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의 사생활

이채민

잠을 안 잔 것도 아닌데 왜 매일 피곤할까? 만성피로를 현대인의 숙명이라고 순응하며 살기 지친다면, 수면의 질을 점검해봐야 한다.

a man silhouette front the door

‘아침형 인간’이 성공을 위한 기본 조건인 듯 회자될 때, 주변엔 나를 포함해 패배자를 자처하는 사람들뿐이었다. 해가 저물고 나서야 원고가 써지는 불규칙한 생활 패턴의 기자와 예민함으로 잠 못 드는 유별난 종자에게만 잠이 화두는 아닐 것이다. 숙면은 우리 모두의 원활한 생활을 완성하는 중요 변수다. 나의 경우 잠을 못 들거나 설쳐서 문제라기보다는 잠이 많아 문제인 쪽이다. 잔다고 잤는데도 낮 시간에 곧잘 몽롱하다. 커피란 느낌과 기분으로 마시는 검은 액체이고 핫식스는 탄산음료 대용이라고 여겨서, 잠 못 잘까봐 초저녁 이후 커피를 금하는 사람을 천부적 능력의 소유자로 본다. 그러나 잠자는 시간을 달리해 봐도 결과는 비슷하다. 많이 자면 많이 누워 있어서 그런지 더 늘어지고, 못 자면 못 잤으니 당연히 피곤하다. 알코올 청정 구역인 간은 건강검진 결과 말짱했다. 적정한 수면 습관에 대한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홍삼과 비타민 C에 배반당하는 무수한 날을 거쳐 다다른 곳은 수면 클리닉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찾아보기 드물던 수면 클리닉이 점점 눈에 띈 덕이다. 각각의 이유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수면다원검사라는 것을 먼저 받는다. 수면 중 발생하는 문제를 포괄적으로 진단하기 위해, 클리닉에서 하룻밤 자며 받는 검사다. 병원의 일반적인 검사실과 달리 깔끔한 숙소와 같은 방에 누웠다. 물론 뇌파와 심전도 등등을 체크할 목적으로 공각기동대라도 된 양 머리와 가슴과 다리에 수십 가닥의 전선을 붙인 채였다. 자는 모습을 영상 촬영한다니 왠지 찝찝했지만, 녹화 영상으로 수면 중 뒤척임 정도와 특이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검사와 별개로 기도 CT 촬영도 필요했다. 기도가 좁으면 수면 시 코골이나 호흡 장애 등이 생길 수 있으므로, 기도 상태를 보기 위해서다. 이튿날, 역삼동 숨수면의원 이종우 원장의 첫마디는 이랬다. “기면증을 의심하고 있어요.” <아이다호>에서 리버 피닉스가 툭하면 픽 쓰러졌던가? 영화나 드라마의 극적인 장치인 줄만 알았던 기면증이 진지하게 거론되다니, 이거 실화일까? 하기야 언젠가부터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참을 수 없는 졸음의 무게가 쓰나미처럼 덮치곤 했다. 기분이 저조한 날을 보내는 사람이 ‘나 요즘 우울증이야’라고 말하듯, 급작스럽게 졸음이 닥칠 때마다 기면증에 비유한 일이 떠올랐다. 나는 누워 있는 시간 대비 정말 잠든 시간을 뜻하는 수면 효율이 정상치를 벗어나게 높았다. 효율이 높다고 무조건 효과가 좋은 게 아니다. 기절하듯 잠들며, 자고 나서도 낮에 피곤한 건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기면증은 실제와 좀 다릅니다.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모두 강도가 센 건 아니에요. 대개는 일상생활을 잘 하지만 어떤 영향을 받는 셈이죠. 기면증을 확진하려면 낮 시간에 취침하며 다중수면잠복기라는 검사를 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잠들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꿈을 꾸는 단계인 렘수면(꿈수면)으로 접어드는데, 기면증 환자의 경우 잠들고 초반부터 꿈수면이 등장하는 구조예요. 그래서 잠깐 낮잠을 잘 때도 꿈을 잘 꾸곤 합니다.” 이 과수면증은 간단히 말하면 뇌에서 각성을 조절하는 호르몬(히포크레틴)이 덜 나오거나 저장량이 적은 질환이다. 특징은 머리를 많이 쓰거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할 때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것. 낮에 졸리고 피곤하다가 저녁부터 밤까지는 정신이 또렷해지기도 해서 결국 취침 시각이 늦은 밤이나 새벽으로 밀려나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지는 패턴이 반복된다.

