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자는 세계적인 셰프 장 조지의 아내다. 몸의 절반에는 한국의 피가 흐르고 있으며, 위의 절반 이상은 한국의 맛에 닿아 있다. 그녀가 친구 헤더 그레이엄과 함께 한국에 와서, 파전이며 비빔밥을 나눠 먹었다. 처음은 아니었다.
10번 이상 왔다고 하지만, 이번 방문은 한국 음식을 알리기 위한 촬영이목적이라 더 특별할 것 같다. 이번에 한국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게 있나?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전에 가족과 여러 번 왔지만 이해하기에는 언어적 장벽이 있었다. 어머니가 영어를 완벽하게 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세하게 설명하기 어려웠을 거다. 이번 방문에서는 특히 한식 전문가와 동행하면서 한국 음식과 문화에 대한 많은 지식과 존경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속해 있는 긴 역사와 뿌리에 대해 지식을 얻고 소속감을 느끼는 기회였다.
모든 한국계 외국인들이 당신 같은 태도를 가지는 건 아니다. 한국적인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어린 시절 한국에서 지낸 기억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몹시 행복했다. 다른 혼혈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밝은 유년을 보냈다. 그래서 미국에 살면서도 항상 한국에 대한 그리움, 내 가족을 찾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찍으면서 어딘가에 속한 듯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세 살 때까지 한국에서 지내다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모국에 대한 어떤 기억을 갖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같은데.
엄마와 빨래터에 가서 커다란 방망이로 옷을 두드리던 일, 바위 틈에서 물을 첨벙대며 놀던 일, 이불을 빠는 엄마를 거들어 밟던 일이 생각난다. 열 살 때 일은 기억나지 않는데 유독 세 살 때가 생생한 건 나도 신기하다. 남산에 놀러 가서 레스토랑이 빙글빙글 돌아가던 것도 기억나고, 산성 같은 데 올라서 성벽에 구멍이 뚫려 있는 전망대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던 일도 조각조각 드문드문 떠오른다. 어제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을 구워 먹을 때 연탄불을 지폈는데, 그 냄새도 어릴 때 기억의 일부다. 좋은 냄새는 아니지만 맡으면 따뜻해진다.
한국 음식을 워낙 잘 먹고 즐기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나?
제일 좋아하는 건 갈치조림이다. 남대문 시장에서 먹은 게 최고였다.
그렇다면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즐겨 만드는 한식 메뉴는 무엇인가?
빈대떡이다. 녹두 자체는 보잘것없지만 물에다 넣으면 부피가 두세 배 늘어난다. 그걸 갈아서 단순한 채소 같은 걸 넣어서 지져냈을 때, 메마른 녹두에서 그런 맛이 나온다는 자체가 신기하고도 근사하다. 사회적인 직위나 경제적 계층을 다 떠나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인 것 같다. 남편도 무척 좋아한다.
꿈보다 해몽이다(웃음). 당신이 요리하고 등장하는 한국 음식 요리책이 편집 단계에 있는데 그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전달하려는 점은 무엇인가?
한식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어권 사람들이 쉽게 만들 수 있게 소개하고 싶었다. 한국 음식을 그냥 사서 먹는 것뿐 아니라 직접 만들어 먹기에도 편하고 맛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한식의 세계화가 지금
한국에서는 큰 화두이자 중요한 사업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이 스시, 야키니쿠 등 자국음식을 잘 포장하는 것에 비해 한국 음식은 이름도 어렵고, 마케팅을 잘 못한다는 점이 종종 지적된다. 당신은 말하자면 요리의 문화 사절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한국 음식을 해외에 소개하는 방식에 대해 어떤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나?
