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그의 아내, 그녀의 모국, 그 나라의 맛 PART. 1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요리사, 그의 아내, 그녀의 모국, 그 나라의 맛 PART. 1

2015-11-13T16:19:42+00:002011.01.07|피플|

마르자는 세계적인 셰프 장 조지의 아내다. 몸의 절반에는 한국의 피가 흐르고 있으며, 위의 절반 이상은 한국의 맛에 닿아 있다. 그녀가 친구 헤더 그레이엄과 함께 한국에 와서, 파전이며 비빔밥을 나눠 먹었다. 처음은 아니었다.

마르자는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세 살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어린 나이에 한국을떠났지만, 그녀에게는 빨래터나 연탄불의 기억과 함께 한국 음식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셰프 장 조지와 결혼한 그녀는 남편에게 무국이며 빈대떡 같은 한식을 만들어주고, 또 그의 요리에 한국적 터치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종종 한국을 방문해온 마르자는 이번에 미국 공영방송국PBS의 한국 음식 관광 다큐멘터리에 쇼 호스트 역할로 한국에 와 촬영을 마쳤다.

마르자는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세 살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어린 나이에 한국을떠났지만, 그녀에게는 빨래터나 연탄불의 기억과 함께 한국 음식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셰프 장 조지와 결혼한 그녀는 남편에게 무국이며 빈대떡 같은 한식을 만들어주고, 또 그의 요리에 한국적 터치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종종 한국을 방문해온 마르자는 이번에 미국 공영방송국PBS의 한국 음식 관광 다큐멘터리<김치 연대기>에 쇼 호스트 역할로 한국에 와 촬영을 마쳤다.

‘고향에서 뻗어 나온 가장 질긴 끈은 영혼에 닿아 있다. 아니, 위(胃)에 닿아있다.’ 마르자를 보며 일본 작가 요네하라 마리의 얘기를 떠올렸다. 촬영을 위해 만난 며칠 동안, 미국인 스태프들이 끊임없이 콜라를 찾을 때 마르자는 바나나 우유를 입에 달고 살았다. 엄마랑 목욕하고 나오면 젖은 머리칼에 빨개진 볼로 빨대꽂아 마시던, 바로 그 단지 우유 말이다. 그 모습은 절반이 한국인이지만 외모에서는 낯선 요소가 많은 그녀의 첫인상에서, 거리감을 확 누그러뜨렸다. 강원도 평창에 가 김장 담그는 걸 찍을 때 노란 배추 속잎에다가 버무린 양념을 올려서 싸먹는 마르자의 손끝이 야무졌다. 손가락을 쪽쪽, 맛나게도 빨았다. 한국에서 살던 세 살 이전의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는 걸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사실이건 혹은 후천적인 애정과 노력으로 가까워졌건 마르자의 한국 음식 사랑은 두텁다. 그녀의 위에도 분명, 한국으로 향하는 길고도 질긴 끈이 있는 것이다.

“내가 요리사지만,우리 집의 셰프는 내 아내입니다. 나는 집에서 그녀가 만들어주는 무국과 빈대떡을 즐겨 먹습니다.” 마르자의 남편인 세계적 셰프 장 조지는 몇 년 전 뉴욕에서 <W Korea>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3년간 한국에서 살았고, 미국으로 입양되어 간 후 이 프랑스인 요리사와 결혼했다. 미국의 방송국 PBS에서 한국 음식에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했다면, 이 프로그램의 쇼 호스트로 마르자만큼 적임자는 없어 보인다. 그녀는 부산 지역 음식인 밀면에 대한 소개를 촬영할 때, 외가가있는 속초의 막국수와 맛을 비교할 정도로 한국 음식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고있기도 하다. 장 조지와 그의 한국계 아내 마르자, 그리고 그녀의 친구인 배우 헤더그레이엄이 한국 방문의 해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배경은 대략 이렇다(마르자는 이번이 10번째가 넘는 한국행이었고, 남편 장 조지는 이미 5월에 그녀와 함께 다녀갔다). 그들의 발걸음을 쫓으면서, 전통 음식과 함께 여행지로서 한국의 매력을 소개하는 것이 이번 한국 음식 관광 TV 다큐멘터리의 취지. ‘김치 연대기(Kimchi Chronicles)’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내년 중 미국에서 방영되는데, 귀네스 팰트로가 스페인에 가서 역시 세계적 셰프인 마리오 바탈리와 함께 찍은 <스페인, 온더 로드 어게인>의 한국판인 셈이다. 마르자와 동행한 동래파전부터 김장김치까지의 여정은, 역사와 자연, 문화와 사람이 어떻게 녹아들어 한 그릇의 음식이 되는가를 확인하는 길이었으며, 그 한 그릇이 어떻게 누군가의 추억과 사랑과 정체성이되는지를 목격하는 경험이었다.

