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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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제페토, 젠리, 위버스, 트릴러, 그립 그리고 스포티파이. 당신이 아는 이름과 모르는 이름이 섞여 있을 이 신종 플랫폼들이 뜨거운 이유에 대해, 사용자들이 입을 열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자리 잡은 작은 앱 아이콘 하나는 플랫폼이라는 큰 개념으로 입장하기 위한 문이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와 OTT의 문은 열심히 들락거리는 반면, 깔아두고 좀처럼 열어보지 않는 문도 있다. 어떤 이들이 예전부터 생활의 디폴트가 되어버린 앱 위주로 애용하는 사이, 특정 세대나 일정 취향을 공유한 이들을 통해 무섭게 영향력을 키워가는 플랫폼이 있었다. 3D 아바타 기반의 ‘제페토’ 와 위치 정보 기반의 ‘젠리’ 가 MZ세대에게 핫한 현상은 검정 롱 패딩처럼 길거리에서 눈에 잘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제페토의 경우 하이브(빅히트), YG, JYP가 거액을 투자한 사실이 알려지고, 동시에 주식시장에서 유독 ‘메타버스’ 관련 주가 주목받으면서 요즘 더욱 활발히 회자된다. 가장 최근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건 실시간, 쌍방향, 오디오 기반의 ‘클럽하우스’ 다. 음원 스트리밍으로 출발했으나 종합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으로 나아가는 ‘스포티파이’는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익숙할지 몰라도 올해 2월에야 국내에 정식으로 론칭했다. 오디오 시장이 부상하는 현상을 두고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이유로 꼽는 분석이 제법 있지만, 비디오 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게 큰 이유일 것이다. 라이브 커머스에는 이미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뛰어들었다. 대중적이고 익숙하던 SNS를 넘어 좀 더 복합적인 성격의 플랫폼이 전방위에서 활약 중인 요즘, 의미 있는 7개의 플랫폼을 훑어봤다. 틱톡의 라이벌이지만 아직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트릴러’, K-Pop 팬들의 전유물인 듯하지만 음악팬 커뮤니티의 새로운 생태계를 조형하고 있는 ‘위버스’까지 포함했다. 사용자들의 솔직한 체험기와 예리한 분석이 또 다른 문을 열어준다.

마감을 미루게 만드는 클럽하우스

담당 에디터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이 원고의 마감을 제때 지키지 못할 것 같다. 다른 원고도 그렇게 된 지 한참 됐다. 2021131일 클럽하우스(Clubhouse)에 가입한 후로 그렇다. 비단 나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주변의 마감인 모두 클럽하우스 때문에 마감을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클럽하우스는 공동 창업자인 로한 세스의 딸 리디아가 희귀병을 안고 태어나자, ‘전 세계의 전문가들과 특정 주제로 연결되는 소셜 서비스’를 목표로 만든 플랫폼이다. 클럽하우스를 요약하면 ‘실시간, 쌍방향, 음성 기반 SNS’다. 그리고 ‘핫’하다. 성공하는 SNS는 나름의 생애주기를 갖는다. 중독될 만큼 핫하다고 주변에 소문이 퍼진 후 증폭되고, 이용자가 늘고 나면 광고가 보이며, 어느 순간 불편한 사용자가 늘고 전처럼 핫하지 않게 된다. 클럽하우스는 지금 ‘핫’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 202012월, 60만 명이었던 가입자는 202131,000만 명을 넘겼다. 아직 아이폰에서만 서비스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클럽하우스가 핫하게 떠오른 데는 초대 제가 한몫했다. 클럽하우스는 사용자의 연락처를 불러와 초대를 통해서만 가입할 수 있다. 비밀스러운 사교 모임 같달까. 덕분에 초기에는 초대장을 유료로 판매하는 일도 일어났다. 이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초대받은 사람의 프로필에는 초대한 이의 이름이 뜬다. 초대받은 사람이 커뮤니티를 위협하는 행동을 하면 초대한 이까지 페널티를 받는다. 일종의 연대보증이랄까. 그만큼 신뢰는 클럽하우스에서 중요하다.

클럽하우스에 가입한 후의 풍경은 마치 PC 통신 시절 채팅방을 보는 듯하다. 접속하면 팔로우를 기반으로 한 여러 제목의 방이 보이고, 방을 골라 입장하면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그 방 안에서 카스트 제도처럼 나뉜 계층이 신경 쓰일 수도 있겠다. 제일 위로는 ‘스피커’가 있고, 그중 선두에 ‘모더레이터’가 있다. 밑으로는 스피커가 팔로우하는 리스너가 보이며 그 아래에는 그런 것과 관계없이 방에 들어온 리스너가 있다. 모더레이터는 방을 만들거나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누구나 언제라도 손을 들어 발언할 수 있고, 모더레이터는 그를 스피커의 위치로 올리거나 리스너로 내릴 수 있다. 스피커가 팔로우하는 리스너가 스피커 바로 밑에 보이는 건 그들 간에 이미 신뢰 관계가 구축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끔 스피커의 자격을 얻은 후 아무 의미 없는 소리를 뱉거나 다른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는 이가 나타난다. 모더레이터는 이를 즉각적으로 처리해 지금 있는 방이 자유로운 대화를 위해 안전한 커뮤니티임을 증명해야 한다. 모더레이터가 어떻게 방을 운영하느냐에 따라 철저한 독재가 펼쳐질 수도, 불완전한 민주주의가 시작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은 언제라도 ‘Leave Quietly’ 버튼을 눌러 그 방에서 나갈 수 있다.

