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에 있어 에르메스 백이 성숙이나 여유를 담보하는 ‘꿈’을 대변한다면, 에르메스에게 있어 그 꿈은 바로 ‘가죽’을 통해 이야기된다. 그리고 지난 9월 5일 상하이에서 열린 에르메스의 <레더 포에버(Leather Forever)>전은 오로지 가죽에 의한, 그리고 가죽을 위해 그동안 에르메스가 견고하게 쌓아 올린 역사와 그 명성을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전시다. 나아가 에르메스의 ‘위대한 유산’에 서린 유쾌한 상상을 즐길 수 있는 짜릿함까지도.
당신이 에르메스를 떠올리며 매치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헤르메스가 아니라 에르메스라고 읽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눈에 띈 독특한 프린트의 실크 스카프나 우아한 자태의 찻잔, 혹은 ‘켈리’와 ‘버킨’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뭇 여성들의 인생에 동반자가 되어줄 백이 떠오를 것이다. 나아가 좀 더 패션에 조예가 깊은 이라면 매 시즌 모델이 말에 안장을 채우고 등장하는 광고에서 보여지듯 1837년 파리의 안장 제작사이자 가죽 공방으로 출발한 ‘가죽의 명가’라는 칭호가 떠오르고, 이번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매끈한 가죽 소재의 트렌치코트와 테일러드 재킷, 베스트, 팬츠, 부츠로 무장한영국 첩보원 스타일의 가죽 군단이 눈앞에 아른거릴 것이다. 그런데 2012년 개관 예정인 상하이 에르메스 메종 부지에서 열린 <레더 포에버> 전시에서 나는 에르메스의 또 다른 면을 목도했다.
‘꿈은 현실이 된다’라는 부제가 붙은 채 닭을 형상화한 안장. 더구나 하늘을 나는 듯 공중에 두둥실 띄운 채 전시된 이 위트 넘치는 가죽 안장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사실 그동안 에르메스의 아카이브에서 떠올린 것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진중함과 고아함이었으니까. 전체적인 전시 기획을 맡은 큐레이터 올리비에 사이아르는 이번 전시를 두고 ‘느긋한 어슬렁거림, 한마디로 재미있고 시적이며 교육적인 산책’이라고 표현했다. 전시 감상이 산책이라면 에르메스의 오랜 유산과 최신작을 모두 아우르는 가방 컬렉션을 비롯해 다양한 가죽 제품을 전시한 공간은 비밀의 정원을 찾은 서커스단 같다. 여기서 오타 크루아(Haut á Courroies), 볼리드(Bolide), 팔라숑(Polochon) 같은 백들은 매혹적인 공중 곡예사로 변신한다. 안장과 고삐에교묘하게 매달린 가방들은 에르메스의 본질을 설명하는 승마를 연상시키며, 승마 기술의 균형 감각과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마사오 니헤이가 회전목마 형태로 디자인한 <레더 포에버>의 전시 공간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점차 창의적인 발상이 극에 달하는데, ‘노마딕 정신(Nomadic Spirit)’이라는 이름으로 꽃줄기 위로 솟아난 여러 개의 손이 대를 이어 전해주어도 아깝지 않을 가방을 지지하고 있으며 섬세한 부채살이 펼쳐지면서 켈리백이 쌓아온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또 가장 눈에 띄는 공간에 유리관으로 둘러싸인 ‘탈라리스(Talaris)’ 안장도 발길을 끄는데, 이 안장이 특별한 이유는 탄소섬유와 티타늄을 조합해 가죽을 다루는 경이로운 기술력 때문. 또한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된 ‘미스터리 백(MysteryBag)’, 에르메스특유의 자물쇠 형태로 채워진 가죽 코르셋(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목마모양으로 재탄생한 미니 켈리백 등은 상상력 넘치는 에르메스의 면모를 보여준다.
마치 겉으론 근엄하지만 알고 보면 위트와 상상력이 넘치는 매력적인 남자를 만난 기분이랄까. 창립 이래 6대째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에르메스의 장인들이 지닌 가죽에 대한 열정, 견고하고 우아하게 만들어진 완성품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러한 전통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의 영역에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정신이야말로 에르메스의 가치를 뒷받침한다. 그러니 조만간 당신이 상하이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10월 31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를 절대 놓치지 말 것. 그 어떤 패션 전시보다 유쾌하고, 여느 예술품보다 아름다운 가죽이 빚어낸 영원한 순간을 만끽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에디터
- 박연경
- 기타
- PHOTO|COURTESY OF HER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