부산 개금 시장 안에 있는 밀면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마르자는 시장 물건들을 흥이 나서 구경하느라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다. 상인들을 ‘언니’라고 부르며 붙임성 좋게 이태리 타올이며 수면바지 같은 걸 사들였다. “ 반찬을 사서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배추 같은 걸 직접 다듬으려면 너무 힘든데 저렇게 깨끗하게 손질해서 파는 총각무를 봐요.” 그녀는 이태리 타올을 잔뜩, 그리고 딸과 함께 파자마로 입겠다며 수면바지를 구입했다. 3살에 미국으로 입양된 마르자는 운 좋게 훌륭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랐고, 성인이 된 후 생모를 찾기 시작했다. 연결고리는 입양 때의 서류들뿐. 마르자의 양아버지는 직접 한국의 의정부를 방문해서 어릴 적 주소지를 탐문하며 친어머니 찾는 일에 나섰다.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슬픈 배경음악을 잔뜩 깔고 눈물샘을 자극할 법한 스토리지만 마르자에게서 누구에 대한 원망 대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건, 아마 이렇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덕분일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어머니 역시 딸을 그리워하며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의 브루클린에 살고 있었고, 연락이 닿은 그들은10년이 넘게 가까이에서 교류하며 지낸다. 세 살 이전에 새겨진 희미한 기억, 그리고 스무 살 이후 다시 찾은 엄마에게서 배우고 접한 경험. 이 두 가지가 지금의 마르자의 혀를 이룬다. 지구 각지에 ‘해가 지지 않는’ 레스토랑들을 스무 개 넘게 갖고 있는 남편에게 한국 음식에 대한 영감과 정보를 불어넣어주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의 시장은 최고예요. 남편 장 조지는 생선을 잡아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다는 데 굉장히 흥분했어요. 세계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한국의 시장은 최고예요. 남편 장 조지는 생선을 잡아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다는 데 굉장히 흥분했어요. 세계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마르자의 혈통이나 경험이 한국 가까이 머무른다면, 헤더는 보통의 외국인이 여행하는 시각으로 한국을 접하고 있었다.“ 폭탄이 터지는 건 아니냐며 다들 걱정했지만, 막상 와보니 안전하고 좋던데요(웃음).” 할리우드 스타답지 않게 스스로 배낭을 메고 다니던 그녀의 짐 속에는 <론리 플래닛> 한국편이 한 권 들어 있었다(이 책 표지에는 북한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크게 적혀 있다). 마르자가 음식을 즐겁게 또 많이 먹는 타입이라면, 헤더는 아주 적은 양을 조심스럽게 음미했다. 갈치조림이나 아구찜마저 편하게 여기는 마르자와 달리, 새로운 메뉴를 입에 넣을 때면 경계하고 멈칫하는 순간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그런 일반적인 (게다가 관리에 철저한 몸매를 가진) 외국인으로서 헤더 또한 우리 음식을 좋아했다. 특히 향긋한 쑥떡은‘ 있으면 있는 대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겠다’ 했고, 베지테리언인 귀네스팰트로가 마니아이다시피 채소가 많이 들어간 비빔밥 역시 금발 미녀들에게 사랑받는 메뉴임이 증명되었다. 관광지 가운데서 고요한 봉은사를 좋아했던 것도, 서양사람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서울의 모습이었을 거라 짐작된다. 부산의 경우‘모든 것이 다 있는 도시라 여행지로 다시 오고 싶다’며 좋아했고, 한국 여자들의 패션이 멋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뉴욕의 한국 식당에서 사 먹었지만, 돌아가면 앞으로 마르자에게 요리 강습을 받아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고 해요.” 그녀의 다짐이 지켜질지는 알 수 없지만, 뉴욕 현지 촬영된 분량의 <김치 연대기>에서는 마르자- 장 조지 부부와 함께 한식을 요리하는 또 다른 영화배우 휴 잭맨의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속초부터 제주도까지를 누빈 마르자와 장 조지가 손을 들어준 한국의 장소는 생동감 넘치는 수산시장이었다.“ 지난번에 남편과 함께 왔을 때 노량진 수산시장이 최고였어요. 장 조지는 살아 있는 생선을 그 자리에서 잡아서 바로 먹는다는 것에 굉장히 흥분했어요. 활어를 잡아서 생선 회를 금세 먹고 또 매운탕을 끓이고, 살아 있는 게를 쪄주고 그런 걸 현장에서 하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장 조지가 제주도에서 커다란 가마솥에 끓여내는 몸국(묵은 김치, 돼지고기, 미역을 함께 넣고 끓이는 국)을 가장 좋아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괜히 흐뭇했다. 한국인 장모의 눈에도 요리하는 프랑스인 사위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서.

뉴욕으로 돌아간 후 마르자는, 자신과 같은 흑인 혼혈인 풋볼선수 하인즈 워드가 후원하는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디너에서 요리를 할 예정이었다. 한국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게 조리법을 담은 영어 요리책이 편집 마무리 작업 중이기도 하다.‘ 혼혈아들에 그치지 않고 더 넓게, 못 배우고 못 가진 사람들이 배경만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한국 사회의 편견을 바꾸는 것이 마르자의 꿈이다. 친엄마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이는 이렇게 자라나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자신이 한국계라는 사실을 어떤 부끄러움이나 원망 없이 그저 끌어안으면서. 자갈치와 노량진 수산시장의 활기, 부드러운 강원도의 눈 덮인 산과 강, 고요한 봉은사와 화려한 청담동… 일주일이 넘게 머무르는 동안 마르자와 헤더는 다양한 한국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아마 한국에 대한 더 강력하고 오랜 기억은 그들의 위장과 혀에 새겨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