클럽하우스라는 신대륙이 생겼으니 이제 개척자들이 등장할 차례다.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빠르게 다양한 용도의 방이 생겨나고 있다. 오디오 연결을 위한 실험이 몇 번 이뤄지고 결과가 공유된 후 음악을 틀거나 공연을 하는 방도 생겨났다. 개봉작을 두고 100분 토론하듯 잘 만든 영화인지 아닌지 토론하고, 모 카드회사 대표가 나타나 본인이 개최한 콘서트의 뒷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어떤 방에서는 ’부캐’를 만든 이들끼리 성대모사를 겨룬다. 실용적인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방부터 잠 못 이루는 밤 심심한 이들이 모여 별 목적 없이 수다를 떠는 방까지, 신대륙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방이 개설되었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클럽하우스에서 안전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건 중요하다. 우리는 자유로울수록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이의 전제는 안전이다. 클럽하우스에서 쫓겨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대화를 녹화 또는 녹음해 외부에 공유하는 일일 것이다. 클럽하우스 내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오직 그 방에서 그 순간에만 존재해야 한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고 말을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이 휘발성 강한 특징이 클럽하우스에 중독되는 가장 큰 이유다. 당장 눈앞에서 스티브 아오키의 NFT 아트 거래가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일론 머스크가 ‘게임스톱’이라는 주제로 방을 만들었는데 어떻게 거기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큰 이슈뿐 아니라 클럽하우스를 통해 다져지는 소소한 관계의 경우도 그렇다. 당장 하루만 출석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는 일이 생긴다. 도리가 있나. 매일 접속하고 다른 사람이 방을 만드는지 어디에 들어가는지 알람을 확인할 수밖에.

이렇게 쓰고 나니 클럽하우스가 사람을 커뮤니케이션 중독으로 만드는 거대한 괴물처럼 보인다. 의외로 가벼운 SNS이기도 하다. 오디오 기반의 SNS이기 때문이다. 귀 외의 신체를 다른 용도에 사용해도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방을 개설해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대화가 2~3시간 이어지는데, 그 시간 동안 모든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 건 피곤한 일이다. 홈트, 설거지, 운동 등을 하며 띄엄띄엄 듣고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가 나왔을 때만 잠시 참여할 수도 있다. 시청자 참여가 가능한 라디오나 팟캐스트랄까.

얼마 전 클럽하우스는 ‘클럽 기능’을 공개했다. 기존의 관계뿐 아니라 관심사를 통해 커뮤니티를 만들 것을 권유한 것이다. 평소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 나누는 것만으로는 서비스가 성장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일 거다. 덕분에 평소 주로 음악인의 방에서 생존을 위한 대화를 나누던 나는 두 음악 관련 클럽의 어드민으로 초대받아 매주 월요일 밤마다 음악과 기술 이야기를 하는 방의 모더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오디오 크리에이터’라는 말이 생겨났다. 내가 거기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재미있을 뿐이다. 클럽하우스의 아이콘은 업데이트될 때마다 가장 팔로워가 많은 이의 얼굴로 바뀐다. 이는 그 인물이 클럽하우스의 커뮤니티에 기여했음을 기리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미 민주주의의 평등한 목소리가 될 줄 알았던 소셜 네트워크가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세상을 분열시키는 걸 봐왔다. 클럽하우스는 이에서 비켜나 좋은 영향력을 전하는 커뮤니티가 될 수 있을까.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마감에는 나쁜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글 | 하박국(영기획 YOUNG,GIFTED&WACK Records 대표)

‘나는 여기, 당신은 어디?’ 젠리

‘이거, 꽤 외롭네.’ 처음 젠리(Zenly) 앱을 깔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이 앱을 설치하기 시작하면 사용자 폰에 있는 연락처를 읽어와서 그중 젠리에 가입한 다른 사람을 쭉 보여주는 과정이 있는데, 친구 신청하고 싶은 사람이 없다. 업무상 명함을 주고받은 IT업계 사람이 태반이다. 젠리는 위치 정보를 공유하는 앱이다. 친구라고 할 수 없는, 일로 한두 번 만난 사람들에게 내 이동 동선을 알릴 수는 없다. 내 위치와 동선은 코로나19 확진 이후 보건소에서나 받아 갈 수 있는 정보다. 누가 “하이~ 어제는 XX 회사에 갔던데요? 미팅했어요? 혹시 뭐 좋은 일 있음?”이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새삼 위치 정보가 얼마나 내밀한 기록인지 깨달았다.

