쾨닉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쾨닉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21-04-23T15:01:28+00:002021.04.24|FEATURE, 컬처|

2002년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해 오늘날 세계 아트 신의 최전선에 선 ‘쾨닉 갤러리’가 서울에 상륙했다. ‘쾨닉 서울’의 개관을 맞아 쾨닉의 세계를 쏘아 올린 갤러리스트 요한 쾨닉(Johann König)과 인터뷰를 나눴다. 하나의 갤러리에서 시작해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하며 ‘쾨닉 그 자체’라는 거대한 울타리를 만들기까지, 그가 들려준 기묘하고도 놀라운 쾨닉의세 계가 이제 이곳 서울에서도 펼쳐진다.

비밀스러운 ‘괴짜’ 갤러리스트, 요한 쾨닉

전 세계 아트 중심지의 하나로 꼽히는 독일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 그곳에는 육중한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진, 브루탈리즘 건축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가톨릭 교회 ‘장트 아그네스’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전후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자로 꼽히는 건축가 베르너 뒤트만이 설계한 교회는 2015년 쾨닉 갤러리가 그들의 새로운 터전으로 인수한 건물이기도 하다. 갤러리의 주인은 만 21세의 새파란 나이에 갤러리를 개관하며 입지전적 신화를 쓴 자, 혹은 괴짜, SNS 헤비 유저, 맹인 갤러리스트라 불리는 요한 쾨닉이다. 그의 나이는 올해로 만 40세. 1981년 그는 소위 ‘금수저’로 태어났다. 패밀리 비즈니스를 물려받는 것은 미술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다반사지만 쾨닉가(家)는 어딘가 남다르다. 요한 쾨닉의 아버지 카스파르 쾨닉은 쾰른에 자리한 루트비히 박물관 이사직을 거쳐 1977년 세계적 권위의 공공미술 행사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창시했다. 삼촌 발터 쾨닉은 동명의 저명한 아트북 출판사를 설립했으며, 이복형 레오 쾨닉은 현재 뉴욕의 갤러리 ‘쾨닉 & 클린튼’을 운영 중이다. 쾨닉 서울의 개관을 맞아 <더블유>와 단독으로 인터뷰를 나눈 요한은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언제나 예술에 둘러싸여 지냈던 유년기를 회상하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학교에서 미술사 수업을 듣는데 게르하르트 리히터, 온 카와라, 댄 그레이엄, 백남준이 자주 언급됐어요. 그런데 그들이 우리 집에 수시로 드나든 사람이었단 사실을 깨달은 건 머리가 큰 후였죠.” 이것은 단지 ‘애교’에 불과한 이야기. “부모님은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를 TV 스탠드로 사용했는데, 제게 그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일이었죠!” 1964년 앤디 워홀이 슈퍼마켓에서 폐기 처분된 세제 상자로 제작한 ‘브릴로 박스’는 20세기 시각예술 작품 중 가장 도발적인 작품의 하나로 꼽힌다.

