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의 거장 한스짐머

이채민

“음악은 굉장히 위험한 야수예요. 내가 바라는 솔직함은 바로 관객들이 각자 생각하는 대로 멜로디를 마칠 수 있도록 상상의 빈칸을 남겨주는 것이죠.” 영화 음악은 결국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감정을 읽어내는 일이라고 말하는 한스 짐머와의 이메일 인터뷰.

이야기, 그리고 감정에 관한 일

[이미지]한스 짐머 (4)
<W korea>올해 봄 코첼라에서 헤드라이너로 공연한 일이 화제가 되었다. 감상이 어땠나?
한스 짐머
사실 무대 위에 서기까지 두려움이 꽤 있었다. 고맙게도 많은 관객이 와주었고, 그 대부분이 나의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였다. 영상 없이 음악만 들려주는 건 큰 모험이었다. 영화의 음악이 영상 없이 홀로 설 수 있을지 의구심이 있었으니까.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이렇게 음악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투어 공연을 펼치게 된 계기가 있나?
그간 많은 사람들이 내게 어째서 풀 투어를 하지 않는지 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무대 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일은 나에겐 마치 한 해 중 가장 추운 날, 남극에서 나체로 스포트라이트 밑에 서 있는 일처럼 보였다. 나의 나약함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일이니 얼마나 공포스럽겠나. 하지만 그런 두려움에 지배당한 채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 나도 두려움을 떨쳐내고, 관객들과 눈을 마주하고,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샌타모니카에 벙커 같은 음악 작업실이 있다고 들었다. 당신의 스튜디오를 묘사해준다면?
스튜디오에 와본 사람들은 나의 스튜디오가 반은 박물관 같기도 하고, 반은 우주선 같다고 한다. 여러 음악적인 실험을 하고 최고의 사운드를 잡아내기 위해 많이 신경을 썼다. 어찌 됐건 나는 늘 스튜디오에 있으니까, 그곳이 내가 24시간 있어도 편안한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떤 방식으로 곡 작업을 해나가나?
스토리에 집중한다. 나를 포함해서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스태프는 그 영화의 스토리를 잘 풀어가고 잘 전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영화와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생각하고 연구하면서 곡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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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에는 밴드에서 신시사이저를 연주했다고 들었다. 영화 음악 커리어를 어떻게 시작해 이쪽으로 정착하게 되었나?
스탠리 마이어스(Stanley Myers)의 조수로 일했다. 그가 모든 영화를 다 커버하기에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제작사 워킹 타이틀에서 나에게 <갈라진 세계 (1988)> 작업을 맡겼고, 그것이 <레인맨>으로 이어졌다.

영화 음악은 다양한 사람과 함께 진행하는 공동 작업이다. 어떤 마음이나 자세로 임하나?
히트곡을 만드는 것의 비결이 바로 협업에 있다. 다른 사람의 것을 경청하고, 다수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감정을 읽어내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사실 나는 일을 미루기로 유명한데, 그 때문에 나와 함께하는 여러 스태프들이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게 나의 작업 방식이고, 내가 음악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좋은 음악이다.

<다크나이트> <인셉션> <인터 스텔라> <덩케르크> 등 최근의 필모그래피를 쭉 당신과 작업해오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일하는 스타일은 어떤가?
놀란은 영화 촬영을 시작도 하기 전에 음악 스코어가 관객을 감정적으로, 장소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이끌어주길 바란다. 우리는 보통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 오랜 기간 이야기를 나누고, 어떨 때는 내가 영화의 전체 스코어를 주기도 한다. 물론 영화 촬영과 수정에 걸쳐 음악이 바뀌기도 하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의 그 기본 스코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가 완성되기 전, 시나리오만 보고 작업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이런 경우 음악 작업과 실제로 만들어진 영상물 사이의 괴리를 최소화하는 방법이 있나?
촬영에 들어가기 전 영화에 대해 감독과 충분히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의 포인트와 흐름에 대해 감독과 깊이 공감하면, 영상도 음악과 함께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도구일 뿐이다. 내 스튜디오에는 큰 스크린으로 음악과 영상을 확인하면서 잘 어우러질 수 있게 수정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다.

장면과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시각적인 면), 그리고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심리적인 면). 영화 음악이 하는 두 가지 역할 가운데 당신에게는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음악은 굉장히 위험한 야수다. 음악으로 관객을 끔찍하게 조종할 수도 있고, 그리고 감독의 의도대로 음악적 연출을 하지 않아 해고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바라는 건 솔직함이다. 경험을 쌓으며 느낀 점은 그 솔직함은 바로 관객들이 각자 생각하는 대로 멜로디를 마칠 수 있도록 상상의 빈칸을 남겨주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작곡가나 작품이 있나?
바흐를 포함해 여러 작곡가를 좋아하지만… 모차르트의 성가대와 관현악단을 위한 모테트 ‘Ave Verum Corpus(거룩한 성체)’를 꼽고 싶다. 음악적으로 거의 완벽한 곡이 아닐까 싶다.

<인셉션>과 <덩케르크>를 비교하자면 고전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의 활용, 그리고 사운드의 디지털적인 사용이라는 면이 각기 두드러진다.
내가 작업하는 영화 모두 풀 오케스트라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노예 12년>을 예로 들자면 주로 작은 방에서, 소수의 뮤지션들과 함께 친밀한 분위기를 형성해 자연스러운 음악을 녹음했다. 작업 스타일상, 나는 영화 한 작품을 끝내면 바로 다음 작품을 백지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수정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완벽주의자가 되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순간에 충실하고 진실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감독과 서로 의견이 다를 때는 어떻게 조율하나?
무조건 소통인 것 같다. 결국 우리의 목표는 좋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영화이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한다. 주로 내가 감독을 설득해낸다.

주목하고 있는 젊은 세대의 영화 음악가가 있나? 예를 들어 <위플래시> <라라랜드>의 저스틴 허위츠 같은.
훌륭한 재능들이 많아서 누구 하나를 꼽기에는 손이 모자랄 정도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실로, 새로운 재능들을 만나는 일은 내게 너무나 귀하고 소중하다. 음악을 하는 사람 누구나 그렇겠지만, 계속해서 발전하고 나아지고 싶은 마음뿐인데, 그런 내게 아주 좋은 자극이 된다.

순수하게 관객으로서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그 언제든 난 영화를 볼 때면 아이로 돌아간다. 그저 영화가 너무 좋았던 꼬마로. 내가 일로서 맡은 작품이 아닌 영화를 감상할 때는 그저 단순한 한 명의 관람객으로 영화를 볼 뿐.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공통된 부분이라면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것일까. 스토리텔링이 잘된 코디미도, 액션도, 스릴러도, 모두 좋아한다.

일하지 않을 때는 어떤 음악을 듣나?
듀크 엘링턴이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단 두 가지 음악만이 존재한다.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 그래서 모든 좋은 음악을 듣는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를 듣다가 아바로 갔다가, 또 크라프트베르크를 듣다가 바흐 연주곡을 듣는 식이다.

에디터
황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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