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지자. 코디의 완성은 얼굴이고 호텔의 핵심은 디자인이다. 그리고 W호텔은 디자인의 역할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똑똑한 브랜드다.
전 세계에 골고루 흩어져 있는 스타벅스 매장은 모두 같은 틀에서 찍어낸 것처럼 엇비슷하다. 인테리어부터 유니폼까지 매장내 디자인을 전부 규격화함으로써 브랜드 이미지를 빈틈없이 통제하려는 전략이다. 전라도에서 득구랑 마시든, 안달루시아에서 로드리고랑 마시든 별다방 라테 맛은 거기서 거기, 라는 위 아 더 월드적 메시지를 소비자들의 뇌리에 자연스레 각인시킨다. W호텔의 방법론은 이와 정반대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콘퍼런스인 비즈니스 디자인 위크(BODW : Business of Design Week, W호텔은 이 행사와 홍콩 심천 비엔날레의 공식 협찬사다) 기간 중 들른 W홍콩은, W서울과 딱히 닮은 구석이 없는 형제였다. 종종 눈에 띄는W로고를 제외하면 별개의 호텔이라 해도 믿길 정도로 나름의 개성이 뚜렷했다는 뜻이다. W호텔의 글로벌 리더 에바 지글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려줬다. “어느 지역에 세워지느냐에 따라 디자인 콘셉트를 달리합니다. 그 도시의 특징을 설계에 적극 반영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고유한 공간으로 완성되지요.” 주변 환경과의 맥락에 따라 건물 콘셉트를 정한다는, 그래서 같은 간판을 걸고 있다 하더라도 그 모습이 도시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지글러의 답은 W호텔이 디자인에 얼마나 예민한 기업인지를 충분히 가늠케 한다. 이 글로벌 호텔 체인은 필요에 의해자고 떠나는 숙소가 아니라 흥미로운 경험을 파는 놀이동산이 되길 바란다. 감각적으로 설계된 공간은 W적 체험의 중요한 밑그림이자, 어쩌면 체험의 내용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 디자인 마케팅 방식이 꽤나 적극적인 동시에 세련된 양상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례로 W호텔은 ‘이야기가 담긴’ 디자인을 지향한다. W홍콩의 경우 ‘매혹적인 숲’을 주제로 삼았다. 굵은 줄기를 연상시키는 기둥, 나이테 문양의 그래픽, 숲 속의 님프가 묘사된 홀로그램 벽화, 나비 모양의 장식 등을 저층부터 고층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배치하는 식이다. 고층 건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나무에 비유한 셈이다. 한편 건축가 리카르도 보필에 의해 올해 완공된 W바르셀로나는 밤과 낮의 대조적인 색채감을 한 공간 안에 담는 데 주력한다. 공들인 인테리어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눈길을 끄는 건 거울처럼 주위 풍경을 투영하는 호텔 외벽이다. 밤에서 낮으로, 혹은 낮에서 밤으로 시간대가 바뀌고 나면 마치 다른 건물처럼 보일 지경이다. 내러티브는 여러 디자인 요소가 유기적으로 응집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각국의 W호텔이 과감한 공간 디자인을 선보이면서도 결코 산만하거나 과해 보이지 않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요즘 이 글로벌 브랜드가 다양한 시도를 모색 중인 분야로는 단연 패션을 들 수 있다. 뉴욕과 파리 패션위크 기간 중엔 백스테이지 VIP 팝업 라운지를 운영했고, 뉴욕 바니스 백화점과 제휴 관계를 맺었으며 지난 10월에는 아예 34명의 디자이너와 함께 의상 및 액세서리 컬렉션까지 론칭한 바 있다. 사우스 비치, 산티아고, 홍콩, 이스탄불, 그리고 뉴욕까지, 5개 도시 W호텔의 모티프를 적극 디자인에 활용한 제품들이다(일부 지역의 W 스토어나 온라인을 통해 판매된다). 아울러 별도의 패션 디렉터를 고용해 전문가적 견해를 수혈하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호텔 인테리어에까지 그 내용을 반영하는 중이다. 예를 들면 시즌마다 유행 컬러로 내부를 재단장해 트렌디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식이다.
물론 디자인이 W호텔이 지닌 강점의 전부는 아니다. (불법만 아니라면) 언제라도 어떤 것이든 제공한다는 왓에버웬에버(Whatever, Whenever) 서비스, 엔터테인먼트적 호텔 체험을 뜻하는W 해프닝(W happening) 등 유행에 민감하고 취향은 까다로운 고객들을 자석처럼 이끌 만한 강점이 그 외에도 다양하다. 평범한 숙박 장소가 되기를 거부하는 브랜드의 유난함은 특유의 용어 체계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W호텔에선 로비를 리빙 룸, 객실 청소 담당은 룸 스타일리스트, 그리고 스태프는 탤런트 등으로 바꾸어 부른다. 욕실 서랍에서 여분의 화장지(Toilet Paper)를 발견했을 땐 혼자 웃고 말았다. 거기엔 ‘백업 플랜(Backup Plan : 비상대책)’ 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에바 지글러에게 W호텔에서 통용되는 특별한 용어 중 가장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물었다. “글로벌 브랜드 리더로서의 대답은 리빙 룸과 탤런트, 왓에버 웬에버 등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절 가장 웃게 만들었던 건 역시 백업 플랜이었죠.” 결국 W호텔의 정체성은 즐거움으로 귀결된다. 디자인 마케팅 역시 고객에게 흥미로운 경험을 전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사실 앞으로의 몇 년간은 W호텔에게 무척 중요한 시점이다. 2011년까지 두 배 가까이 체인망을 늘려 브랜드의 입지를 다지려는 계획이 진행 중인 까닭이다. 할리우드, 파리, 런던, 상하이, 코사무이 등지에서 조만간 새로운 W호텔들이 존재감을 과시할 것이다. 역시나 같은 간판을 나눠 쓰는 사이인가 싶을 정도로 그 모습이 제각각이겠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찾아볼 수 있겠다. 각 도시에서 가장 쿨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곳이라면, 거기가 바로 W호텔일 테니까.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정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