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공간 너머의 세계를 고찰하는 것은 나사(NASA)의 연구원뿐만이 아니다. 패션 디자이너들도 진지하게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METALLIC TEXTURE
2007년 봄 / 여름 시즌 패션계의 화두는 퓨처리즘이었다. 니콜라스게스 키에르가 금속 조각을 이어 붙인 레깅스를 입은 일련의 인조 인간 버전 2.0들을 발렌시아가 의런 웨이에 올린 이후로(쇼뮤직은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이 적당했을 게다) ‘, 곱고 아름다운’ 것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거리에서는 여전히‘어쨌든 예쁘고 입을만한’ 옷들이 팔려나가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미래의 의생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지금, 패션에서 ‘우주시대’의 영향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메탈릭하고 광택있는 질감에 집중한 스타일이 대세다.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번쩍이는 금빛 가죽 소재로 영화 <바바렐라> 스타일의 섹시한 미니 드레스를 만든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이런 영향은 뉴욕, 밀라노, 파리에서 골고루 찾아낼 수 있다. 캘빈 클라인의 프란시스코 코스타와 지안 프랑코 페레의 아퀼라노 & 리몬디커플, 그리고 칼 라거펠트는 각기 실버와 회색의 중간 톤을 띤 매끄러운 실크소재를 사용해 마치 우주선처럼 구조적으로 보이는 드레스를 선보였다. 마리 오슈왑과 소피아코코 살라키 컬렉션에서도 헤어와 메이크업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이집트 테마를 조금만 걷어내면, 우주인이 지구에 전한 메시지라고 일컬어지는 아스텍 문명의 불가사의한 문양이 골드와 실버에 묻혀 적절히 조화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퓨처리즘에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접근하길 원한다면 광택있는 소재에 단순한 커팅으로 이루어진 점프 수트를 권한다. BCBG 막스아즈리아 컬렉션의 은회색 점프 수트처럼 볼드하고 넓은 벨트를 매치하면 ‘우주복’의 가장 세련되고 현대적인 버전으로 손색이 없다.
COSMIC SHAPE
1969년, 아폴로 11호는 달 표면에 무사히 착륙했고 그보다 4년 앞선 1965년, 앙드레 쿠레주는 ‘문걸(Moon Girl)’ 컬렉션을 통해 퓨처리즘 패션의 원형을 제공했다. PVC부츠 같은 충격적인 아이템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쿠레주 스타일이 미래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기하학적인 실루엣과 커팅 덕분이었다. 미래적인 실루엣에 대한 탐구는 이번 시즌에 가장 풍요로운 결실을 맺었다.
‘트로피 재킷’이라는 애칭으로 패션피플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된 발맹의 재킷, 특히 어깨 부분은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스톰트루퍼스의 유니폼을 쏙 빼닮았다. 외계 행성의 운석을 가득 붙여놓은 듯한 장식에 어깨와 힙부분을 유선형으로 부풀린 알렉산더 매퀸의 의상은 외계인의 파티 웨어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과학자의 눈을 가진 디자이너, 후세인샬라얀은 자동차의 충돌시 나타나는 물리적인 효과를 프린트한 드레스를 선보였고, 크리스토퍼 케인은 팀 버튼의 <혹성 탈출>에서 영감을 얻어서클모양의 모티프를 컬렉션을 관통하는 주요 장식으로 내세웠다.
칼 라거펠트의 펜디컬렉션에서는 비행기 유리창에 사용되는 퍼스펙스(Per spex) 소재의 플랫폼슈즈가 단연 돋보였다. 밀라노의 말로 컬렉션에서는 쿠레주와 피에르 가르뎅식의 60년대 레트로 퓨처리즘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시그너처 실루엣 자체가 어딘지 미래적인 이브생로랑 컬렉션에서는 PVC처럼 인위적인 느낌을 주는 벨 슬리브스타일의 가죽 재킷으로 퓨처리즘이 얼마든지 고급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냈다. 어쩌면 패션계가 가장 높이 사야 할 퓨처리즘은 게 스키에르가 풍미한 2007년이 아니라 바로 지금, 2009년일지도 모른다.
- 에디터
- 패션 디렉터 / 최유경
- 포토그래퍼
- jason Lloyd-Evans
- 브랜드
- 알렉산더 맥퀸,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발렌시아가, 캘빈 클라인, 막스 아즈리아, 베르사체, 지안프랑코 페레, 후세인 살라얀, 말로, 크리스토퍼 케인, 펜디, 루이스 골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