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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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 법칙이란 없다. 이런 옷을 사고, 저런 방식으로 입는다고 해서 아무도 당신을 구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업으로서의 패션은 엄격한 법의 규제 안에 존재한다.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패션 전문 변호사, 자코모 코라도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패션계 이야기들을 <W Korea>에만 털어놓았다.

맨해튼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자코모 코라도. 이탈리아 비스포크 스타일로 취재진을 맞은 그는 전형적인 유럽 신사다.

맨해튼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자코모 코라도. 이탈리아 비스포크 스타일로 취재진을 맞은 그는 전형적인 유럽 신사다.

웬만한 패션 매체의 인터뷰 청탁은 대부분 거절했다고 들었는데, < W Korea >의 인터뷰에 응해주어 고맙다.
나야말로 반갑다. 사실, 내가 어렵다고 생각해서인지 생각만큼 인터뷰 청탁이 많이 들어오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호감을 갖고 있던 차에, 한국 매체는 처음이라 궁금하기도 해서 인터뷰에 응했다.

먼저 이탈리아인인 당신이 뉴욕을 선택해 자리 잡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내 고향은 패션과는 거리가 먼 파도바(Padova)라는 곳이다. 들어봤나? 베니스와 가까운 곳이다. 경찰서장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볼로냐 법대를 졸업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대학 졸업 후 군대를 가야 하는 법이 있다. 군대를 안 가려면 유학을 가야 했다. 그래서 미국 뉴욕을 택해 2년동안 유학을 했다. 미국에 와 뉴욕 5번가에 위치한 이탈리아 슈즈 디자이너 안드레아 카라노 숍에서 점원으로 일을 했는데, 1년만에 매니저가 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아마 패션 세일즈에도재능이 있는 것 같다(웃음). 현재 쥐세페 자노티의CEO인 알란 범과도 그때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의 도움으로 낮에는 슈즈 숍의 점원으로, 밤에는 폴담 법대 대학원에 다녔다.

법대를 나온 후, 특히 패션을 전문으로 다루게 된 이유는 뭔가? 단순히 패션을 좋아해서?
졸업 후 처음으로 취업한 파비아&할코트(Pavia & Harcourt)라는 로펌은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회사들이 미국으로 진출하거나, 혹은 그 반대 경우 일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내가 이탈리아 사람이다 보니 이탈리아 브랜드들이 미국에 진출하는 케이스가 많이 주어졌고 이후 펜디, 불가리, 프라다 등의 일을 맡았다. 한 케이스를 성공시키자 그 다음 일도 자연스럽게 패션과 관련된 일이 들어왔다. 파비아&할코트는 이탈리아 정부의 뉴욕 대변인 역할도 하고 있었는데, 내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어느 정도 명성도 쌓자 뉴욕주재 이탈리아 정부의 고문 변호사로 임명되었다. 그로 인해 인생이 크게 변했다. 10년 동안 뉴욕에서 쌓은 경험과 인맥으로 현재는파트너인 제임스 몽고메리와 함께 개인 로펌을 열었다.

패션 변호사라는 직업은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하게 들린다. 패션관련 기업의 법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특수성이 있다면?
엔터테인먼트와는 달리 ‘패션 법률(Fashion Law)’이라는 분야가 법적으로 명확하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패션 법률 분야에서 일하려면 패션 비즈니스를 종적, 횡적으로 깊게 이해하고 있어야 현존하는 어떤 법규에 적용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내 생각에패션 법률의 특수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지적재산권?그건 패션의 기본이자 전부이다. 그보다 더 특수한 것은 첫째는 패션 시장만이 갖고 있는 거래 방식이고, 둘째는 패션에서는 물건의 값어치가 시간(시즌)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당신이 패션 전문 변호사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다룬 것은 무엇인가?
역시 디자인 카피와 모조품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한 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당신도 잘 알 테고(한국의 모조품 시장을 의미하는 뉘앙스였다- 에디터 주), 또 하나는 라이선스 문제다. 라이선스는 브랜드를 키워나갈 때 흔히 사용되는 수단인데, 그 이름값만을 가지고 정작 물건은 다른 사람이 만들다 보면 문제가 생길 때가 많다. 그리고 현재 패션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오바마 정부에서 패션 디자인을 보호하는 법률 제정을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미국 디자이너들이 직접적으로 이 법률을 통과시키려 노력하고있다. 이것이 통과되면 세계 패션 시장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당신이 승소한 케이스 중 가장 대표적인 경우를 듣고 싶다.
블루마린의 고문 변호사로 일하던 당시 아주 큰 할인업체의 중개업자가나를 찾아왔다. 그는 블루마린이 그 할인업체를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만들어줄 수 있는지 부탁하러 왔다고 했다. 블루마린은 미국에서 고급 브랜드로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었기에 본사에 물어볼 것도 없이 내 선에서 강하게 거절을 했다. 몇 달 후, 니만 마커스 백화점에서 블루마린 본사로 연락이 왔는데, 니만 마커스에 입점된 블루마린의 스웨터가 그 할인점에서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조사를 해보니, 블루마린의 라이선싱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에 뒷돈을 주고 얻어낸 것들이었다. 법정 소송을 통해 나는 단순히거래가 불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제품들이 블루마린의 제품이 아닌 ‘모 .품’이라는 점을 주장했고 멋지게 승소했다.잘못된 경로로 흘러간 제품은 아무리 라이선스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해도 그 브랜드의 제품이 아님을 법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블루마린이 무척 만족스러워했음은 물론이다. 얼마 후 토즈도 비슷한건으로 일을 의뢰했는데 이 경험으로 쉽게 승소할 수 있었다.

패션 산업이 원래 그렇지만, 럭셔리 브랜드에서 톱 셀레브리티와 관련을 맺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로 인한 법률적인 문제도 많을 텐데.
맞다. 그와 관련해서 내가 최근 맡은 건은 토즈가 광 고 모델로 귀네스 팰트로를 기용하면서 발생한 법률적 계약을 체결하는 내용이었다. 단순히 지면, CF만 찍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단편영화까지 제작하는 큰 프로젝트였고 선례가 많지 않아 양쪽이 원하는 바를 조정하는 것이 주요 포인트였다. 귀네스 팰트로와 토즈 쪽이 모두 윈윈할 수 있도록 협상부터 계약서 작성까지 세세한 분을 맡았는데 결과물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에디터
패션 디렉터 / 최유경
스탭
어시스턴트|Devon Kang, 박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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