나는 ‘레어’한 수면 질환의 가능성을 발견한 경우지만, 코골이 같은 수면무호흡증이 낮 동안 피로한 원인인 사람도 많다. 그냥 코를 고는 게 아니라 코를 골다가 가끔 숨이 멎는 건 스스로 알아채기 힘든데, 이런 증상이 계속되면 숙면을 방해하는 것이다. 잘 자는데도 왜 피곤한지 모르겠다던 어떤 이는 검사 영상을 확인해보니 자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팔다리를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증세가 있었다. 자면서 자꾸 다리를 차거나 근육이 폭 쉬지 못하도록 몸을 움직이면 자고 나도 개운치 못할 수밖에. 이런 경우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 부족이 요인일 수 있는데, 간단하게는 철분만 보충해도 해결된다고 한다. 수면의 세계로 진입하는 일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멜라토닌이나 수면제를 먹는다는 사람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본다. 그러나 불면증이라고 명명하려면, 낮에도 눈이 뻑뻑하거나 피로하기만 할 뿐 역시 잠 못 드는 상태여야 한다. 단지 새벽까지 잠을 못 자는 건 불면이 아니라 수면 시각의 지연이다. 이종우 원장은 잠자기가 어려운 사람에게 딱 하나의 조언만 꼽으라면, 기상 시각을 규칙적으로 꾸려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규칙적인 건 누구에게나 좋지만 잠 못 드는 사람일수록 중요하다. 일어나는 때를 정해두고서 점점 몰아 자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 것. 잠이 너무 많든 부족하든, 수면의 질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가장 활동적이어야 할 낮 시간에 애를 먹는다.

“일반적으로 적정한 수면 시간이 7시간 반 정도라고 말하지만,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생체 리듬이 있어요. 4시간만 자도 충분한 사람에게 6시간을 자라고 하면, 그 사람은 더 누워 있는 게 오히려 힘들 거예요. 마찬가지로 10시간은 자야 하는 사람이 8시간만 잔다면 또 힘들겠죠. 원활한 수면에 훼방을 놓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빛입니다. 늦은 시각까지 빛에 노출돼 있으면 그게 결국 잠을 쫓아내요.” 여기서 빛이란 야근하는 동안 우리를 비추는 형광등과 LED 전구부터 스마트폰의 전자 스크린까지 포함한다. 몇 년 전부터 유튜브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ASMR(청각 자극 콘텐츠)의 성행이나 코골이 소리가 얼마나 경천동지할 정도인지 밤새 기록해주는 앱 같은 것들의 존재는 그래서 아이러니컬하다. 잠을 방해하는 스마트폰을 통해 잠을 청하거나 관리하려고 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라니. 인공 조명과 IT 등으로 우리의 잠을 훼방놓는 기술은 동시에 문제 해결에도 나서고 있다. 웨어러블 워치인 핏비트의 ‘알타 HR’처럼 수면 상태를 놀랍도록 섬세하게 분석해주는 피트니스 제품이 대표적이다. 나에겐 흔치 않은 수면 장애를 오피셜로 선고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인해야 하는 다음 스텝이 남아 있다. 수면 클리닉에서 예상치 못하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도 한 가지 위안을 느끼는 점은, 카페인도 물리치는 내 잠의 위력 앞에서 그간 나태하다고 자책했던 나날에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의지대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니 세상이 그것을 ‘질환’ 혹은 ‘장애’라고 부르는 것일 테다. 다시, 이종우 원장이 말했다. “수면 장애는 다른 질환처럼 익숙한 분야가 아니라서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도 그걸 알아채기 힘들어요. 예컨대 카페인 때문에 잠 못 드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아도, 카페인이 전혀 안 듣는 걸 이상하다고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하지만 매일의 피로는 간 때문이 아니라 잠 때문일 수도 있어요.” 잘 먹고 잘 싸는 일처럼, 잠도 원만하게 잘 자고 싶은 원초적 욕구가 충족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나의 잠은 각성 호르몬을 부추기면 안녕할 수 있을까?

에디터
권은경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