올해 쾨닉 베를린에서 열린 시오타 치하루의 개인전에서 포즈를 취한 요한 쾨닉.  ⓒ Marco Fischer 

오늘날 쾨닉 갤러리를 현대미술계의 최전선에 서게 한 장본인, 요한 쾨닉은 여러모로 괴짜 같은 인물이다. 그와 오래 알고 지낸 예술계 동지이자 서울에서 ‘P21’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최수연 대표(그녀의 또 다른 정체는 잠시 후 얘기하겠다)는 요한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너무나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차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여러 나라에 있는 직원, 손님과 연락하고 동시에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자신의 일상을 생중계하죠. 누구보다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자 ‘하면 된다’라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어찌 보면 참 억척스럽고도 미워할 수 없는 괴짜 캐릭터예요. 한편 미술계 집안에서 자라 타고난 안목과 직관을 가졌고, 무서운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보아선 사업가적 기질도 다분하죠.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고 비인습적인 접근을 하는 그를 볼 때면 실리콘밸리의 창업자가 떠오르기도 해요.” 괴짜와 실리콘밸리 창업자 사이의 간극은 얼마나 넓고 또 좁은 것인지. 내년이면 개관 20주년을 맞이하는 쾨닉 갤러리는 모니카 본비치니, 알리차 크바데, 카타리나 그로세, 에르빈 부름 등 총 40여 명의 소속 작가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동시대 현대미술의 최전방에 서 있는 차세대 작가라는 점이다. 나아가 개념미술 기반의 융복합적 작업을 다루며 다양한 매체, 방법으로 방대한 영역의 작업을 펼치고 있다. 난해한 개념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세련됨,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각미를 놓지 않는 것은 이들의 또 다른 무기다(서울의 모 갤러리 큐레이터는 이들을 두고 “블링블링하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비엔날레, 뮤지엄 전시 등 국제적 전시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며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들에게선 새로움을 발견할 가능성은 무한해 보인다. “저는 항상 차별화와 혁신을 추구합니다”라고 말한 요한의 가치관이, 별나고도 예리한 감식안이 그와 함께하는 작가들에게서도 비치는 듯하다.

지난 세월 쾨닉 갤러리는 예리한 지성이 발동한 개념미술에 기반을 둔 다양한 작가를 소개해왔다. 이는 지난 20여 년 동안 쾨닉 갤러리를 독일에서 현대미술을 선도하는, 가장 흥미로운 갤러리로 서게 만든 동력이 됐을 거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어쩌면 요한 쾨닉이 유년 시절 겪은 하나의 모멘텀과도 같은 사건과 연관되어 있을지 모른다. 요한이 열한 살이 되던 무렵, 침대에서 폭죽을 가지고 놀던 도중 그는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됐다. 이후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를 다녔고, 성인이 되어 2008년 각막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지금도 일반인에 비해 30~40%에 불과한 시력으로 세상을 바라 본다. 공간 및 시각의 미(美)를 표현하는 예술, 미술을 탐구하는 그에게 장애는 어떤 의미였을까? “저는 귀찮을 정도로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어요. 게다가 눈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고, 장애는 이러한 제 성격을 증폭시킬 뿐이었죠. 안 좋은 시력을 보상하기 위해 내면의 통찰력을 단련해야 했고 예술이 제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더 깊이 고민했어요. 무엇보다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먼저 그 개념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했죠. 장애는 제게 장벽으로 다가왔다기보다 심오하고 지속적인 작품과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예술을 구별하게 만드는 힘이 된 셈이죠.” 실제 그가 2019년 출간한 자서전 <눈먼 갤러리스트(Blinder Galerist)>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사고를 통해) 예술은 시각적인 것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갖게 됐다.’ 비극적 사고가 이후 그가 누려온 성공의 열쇠였다고 말하는 요한은 이런 농담도 빼먹지 않았다. “수술 후 스톡홀름 현대 미술관에서 뒤샹의 ‘분수’를 처음 제대로 봤는데 어찌나 실망스럽던지!(웃음) 때론 볼 수 있다는 것이 꼭 좋지만은 않음을 알게 됐죠.”