젠리는 이런 내밀한 정보를 공유하는 앱이다. 다른 사람과 친구를 맺으면, 그 사람과 내가 지도상에서 어디 있는지 좌표가 함께 표시된다. 그냥 위치 정보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친구랑 대화도 나누고, 날씨나 미세먼지 같은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위치 기반 SNS인 셈이다. SNS인데 게임 같은 느낌이 묻어난다. 친구 몇 명을 초대해야 특정 기능이 해금된다든지, 친구에게 텍스트 대신 수십 개의 이모티콘을 날리며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든지, 그런 자잘한 기능과 규칙이 아무튼 재밌다. 특히 여럿이 약속하고 만날 때 편하다. 약속 장소로 누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지도 보여주고, 친구 폰의 배터리 상황도 알려준다. 이 앱에서 중요한 건 신뢰 같은 것보다 ‘팩트’다.

올 초 모바일 시장 분석 서비스인 ‘앱에이프(AppApe)’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국내 젠리의 주 사용층은 10대(33.7%)와 40대(24.6%)다. 자녀가 쓰니 부모도 쓰게 된 건지, 학부모가 자녀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사용을 권유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인스타그램에서 젠리를 사용하는 어느 부모의 코멘트를 본 적이 있다. ‘아이가 학원에서 지하철 타고 오는 길에 졸았나 보다, 다른 동네까지 갔다가 금방 되돌아온 흔적이 보이네’ 식이다. 일본의 10대들 사이에서는 몇 년 전부터 젠리가 유행해 어느 기관이 진행한 ‘2018년 여고생 유행어 대상 3위’로 뽑혔을 정도다. 앱 통계와 트렌드를 알려주는 ‘앱애니(App Annie)’의 분석에서는 젠리가 대만 등의 나라에서 앱스토어 다운로드 수 2위를 차지한 적도 있고, 57개국에서 SNS 앱 분야 순위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젠리 앱을 진작 깔아놓고서 10대만큼 두루두루 기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다른 이들은 어떻게 쓰는지 살펴보니, 참 다양하게들 쓴다. 학생은 등하교 시간에 이 앱을 많이 열어본다고 한다. 친구가 내 근처에 있는지, 하교 후에는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 거다. 친구의 상태가 ‘수면 모드’로 표시되기에 전화를 걸어 깨웠다는 사람도 있다. 수면 모드는 사용자가 오랜 시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작동되는 모드로, 당연히 사용자는 실제 잠을 자는 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내 상태와 정보를 굳이 공유하고 싶지 않을 때는 실시간 위치를 대략적으로만 표시하는 안개 모드나 위치 정보를 업데이트하지 않는 얼음 모드를 설정하면 된다).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 젠리를 이용해 서로 따로 따로 타면서도 함께 타고 있다고 느낀다는 후기도 들었다. 개인정보가 공개되는 게 걱정되지 않냐 물으니, ‘어차피 친해서 상관없다’는 대답이 많았다. 아예 밖을 돌아다닐 수가 없었던 2020년 해외의 ‘록다운’ 기간에는 젠리 사용자들 간에 위치 정보가 집 안 한곳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포스팅으로 공유하는 행동이 챌린지처럼 번지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바란다. 외톨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고, 안전, 안심, 안정을 바라기도 한다. 젠리는 그런 느낌을 채워주는 앱이다. 타인의 움직임에서 얻게 되는 정보도 있다. 젠리를 자주 사용하는 이들은 중독 수준으로 이 앱을 열어 본다. 누군가를 알고 싶다는 마음은, 그 사람을 지배하고 싶다는 마음과 다르지 않은 면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거꾸로 그런 위험하고 내밀한 정보를 공유하기에 ‘우리는 친한 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만. 아, 이제 나에게 젠리 친구가 별로 없는 이유를 알 듯하다. 사람에게 몇 번 데이고 나면, 세상엔 정말 믿을 놈 없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분명한 건 ‘실시간’으로 내 정보를 공유하면서 누군가를 알고 싶거나 우리가 함께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꽤 많다는 점이다.

글 | 이요훈(IT 칼럼니스트)

아바타에게서 느끼는 온기, 제페토

오프라인에서 하는 뮤지션들의 공연과 팬 미팅이 한동안 중단된 사이, 나는 제페토(Zepeto)에서 종종 팬들과 어울렸다. 트위터는 짧은 글,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기반으로 한 SNS라면 제페토의 간판은 아바타다. 제페토 가입 후 사용을 시작하면 먼저 본인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내 얼굴 인식을 통해 제페토가 생성한 아바타를 처음 본 순간 꽤 닮아서 놀랐다. 얼굴과 몸, 헤어 스타일을 조금씩 손보면서 나와 더욱 비슷하게 혹은 더 예쁘게 아바타를 빚어낼 수 있다. 제법 퀄리티가 좋은 아바타를 보면 내 분신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평소 내가 즐겨 입는 스타일로 아바타의 옷을 입힌다. 패션 아이템을 쇼핑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원래 쇼핑이 그렇듯이. 이제 팬들이나 친구들의 아바타와 함께 할 일이 많다. 함께 게임하듯 즐길 수 있는 기능과 콘텐츠가 다양하다는 점은 댓글로 소통하는 소셜 네트워킹과는 사뭇 다른 기분을 안겨준다.

