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취향과 날카로운 유머를 겹쳐 놓고, 디즈니풍의 동화와 퇴폐적인 상상력을 뒤섞는 아티스트 폴 매카시는 현대 미술계에서 그 누구와도 개성을 공유하지 않는 독보적인 섬이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가진 개인전은 매혹과 혐오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그의 상상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 기회였다. 작가가 약 7년의 작업 끝에 처음으로 공개한‘ 돼지의 섬’은 지옥의 놀이동산 같은 매카시 월드를 압축적으로 전시한다.
결국 거장을 탄생시키는 건 그 세대의 예술가들이다. 동료 작가들이야말로 비범한 작업을 예민하게 발견하고, 그것이 널리 재평가될 수 있도록 돕는 존재라는 뜻이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아티스트 폴 매카시 역시 처음부터 온당한 대접을받은 건 아니다. 기존의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운 그의 작품은 무척 신선하고 독특하지만 시간이 꽤 쌓인 뒤에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온 매카시는 여전히 관람객을 능숙하게 도발하고 종종 불안하게 만든다. 그 특별한 에너지와 들끓는 열정은 지금도 유효하다.
좀 늦긴 했지만 이제 그는 당연한 성공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다. 환상적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생기 없어 보이는 디즈니랜드, 바람을 넣어 부풀린 분홍빛 돼지들로 뒤덮인 공간, 오물로 가득한 음산한 무더기, 사지가 잘려나간 생명체 같은 것들이 바로 매카시가 보여주는 이미지다. 그는 늘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실험하며 영역을 넓혀왔다. 퍼포먼스와 설치, 데생과 콜라주, 비디오와 사진 등을아우르는 이 정력적인 예술가의 작업은 현 세대를 가장 선구적인 방식으로 반영해낸다. 마이크 켈리, 제이슨 로즈, 욘 복, 어스 피셔 등의 후배 작가들은 명백히 그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이들은 매카시로부터 불편함과 익살스러움, 이상과 관념, 대중문화와 정치학을 적절히 조합하는 예술적 취향을 배운 듯 보인다. 폴 매카시의 작품들은 일견 혼란스럽고 산만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예술에대한 풍자적인 접근, 존재에 관한 유쾌한 성찰이 알차게 담겨 있다. 우리의 경험과 인식을 교란시키는 과잉과 역설, 혼돈과 모순을 말하는 그만의 독특한 화법인 셈이다.
올해로 여든다섯이 된 그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의미 있는 개인전을 가졌다. 7월4일까지 열린 이 전시는 건축문화재청과 밀라노 도시 경관 관리국의 후원을 받아 니콜라 트루사르디 재단이 기획한 것이었다. 1975년부터 2010년까지의 작업을 고루 망라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예술가가 걸어온 길을 가늠케 한 기회이기도 했다. 특히 25년 만에 문을 연 팔라조 치테리오에서는 기념비적인 미공개 작 ‘돼지의 섬’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약 7년에 걸쳐 제작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돼지의 섬’은 기괴한 테마파크를 연상시키는 상당한 규모의 설치 작업이다. 짐승처럼 본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형상들이 마구잡이로 뒤얽혀 인상적인 풍경을 이룬다. 우리 시대의 신화 및 질서, 성상과 도상은 그 안에서 거침없이 파괴되고 또 재조립된다.
‘폴 매카시, 피카디리 서커스’, ‘몽상의 세계 : 패러디 천국’, ‘캐러비안의 해적’, 그리고 ‘마약용품가게’ 등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돼지의 섬’에서도 실재와 허구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보와 관점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특히 시공간을 변형시키는 그의 특별한 재능이 이 야심만만한 작업 이면에서 명징하게 읽힌다. 관념적인 모티프와 미학적 감성, 시대의 경향과 개인의 신념 등을 총체적으로 녹여낸, 그리고 예술가의 시각을 통해 치밀하게 완성된 하나의 섬, 하나의 세계라고 할까? 매카시의 작품은 우리 시대의 트라우마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다. 그는 건축적으로 설계된 트라우마를 디즈니의 놀이동산처럼 아기자기한나름의 화법으로 다시 한번 번역해낸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엇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울 만큼 독창적이다. 한번쯤 가보고 싶을 만큼 짜릿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긋지긋한 감옥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정준화
- 포토그래퍼
-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ilippe de Gobert
- 기타
- 글: Mariuccia Casa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