베를린에서 서울로

지난 3월, 요한 쾨닉의 SNS에 게시글이 하나 올라왔다.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 현대미술을 위한 새로운 전시 공간을 발표하게 되어 기쁩니다. 4월 3일 서울 MCM 하우스에 ‘쾨닉 서울’이 개관합니다.’ 여기서, 요한의 오랜 지인이라 말한 최수연 대표의 또 다른 정체를 밝힐 때가 된 듯하다. 그녀는 4월 3일부터 5월 1일까지 열리는 쾨닉 서울의 개관전 <Inaugural Exhibition>을 시작으로 서울에 상륙한 ‘쾨닉 서울’의 대표직을 맡는다. “해외에서 전시를 관람하며 개인적으로 좋아하게 된 작가들의 갤러리를 찾아보면 쾨닉 소속이 많았어요. 전 세계 아트페어 현장에서도 가장 주목하는 갤러리 중 하나였고요. 순전히 한 사람의 관람자로서 쾨닉이 펼치는 프로그램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봐왔어요. 대범함과 상식을 깨는 참신함,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각미를 갖춘 프로그램, 대중에게 다각도로 다가서는 트렌디함은 쾨닉만이 가진 색깔이라 생각해요. 소속 작가 대부분이 유럽, 미주권 시장에선 활발히 알려져 왔지만 아시아에선 상대적으로 생소하게 받아들여져 꼭 국내에 소개하고픈 마음이 있었어요.” 최수연 대표가 말한다.

청담동 MCM 하우스 5층과 옥상에 둥지를 튼 쾨닉 서울에선 개관전이 한 창이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사랑을 뜻하는 철자 ‘Love’를 쇠사슬로 형상화하며 도발적 메시지를 전하는 모니카 본비치니의 설치작 ‘Love’가 관객을 맞이한다. 곧이어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쾨닉 갤러리와 20여 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해온 예페 하인의 네온사인 작품 ‘You Make Me Shine’을 만날 수 있다. 시선을 붙드는 다양한 작품을 뒤로하고 옥상으로 향하면 청담동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야외 조각 공원이 펼쳐진다. 공기가 주입됨에 따라 검은색 꽃잎이 파르르 움직이는 최정화의 대표작 ‘숨 쉬는 꽃’이 옥상을 밝힌다. 개관을 하루 앞두고, 기자간담회가 있던 4월 2일 화상 통화로 기자들을 맞이했던 요한 쾨닉은 최정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굉장히 흥미로운 작가죠. 시각예술, 그래픽 디자인, 산업 디자인, 건축의 경계를 허무는 전방위적 예술가라는 점에서 쾨닉 소속 작가들과 상통합니다. 참, 그에게 서울 전시장의 개관을 며칠 앞두고 축하 화환을 받았는데 꼭 고맙다고 전해주세요!(웃음)”

갤러리를 대표하는 총 30여 명의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이번 개관전은 쾨닉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밀도 높은 ‘프리뷰’라고 할 수 있다. “쾨닉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시라고 할 수 있어요. 가능한 한 많은 작가를 소개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 공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작품을 한국으로 가져왔죠. 이 때문에 개관이 미뤄질 뻔한 위기에도 처했지만 말이에요 (웃음). 이번 개관전은 쾨닉의 방대한 프로그램을 한자리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룹전이에요. ‘소개’라는 것에 방점을 둬서 일견 난해할 수 있는 학문적 큐레이션보다 대중이 훨씬 접근하기 쉽고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고자 했어요.” 최수연 대표가 말한다. 쾨닉 서울은 이후 요린데 포크트, 예페 하인, 코니 마이어, 트레이 압델라, 알리차 크바데 등의 전시를 앞두고 있다. 베를린에서 출발해 서울에 상륙한, 쾨닉의 세계를 이제 즐길 일만 남은 것이다.