새로운 것을 발명하려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미국 사람들은 인도 음식, 태국 음식의 어려운 이름도 외워서 잘 주문할 정도다. 그건 그 음식을 접하는 빈도가 높아서다. 내 생각에 이건 음식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하고 익숙해지는 것의 문제인 것 같다. 미국인들은 충분히 불고기, 갈비, 비빔밥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다. 매체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이름을 익히면 말이나 뜻에 대해 거부반응이 없어질 거다. 빈대떡, 잡채 같은 음식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표기법의 일관성은 중요한 문제일 것 같다. 예를 들어‘된장’을 쓸 때 영어로는 어떻게 통일해서 표기하는가의 문제가 있고, 거기에 대한 설명 역시 마찬가지다. 메뉴에 표기할 때 철자를 한 가지로 정리하고 그 음식이 무엇인가 설명할 때도 일관되게 표준을 만들면 외국인들이 이해하기가 쉬울 거다. <김치 연대기> 같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될 거고.
장 조지는 본인이 요리사지만 집에서의 셰프는 아내인 당신이라고 얘기했다. 그를 위해 집에서 만들어주는 한국 음식은 무엇인가?
빈대떡을 참 좋아해서 여러 가지 재료를 바꾸어 다양하게 만들어준다. 김치가 들어간 걸 가장 좋아한다. 겨울에는 감자와 당근, 양파를 넣고 끓인 찜닭도 좋아한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가 레몬그라스랑 생강이라고 하더라. 당신은 무엇을 가장 좋아하나?
마늘, 그리고 고춧가루. 질 좋은 걸 구하기 위해 서울에서 사 가거나 가족, 친구들이 보내준다.
딸인 클로이는 1/4만큼 한국 혈통이 섞인 셈이다. 자신이 한국계라는 데 대한 어떤 인식이 있나?
물론 그렇다. 딸은 우리 엄마를‘담배할머니’라고 부른다. 엄마의 동생은‘이모할머니’라고 부르고. 아기 때부터 두 사람과 함께 컸다. 한국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기도 하다.“여기 사람들은 왜 다 나를 좋아하는 거야?”라고 묻는다(웃음). 아줌마들이 늘 뭔가를 주고, 귀엽다 예쁘다고 하니까 사람들에게서 편안함을 느끼고 좋아한다. 태어날 때부터 한국 문화를 접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아빠가 프랑스인이라 해서 프랑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TV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건 처음인데 어떤가?
어릴 적에 배우, 모델 일을 했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는 게 힘들진 않지만 이 프로그램은 완전히 다른 무엇 같다. 내 자신으로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 되기 때문에 편하다.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가 있나?
물론이다. 이 프로그램이 나에게 목소리를 준 것 같다.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을 만한 목소리. 내 뿌리를 찾았을 뿐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해야 하는 일에 대한 확신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앞으로 하고 싶은 건 어떤 일인가?
나는 언제나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 한국을 가깝게 느끼지만, 한국에서 나 같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방식, 심한 편견을 언제나 바꾸고 싶었다. 단지 나 같은 혼혈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와 계급, 교육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방식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한데, 내가 거기에 촉매제가 된다면 기쁘겠다. 사람들을 사람 자체로 보는 게 아니라 환경을 보고 판단하면 정말 멋진 점을 못보고 놓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인즈 워드는 내가 굉장히 존경하는 인물인데, 그가 후원하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뉴욕에 올 때 그를 위한 디너를 대접하기로 했다. 그의 엄마나 나의 엄마 같은 싱글맘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들은 거주와 직업의 기회를 얻어야 한다. 누구나 살면서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감히 그들을 손가락질하고 사회에서 배제한단 말인가? 아이가 입양되어 더 나은 삶을 찾는다고 할 때, 그‘나은 삶’이라는 걸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더 잘 먹고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는 동안 자기자신의 한 부분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를 통해서 그런 것들이 없어지기를 희망한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힘을 가지고 다문화가정뿐 아니라 싱글맘, 공부를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과 편견을 없애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울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하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한’이라고 하는 그런 것이 내 마음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촬영을 통해 그 한이 풀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찍으러 와서 한국 사람들에게 어디 가나 환영을 받다 보니 내 마음이 어루만져지는 기분이었고, 자부심이 더 높아졌다. 이런 방송이 나에게는 명성이나 지위를 얻는 의미가 아니다. 어릴 때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이 성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도와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신선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