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 예고편요? 재미있겠는데요?” 서울 컬렉션을 한 달여 앞둔 어느 날, 더블유는 디자이너들에게 무비 트레일러처럼 2011 F/W 서울 컬렉션 전에 미리 공개할 예고편을 ‘직접’ 촬영해달라는, 다분히 무리한(?) 부탁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뜨겁게 화답했고 1분 1초까지 나누어 쓰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이렇듯 어엿한 결과물을 보내왔다. 이것은 이른바 전무후무한 ‘패션쇼 예고편’!
나는 가짜지만 진짜다
테마: Fur is Over
기획, 촬영, 편집: 푸시버튼 박승건
모델: 아름
인간은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한편으론 모피를 욕망한다. 본능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마련이니까. 다분히 이율배반적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가짜’로 치부할 수 있을까? 이번 시즌 푸시버튼 컬렉션의 테마이자 주요 재료인 페이크 퍼는 그저 동물 사랑에 대한 신념을 실천하거나 진짜 퍼를 사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대용품이 아니다. 진짜 퍼를 좇아 만든 카피캣이 아닌,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 물론 페이크 퍼를 컬렉션의 주재료로 삼으면서 브랜드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건 아닐까,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번 시즌 컬렉션을 통해 페이크 퍼를 도덕성과 이기적인 욕심이 모두 내재된 인간의 면모를 솔직하고, 아름답게 보여주는 매개체로 삼았다. 그래서 이번 예고편에도 관능적인 듯 순수하고, 순수한 듯 관능적인, (어느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인간과 퍼의 모호한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I’m not real. But I’m real.” 이것이 바로 이번 시즌 컬렉션의 가짜지만 진짜이기도 한 페이크 퍼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다.
따로 또 같이
테마: Naughty Luxury
기획 및 촬영: 임선옥
편집: 표기식
모델: 김정하
본디 옷은 여러 개의 조각을 이어서 만든 결과물.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완성된 하나의 얼굴만을 본다. 만약 옷을 이루는 부분들을 해체한다면? 각각의 조각이 하나씩 몸에 더해질 때마다 서로 다른 표정의 패션이 탄생한다. 나는 이 예고편을 통해 해체되어 있던 조각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담고자 했다. 여기서 각 아이템들은 옷의 일부분인 동시에 그 자체가 완성된 하나의 존재로 이는 마치 몸의 부분적으로 따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마리오네트 인형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모델을 흡사 인형처럼 꾸미고, 인형에 종이옷을 하나씩 입히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열정을 배달합니다
테마: Beyond Closet Moving Company
기획: 비욘드 클로짓 고태용
촬영 및 편집: 박준호
영감은 먼 곳이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곳은 매일 저녁 5시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혼돈의 장소, 나의 쇼룸이다. 하룻동안 고객에게 주문받은 제품을 포장하고 택배로 부치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비욘드 클로짓의 쇼룸은 이삿짐센터로 탈바꿈하기 때문. 나는 가장 분주하고 열정적인 시간을 2011 F/W 컬렉션의 테마로 삼았고, 이 예고편 영상을 통해 그 광경을 다이내믹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 패션으로 치환되는 바로 그 순간!
나를 비우다
테마: I am feeling the breath of the man
기획: 신재희
촬영: 김영준
편집: 표기식
모델: 노장렬
지금 우리는 꾸밈과 과장으로 휩싸인 나머지 점차 본연의 인간성을 잃어가는 현실에 놓여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패션은 인간을 포장하고 꾸미는 역할에 충실한 ‘도구’지만 나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그 선입견을 거두고 싶었다. 패션이 곧 인간의 순수성과 따뜻한 심성을 드러내는, 일종의 ‘창구’ 역할을 하는 것. 그래서 천연 염색으로 표현한 모노톤의 러프한 면과 울 소재로 만든 느슨하고 정제된 실루엣의 룩을 중심으로 인간의 원초적이고 순수한 모습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이 예고편에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꾸밈 없고 섬세한 이미지를 드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를 위해 ‘무’를 상징하는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인물이 플래시가 터지는 찰나, 꾸밈 없지만 섬세한 모습을 드러내는 영상과 역시 ‘무’에 가까운 나체에서 점차 옷을 걸침에도 여전히 채워지기보단 비워진 듯한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보고, 듣고, 느끼고, 만들고
테마: The Great Mix
기획 및 촬영: KALL 이석태
편집: 표기식
일상은 내게 무한한 영감의 보고다. 이 예고편은 이번 2011 F/W 컬렉션을 준비하던 중 어느 하루를 다큐멘터리 형식에 담은 것으로 카메라가 비추는 앵글은 내가 바라보는 시선과 일치한다. ‘The Great Mix’라는 주제의 이번 시즌 컬렉션은 이렇게 매일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요소들이 한데 모인 결과물로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에 흩어져 있던 영감을 자연스럽게 취합하고 선택하여 1990년대 특유의 스타일링 방식으로 조합한 것이다.
무대 뒤에서
테마: Circus
기획: 곽현주
촬영 및 편집: 권영호
모델: 지호진
이번 컬렉션은 매혹적이고 화려하지만 동시에 어쩌면 그 누구보다 외롭고 쓸쓸한 존재인 서커스의 무희를 뮤즈로 삼았다. 레드 커튼을 배경으로 핀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위에선 뜨거운 열광의 대상이지만 반면 무대 뒤에선 그저 정글처럼 치열한 삶과 싸우는 여자. 그래서 서커스 무대복 특유의 관능적이고 화려한 글램 룩에 거칠고 강한 밀리터리 룩적인 요소를 가미해 상반된 이미지를 동시에 담았다. 그래서 이번 예고편에는 런웨이에서는 미처 표현하기 힘든, 무대 뒤편에서 쇼를 준비하는 무희의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이번 컬렉션의 주제를 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사춘기에 매혹되다
테마: arrested Adolescence
기획 및 촬영: 스티브 J & 요니 P
편집: 표기식
억압된 사춘기(arrested adolescence). 이번 F/W 컬렉션의 테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과도기를 겪고 있는 사춘기 소녀의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 사회에 대한 반항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도구는 ‘블랙 페인팅’인데 거친 붓터치로 완성하는 회화적인 프린트 기법은 우리를 상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F/W 컬렉션에 등장하는 블랙은 단조롭고 우울한 이미지에 갇혀 있지 않다. 화이트를 가미함으로써 우리가 미처 몰랐던 블랙의 다이내믹한 매력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냈기 때문. 고로 이 예고편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사춘기 소녀들을 위한 스티브 J & 요니 P 의 이번 시즌 메인 프린트를 무성영화 기법을 빌려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에디터
- 컨트리뷰팅 에디터 / 송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