제페토는 네이버의 자회사 네이버제트가 개발, 제작한 글로벌 메타버스(Metaverse) 서비스다. 가상, 초월을 뜻하는 ‘메타’와 ‘유니버스’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이 상호작용하며 그 안에서 여러 활동이 이뤄지는 세상이다. 제페토에서는 아바타를 꾸미고 채팅으로 소통하는 것뿐 아니라 아바타를 이용한 ‘사진 찍기’, ‘영상 찍기’, ‘게임 하기’ 등등의 행위가 가능하다. 앱 스토어에서 같은 카테고리 내에 포진한 무수한 앱 중 하나를 고르듯, 마음에 드는 곳에 입장(클릭)하면 된다. 포토부스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구찌 빌라’와 ‘한강공원’에 놀러 가는 식이다. 친구와 그곳에서 논다는 건 우리가 같은 시간에 접속한다는 의미다. 가상 공간인 ‘제페토 월드’ 안에 다양한 ‘맵’이 존재한다. 구찌 빌라도, 한강공원도 맵의 한 종류다. 내 취향의 맵에 들어가 걷거나 뛰어다닐 수 있는 버튼을 이용해 움직인다. 제페토 월드에서 사용하는 화폐는 코인과 잼(보석)이다. 과거 싸이월드 시절 도토리로 아이템을 구매했듯이, 코인과 잼으로 원하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살 수 있다. 이 가상세계에서 쓸 화폐를 내 카드 결제로 얻을 수도 있지만, 출석하거나 미션을 수행하고, 광고를 보면서 얻기도 한다.

제페토를 즐기며 문득 떠오른 건 ‘쥬니어 네이버’다. 약칭 ‘쥬니버’는 네이버에서 1999년부터 서비스 중인 어린이 전용 포털사이트다. 성인들은 쥬니버의 존재를 모를 수 있지만, 그 안에서는 포털의 기본인 검색창부터 ‘숙제 도우미’, ‘학습’, ‘게임’, 동요 세상’ 등 어린이의 눈을 사로잡을 카테고리와 콘텐츠가 펼쳐진다. 증강현실, 3D, 각종 기술을 이용해 다양하게 구현된 제페토 월드는 게임을 하는 듯 빠져나가고 싶지 않은 재미를 준다. 동시에 나의 아이덴티티가 투영된 자아로 인해 단순히 게임을 한다는 기분과는 다른 느낌도 자아낸다. 제페토에도 여느 SNS처럼 팔로우 기능이 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서 모르는 이를 팔로우하고 댓글을 달기도 하는 것처럼 제페토에서도 소셜라이징 활동이 활발히 일어난다. 우연히 초등학생 친구도 생겼다. 우리는 맵에서 만나 함께 셀피를 찍고, ‘맞팔’을 했다. 메타버스에서의 교류에 나이 차란 별 의미가 없다.

제페토에 엔터테인먼트가 입성하는 현상은 자연스럽다. 엔터테인먼트를 소비하는 자들의 눈이 향하는 곳을 따라 산업 역시 확장할 수밖에 없으니까. 국내에서 페이스북의 부흥기가 끝나고 인스타그램이 핫한 SNS가 된 것처럼, SNS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제페토에서 셀렙의 팬 사인회나 가상 공연만 열리는 것은 아니다. 어느 대학교는 3월 초 신입생 입학식을 오프라인 대신 제페토 월드에서 진행했고, 중후한 이미지를 탈피하고픈 제약회사는 캠페인과 뉴스 전달을 위해 제페토를 활용한다. 나는 사회생활로 인해 장착된 페르소나가 없는 내 아바타를 보며 온전한 ‘나’란 어떤 모습인지, 내가 원하는 모습이 과연 뭔지 떠올려보기도 했다. 아바타에게 내가 정말 도전해보고 싶었던 스타일링을 몇 번 해보다가, 놀랍게도 오프라인 패션에서 그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 ‘가상’을 통해 물리적 현실의 벽을 뛰어넘는 친밀감을 얻는 건 기분 좋은 경험이다. 그렇게 아바타들에게서 사람의 온기를 느낀다.

