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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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인 쇼의 여부를 확인하는 게 이제는 어색해진 시대.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컬렉션 장소를 누구도 묻지 않은 채 팬데믹이 불러온 낯선 상황에 자연스럽게 적응해가고 있다. 지난 3월 22일부터 27일까지 6일 동안 열린 2021 F/W 서울 패션위크 컬렉션은 디지털 런웨이로 진행되었다. 홈페이지와 유튜브, 포털사이트 등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필름과 이미지는 송출되었고, 우리는 익숙한 듯 쇼를 감상했다. 박물관과 미술관 내부가 런웨이로 바뀌고,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전시장과 현대미술 작품이 배경이 되며, 서울의 명소와 한강공원이라는 일상의 공간이 패션의 일부가 되었다. 쉽게 오픈될 수 없는 특별한 장소에서 열린, 이번 디지털 서울 패션위크에 등장한 컬렉션 중 15개 쇼를 소개한다.

BMUET(TE)

@bmuette

‘친애하는 누군가에게’. 알 수 없는 인물의 초상화를 보는 상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디자이너 서병문, 엄지나의 뷔미에트. 문화비축기지 내 강렬한 어둠 속으로 쏟아지는 핀 조명을 중심으로 몽환적인 런웨이를 펼쳤다. 블랙&화이트를 중심으로 레드와 타탄체크 등으로 변주되는 컬러 팔레트와 볼륨감 있는 실루엣에서 이들의 동화적인 상상력을 확인해볼 것.

HOLYNUMBER7

@holynumber7_office

“변화는 우리 손에 달렸다.” 원단을 나르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장한 이들은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해 주목한다. 신진 디자이너 최경호, 송현희는 과잉 생산되는 오버스톡 원단과 곧 사라지거나 매립될 원단과 부자재를 재활용해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대낮의 거리에서 한밤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다채로운 동선도 보는 재미가 있다.

HANACHA STUDIO

@hanacha_studio

디자이너 차하나는 시즌 콘셉트를 제안하기보다 1년 동안 하나의 테마를 정해 이를 조형적으로 연구하고 탐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시즌과 동일한 콘셉트인 ‘호안 미로(Joan Miró)’의 조형적 언어들을 달, 별 등 자유로운 드로잉으로 확장했다. 간결한 실루엣과 도형적인 패턴, 얼굴을 가린 가면 등의 요소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잠들어 있는 조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LEYII

@leyii_official

디자이너 이승희는 자신의 장기와 브랜드의 코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컬렉션을 풀어냈다. 현대 여성의 몸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한 실루엣과 단정하고 미니멀한 테일러링을 문화비축기지의 인더스트리한 무드의 공간에 녹여냈다.

BIGPARK

@bigpark_official

디자이너 박윤수는 평면적 스크린으로 입체적인 세계를 체험하는 현재를 담았다. ‘그림 속 세계’를 주제로 도회적인 실루엣과 입체적인 이야기를 다각도로 드러낸다.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미술 전시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승택- 거꾸로, 비미술> 전시품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BEYOND CLOSET

@beyondcloset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하이라이트 전시장을 런웨이로 삼은 디자이너 고태용의 비욘드 클로젯은 이번 시즌 콘셉트와 장소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듯하다. “나는 추상을 통과하고, 오브제를 통과하고, 다시 수공예적이고 원초적인 선으로 돌아왔다. 다 통과한 뒤의 종합적인 관계가 지금의 내 세계다.” 오프닝으로 등장한 이종석의 얼굴도 눈길을 끌었다.

SEOKWOON YOON

@seokwoonyoon

실험적인 조합, 섬세한 소재를 해석하는 디자이너 석운윤은 국립현대미술관의 현대차 시리즈인 양혜규의 ‘O2&H2O’ 작품을 배경으로 컬렉션을 소개했다. 수많은 과정이 켜켜이 쌓여 한 피스로 함축되는 패션의 속성을 담았다. 쇼스튜디오와 해외 매체에서 베스트 신진 디자이너로 꼽히며 주목받고 있다.

KIMZISU

@kimzisu_official

다이내믹한 조화, 세계의 다양성과 사회, 개인적인 다름에서 영감을 얻는 디자이너 킴지수의 이번 시즌 테마는 디지털 월드. 직접 대면이 아닌 디지털 환경에서 많은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의 자아와 오류를 그래픽 패턴과 컬러,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했다.

KWAKHYUNJOO COLLECTION

@kwakhyunjoo_collection

디자이너 곽현주는 코로나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돌아보며 행복하고 낭만적인 미래를 희망하는 굳은 결심을 쇼의 테마로 정했다. 이에 대한 상징으로 단검을 모티프로 한 데님과 실크 소재로 로맨틱 무드와 스트리트적인 경쾌한 요소를 담아냈다. 친환경적인 행복한 미래의 일상과 건강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론칭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애플키튼의 데일리웨어도 시선을 끈다. 그사이 엄마가 된 디자이너의 행복한 표정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LIE

@liecollection_

드론 방식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다양한 앵글을 포착한 디자이너 이청청의 라이는 완벽한 불안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장애를 극복하고 올림픽 승마 마장마술 경기에서 메달을 수상한 덴마크 선수 리스 하르텔에 영감을 얻은 도전적인 여성의 스토리텔링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말안장에서 영감을 얻은 장식, 승마 팬츠 실루엣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PIAN

@pian_archive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이른 경지’라는 불교 용어를 인생의 모토로 삼는 디자이너 김현호의 브랜드, 피안. 한강으로 나간 이들은 수공예 감성을 더욱 강조한다. 아이코닉한 거친 리넨 소재의 질감과 패치워크 디테일, 모자와 타이 등 토털 스타일링으로 컬렉션을 풍부하게 완성했다.

CARUSO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천사지 십층석탑과 ‘담담한 미소’라는 컬렉션 테마가 어우러진 디자이너 장광효의 카루소. 거대한 가운과 프린지 장식, 여유 있는 실루엣과 동양적인 프린트는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듯 긴 잔상을 남겼다.

AIMONS

@aimons_official

주체적인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김재현은 ‘Modern Romance’라는 자유롭고 낭만적인 코드로 컬렉션을 설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20> 공간을 배경으로 걸어 나오는 피스들은 현대적인 여성에게 자신감과 힘을 실어주기에 충분하다.

PAINTERS

@paintersfromseoul

전위적인 볼륨과 새로운 형태, 모험적인 디자인 세계를 펼치는 디자이너 전원의 이번 시즌 컬렉션도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이어간다. ‘lost’라는 단어. 앞이 보이지 않아 길을 잃은 듯한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스스로를 지키고 싶은 마음을 이미지화했다. 아방가르드한 실루엣과 엉킨 듯한 텍스처는 지금 우리의 시대를 보여주는 듯하다.

DOUCAN

@doucan_official

동양의 패턴과 아름다움을 그래픽적인 아트워크로 표현하는 디자이너 최충훈은 지극히 개인적인 하루를 떠올렸다. 약간의 떨림과 기분 좋은 나른함, 새로운 호흡이 주는 신선함과 타인의 낯선 시선을 즐기는 날을 상상하며 그린 패션 판타지는 어떤 것일까.

패션 에디터
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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