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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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온다. 남프랑스의 작은 항구 마을, 생트로페에서라면 조금 더 쉽게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그렇다고 말하니까, 믿어도 좋을 것 같다.

1. 70년대 히피 스타일을정제된 감성으로 표현한검정 스웨이드 소재의 통 샌들.2. 생트로페의 부드러운바닷가와 잘 어울리는 엷은 갈색의가죽 핸드백.3. 핑크와 화이트로 귀여운 느낌을준 메탈 프레임의 선글라스

1. 70년대 히피 스타일을정제된 감성으로 표현한 검정 스웨이드 소재의 통 샌들.
2. 생트로페의 부드러운 바닷가와 잘 어울리는 엷은 갈색의 가죽 핸드백.
3. 핑크와 화이트로 귀여운 느낌을 준 메탈 프레임의 선글라스


여자들에게 있어 샤넬이라는 이름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시기는, 말하자면 사랑에 충실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리틀 블랙 드레스, 빨간 립스틱, No.5 향수, 진주 목걸이,2.55 백… 샤넬의 유산은 여자 그 자체에 대한 가장 패셔너블하고 시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샤넬이 여자들의 환상과 현실의 교집합 한가운데 위치하다가 그 중심이 ‘현실’ 쪽으로 점점 이동한다면, 그건 그녀들이 진짜 여자가 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2.55백을 어깨에 둘러메고 거리를 활보하는 아가씨들의 말갛고 상기된 표정은 무언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리하여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살기 시작한 시기에 볼 법한 종류다.

그렇다고 샤넬을 입고, 샤넬을 들고 신고, 샤넬을 뿌리는 완벽 무장만으로 달콤한 사랑이, 매혹적인 인생이 잘 포장된 박스의 형태로 배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칼 라거펠트에게 물으면 된다. 생트로페를 주제로 2011년 크루즈 컬렉션을 준비한 칼 라거펠트는 옷과 가방 말고도 사랑과 인생을 즐기는 법에 대한 단서까지 제공했다. <Remember Now>라는, 칼 라거펠트가 감독한 짧은 영화다. 잠시 글 읽기를 멈추고, 눈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굴리면 이 근사한 영화 한 편의 하이라이트를 감상할 수 있다.

최근 샤넬과 관련한 단편영화를 여러 편 공개하면서 사진, 큐레이팅에 이어 영상까지 창조하고있는 칼 라거펠트는 이번 크루즈 컬렉션과 함께 또 하나의 단편 영화 <리멤버 나우>를 공개하면서 컬렉션의 의미를 문화적인 영역으로 넓히고 있다. 엘리사 새다뉘, 파스칼 그레고리가 주연을 맡은 이 단편영화에서는 프레야 베하, 밥티스트 지오비코니, 애비 리, 하이디마운트, 캐롤리나 쿠르코바, 막달레나 등 샤넬과 관련 있는 톱모델들도 대거 출연하여 일반적인 런웨이나 화보와는 또 다른 그들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특히 애비리와 막달레나의 섹시한 춤은 모두가 보고 배웠으면 할 정도다). 프랑스의 글래머러스한 휴양지 생트로페의 화려함이 매혹적으로 그려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더없이 편안해 보이는 이번 컬렉션이‘ 쉽게’ 디자인된 것이 아님을 눈치 챌 수 있다. 프랑스 남부의 다양한 컬러에서 영감 받은 리비에라, 라거펠트에 의해 재해석된 귀여운 깅엄 프린트, 데님 위주의 라인업으로 구성된 히피 시크, 데이&나이트 휴양지 룩의 정석과 같은 서머 글램 등 다양한 주제의 의상은 모두 인생을 즐기고, 유혹의 짜릿함을 느끼며, 마음을 열어 사랑할 준비가 된 여자를 위해 준비된 것들이다.

<리멤버 나우>와 생트로페 크루즈 컬렉션을 통해 칼 라거펠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요약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트위드 재킷과 카디건 차림으로도 DJ의 짜릿한 일렉트로닉 비트에 맞추어 몸을 흔들어댈 수 있다. 흥에 겨워 손을 너무 번쩍 치켜올린 나머지, 재킷과 스커트가 분리되고 블라우스가 좀 비어져나와도 괜찮다. 바닷바람이 로맨틱한 감정을 북돋는 밤의 부두에서는 화이트 수트 차림만으로도 충분하다. 단, 소매나 바지 밑단을 좀 걷어 올리는 식으로 편안하게 입는 편이 상대방의 마음도 무장해제시킨다. 한낮의 하우스 파티에서는 민트 그린, 스카이 블루 같은 밝은 파스텔 컬러를 입되, 소재는 코튼이나 얇은 실크처럼 부드러울 것! 그래야 밀착했을 때 센슈얼한 느낌을 더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칼 라거펠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의 가장 마지막 부분, 다음과 같은 대화에 집약되어 있다.

칼 라거펠트 : (모두 잠든 방을 둘러보며) 어떻게 된 거야? 1시에 런치 파티라고 하지 않았어?
엘리사 새다뉘 : 그랬죠. 하지만 여기선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어요. 여긴 생트로페잖아요.
칼 라거펠트 : (고개를 끄덕이며) 하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 것. 그 최고의 순간을 위해 스스로를 사랑하며 자유롭고 당당한 태도를 가질 것. 현재를 즐길 것. 그것이 더없이 완벽한 샤넬의 크루즈 룩을 입은 당신에게 필요한 마지막 터치일 테니까.

에디터
패션 디렉터 / 최유경
기타
PHOTO|COURTESY OF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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