구술 | UZA(뮤지션) · 글 | 권은경(<더블유> 피처 에디터)

팬 커뮤니티 이상의 왕국, 위버스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머글’에게 위버스(Weverse)의 위치는 어디일까. 대강 ‘BTS 기획사에서 만든 것’까지만 아는 이가 많을 것이다. 위버스는 구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현 하이브의 자회사에서 만든 팬 커뮤니티 기반의 SNS 플랫폼이다. 현재 가입자는 약 1,500만 명이다. 아티스트와 팬들이 남기는 글은 한 달에 1,100만건 이상, 하루 평균 140만 명이 들른다고 한다. 통계야 바뀌겠지만, 분명한 건 위버스가 ‘엔터 회사에서 개발한 앱’ 정도로 말하고 넘어갈 성질은 아니라는 점이다. 위버스에는 BTS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비롯해 현재 19팀이 ‘입점 아티스트’ 형태로 활동 중이다. 하이브가 여러 기획사를 인수하며 멀티 레이블 체제를 갖춘 만큼 뉴이스트, 세븐틴, 여자친구, 엔하이픈 등은 물론 씨엘, 선미, 헨리처럼 자사 소속이 아닌 아티스트, 협력 관계인 유니버설 뮤직의 팝 뮤지션도 입점해 있다. 유니버설 뮤직 산하에 있는 인터스코프 등의 주요 레이블과 하이브가 최근 발표한 조 단위의 인수합병을 생각하면, 앞으로 위버스에 빌리 아일리시, 아리아나 그란데, 저스틴 비버, 레이디 가가 같은 대형 아티스트가 입점할 가능성이 있거나 분명 입점할 것이다. YG엔터테인먼트의 음원, 음반 유통과 MD 사업을 담당하는 YG플러스와도 협업하기로 했으니, 머지않아 위버스 안에서 가수들의 소속사를 구분하고 따지는 건 무의미해질 듯하다.

이 아티스트들과 팬을 이어주는 가교인 위버스에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공간도, 아티스트가 남긴 메시지도, 굿즈 숍도 있다. 여기서 비대면 공연도 볼 수 있다. BTS가 <BE>로 컴백할 때 그랬듯 자체적으로 진행한 인터뷰를 제공하기도 한다. 위버스에서는 운 좋으면 BTS의 멤버와 댓글로 웃고 떠드는 수다를 이어가고, 내가 좋아하는 해외 아티스트에게 방구석에서 질문을 던진 후 댓글로 답을 들을 수도 있다. 브이라이브나 인스타라이브는 ‘실시간’ 소통의 맛이 있지만, 팬이 그 순간을 놓치면 참여할 수 없다. 위버스에서는 아티스트가 누군가에게 댓글을 달면 알람이 오기 때문에 꺼진 불씨를 지피는 일도 가능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콘텐츠가 공짜다. SM엔터테인먼트의 ‘버블’, 엔씨소프트에서 시작한 ‘유니버스’ 등의 유료 서비스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내 아이돌의 사진이나 음성, 영상을 받고 대화를 나눈다는 특별함이 있다. 하지만 구독자가 아닌 팬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이돌의 대화 하나하나에 가격표가 붙으면서 상품성을 키우는 일도 벌어진다. 위버스에도 팬클럽 가입을 해야만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별도로 있지만, 굳이 돈을 내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의 소통까지 단절시키진 않는다.

2019년 6월 위버스가 처음 론칭할 때만 해도 불만을 가진 팬이 상당했다. BTS 팬덤을 예로 들면, 데뷔 초부터 운영 중인 다음(Daum) 공식 팬카페가 버젓이 있는데 왜 앱으로 이사를 가야 하냐는 불만이었다. 동의하지 않은 재개발로 소중한 집터를 잃어버린 이들의 마음과 흡사했달까? 공식 팬카페는 가입 절차가 까다로웠다. 다음 카페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기획사 입장에서 어느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해외 팬들을 유입하기에 적절한 공간은 아니었다. 그들이 꾀한 건 국내외 팬이 한곳에 모일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 진입 장벽이 낮은 커뮤니티였을 것이다. ‘우리 언니, 오빠’가 위버스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팬들이 이 플랫폼에 오래 체류하지 않을 가능성을 생각해 비대면 공연이나 양질의 텍스트 콘텐츠 같은 묘수를 두기도 했다. 하이브는 올 초 네이버와 손잡고, 브이라이브로 대표되는 네이버의 콘텐츠 송출 및 라이브 스트리밍 등의 기술을 위버스와 합친다고 발표하면서 앞으로 비대면 공연의 기술력을 한층 끌어올릴 계획까지 세웠다. 위버스의 성장 공식에는 BTS 글로벌 팬덤을 위해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다국어 번역 기능도 한몫한다. 글로벌 팬덤을 위한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일념으로 태어난 위버스는 어마어마한 콘텐츠 공장이자 왕국이다. 하이브는 이것을 단지 팬 커뮤니티가 아닌 종합 플랫폼으로 확장하겠다는 선언도 했다. 상상이나 해봤던가, 아이돌과 팬이 이다지도 가까웠던 세상을.