경계를 초월하는 쾨닉의 세계

최수연 대표의 말처럼, 쾨닉 갤러리는 요한 쾨닉이라는 독특한 괴짜가 지어 올린 하나의 ‘성’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독특한 관심사가 곧 쾨닉 갤러리의 행보로 이어지며, 이는 곧 오늘날 미술 현장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된다. 최근 이러한 요한의 행보 중 한 가지 눈에 띄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올해 4월 독일의 미술 잡지 <Monopol>의 표지를 장식했다. 그를 ‘스타트업 방식으로 예술 시장을 개척하는 영리한 혁신가’라고 표현한 대목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걸치고 나온 파란색 캐주얼 슈트와 낡은 아디다스 이지부스트, 올리버 피플의 오말리 안경이었다. “완벽하게 셋업된 정장보다 캐주얼한 옷차림을 좋아해요. 최근엔 버질 아블로에게 오프화이트 운동화 한 켤레를 선물 받아 한창 신고 다녔죠. 낡아빠진 신발 상태를 보고 누군가 박장대소하긴 했지만요(웃음).” 요한이 말한다. 글로벌한 세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전 세계 셀 수 없이 많은 갤러리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갤러리의 이름만 봐도 그곳의 프로그램과 퀄리티를 믿고 찾을 수 있도록 ‘브랜딩’하는 것은 오로지 갤러리의 몫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요한 쾨닉은 자신의 갤러리를 하나의 거대한 브랜드로 확장해 예술계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첫 방증이 요한 쾨닉 자신이 일종의 미디어가 된다는 점이다. 그의 인스타그램, 클럽하우스 계정(@johann.koenig)을 보자. 탁월한 패션 센스를 지닌 그는 24시간 SNS에 접속해 있는 건 아닐까 착각될 정도로 SNS 헤비 유저다. 전시 소식, 도서 추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그는 자신의 일상을 기꺼이 전시한다. “가능한 한 예술을 열어두고 싶어요. 상업적인 접근이라기보다 일종의 임무라고 생각하죠. 그렇기 때문에 관객과 접촉하고 소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요즘 시대에 SNS는 광범위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니까요. 생중계를 통해 관객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비록 지금 우리가 육체적으로 만나진 못할지언정 결코 끊을 수 없는 인간적 관계를 맺는 것이죠.” 쾨닉만의 플랫폼에 대한 갈구였는지, 쾨닉 갤러리는 2017년 아트 신의 최신 소식을 전하는 잡지 〈쾨닉(König)>도 창간했다. 한 해 두 번 발행하며, 지금까지 유르겐 텔러, 알리차 크바데, 그레고르 힐데브란트 등이 표지 모델로 나섰다. 작년부터는 ‘예술은 무엇인가(Was mit Kunst)?’라는 명칭으로 팟캐스트를 시작하며 갤러리 소속 작가를 초대해 약 1시간에 걸쳐 예술적 담론을 나누는 콘텐츠를 전개하고 있다. 당연히 이 팟캐스트의 호스트는, 요한 쾨닉이다.

최수연 대표는 쾨닉 갤러리의 행보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으로 ‘수베니어’ 프로젝트를 꼽았다. “요한과 저는 둘 다 미술계 집안에서 자라 풍요로운 예술적 배경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부모의 그늘 아래 본인의 영역을 오롯이 구축하고 편견에 맞서 실력을 입증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해 해야 한다는 ‘챌린지’를 갖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한 챌린지의 실현으로 가장 놀라웠던 것은 패션, 사진 등 다양한 분야와 컬래버레이션해 전개하는 ‘수베니어’ 프로젝트였죠. 예술을 단지 예술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분야와 편견 없이, 능동적으로 협업하는 모습을 보면 쾨닉 갤러리가 단순히 갤러리 역할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하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갤러리라고 생각돼요.” 2017년 론칭한 ‘수베니어’는 쾨닉 갤러리 소속 작가의 파인아트 작품을 바탕으로 레디투웨어, 홈 오브제 등의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는 일종의 레이블이다. 그 첫선으로 신기루 같은 풍경을 회화로 옮겨내는 작가 코린 바스무트의 그림을 디지털 프린트해 재킷과 팬츠로 만들어낸 ‘파타 모르가나’를 공개했다. 한여름 해변가에 펼치면 꽤나 ‘인스타그래머블’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 것 같은 작가 노르베르트 비스키의 비치타월, 평범한 탁구 경기도 비범하게 변신시켜줄 것 같은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탁구공 등은 3유로에서 100유로까지 저렴한 가격으로 책정돼 스타일리시한 오브제이자 하나의 어포더블 아트로 다가온다. 지금까지 총 50여 종의 상품을 발매했지만 수베니어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꼽히는 것은 2019년 제작한 ‘EUnify’ 후드 티셔츠다. 브렉시트 이후 선보인 ‘EUnify’는 밝은 파란색 바탕 위 12개의 금색 별이 새겨진 유럽기에서 착안해 제작됐다. 다만 별 하나를 의도적으로 누락해 젊은 세대에게 유럽에서의 국경 없는 여행과 평화를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상기시켰다. 이 후드 티셔츠는 이후 배우 시에나 밀러,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모델 에드와 아보와 등이 착용한 모습이 포착되며 ‘힙’한 드레스업으로 인식됐고, 2019년 뮌헨안보회의(MSC) 의장 볼프강 이싱거가 제55회 뮌헨안보회의 개막식에 입고 등장하며 또 한 번 화제에 올랐다. 당시 볼프강 이싱거의 파격적 옷차림을 논한 기사 중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기사의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독일 정치인이 입은 한 장의 후드 티셔츠가 ‘스트리트 크레드’의 상징이 됐다.” 스트리트 크레드(Street Cred)란 직역하면 ‘거리 평판’으로 도시 청소년들에게 먹히는, 통하는 행동 방식으로 풀이된다.

