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도시의 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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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가 금의환향했다. 으레 이맘때쯤이면 돌아오던 모습이 아닌, 2010 F/W 트렌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말이다. 어제의 촌스러움이 오늘의 트렌드가 되는 패션이라는 이상한 도시, 그곳에 새롭게 열린 ‘니트 전성시대’와 클래식의 영원함에 대해.

1. 주머니가 장식된 와플 니트 베스트는살바토레 페라가모 제품. 가격 미정.2. 니트 미니 원피스는스텔라 매카트니 제품. 1백23만원.3. 해진 듯한 디테일의 카디건은 알투자라 by 10꼬르소 꼬모 제품. 1백65만원.4. 앞면은 골드, 뒷면은 회색으로이루어진 독특한 카디건은마르니 제품. 1백19만원.

1. 주머니가 장식된 와플 니트 베스트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제품. 가격 미정.
2. 니트 미니 원피스는
스텔라 매카트니 제품. 1백23만원.
3. 해진 듯한 디테일의 카
디건은 알투자라 by 10
꼬르소 꼬모 제품. 1백65만원.
4. 앞면은 골드, 뒷면은 회색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카디건은
마르니 제품. 1백19만원.

트랜드의 회귀 본능은 산란기의 숭어와 다를 바 없다. 거센 물살을 거슬러 6개월, 혹은 1~2년을 주기로 꼬박꼬박 되돌아오고 마는 강력한 본능 말이다. 이번 시즌, ‘클래식이 돌아왔다’고 대서 특필하는 패션지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애정을 과시하고 있는 대상 중의 하나가 바로 ‘니트’다. 뭐, 날 쌀쌀해지면 옷장에서 꺼내 입는 그런거 아니었어라고 묻는 당신에게 한 지인은(패션계에 종사할 확률이 높은) 이번 시즌 프라다와 클로에, 그리고 스텔라 매카트니가 선보인 니트 룩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니트 없인 못 살아’를 외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신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올가을 당신 혹은 어머니의 옷장 속에서 꺼낸 해묵은 니트 스웨터로도 충분히 2010년 가을/겨울 버전의 레트로 클래식 룩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클래식 아이템이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성을 지닌다는 데 그 매력이 있지 않나.

사실 클로에의 컬렉션을 접하는 순간, 어릴 적 홀대했던 니트 코트가 갑자기 생각났다. 과연 그 녀석은 어디로 자취를 감춘 것일까. 어머니가 직접 뜨개질을 한 두툼한 자주색 니트 코트였는데, 당시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이유로 그 코트를 벗어놓은 채 오들오들 떨며 입학식을 치렀다. 그런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트렌드의 왕좌에 걸터앉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경배하라’고 외치는 니트 앞에 넙죽 엎드려 ‘못 알아봐서 미안해’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이번 시즌 컬렉션을 훑어본 내 머릿속의 니트는 우아하고 클래식한 여인의 상징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이렇듯 숱한 여성들의 마음에 저마다의 아련한 기억을 울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다지고 있는 니트에게 어떻게 입어야 그토록 여유로운 멋을 풍길 수 있는지에 대해 올가을 한 수 배워볼 참이다.

5. 술 장식이 캐주얼한 머플러는 샤넬 제품. 가격 미정.6. 스웨이드 가죽 벨트와 함께 연출한 카키 색상의 니트 원피스는 랄프 로렌 제품. 1백46만원.7. 조형적인 꼬임 장식이 돋보이는 터틀넥의 니트 풀오버는 셀린 제품. 1백40만원.8. 장식적인 짜임의 레그 워머는 디올 제품. 가격 미정.9. 푸른빛의 두툼한 케이블 니트 카디건은 프라다 제품. 1백만원대.

5. 술 장식이 캐주얼한 머플러는 샤넬 제품. 가격 미정.
6. 스웨이드 가죽 벨트와 함께 연출한 카키 색상의 니트 원피스는 랄프 로렌 제품. 1백46만원.
7. 조형적인 꼬임 장식이 돋보이는 터틀넥의 니트 풀오버는 셀린 제품. 1백40만원.
8. 장식적인 짜임의 레그 워머는 디올 제품. 가격 미정.
9. 푸른빛의 두툼한 케이블 니트 카디건은 프라다 제품. 1백만원대.

우선 중요한 건 니트의 두께와 질감이다. 특히 이번 시즌 대세는 청키한 니트 풀오버. 프라다처럼 두툼한 실로 짠 케이블 니트 스웨터라면 밋밋한 몸매라 해도 볼륨감을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자칫 과해지면 통자 허리의 오명을 안을 수 있기에 새침하게 얇은 벨트를 더하는 센스를 발휘할 것. 한편 얇은 실로 섬세하게 짠 니트 풀오버는 몸의 곡선을 드러내며 묘한 관능미를 풍긴다. 일례로 브리짓 바르도가 그 풍만한 몸의 실루엣을 은근히 어필하는 니트 스웨터를 입은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번 시즌 루이 비통 쇼가 표방한 ‘옛 여자처럼 조신해 보이지만 불같은 면을 내재한’ 니트의 이중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의 니트 스타일링 레슨 중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니트+니트 아이템의 조합이다. 지난 시즌 유행한 청청(데님+데님) 스타일링처럼 레트로 페미닌 룩을 연출하기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랄까. 프라다와 클로에만 하더라도 같은 소재와 색감의 니트 웨어를 스커트 착장으로 여성스럽게 연출했다.