글 | 권수현(텀블벅 콘텐츠 에디터n잡, < 시대에 부쳐> 공저자)

틱톡보다 트릴러

시작은 작년 여름쯤이었다. 막 늘어나기 시작한 각종 온라인 페스티벌을 찾아보다가 트릴러에서 만든 언택트 페스티벌 <Trillerfest>를 발견했다. 출연진 대부분이 래퍼, R&B 싱어, 디제이였고, 미고스와 마시멜로 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그 사실에 놀라 여긴 뭐하는 곳인가 했더니, 소위 ‘외힙’이라 하는 미국 힙합을 좋아하는 주변인들은 이미 발 빠르게 트릴러를 애용하고 있었다. 트릴러는 음악과 관련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창의적인 영상을 만들어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 앱을 사용해 짧은 길이의 세로 영상은 물론 뮤직비디오 제작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트릴러와 틱톡은 매우 비슷하다. 실제로 앱을 써보면 앱의 생김새도, UI 디자인도 비슷하기 때문에 틱톡과 사용 방법에 큰 차이가 없음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외국 힙합에 밝은 이들 사이에서 놀기 좋은 신종 플랫폼으로 떠오른 트릴러에 빠져들 무렵, 나는 우연찮게 트릴러의 공동 소유주인 제이슨 마를 알게 되었다(진짜다). 제이슨은 트릴러에 자부심이 있었고, 틱톡이 트릴러와 뭐가 다른지 한참을 얘기했다. 그가 말한 것 중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페스티벌에서 만날 수 있었던 요소, 그러니까 힙합, R&B, EDM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트릴러의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2년간 틱톡이 핫하게 떠오르며 대세 SNS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별의별 챌린지가 난무하며 비슷하고 조악한 영상만 가득한 그곳에 나는 살짝 피로를 느꼈다. 과거 금방 열기가 사그라든 바인(Vine)이라는 서비스로부터 밈 제작과 개그 정신을 이어받은 틱톡은 웃긴 영상이나 댄스 영상으로 물들었다. 바로 그 타이밍에 음악을 좀 더 전면 에 내세운 서비스인 트릴러가 좋은 대안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작년 8월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가 트릴러에 가입해 이틀 동안 동영상 네 개를 올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과 중국의 사이가 나빠지며 중국 기업의 작품인 틱톡을 미국에서 퇴출시키려는 분위기 속에 벌어진 일이다.

트릴러상에서 생기는 문화도 틱톡과 좀 차이가 있다. 트릴러에서 보게 되는 해시태그나 무브먼트는 틱톡에 비하면 재미 중심의 챌린지보다 의미 중심의 캠페인에 가까울 때가 많다. 저스틴 비버, 카디 비, 찬스 더 래퍼 등의 스타들도 트릴러에서만큼은 유머보다 음악으로, 프로모션으로 접근하는 분위기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퀄리티 좋은 볼거리가 많 다. 영상 보기를 원치 않는다면 음악만 들을 수도 있다. 직업상 음악과 관련된 콘텐츠를 자주 찾는 나조차 평소 보고 들을 수 없던 것들을 트릴러에서 꽤 접했다. 힙합, R&B, EDM 장르를 좋아하는 리스너에게 이곳은 디깅할 거리가 아직 가득하다. 나 역시 트릴러를 통해 아시아의 괜찮은 R&B 음악가 몇몇을 찾았다. 디깅할 때 좋은 건 라이브든 뮤직비디오든 영상이 함께 있다 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영상당 시간 면에서 상대적으로 무거운 느낌인 유튜브보다, 음악만 들을 수 있는 사운드 클라우드보다 새로운 음악을 찾기도 편하다.

트릴러는 작년 11월 마이크 타이슨의 컴백 복싱 경기를 주최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꾸준히 펼친다(트릴러의 의외의 특징 중 하나가 축구선수 네이마르 같은 운동선수 유저도 제법 있다는 점이다). 틱톡이 이미 탄탄하게 자리 잡은 걸 생각하면 높은 화력의 홍보는 경쟁사로서의 숙명일 것이다. 아쉬운 건 국내 유저나 한국 관련 콘텐츠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워너뮤직 코리아나 디스패치가 트릴러 계정을 활용하지만, 실제로 소득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전 래퍼 빅 나티가 트릴러 계정을 만들었는데 콘텐츠가 자주 올라오진 않는다. 트릴러에도 물론 인플루언서를 비롯해 다양한 개개인이 활동한다. 다만 이곳은 누구나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앱 내에서는 ‘음악’을 플랫폼 전면에 배치해 감상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좀 더 정제되고 창의적인 영상을 보고 싶다면, 힙해지고 싶은 음악 애호가라면 트릴러는 신선한 놀이터가 되어줄 만하다.

