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당신의 관계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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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퍼스 웨인라이트는 세상에 하나 뿐인 목소리를 가졌다. 그리고 촉촉하고 미끌미끌한 그 바닷풀 같은 목소리를 빼면, 피아노가 남는다. 10월 10일 처음으로 서울에서 공연을 하게 되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피아노와 당신의 관계는 무엇인가요?

최근 앨범 를 보컬과 피아노만으로 구성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긴 하지만 서양 음악에서 가장 강력하고 힘있는 표현의 유형을 꼽으라면 피아노와 목소리의 결합이 아닐까 생각한다. 음악에서 일종의 활주로에서 떠오르는 것과 같은 관계가 생기는 순간이 있다. 훌륭한 록 음반이나 바그너 오페라 같은 것도 피아노와 보컬만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다. 나와 피아노가 단둘이 있는 것은 어두움과 드러나지 않는 의미가 소통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굉장히 어두운 면과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의미가 명확히 소통해야 하며, 이것은 일종의 나의 다른 면에 대한 희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소통은 엄청난 일이며 우리 모두가 싸우거나 받아들이거나 조절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앨범의 곡들은 그런 것들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피아노는 언제부터 배웠나? 당신에게 이 악기의 매력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피아노 레슨을 받아왔다. 그렇지만 테크닉적으로는 특별히 잘한 적이 없었다. 악보를 보거나 음계를 연주하거나 그런 것에는 항상 엉망이었다. 난 결코 피아노 신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피아노는 엄청 많이 쳤다. 그리고 내게 피아노는 매우 매력적인 악기였다. 3살, 4살쯤이었을 때 기저귀를 차고 피아노에 손을 뻗어서 건반에 붙어 있는 어릴 적 사진이 많이 있다. 나에게 피아노와 목소리는 일종의 칼의 양날과 같다. 한편으로는 다른 뮤지션과 돈을 나눠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나를 매우 자유롭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고(웃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피아노는 상대방이 상당히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나의 음악적 능력이나 피아노 테크닉 같은 것들이 흠 잡힐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이것을 해왔고 내가 거쳐온 모든 행로, 경험, 그런 것들이 나를 지지해주고 외형적으로 뒷받침해준다고 생각한다.

앨범 수록곡 중 ‘Sonnet’번호 연작으로 제목을 붙인 노래가 있다. 그 중‘Sonnet20’이 당신에게 각별하다고 들었다.
소네트 20번 – A Woman’s Face with Nature’s Own Hand Painted’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다. 내 생각으로는 아마도 가장 위대한 시가 아닐까 싶으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다‘. Sonnet20’은 내가 만든 연가곡 중의 하나다. 이 송 사이클은 현재 로버트 윌슨이 베를린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대단히 흥미로운 점은, 이 소네트가 어떤 내용일 것 같으냐는 질문에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여자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혈기왕성한 한 소년과 그를 사랑하게 되는 시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 내용을 굉장히 잘 숨겨놓았다. 아마도 이 소네트가 쓰여진 시대에도 사람들이 그 내용을 쉽게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 시의 주제나 구조 면에서 대단히 파격적이고 혁명적이라고 생각한다. 남자가 한 소년과 사랑에 빠지지만, 자신은 여자와 함께하도록 창조되었다는 걸 이해하는…. 인생에서 겪지 않으면 좋았을 경험들이지만, 우리모두는 그런 것들을 겪게 된다. 가장 위대한 시 중의 하나이면서 너무도 아름다운 구절을 담고 있다. “Gilding the object whereupon it gazeth”, 보는 것만으로도 금빛으로 빛나게 한다는 이 표현이 상당히 놀랍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의 눈길을 훔치고, 여성들의 영혼을 사로잡는다는 것인데, 특히 남성들의 눈길을 훔친다는 부분이 마음에 든다. 나도 한때 그럴 때가 있었다.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김범경, 서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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