니트와 니트 아이템의 조화가 아니라면 다음 선택은 서로 다른 소재와 분위기의 아이템을 믹스 매치하는 것이다. 루이 비통처럼 몸에 딱 붙는 니트 스웨터에 미디나 맥시 길이의 풀 스커트를 믹스 매치해 패션계 최전방의 레트로 페미닌 룩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 혹은 D&G나 랄프 로렌, 디올처럼 하늘거리는 시폰이나 새틴 소재의 스커트 혹은 원피스와 함께 연출하는 것도 다소 답답해 보일 수 있는 니트 룩에 신선한 조화를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마이클 코어스와 3.1 필립 림이 선보인 것처럼 우아한 배기 실루엣의 니트 팬츠도 시도해볼만 하다. 이때 편안한 저지 면 소재의 톱이나 롱 니트 카디건을 함께 연출해 물 흐르는 듯한 유려한 실루엣을 강조해야 그 효과가 배가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나아가 ‘미니멀리즘’이라는 또 하나의 트렌드 축을 통해 니트의 매력을 부각시킨 스텔라 매카트니의 아이디어도 고려해볼 만하다. 네크라인이 깊이 파인 두툼한 니트 카디건(단 엉덩이를 가리는 길이의)이나 슬리브리스 미니 원피스 하나만으로도 ‘니트도 충분히 시크해질 수 있다’고 전하는 그녀의 의도가 꽤 멋지지 않나. 만약 너무 휑하게 느껴진다면 타이츠 하나만 더하면 될 듯.

나아가 니트가 가진 매력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실루엣’에도 유념해야 한다. 몸을 꼭 감싸는 니트의 경우, 자칫 세탁을 잘못해 작아진 옷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어깨의 품과 기장에 유의해야 한다. 한편 성글게 짠 스웨터나 롱 카디건의 축 늘어지는 맛 또한 빠뜨릴 수 없다. 영화 <쥘앤짐>에서 주인공 카트린이 루스한 실루엣의 니트 풀오버를 입고 뛰어가는 장면을 기억하는지. 이때 그녀의 자유분방한 매력을 돋보이게 한 8할의 힘은 아마도 니트가 가진 편안한 멋일 게다. 그러니 몸을 매혹적으로 드러내거나 혹은 여유롭게 흐르거나, 둘 중 하나에 전념하면 된다.

10. 산뜻한 색감이 돋보이는 와플 니트 풀오버는 프라다 제품. 가격 미정.11. 니트 소재 위에 울을 한 겹 뒤덮은 독특한 질감의라일락 색상 재킷은 폴 스미스 제품. 1백79만원.12. 굵은 꽈배기 형태의 니팅으로 장식적인 효과를 준 골드빛니트 원피스는 클로에 제품. 2백만원대.

10. 산뜻한 색감이 돋보이는 와플 니트 풀오버는 프라다 제품. 가격 미정.
11. 니트 소재 위에 울을 한 겹 뒤덮은 독특한 질감의
라일락 색상 재킷은 폴 스미스 제품. 1백79만원.
12. 굵은 꽈배기 형태의 니팅으로 장식적인 효과를 준 골드빛
니트 원피스는 클로에 제품. 2백만원대.

그렇다면 초급자부터 상급자까지 두루 활용할 수 있는 니트 스타일링은 무엇일까. 바로 니트 소품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다. 프라다가 선보인 니트 헤어밴드와 탈착이 가능한 니트 칼라를 비롯해 니트 소재의 니하이 타이츠를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클래식한 니트룩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체크할 것은 색감이다. 이번만큼은 무난함이라는 안정성에 기대 선택한 잿빛 혹은 거무죽죽한 룩에서 벗어날 것을 권한다. 대신 올가을 단 하나의 니트 아이템을 선택한다면 캐멀이나 짙은 오렌지 색상의 니트 아이템을 우선순위로 둘 것. 캐멀 코트만큼이나 이번 시즌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부상했으며, 레트로적인 무드를 내기에 그만한 색상도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좀 더 여유가 있다면 하늘색과 자주색을 비롯해 골드 등 빈티지한 색감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이처럼 너울대는 니트 트렌드의 물결에서 나이 들어 보이거나 촌스럽지 않고 살아남는 노하우를 전수했으니 그 다음은 당신의 몫이다. 참, 노파심에 덧붙이는 말. 갑자기 맘이 동해 머리를 심하게 볶는 일은 절대 삼가고, 프레임 끝이 성난 B사감처럼 치켜올라간 뿔테 안경(프라다 쇼에서 시도했지만, 무드를 보여주는 쇼는 그저 쇼일 뿐!)과 앤티크한 주얼리도 다 잊어야 한다. 니트 아이템, 그리고 클래식한 백과 슈즈를 제외하곤 모두 모던할 것. 이것이야말로 2010년 쌀쌀한 날씨 속에 ‘니트 시크’를 즐길 수 있는 아이러니한 비법이니까.

에디터
박연경
스탭
어시스턴트 / 정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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