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천일 동안

W

짝사랑하던 선배가 군에 다녀와 복학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3년 만에 돌아온 김남진에게 잘 지냈느냐는 안부를 건네고, 여전히 멋있다는 인사는 삼켰다.

3년 만이다. 무엇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나?
본능적으로 쉬어야 하는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높이 오르고 오래 달리면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넓어졌다. 여행을 다니고 좋은 사람을 만나 긍정적인 얻는 시간이었다. 일에 대해 나에 대해 한 발짝 물러서서 스스로 자정작용을 가동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연극으로 돌아왔다.
연극이란 장르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 나는 연극영화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모델 일을 하다가 배우가 되었으니까. 연기력을 키우려면 연극을 꼭 거쳐야 한다고 권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그때는 몸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컷으로 분할되지 않은 채 두 시간에 가까운 라이브로 관객 앞에서 보인다는 게, 자신을 완전히 까발린다는 느낌이었다. 연습을 하면서 그 두려움은 해소되었다. 대사가 아니라 내 몸이 움직임으로 말을 한다는 게 느껴졌다.

연극을 하면서, 당신은 바뀌었나?
영화나 드라마를 할 때는 다들 배우를 떠받들어주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연극 연습 때는 매일 주차비를 내면서 혼자 다녔다. 그런 게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주차비 1만5천원을 아까워하는 내 자신을 만나는 거 말이다. 그전의 나는 삶에 대해 관심이 좀 없었던 것 같다.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고, 나에 대한 궁금증도 용납하지 않으며 거리를 두려 했다.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필요에 의해서라도 삶에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의 삶과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과정이다.

비로소 철이 나기 시작한 사람의 고백으로 들린다.
살면 살수록 더 어려운 것 같다. 어릴 때는 아니다 싶으면 내가 증발해버리면 그만이지만 나이 들면서 책임과 의무가 생기니까.놀 궁리가 많은 20대였다면 이제는, 일을 그만큼 해야 더 재밌는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릴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이제 첫 무대를 올렸는데 기분이 어떻던가?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에선 기껏해야 4대의 카메라 앞에서 움직였다면 사람들 눈 하나하나, 수백 개의 렌즈 앞에 있는 것 같았다. 쇼장에서 런웨이를 걸을 때처럼 객석이 다 보였다. 관객들과 에너지를 주고받는다는 걸 확실하게 느꼈다. 연극배우란 마치 음계가 없는 가수 같다. 한 번 찍고 나면 그만이 아니라 똑같은 걸 다음 날 다시, 그러나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마치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옷을 갈아입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자명서도 연극 꿈을 꾸고 대사를 말한다.

<카사라기 미키짱>은 스타덤과 팬덤, 본 적 없는 이를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감정에 관한 이야기다. 당신의 인생과도 조금 닿아 있을 것 같다.
스톰 모데링 되고 나서 99년 군대 가기 전까지 정말 많은 편지를 받아봤다. 인터넷 세대가 아니었으니까. 그 편지들, 그 마음들을 여전히 간직하고 기억하는 동시에 떠나보낸 지금이, 나는 좋다. 이 일이 지금 나에게 와주었다는 게 고맙다.

8년 전 인터뷰에서 만난 당신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청년이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리뷰를 읽고 10권을 산다. 다섯 권을 읽고, 나머지 다섯 권은 갖고 있다 보면 언젠가 나에게 읽혀지고 다가온다. 혜화동으로 택시를 타고 연극 연습을 가던 날, 하늘은 우윳빛이고 차 안에서는 클래식이 들리는데 하루키 소설의 도입부가 떠올랐다.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흘러나오고, 아오마메가 차에서 내려 꽉 막힌 고가도로를 빠져나가는 장면이 포개졌다. 나도 비상 계단을 타고 어디론가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를테면 1984에서 1Q84의 세계로. 그렇게 삶 속에 소설이나 음악이나 영상 같은 것이 늘 스며들어 있다.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유영규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