이쯤 되니 기성화된 관습에 구속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발전에 열려 있는 것은 쾨닉 갤러리만의 DNA라고 보여진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던 작년, 쾨닉 갤러리는 또 하나의 기상천외한 ‘작당’을 벌인다. 이전까지 상업 갤러리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유례가 없는 인하우스 형태의 아트페어 ‘메쎄인 장트 아그네스(Messe in St.Agnes)’의 개최가 그것이다. 전염병의 발발로 전 세계 아트페어가 줄줄이 취소된 가운데 쾨닉 갤러리는 2019년 경매 전문가 리나 윈터를 고용해 자체적으로 페어를 진행하고 나섰다. 여기서 한 가지, 미술 시장은 크게 1차, 2차 시장으로 나뉜다. 1차 시장에선 갤러리가 주체가 되어 창작자(작가)의 작품을 유통하고, 2차 시장에선 경매가 주축이 되어 이미 거래가 일어난 작품을 재거래한다. 쾨닉 갤러리는 ‘메쎄 인 장트 아그네스’를 위해 1차, 2차 시장의 경계 지점을 모색했고 갤러리 소속 작가 뿐 아니라 비소속 작가의 작품, 동료 딜러로부터 위탁받은 작품을 판매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올해 5월 이들은 제2차 ‘메쎄 인 장트 아그네스’를 기획하고 있다. 명백히 분리된 1차, 2차 시장이라는 공식을 깬 이 시도를 두고 미술계에선 모름지기 말의 잔치가 열렸다. 가격 투명성이 보장된 민주주의적 방식이라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시장을 혼합해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후자의 입장에 선 이들은 가격 투명성이야말로 작가의 창작에, 작품의 수요에 악영향을 끼치는 양날이 존재한다는 점을 꼬집는다. 두 충돌하는 의견에 대해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팬데믹은 우리가 예술을 향유하는 것을 막을 수 없어요. 황폐한 시기인 만큼 예술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죠. 페어를 통해 아트 신이 지속되고 비소속 작가, 동료 딜러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관객에게 작품을 보여준다는 본질적인 아이디어는 변치 않았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아트 신은 이미 새로운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팬데믹으로 그 실현이 가속화된 것뿐이에요. 또한 1차, 2차 시장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죠. 제 경험상, 사람들은 미술품 판매로 얻은 수익을 다시 미술에 투자합니다.” 요한이 말했다.