글 | 블럭(음악 칼럼니스트)

유일한 성격의 라이브 커머스, 그립

벌써 1년 넘게 지속된 코로나 19 시국 동안 ‘많은 사람들이 외롭구나!’라고 느낀 순간은 새롭게 출시되는 모바일 서비스를 사용해볼 때다. 사람들은 내내 연결되어 있지만 여전히 연결되고 싶어 한다. Z세대는 젠리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이모티콘을 보내고, 밀레니얼은 클럽하우스에서 서로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외롭다는 것. 나는 이 외로움의 결정적인 순간을 요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라이브 커머스에서 또 한 번 발견한다. 분명 무언가를 사기 위해 사람들은 라이브 커머스를 이용한다. 오픈 마켓의 상세 페이지와 리뷰가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그 어느 지점에 라이브 커머스의 가장 큰 장점인 ‘소통’이 있다.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방송을 통해 그 답을 얻고, 충분히 안심한 다음 무언가를 사는 경험’이 라이브 커머스에서 말하는 소통의 핵심이다. 그립(Grip)은 그 소통의 지점에서 앞서 말한 외로움까지 해결해줄 가능성을 내장한 서비스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나 한가한 때 별생각 없이 그립에 접속해 ‘그리퍼’(그립에서 물건을 파는 셀러를 지칭)들의 방송을 보다 보면, 유려한 화술의 쇼호스트와는 달리 그들이 왜 그 물건을 팔고 있는지에 대한 소소하고 사적인 이야기가 들려온다. 어느 순간 물건에 대한 필요보다는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 같은 게 싹튼다. 그렇게 ‘한번 사볼까?’ 하는 생각으로 상세 페이지를 누르면 나타나는 화면은 특정 상품에 대한 썸네일과 가격 정보가 아니다. 구매 상세 페이지는 1000원, 10000원, 50000원 식의 기본 단위 정도로만 구성된다. 가격이 저렴해서, 혹은 그 물건이 필요해서 방송을 지켜보고 사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소개되는 물건에 대한 셀러의 이야기를 듣고 살 결심을 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어느 정도 가격을 협상하는 일도 가능하다. 이러한 경험은 어릴 적 동대문 쇼핑타운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동네 시장과 닮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런 분위기를 복작거리는 시장 대신 방 안에서 편히 즐기는 거다. 나도 모르게 지니고 있던 외로움을 잊게 하는 화면 속 셀러와 소통하면서 말이다. 새벽에도 몇십 명의 그리퍼가 라이브 방송을 하는데, 한 그리퍼당 시청자가 한 자릿수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좀 더 친밀한 분위기에서 소통과 물욕이 동시에 충족되는 묘한 기분이 든다. 나도 모르게 새벽 3시쯤 비싸지 않은 안경테 하나를 샀다. 다른 라이브 커머스 서비스도 비슷하지 않냐고 하면,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카카오는 홈쇼핑에 버금갈 만큼 안정성이 있고, 네이버는 고급 백화점까진 아니어도 큰 폭의 할인과 꽤 괜찮은 아웃렛 같다는 장점이 있다. 쿠팡은 아직 화장품만 팔긴 하지만 왠지 배송이 빠를 것 같다는 신뢰감을 주고, 배민라이브커머스를 보면 ‘먹을 건 여기서 사야’라는 세뇌 회로가 절로 작동한다. 그런데 그립처럼 외로움을 공유하고 그걸 해소해줄 만한 라이브 방송은 거의 없다. 소상공인이라는 사회적 키워드로 굳이 구분 짓지 않아도 그냥 이웃 같은 사람들 속에서, 예전에 누구나 한 번쯤 살까 말까 했을 법한 물건을, 소소하게 몇십 명을 모아두고 선보이는 공간은 아직까지 그립뿐이다. ‘소확행’ 구매의 행복이 여기 있다.

테크업계 종사자로서 나는 라이브 커머스가 단순히 판매와 구매를 위한 편리한 방법에 그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온종일 홈쇼핑 채널을 틀어놓던 엄마도 단지 무언가를 살 목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을 테니까.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의 ‘이야기’가 편리함과 빠른 속도로만 평가되던 기존의 e커머스보다 좀 더 정감 있고 재미있는 경험을 안겨주는 것. 그런 모델이 바로 라이브 커머스가 아닐까 싶다. 스타트업인 그립에는 4천여개 이상의 입점 업체가 있다. 하루에 2백여 개의 라이브 방송이 쏟아진다. 어떤 물건이 얼마나 할인되었는지 확인하기보다는 그 방송 안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그렇게 적당히 외로움도 잊혀서 종종 앱을 켠다.

글 | 차승학(전 틱톡 콘텐츠 사업 팀장, 전 우아한형제들 매니저)

종합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으로 향하는 스포티파이

나는 2018년 11월 18일에 태어났다. 엄밀히, 아니 은밀히 말하면 다시 태어났다. 그간 14일마다 갱신하며 아이피 우회 무료 버전으로 맛보기나 하던 스포티파이(Spotify)의 세계를 미국 유료 계정으로 당당히 쓰기 시작한 날이 그날이다. 사반세기의 장구한 음악 감상 개인사에 시나이산 돌판처럼 불현듯 금이 쩍 간 것이다. 그리고 지난 2월 2일, 긴 시간 심심찮게 한국 론칭 소문만 돌던 스포티파이가 드디어 국내에서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포티파이의 역사부터 돌아보자. 스티브 잡스는 들어봤어도 다니엘 에크는 누군가에게 초문일 수 있다. 에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컴퓨터 신동이다. 그가 설립한 스포티파이는 2008년 서비스를 시작해 세계 최대 오디오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이 됐다. 현재 7000만 곡 이상을 170개국 3억 4500만 명 이상의 이용자에게 전하고 있다. 2003년, 아이튠스 스토어라는 걸 열며 ‘이제는 다운로드!’를 외친 잡스도 ‘닥치고 스트리밍!’으로 맞선 에크의 혜안을 따라잡지 못했다.

