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없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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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틀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용할 수 있는 고체 화장품.

꺾인 화살표 세 개가 모여 순환하는 삼각형을 이룬 분리배출 표시. 이 마크가 버젓이 그려져 있으니 당연히 재활용되는 줄 알았다. 화장품 공병은 깨끗이 닦고, 라벨은 물에 퉁퉁 불려 제거했으며, 스포이드는 플라스틱과 고무 패킹을 분리했다. 하지만 Other 표시가 재활용이 불가한 기타·복합재질이라는 뜻이었을 줄이야! 뒤통수를 맞은 느낌. 그동안 공들인 시간과 노력이 무용지물이었음을 깨닫자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서 쓰레기들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화장품은 물론 과자 봉지, 영양제 용기 등 Other가 아닌 쓰레기를 찾기가 더 힘들었다. 이를 담은 종량제 봉투가 금세 넘치는 걸 보며 Other의 분리배출 표시 제외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참여했다. 그래, 용기가 문제라면 용기가 없는 고체 타입의 네이키드(Naked) 제품이 최선이지 않을까? 샴푸 바와 바디 솝을 고리 망에 넣어 욕실에 매달았다. 물에 녹아 물러지지 않고 거품도 잘 났다. 보습 성분도 많아 건조함은 제로. 작은 조각이 될 때까지 알뜰히 쓰고 남은 걸 세탁기에 넣으니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과도기적 현상일 불편함은 업그레이드 출시된 아이폰에 적응하듯 금세 사라졌다. 잠깐의 편리함보다 먼 미래에 가치를 둔 결과 죄책감 대신 행복감이 밀려왔다. 지난달 녹색연합, 여성환경연대와 90여 곳의 화장품 용기 수거 상점을 주축으로 ‘화장품 어택 시민행동’이 있었다. 단 2주 만에 전국에서 모인 용기는 8000여 개로, 그 무게가 370kg에 달했다. 뷰티 플래그십 스토어와 H&B 스토어, 대형마트가 공병 회수함을 설치한다면? 환경부가 재활용 정책을 더욱 강화한다면? 소비자가 꼭 필요한 만큼만 현명하게 구매하고 끝까지 남김없이 사용한다면? 의식 있게 만들고, 행동하며, 소비하는 우리 모두의 크고 작은 노력이 바람직한 일임은 분명하다. 조금씩, 천천히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화장품 기사를 쓸 때마다 불필요한 소비, 예쁜 쓰레기를 양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책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1 Le Comptoir du Bain 디 어센틱 마르세유바 솝 100% 올리브 오일 베이스로 만든 건강한 데일리 클렌징 솝. 파라벤, 보존제, 향료, 페녹시 에탄올을 배제했다. 200g, 12천원.

2 Loccitane 본느 메르 엑스트라 퓨어 솝 브랜드 최초의 네이키드 마르세유 비누. 무향료, 무색소로 예민한 피부도 사용 가능하며 프랑스 마르세유 지방의 식물성 오일을 주원료로 해 땅김 없이 촉촉하다. 100g, 9천원.

3 Lush 풀 오브 그레이스 스킨케어 첫 단계에 바르는 고체 세럼. 실제 러쉬 스파에서 페이셜 트리트먼트에 사용하는 제품으로 체온으로 살짝 녹여 얼굴 전체에 바르면 피부가 부드럽게 진정된다. 20g, 21천원.

4 Aromatica 티트리 밸런싱 클렌징 바 호주산 유기농 티트리가 과도하게 분비되는 유분과 피지를 관리하고 티트리 잎과 저자극 라하(LHA)가 묵은 각질을 제거한다. 여드름이 신경 쓰이는 얼굴이나 등, 가슴 부위에 추천. 120g, 15천원.

5 L:a Bruket 바 솝(009 레몬그라스) 항산화와 항균성이 뛰어난 레몬그라스 잎 오일이 손과 몸 피부를 깨끗이 클렌징해준다. 로프가 달려 있어 걸어두고 쓰기 편리한 것도 장점. 240g, 33천원대.

6 Skingrammer 스윗 앤 젠틀 샴푸 바 코코넛 유래 세정제와 참숯, 다시마 추출물이 두피의 각질과 피지를 제거해주는 약산성 비건 고체 샴푸. 200ml 리퀴드 샴푸 3개에 해당하는 용량으로 용기 3개를 줄일 수 있다. 100g, 17천원.

뷰티 에디터
천나리
포토그래퍼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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