현재 아트 신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NFT일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 풀이되는 NFT는 토큰화된 디지털 자산으로, 기존의 가상자산과 달리 고유한 인식 값이 적용돼 상호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쉽게 말해, 디지털 세계에서의 ‘등기부 등본’인 셈이다. 최근에는 게임, 부동산 등의 기존 자산을 디지털 토큰화하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특히 아트 신에서 NFT 기술을 활용한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올해 3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미국의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콜라주 작품 ‘매일: 첫 5000일’ 이 약 785억원에 판매되며 미술 시장에서의 NFT 거래가 본격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그 실체에 대해선 여전히 설왕설래가 펼쳐지고 있다. 미술과 블록체인 기술의 혁명적 만남이라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785억원의 주인공 비플조차 “NFT 아트는 완전히 거품 속에 있다”라며 그 한계를 말한다. 하지만 올해 3월 쾨닉 갤러리는 이 뜨거운 감자를 직접적으로 관통하는 NFT 전시 <The Artist Is Online> 및 NFT 옥션을 진행했다. 마누엘 로스너, 마리오 클링게만, 애디 바겐크네히트 등 22명의 작가가 제작한 29개의 디지털 작품을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세계 플랫폼 ‘디센트럴랜드’에 전시하며 3월 26일부터 엿새간 이들을 경매에 부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쾨닉 갤러리는 옥션을 통해 약 10만 달러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제는 NFT를 피해 갈 수 없어요. 여태 예술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새로운 대중을 예술에 끌어들이고, 전통적인 예술 시장을 흔들어놓는 흐름에 참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죠. 이는 예술 투자의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겁니다.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예술가들의 조력자가 되는 것이에요. NFT 옥션은 이러한 본질적인 아이디어를 성취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죠.” 요한이 말한다.

계속될 여정

끝으로, 쾨닉 갤러리가 시작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이것은 그 당시 베를린에서 건져 올린 한 장면. 우선, 여기 하나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새하얗게 도배된 전시장에 관람객이 들어서자 바닥에 놓인 직경 70cm의 육중한 철제 공이 사납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곧이어 공은 순결한 화이트 큐브의 벽에 부딪히며 큰 파열음을 내고, 충격을 견디지 못한 벽에선 잔해가 부서져 내린다. 구경꾼이 몰릴수록 전시장을 폐허에 버금가게 파괴하는 이 공은 미술가 예페 하인의 키네틱 조각 작품 ‘360° Presence’다. 당시 28세에 불과했던 젊은 예술가에게 요한 쾨닉은 어쩌면 갤러리의 재산과도 같은 전시장을 기꺼이 내주었다. 그리고 이렇듯 관객의 행위에 반응해 움직이는 작품이 전시장을 파괴하는, 짐짓 황당하고도 논란적인 전시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성공을 거뒀다. 요한은 개관 초기 진행한 예페 하인의 개인전을 쾨닉 갤러리의 ‘마일스톤’으로 꼽는다. “예페의 전시는 쾨닉으로서 개최하는 세 번째 전시였어요. 그런데 그 이전까진 흥행에 완전 실패했거든요. 꽤 절망적이었고, 빈털터리나 다름없었죠(웃음). 그런데 예페의 전시 아이디어를 듣는데 굉장히 상징적이라고 느껴졌어요. 전시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죠. 빚을 내서 작품을 제작했고, 전시는 당신이 말한 대로 대성공을 거뒀어요. 3개 작품 모두 판매했으니까요. 그때 어쩌면, 성공을 위한 유일한 길은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뿐이라는 교훈을 얻은 듯해요.” 요한의 말처럼 지난 세월 쾨닉의 역사는 그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의 연속이지 않았을까? 세상을 향한 물음표를 끊임없이 던지며 어디서도 시도된 적 없는 기행이자 실험, 유쾌하고도 날 선 작당을 펼치는 것이 쾨닉만의 색깔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묘하고도 놀라운 세계가 이곳 서울에서도 꿈틀거리며 펼쳐질 예정이다. “관습에 구속되지 않고 늘 새로운 발전에 열려 있어야 해요. 그래야만 예술이라는 생태계에서 건강하게 진화할 수 있으니까요.” 요한 쾨닉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