론칭 수년 만에 세계의 음반사와 청취자를 규합해 출범한 스포티파이의 핵심은 현재 40억 개 이상에 달하는 플레이리스트, 즉 ‘추천 재생 목록’이다. ‘비 오는 날 이런 감성’, ‘카페에서 공부할 때’ 같은 리스트는 빙산의 먼지다. 나는 평소 영국 <가디언> 지의 음악 기사를 즐겨 읽는다. 재즈와 팝 전문 칼럼니스트를 팔로우한다. ‘가디언 선정 2020년의 노래 50선’ 같은 그들의 리스티클(Listicle)에는 여지없이 녹색 링크가 걸려 있다. 타고 들어가면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다. <가디언>은 스포티파이에 ‘가디언 뮤직’이라는 프로필(일종의 미니홈피)을 갖고 있다. 그 아래 수십, 수백 종의 플레이리스트를 모아놨다. <뉴욕 타임스>부터 <피치포크>까지, ECM 레코드부터 블루노트까지 다양한 곳들이 공식 프로필을 통해 끊임없이 플레이리스트를 생산한다. ‘스칸디나비아 블랙 메탈 300선’ ‘80년대 최애 R&B 모음 1000’ 같은 필부필부 세계 누리꾼의 리스트도 ‘꿀잼’이다.

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있다. Z세대와 알파 세대는 음악의 계보와 장르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스포티파이는 흐름을 재빠르게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도한다. 이를테면 수많은 스포티파이 공식 플레이리스트 중 ‘Creamy’나 ‘Butter’라는 제목이 있다. 따뜻하고 꿈결 같은 느낌의 몽글몽글한 댄스 뮤직, 편안하나 에지 있는 R&B 따위를 모아뒀다. 여기 집결한 8~9시간 분량의 곡들은 R&B, 하우스, 인디 팝 중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스포티파이로 처음 음악을 접한 아이들은 ‘어떤 음악을 좋아해?’ 하는 물음에 ‘하우스!’ ‘R&B!’ 대신 ‘크리미!’ ‘버터!’라고 답하리라. 내가 근년에 빠진 ‘버터한’ 아티스트 ‘070 Shake’의 페이지에 들어가면, 왼쪽 아래에 ‘월별 청취자 2,016,734명’이라 쓰여 있다. 투명성과 함께 세계의 음악 팬과 연결된 느낌을 정확히 준다. ‘이 아티스트와 비슷한 느낌의 플레이리스트’, ‘팬들이 좋아하는 다른 음악’도 직관적으로 눌러보고 싶어진다. 얼마 전 원격 화상 인터뷰로 매리언 리 다이커스, 제러미 얼리치 스포티파이 음악사업부 공동대표와 마주했다. 그들은 “전 세계 약 100명의 에디토리얼(음악 큐레이터)이 인공지능과 협업한다. 인간의 지적 능력과 음악사적 지식을 머신러닝과 접목하는 데 있어 우리가 최고”라고 자부했다. 웹 플레이어, 또는 앱 플레이어(한국에서는 아직 사용할 수 없는)와 다른 기기(주로 휴대폰)의 실시간 연동 기능도 짭짤하다. 스마트폰으로는 손가락 끝으로 직관적 디깅을 하는 동시에 PC로는 마우스로 섬세하게 내 양곡창고인 플레이리스트를 관리하는 재미는 타이쿤 게임 못잖다.

스포티파이의 미래는 ‘종합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이다. 지난해에는 영국 해리 왕자 부부, 미셸 오바마의 오리지널 팟캐스트를 선보였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전설적 로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대담하는 ‘Renegades: Born in the USA’, 워너브러더스 및 DC코믹스와 손잡고 선보일 오디오 슈퍼히어로물 ‘Batman Unburied’도 개봉박두다. 한국판 서비스도 괜찮다. 해외 버전의 ‘캔버스’(곡 재생 시 관련 영상 반복재생 기능) 기능은 지키되 미국판에는 없는 ‘실시간 가사’ 지원을 챙긴 한국 버전은 꽤 쓸 만하다. ‘스포티파이 어때?’ 주변의 질문에 난 이렇게 답한다. ‘부끄럽지만, 쓰고 나서 삶이 바뀌었어.’ 무형의 무한세계, 스포티파이 월드를 경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카세트테이프와 LP 레코드를 축적하는 나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는 아직도 별개의 의문 거리다. ‘아, 테스형! 어이쿠, 에크형!’

글 | 임희윤(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피처 에디터
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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