 텐트를 치고 야외에서 자겠지. 나는 생활 속에서 ‘밸런스’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최근 디자이너들의 다큐멘터리가 유행인데 당신의 흥미로운 인생도 다큐멘터리로 만나게 될까?
No. 나는 나를 소개하는 것이 싫다. 차라리 영화를 만들 것이다. 사실 난 인터뷰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디자인을 표현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만. 난 내가 좋아하고 더 잘하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
절대로 찍지 않을 건가?
만일 나중에 나이가 든다면 어떨지 모르겠다. 그것도 나이가 정말 많을 때.
앞서 이야기했던 당신의 뮤즈이기도 한 할머니 사진을 어느 잡지에선가 본 적이 있다. 화려한 가운을 입고 있는 자태가 할리우드 스타인 줄 알았다. 대단한 멋쟁이더라. 당신이 10살 때부터 할머니가 를 구독한 덕분에 어린 나이부터 패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패션에 눈뜬 것은 그녀 덕분인가?
할머니는 매우 멋진 분이셨고 내게 스타일을 만드는 공식을 알려주셨다. 할머니가 항상 를 구독했기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패션 매거진이란 것을 접할 수 있었다. 나는 패션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할머니 덕에 그것을 접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얻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재능을 타고나는 것 같다. 내 재능은 패션에 있었고. 내 조카의 경우에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말한 단어가 바로 ‘슈즈’였다. 엄마도 아빠도 아닌 “슈즈”라니… 내 조카는 이제 13살이 되었고 패션에 무척 관심이 많다. 하지만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물건이 슈즈라는 것이 신기하지 않나? 물론 그 슈즈가 구찌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하하.
당신의 재능이 선천적이라고 생각하나?
음. 나는 그렇게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선천적이지 않나.
이브 생 로랑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피에르 베르제가 ‘명성은 눈부시면서도 슬픈 행복이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일까. 당신이 행복한지 묻고 싶다.
행복하다. 행복해 보이지 않나? 모든 것이 잘 돼가고 있다. 나도 건강하고, 부모님 두 분 모두 살아계시고, 나의 개 두 마리도 건강하며, 누나들도 자주 만난다. 커리어도 잘 쌓아가고 있고, 멋진 집에서 살고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평화롭다. 하루하루가 즐겁다. 물론, 컴퓨터가 고장 나거나 하는 사소한 것들로 가끔 골치를 썩기도 한다(웃음). 그러나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나면 결국 인생의 좋은 레슨이 되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맙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오늘 이렇게 와줘서 내가 고맙다. 당신이 행복해 보이는 것도 내가 행복한 이유 중 하나다.
- 에디터
- 김석원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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